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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마라톤의 승자가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 겔9:1-6 계14:1
인생을 비유했을 때 흔히 마라톤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올림픽 경기의 마지막은 마라톤인데 처음에는 다들 전력질주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지만 마지막 골인지점에서는 그 많던 경주자들이 거의 탈락하고 완주한 경주자는 많지 않기 때문에 인생의 삶도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삶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살이라는 것은 단 한번의 전력질주로 끝나는 100m 달리기가 아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천천히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하는 마라톤과 같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도 죽는 날 까지 각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을 하면 월계관을 받는데 올림픽 마지막 경기인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쓴 선수는 그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심장이 터질듯한 죽음을 경험한 경기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라톤을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순위에는 못들었어도 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마라톤 경기는 달리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앞서 나간다고 해서 조급해 할 필요도 없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앞서간다고 해서 우쭐하지 말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한 채 달리기만 하면 완주할 수 있듯이 인생에서도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한 채 중도 포기하지 않고 달릴 때 인생 완주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들의 삶도 마라톤 하듯이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인생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면서 승리의 월계관을 받는다면 이보다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생까합니다. 그러나 마라톤 경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인내없이는 할 수 없는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라톤은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면서도 그 이상의 감동을 안겨줄 때도 있다. 마라톤이 내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 분야든 정상에 오른 후엔 저마다 아름다운 무늬 몇 개쯤은 발견되기 마련이다. ‘마라톤 맨’ 빌 로저스의 인생 스토리는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마라톤 맨’은 미국 보스턴 마라톤과 뉴욕 마라톤에서 각각 4회나 우승을 차지한 빌 로저스의 이야기입니다. 로저스는 세계 마라톤 랭킹에서 세 차례나 1위에 오른 미국 마라톤의 전설이다. 미국 장거리 달리기 명예의 전당에선 그를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치켜세운다. 로저스의 삶 역시 1968년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마라톤의 재미와 의미를 두루 느끼게 해주는 인물들을 만나면서 로저스의 인생은 달라졌다. 73년 처음 출전한 보스턴 마라톤에서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지만 2년 뒤 열린 이 대회에선 미국 신기록을 세우며 월계관을 썼다. 이듬해 개최된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40위에 그치며 추락했지만 뉴욕 마라톤을 비롯해 유수의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마라톤 최강자가 되었다. 로저스와 저술가 매튜 셰파틴이 공동으로 쓴 ‘마라톤 맨’은 로저스가 보스턴 마라톤에서 처음 우승한 75년의 이야기를 뼈대로 삼고 있다. 2시간의 레이스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갈아 넣는 러너의 삶을 느껴볼 수 있다. 로저스 덕분에 미국에서는 조깅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마라톤 맨’에는 가슴에 새기고 싶은 금과옥조와도 같은 메시지도 등장한다. 로저스는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며 “불가능한 꿈이 도전해볼 만한 꿈이 된다”고 적어두었다. 마라톤에서 우승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 영광을 우리 인생도 어떻게 하면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인생 각자가 자기의 본문을 지켜가면서 묵묵히 살다보면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쓰듯이 인생 마라톤을 완주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천국이라는 월계관을 씌워주지 않겠는가 입니다. 남보다 특별한 것은 없더라도 끝까지 완주하는 마라토너처럼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는 인간만이 성공하는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주에는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기억될 수 있는 두 사람이 같은 날 시차를 달리하면서 생을 마감했는데 한분은 인생 마라톤을 완주하신 백선엽장군이시고 또 한 사람은 인생마라톤에서 중도하차한 박원순 서울시장인데 그는 그날 돌연 잠적한 뒤 산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1. 인생 마라톤에서 본 백선엽장군과 박원순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은 18년 전 즉 2002년 자신이 쓴 책에는 자식들과 아내에게 미리 유언을 남겼는데 그 일부를 발췌하면 자녀들에게 한 유언은
"유산은 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려 용서를 구한다"며 사과로 유언장을 시작한다. 특히 자식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아무런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고, 거창한 부모를 가지지 못했다 해도 전혀 기죽지 말아라"며 "첫 출발은 언제나 초라하더라도 나중은 다를 수 있다. 인생은 긴 마라톤 같은 것"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으면 조용한 장례식도 당부하면서 "내 마지막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원순시장은 자식들에게 유언하기를 인생은 긴 마라톤 같은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음에도 정작 본인은 그 인생 마라톤에서 중도하차하였고 그의 장례식도 본인의 소원했던 조용한 장례식과는 다르게 5일장으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문을 받았다. 이왕 이 두 분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났으니 누가 인생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받았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의 인생사를 쓰고자 한다.
◆백선엽(白善燁, 왼쪽 사진): 일제하 1920년 11월23일 평남 강서에서 출생해 만 100세를 넉달쯤 앞둔 2020년 7월10일 서울에서 별세.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중앙육군훈련처를 졸업하고 1943년 4월부터 해방될 때인1945년 8월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 광복직후 평양에서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 조만식 (1883년 2월~1950년 10월) 선생의 비서로 일하다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그해 12월 월남. 대한민국 국방경비대에 들어간 그는 한국전(1950년 6월~1953년 7월) 내내 제1사단장, 제1군단장, 제2군단장,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한국군 1호 대장)으로 최전선을 누볐다. 특히 다부동전투 등 낙동강전선에서 파죽지세의 북한군을 격퇴함으로써 신생 대한민국이 궤멸직전에 소생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그가 이처럼 대한민국을 아사직전에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가 세운 만주국의 중앙육군훈련처를 졸업하고 1943년 4월부터 해방까지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했던 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한다. 전후 그는 육군참모총장(1957년) 연합참모의장(1959년)을 거쳐 1960년 전역한 뒤 중화민국(대만) 프랑스 캐나다 등 대사를 지냈고 1969년 10월부터 1971년 1월까지 교통부장관 재임중 서울의 1기 지하철 건설을 지휘했다.▶백선엽 논란: 우파진영과 미국 등 우방국은 한국전 공훈에 초점을 맞춰 그를 대한민국을 구한 전쟁영웅 내지 20세기 이순신 등으로 추앙하지만 좌파진영은 간도특설대 복무 등에 초점을 맞춰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면서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등재하였다. 이 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 등은 이번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에 반대하면서 결국 서울 대신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데 성공했다.백선엽 본인은 간도토벌대에 있었으나 “독립군을 구경도 못했는데 무슨 토벌을 하느냐”(2009년 인터뷰)등 강력 부인했다. 위키백과에는 “그의 임관 전에 이미 조선인독립군은 자유시참변(1921년) 등으로 거의 소멸됐고 잔존세력은 중국공산군으로 편입됐기에 백선엽 지휘하에 희생된 조선인 독립군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절대적이다"는 취지로 적혀 있다. 한편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12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백 장군이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며 그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며 “한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백선엽과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대한민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백선엽 장군은 6.25 한국전에서 혼란스럽고 극도로 불확실한 전투 속에서 한국군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은 조지 워싱턴의 독립전쟁 승리와 비교할 만하다...우리는 세계의 위대한 군사 지도자 중 한 사람을 잃었고, 나는 진실한 친구를 잃었다”(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 “그는 지난 70년 동안 한미동맹을 강화했고 동맹이 깨지지 않도록 만든 진정한 영웅이자 애국자”(제임스 서먼 전 주한미군사령관), “백 장군은 오늘날 한미동맹을 만드는 데 공헌한 영웅이자 국보”(로버트 에이브럼스 현 주한미군사령관), “백 장군은 현대 한미동맹 구축을 주도했다”(해리 해리스 현 주한미국대사) 등 존경어린 찬사와 추모가 잇따랐다.하지만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목숨건 희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조문한 사람들은 자살한 박원수 시장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박원순(朴元淳, 오른쪽 사진): 1956년 3월26일 경남 창녕에서 출생해 2020년 7월10일 서울에서 자살.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 입학 뒤 수개월만에 유신반대운동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제적. 석방 후 단국대 사학과 진학.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해 1982년 대구지검 검사가 됐으나 6개월만에 퇴직하고 이듬해 변호사 개업.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초대이사장, 1988년 민변 창립회원, 1989년~1991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그의 이름을 알린사건은 바로 1993년 서울대 화학과 신정휴 교수가 우00 조교(여)에게 성적 괴롭힘을 가한 사건(대한민국 1호 직장내 성희롱 소송)을 변호맡아 6년간 투쟁끝에 승소했다.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는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다.1995년~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1998년 감사원 부정방지위원대책위원회 위원, 1999년 국회 제도운영개혁위원회 위원, 2000년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공동대표, 2001년~2010년 아름다운재단 창립자 겸 상임이사, 2006년 3월~2011년 9월 희망제작소 창립자 겸 상임이사를 맡는 등 한국의 대표적 시민운동가로 이름을 떨쳤다. 스탠포드대 비지팅 스칼라(방문교수)로 있던 2005년에는 북가주아름다운재단 창립을 주도했다(시애틀에서 연수중이던 안철수 박사가 축사 겸 특별강연).2011년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자 당시 여론조사 압도적 1위였던 안철수의 양보를 받아 다음달 열린 시장선거에서 승리한 뒤 3선에 성공, 자살 당일까지 최장수 서울시장 기록을 늘려가던 중이었다. 박원순시장의 가족사를 들여다 보면 아들 박주신 '병역 의혹' 문제가 미해결이다. 통합당대변인은"'병역 비리 의혹'에 관한 2심 재판이 1년 넘게 중단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민국 모든 남성이 의무로 지고 있는 병역의 의무에 지위고하란 없다"라면서 "당당하게 재검받고 2심 재판 출석해 오랫동안 부친을 괴롭혔던 의혹을 깨끗하게 결론 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원순씨 딸의 경우는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다가 2년후 법대로 전과 했다. 미대생이 법대생으로 변신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울대 미대에선 그 무렵 전후해서 10년 동안 박씨 딸 한 명만 법대로 전과했다는 것이다. 당시 법대부학장은 조국교수였다고 한다. 좌파진영들은 자신들을 위해선 일반인들이라면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도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조국의 딸 의대 진학과 맥이 통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박원순의 사상을 들여다 보자. 그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을 때 TV토론에서 한 말중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만세’를 외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소신’엔 변함이 없다는 박씨의 주장이다.(조선일보 10월 8일보도) 서울시장후보로 나온 사람이라면 과연 그런 해괴한 주장을 ‘소신에 변함없다’며 단호히 말한다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인지 서울시민들에게 묻고 싶다. 표현의 법 이전에 국민 정서와 상식적 차원에서 이런 말장난 같은 소리를 '당당히‘ 떠들어댄다는 자체가 서울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박원순은 또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에서 김일성의 지령에 따른 공산폭력혁명조직임이 문서를 통해서도 확인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南民戰) 사건까지 조작됐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더더욱 어처구니 없는 건 천안함 폭침사태에 대해 북한 소행이 아닐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보냈고, 작년 11월 연평도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도 북한을 성토하는 대열에는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북측에 대한 태도가 이다지도 ‘종북주의적이라면 서울시민들 보기 미안해서라도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는 일 따위는 애초에 꿈도 꾸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상은 박원순이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가 실제 말했던 것을 상기시킨 것이므로 그의 진짜 이념을 볼 수 있다. 같은 날 시차를 달리하면서 죽었던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누가 대한민국을 위한 진정한 애국자였고 누가 인생 마라톤의 월계관을 받았을까? 각자가 생각하기 바랍니다.
2. 천국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생에게는 세 가지가 공평하게 주어 졌다고 합니다. 첫째로 과거에 ‘태어나,’ 둘째로 현재에 ‘살아가며,’ 셋째로 미래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시점이나 정도가 다를 뿐 생로병사 즉 태어나 늙고 병들고 마지막에 죽는 것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단순히 ‘태어났다’는 과거, ‘살아간다’는 현재, ‘죽는다’는 미래의 숙명론으로 단정할 수 있는 인생관이 아니라 모든 인생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님의 섭리 속에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과거의 어느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나면서 인간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 눈물과 근심, 걱정과 사망이 없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의 인생관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며 그들은 하늘나라를 상속할 있는 축복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죄사함받고 죽어서 영생하는 삶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침례요한이 유대광야에서 예수님을 최초로 소개하는 말씀이 복음서에 나옵니다. (마3:2)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3:7) 그러나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이르되, 오 독사들의 세대야, 누가 너희에게 경고하여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게 하더냐? (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3:10) 이제 또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속에 던져지느니라. (눅3:10)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3:11)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겉옷이 두 벌 있는 자는 하나도 없는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1)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둘 중의 하나이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도 요한일서 3장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말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나타나는데,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녀이고, 불의를 행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귀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요일3:10)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침례요한이나 사도요한이나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어 봅시다.
(마7:16)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마7:21) 내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는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옵니다.
(마25:35-36)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개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 들였고 36 헐벗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 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천국에 가는 성도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웃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랑을 했느냐 입니다. (요일3:18)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2) 사랑을 행하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들어서 이웃사랑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눅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될 정도로 맞고 길가에 버려두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사장이 지나가면서 그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은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지만 그 제사장은 아이고..그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또한 다음 지나가던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냥 그를 두고 지나갔습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은 당대의 종교계의 중심에 있던 자들이지만 그들은 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는 그저 지나쳐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레위기의 율법에 나와 있는 정결법에 따르면 시체는 부정한 것이므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초주검인 이 상인을 돕다가 상인이 죽어버려 시체를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율법조문을 지키기 위하여 죽어가는 사람에게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보고도 모른채 하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같은 장소를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에게 가서 상처 난 곳에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응급처치를 하고, 자신이 타고 있던 짐승에 태워 한 주막에 데려가 보살피고 다음날 주막의 주인에게 돈을 주고 혹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에 갚아주겠다 약속하고는 자기 갈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율법교사에게 해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마친 후,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물었습니다.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인은 아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후 북이스라엘과 타민족의 혼혈로 생긴 종족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피를 더럽힌 존재라 멸시받는 자였지만 그 사마리아인이라도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었으면 그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구분 짓는 기준
성경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을 말할 때 죄인 또는 의인으로 구분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사람이지만, 마귀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으므로 죽은 후에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서 영원토록 고통가운데 형벌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귀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마귀의 자녀들이 곧 지옥형벌받는 악인들입니다. 마귀의 자녀들에 대한 목록이 계21:8에 나옵니다.
(계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한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불못에서 형벌을 받는 자들 곧 둘째 사망을 당하는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마귀의 자녀들은 백보좌 심판 날에 둘째 사망을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둘째 사망의 벌을 받지 않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찌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 6-7절을 보면,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사도바울은 갈리디아 성도들에게 본래 율법 아래 종 된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유업을 상속받게 하셨다고 교훈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관한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엄청난 신분의 변화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분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큰 특권은 없습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방식이 창세기 18장 18-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주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12장 28절을 보면,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주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구히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택하신 자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영구한 복을 누릴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들은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세상에 빠져있거나 예수님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면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에서는 같이 교회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는가 아니면 위선적인 믿음을 가졌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로 마귀자녀로 결정되어지는데 마귀의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행한 악으로 인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보면 농부이신 하나님은 밭에 씨를 뿌렸지만 밤에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은밀하게 덧뿌려져서 자라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마귀가 인간의 마음속에 뿌린 가라지는 특별히 이스라엘과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도 뿌려져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속에 살다가 죽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영적인 눈이 어둡다 보니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마귀를 하나님으로 알고 또 자기를 의의 일꾼인 줄 알고 외식하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마귀는 합법적 세상 임금(요12:31)일 뿐만아니라 공중 권세자이다(엡2:2). 그러므로 인류는 단 한 사람도 자기 믿음으로는 이러한 가라지의 모든 정체성에서 벗어나거나 자유 할 수 없다. 마귀의 권세 아래서 저주와 사망을 메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국은 천국을 침노하는 자만이 얻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뿌리신 천국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눅8:11). 예수님은 좋은 씨를 뿌리었는데 이 좋은 씨를 소유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지만 마귀는 인간의 마음속에 가라지를 뿌렸으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대로 살면 마귀의 자식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니 놀라운 천국 비밀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천국 씨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 삶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즉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였다.
3. 천사들에 의해 추수할 때가 곧 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 약속하신 두 가지 씨(렘31:27)에 대해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을 심으리라는 그때로부터 약 육백 년이 지난 초림 때에 씨가 뿌려졌다(마13:38). 하나님께서는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뿌렸고, 마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입을 통해 마귀의 씨를 뿌렸다. 두 가지 씨를 뿌린 장소는 이스라엘이다. 여기서 염두에 둘 것은 천국 씨가 뿌려진 것으로 그 결실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땅에 뿌려진 천국 씨는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 온 세계로 퍼져나가 교회라는 밭에 약 이천 년 동안 뿌려졌는데 교회는 하나님의 씨와 마귀의 씨가 함께 자라는 곳이다. 재림 때가 되면 뿌린 씨가 결실되어 열매를 추수한다. 재림 때는 천국 백성을 추수하는 때요, 알곡과 쭉정이를 분별하듯 신앙을 심판하는 말세이다. 그 때는 온 세계가 시험 받고(계3:10) 미혹 받는 때이며(계18:1-3, 23) 영적인 환란의 밤(마24:29)이다. 이러한 때 예수님께서는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추수를 명하신다. 추수는 먼저 가라지를 불사르기 위해 단으로 묶은 후에 시작된다. 가라지 단을 묶는 곳은 가라지가 자란 예수님의 밭인 교회이며 비진리를 따랐던 쭉정이 같은 자들이다. 그러니 심판은 교회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성령의 말씀을 외면하고 비진리에 미혹 받으면 가라지 단으로 묶여서 불타는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요.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알곡으로 추수되어 천국 곳간에 올라가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자란 밭(교회)이 좋다하더라도 추수 때 추수단에 묶이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이것은 성경이 정한 법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마치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13:43)라고 하셨다.
4.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표를 이마에 받는다
성경은 마지막 인류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주셨는데 마지막 때는 하나님표와 짐승표 둘중에 하나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한 이레 동안은 짐승이 다스리는 때인데 그 때가 되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짐승표를 받고 그를 섬긴다는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계13:15) 짐승표가 없으면 짐승에게 경배할 수도 없다고 했는데 만약 짐승표를 안받는다면 다 죽임을 당하게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런 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표를 이마에 표시하고 그 표가 없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죽이라는 명령을 하나님께서도 내리셨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겔9:2-4) 2 보라, 여섯 사람이 북쪽을 향한 높은 문의 길로부터 나오는데 각 사람이 살육하는 무기를 손에 가졌으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옆구리에 기록관의 잉크통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 놋 제단 곁에 섰더라. 3 그룹 위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으로부터 떠나 올라가서 그 집의 문지방에 이르매 그분께서 아마포 옷을 입고 옆구리에 기록관의 잉크통을 찬 사람을 부르시니라. 4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 도시의 한가운데 곧 예루살렘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그것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찍으라, 하시니라.
한 천사는 어떤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찍고 나머지 천사들은 이마에 표가 없는 사람들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일을 수행하는 천사인데 여기 나오는 예루살렘은 일차적으로는 당시 하나님의 도성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교회를 말합니다. 인류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이와같은 두려운 일들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이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면서 지금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가증한 소리를 듣고서 울며 탄식하고 있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표를 해야 하는가?
(겔9:5-6) 5 또 그분께서 내가 듣는 데서 다른 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그 도시를 지나가며 사람들을 치되 너희 눈이 아끼지 말고 너희가 불쌍히 여기지도 말며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여자를 철저히 죽이되 표가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 하시니 이에 그들이 그 집앞에 있던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더라. 왜 표를 하느냐 하면 표를 받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지만 이마에 표를 받은 자들은 털끝하나 건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죽이는 기계를 가지고 천사들이 이 세상을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죽이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오직 이마에 표 있는 사람만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의 이마에 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죽고 사는 일이 이 일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열 번째 재앙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집 문설주에 양의 피가 없으면 장자들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죽이는 천사가 너희 집에 갔을 때 그 피를 보면 넘어 가리라. 자 이 말씀을 믿고 실천한 사람들은 살았고 그렇게 않했으면 처음 난 것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하는 것은 그 표가 없으면 장자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죽이라고 했는데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가지말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시대에 이와 같은 두려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표를 받을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생사가 바로 이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상 일들에 바쁘다보니 정말 중요한 이 일에는 정신을 쏟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마와 마음에 기록할 때가 지금입니다. 우리마음이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으로 채워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말로 생사가 앞에 놓여 있는 매우 중대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 것들로 채워지면 우리 이마에는 하나님의 인 맞을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마음은 보고 듣는 것들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무엇을 듣고 보느냐 에 따라서 그런 것들로 채워지면 우리 이마에는 하나님의 인 맞을 자리가 없게 됩니다. 마지막 복음사역을 완수하는 예수의 증인이 되는 사람들이 이마에 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표는 바로 하나님의 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계14:1) 또 내가 바라보니 어린양께서 시온 산위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 안에는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 자 살아남은 이들 이마에는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겔 9장에 언급한 사람들과 계시록 14장에 언급된 사람들은 똑 같은 사람들입니다. 똑 같은 표이고 표가 위치한 곳도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이 왜 이마에 쳐질까? 이마는 우리의 두뇌가 있는 곳이며 우리의 양심을 다루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곳이 바로 이마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을 것인지 사탄을 섬길 것인지 바로 두뇌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떤 인격을 가질 것인지 우리의 이마에 있는 두뇌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의 두뇌를 온갖 것들을 채우고자 날마다 세속적인 것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에스겔당시는 성전안에 우상들이 있었고 벽에 우상그림들이 있었고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우상앞에 기도를 하는 것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것도 보도록 했고 동쪽을 향해 태양신을 예배하는 것도 보게 했습니다(겔8:5-18). 마귀는 오늘날 교회내에도 가증한 것들로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증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교회내 세속주의는 사람만 끌어모으면 된다는 각종 프로그램들, 노래방기기 갖다놓고 거기서 나오는 요란한 음악들이 울려나오는 가증한 곳이 되었습니다. 교회내 맘몬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교회를 다 점령하였고요 은사주의 등으로 각종 마귀들의 처소가 된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교회내 가짜 복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짜 복음에 속아서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세상과 혼합하여 살아갑니다. 에스겔 당시 성전의 모습이나 오늘날 교회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교회가 하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울면서 탄식한 적 있으십니까? 오늘날 만연해 있는 기만과 배도를 보면서 탄식하며 울고 있으십니까? 교회에서 펄져지는 이런 부정한 일들을 보면서 날마다 심령이 상하지 않습니까?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짓밟히고 사탄의 종들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시고 진리는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일들을 보면서 교회안에 교만과 이기심과 악들이 꽉 차있기 때문에 그들은 슬피 울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는 이런 일을 통해서 알곡과 가라지를 골라내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표를 받던지 사탄의 표를 받던지 선택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내에 왜 세속주의 물결과 거짓복음이 넘실댈까요?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렘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오늘날 교회에는 예언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보시면서 울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인하여 탄식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를 받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파하실 때 같이 아파해야 합니다. 교회안에 죄를 보면서도 무감각한채 기뻐한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살육하는 기계위에서 멸망당할 운명에 쳐해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성공과 명예와 자랑을 위해서 온 힘을 쏟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해 첫발도 내디디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두 주인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울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보시면서 울며 탄식하는 적은 무리들을 소유하실 것인데 바로 그 사람들이 장차 하나님의 표를 받을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먹그릇을 찬 서기관에게 울며 탄식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칠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죄짓는 것에 대해 슬퍼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운명을 내 운명처럼 여기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5. 인받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은 교회부터 시작한다
죄에 대해서 우리 양심이 깨어나야 합니다. 에스겔9장 6절을 보면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여자를 철저히 죽이되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제일 먼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형식을 지속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는 떠나버린 교회의 늙은자들부터 오늘날 교회 목사들부터 죽이라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본분을 망각해 버리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많은 목사들이 처음에는 주님의 신실한 종이었는데 세속과 물질로 가득 채워졌고 교회를 죄의 구렁텅이로 만들면 살육하는 기계에 첫 번째로 살륙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목사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기를 얻었더라도 죄에서 승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죄악에 동참합니다. 전도서 8장 11절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는 말씀은 오늘 교회목사들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주님께로 돌아와야 되는데 그들이 오히려 악행으로 마음이 돌처럼 단단해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심판하셔야 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명예를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기독교는 전례없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배은망덕은 오히려 더 늘어만 갔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기가 끝나가는 때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간절한 호소에도 응답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가다가 생을 마감한다면 그들이 바로 예수님이 그토록 살리려고 애썼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피값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목사 장로 집사등 주의 일을 열심히 할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픈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여러분의 가족들이 귀한 것처럼 예수님에게는 그들이 너무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파멸의 길로 가버렸습니다. 우리도 깨어 있지 않는다면 그렇게 예수님의 슬픔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의 표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살육의 기계에 들어갈 것인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금은 인류역사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곧 짐승표의 환란이 오고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없이는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하늘의 덕성들은 다년간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죄와 싸워 이겨야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성품이 그들의 인격이 다듬어 지면서 하나님의 인이 쳐지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외부와의 싸움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겨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예수님앞에만 굴복하면 사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소망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점진적으로 쳐지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앞에는 반드시 하나님앞에서 내인생을 결산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천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가증한 일로 인하여 울며 탄식하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는 이 말씀은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주신 말씀이십니다. 누가 이 표를 받고 살아남을 것인가? 여러분은 죄를 보면서 언제 그렇게 애통해 봤습니까? 멸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보면서 언제 울어 봤습니까? 만약 불의에 대해 애통하였다면 하나님의 표가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이마에 표를 받는다면 여러분들이 남은 자들이 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표를 하는 때는 추수할 때입니다. 검게 익은 포도송이는 포도주틀에 던져져셔 심판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고 황금물결을 이루는 벼이삭은 낫으로 베어져서 하늘곡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천사는 잘익은 곡식들을 하늘곡간으로 옮겨놓고 또 다른 천사는 죄악으로 익은 인생들을 포도주 틀에 던져 밟혀질 심판을 준비하는 것인지 냉정하게 자신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로 아주 풍성하게 익을 것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이 하나님의 표를 받던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던지 딱 두 부류의 사람들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이 바로 우리를 위하여 결정해야 할 날입니다. 하나님앞에 무릎 꿇고 이제 예수님이 사랑하는 것을 나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주님께 나의 죄와 다른 사람의 죄를 슬퍼하고 울며 탄식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이렇게 주님앞에 순종하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면 당신은 인생의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