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42〉진정한 도반의 의미?
자신 내세우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 존중
법랍 내세워 군림하는 아상〈我相〉 제거해야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은 현장(602~664)법사를 기준으로 구역과 신역으로 나뉜다. 즉 현장 이전의 대표적인 번역가인 구마라집(344~413)은 구역(舊譯)에 해당되고, 현장 이후의 경전을 신역(新譯)이라고 한다. 구마라집은 서역 사람이고 현장은 중국인인데, 대체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전은 구마라집역이다. 신역보다 구역본이 문장상 매끄럽고, 번역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학자들의 보편적인 설에 의하면,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이래 도교적인 성향에 비추어 한역되었는데, 구마라집 이후 격의불교가 사라졌다고 한다.
라집은 귀자국 사람으로 초기불교 및 대승불교 경전에 해박하여 인도 및 서역에 명성이 자자했다. 도안(道安, 312~385)이 전진왕 부견에게 라집을 추천하여 중국에 오게 되었다. 당시 라집은 젊은 청년이었고, 도안은 나이가 많은 노승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남을 인정하며 존중해주었다. 반면 라집은 도안을 ‘동방의 성인’이라 칭하며 흠모하였다. 도안이 불교 공부나 번역하는 일을 훈련시켰던 사람들이 훗날 라집 밑에서 역경 일을 도왔다.
라집에게 제자가 수백여명이었고, 당시 양자강 아래 여산의 혜원(慧遠, 334∼416, 도안의 제자)도 라집의 소문을 들었다. 라집과 혜원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법연(法緣)을 맺었다. 라집은 한 서신에서 혜원에게 이런 내용을 보내었다.
“승려의 재산은 다섯 가지인데, 복덕(福德) 지계(持戒) 박문(博聞) 변재(辯才) 심지(深智)입니다. 이들을 다 갖춘다면, 도가 융성하고, 다시는 의심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이 다섯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스님이야 말로 동방의 호법 보살입니다.”
어느 해 북방에서 온 승려가 혜원에게 “구마라집이 서역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라고 하자, 혜원은 곧 라집에게 편지를 보내어 “중국 사람들을 위해, 중국 불교를 위해 이 땅에 꼭 남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였다. 이후 혜원은 라집에게 서신을 보내어 법에 관해 자주 물었다. 이렇게 라집과 혜원 사이에 18번이나 오고간 편지가 <대승대의장(大乘大義章)>에 그대로 실려 있다. 또 이렇게 진리를 근저로 인연을 맺은 승려들이 있는데, 의상과 법장이다.
신라의 의상(義湘, 625~702)대사는 화엄종의 2조 지엄(智儼, 602~668) 문하에서 법장(法藏, 643~712)과 함께 동문수학하였다. 서안 지상사(至相寺)에서 지엄이 의상에게는 의지(義持), 법장에게는 문지(文持)라는 호를 주었다고 한다. 의상이 신라로 돌아온 뒤, 법장이 화엄종의 3조가 된 것에 이설이 많지만, 여기서 그 문제는 배제한다. 의상이 신라로 돌아온 이후에도 두 스님은 각별한 인연을 이어갔다.
의상이 신라에 머문 지 20여 년이 되던 해, 법장 문하에서 공부하고 신라로 돌아가는 승려 승전(勝詮) 편에 법장은 자신의 저술과 편지 및 선물 등을 보냈다. 당시 보낸 편지에는 안부 인사와 더불어 자신의 저술에 ‘조언해달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이 편지가 11세기 후반 어느 승려에 의해 송나라로 건너갔고, 중국 베이징 유리창(서울로 하면 인사동 골목)에 나타났다가 대만을 거쳐 지금은 일본의 천리(天理)대학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의상은 법장보다 18세나 연배인데도, 의상은 법장을 “나의 식견을 넓혀 주는 이는 장공(藏公)”이라고 표현하였고, 법장은 편지 서두에 의상을 “부처님 멸후, 불법을 빛내고 법륜을 다시 굴려 불법을 오래 머물게 할 이는 오직 법사”라고 칭찬하였다.
라집과 도안·혜원, 의상과 법장의 법연이 아름다운 것은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법을 구하는 겸허함이요,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지 않고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해주는 겸양이다. 과연 이런 일이 말만큼 쉬울까? 법랍과 연륜을 내세워 상대에 군림하려는 아상(我相)을 어찌 제거할꼬?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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