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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켄터키주의 윌리암스 타운에, 기독교인들이 1억 달러를 헌금하여 개장한, “노아의 방주 테마공원”이 있습니다. 이 공원 건축은, 이미, 2010년에 발표했지만, 그 동안, 여러 찬반논란에 시달렸습니다. 비 기독교인들은 켄터키주의 예산을, 어린자녀들의 과학학습에 방해가 되는 건축에, 낭비하지 말라며, 반대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테마공원을 위한 공사를 시작하여, 작년 2016년 현지시간 7월 5일에, 드디어 개장을 하였습니다. 이 공사를 맡은 “엔서스 인 제네시스”회 켄햄 회장은, “이 사업은 우리 역사상 최대로 위대한 기독교 사업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올 상반기 우리교회의 야외예배는, 이 곳에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성도는 골방에서도 하나님을 느낄 수 있지만, 불신자는 온 우주를 돌아다닐지라도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가 아무리 죄로 찌들었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룩한 무리를 남겨 두심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 10: 21을 보시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이방에게 멸절되었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두를 멸망시키지 않고, 그루터기를 남기신다는 겁니다. 또, 왕상 19: 18을 보시면,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합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의 복수를 피해 숨어서는,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있는 자는 자기뿐이라며, 두려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 “남은 자”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도 그루터기가 있음으로, 다시 싹이 트듯, 온 인류가 죄를 범했어도, 그 가운데, 남은 자를 예비함으로, 다시, 회복의 길로 가도록, 하나님께서 준비하심을,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노아가, 바로 이렇게, “세상의 남은 자”였습니다.
노아는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된 우리가 이 땅에서,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시 42편을 보시면, 5절과 11절에서,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합니다. 또, 히 12: 2을 보시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합니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도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도 바라봐야 합니다. 5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죠지뮬러,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어떻게 기도했기에, 5만번의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었는지, 나도 그와 같은 삶을 살겠다는 마음도 있어야 할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감리교의 이용도 목사님이나 우리 교단의 이상근 목사님의 깊이 있는 신앙의 자리가 부럽고, 신학으로는 옥한흠 목사님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와 오래 전, 저를 지도해 주셨던 김병로 목사님의 목회관을 바라봅니다. 여기에 계시는 여러분은, 어떤 분을, 여러분의 신앙의 모델로 삼고 계십니까? 신학자인 “아더 핑크”는,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삶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아벨의 예배 후에 에녹의 동행이 있고 에녹의 동행 후에 노아의 전도와 간증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예배는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예배 후에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있어야 전도도 있고 간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도하고 간증한 하나님의 증인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노아에 대해, 성경은 창 6: 9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하며, 히 11: 7에서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라고 합니다. 노아의 삶은, 불가능 속에서도 오직 순종하는 성도의 삶이었습니다. 이 아침에, 노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가, 혼란스럽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모두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2절을 보시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합니다.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은 후 경외함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노아의 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문화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두가 자신의 뜻대로, 원하는 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마 24: 38을 보시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라고 합니다. 또, 눅 17: 27에서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자기 좋을 대로 “보고” “취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시대에 행했던 것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곧, 개인의 선택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당시, 안식일에 한 사람이 나무를 했습니다. 그는, 그로 인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에, 그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노아의 방주 시대나 오늘의 공통점은 “내 편한 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고, 올바른 신앙의 기준점이 희미합니다. 이렇게 행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딤후 3: 1 - 5을 보시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많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아는 것이 지식을 위해 아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아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신앙은 한가롭게 천천히 헌신하거나 오늘은 50%, 내년에는 60%, 이렇게 매년 증가시켜 마침내 100%의 헌신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여기까지만 우리 삶을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명령한다면, 사실상 우리는 그분께 아무것도 드리지 않은 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듣기 원하시는 고백은, “어느 때, 어떤 곳에서도 주님을 의지합니다. 말씀만 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 준행하였더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볼 때, “신중하게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3절의“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는 것은, 땅의 악인들로 인해,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도 모두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노아는,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셔서, 아비의 죄를 자녀에게 묻지 않으시는데, 어찌 이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노아의 이런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노아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이전에는 홍수를 본적이 없었지만, 그래서, 방주가 뜰지, 가축을 파멸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이의제기와 반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고, 경청함으로, 그 말씀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에서 선악과로 하와를 유혹한 뱀은, 하와에게, 창 3: 5에서,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무조건의 순종보다는 한번쯤은 뒤집어서, 반대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지혜롭다고 유혹한 것이고, 이에, 하와는 6절에서,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고 뱀의 말에 설득당합니다. 오늘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던가? 아니면,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등등, 신앙의 위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허황되게 들려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한다는 자세로, 그대로 순종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께 신실하였습니다. 믿음은 숨겨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4 - 5을 보시면,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합니다. 노아는 말씀대로 홍수가 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를 일으키기 120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회개할 마지막 기회, 즉 마지막 7일의 은총을 다시금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거부하고, 회개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에도 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수를 통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 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대홍수로 나타나, 세상의 모든 것을 초개와 같이 사라지게 했습니다. 본문에서, “모든 생물”은 히브리어로 “에쿰”이라고 합니다. 이는,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코로 호흡하는 모든 짐승을 말하지만, 본문에서는 “모든 살아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을 완전히 쓸어버리심을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노아를 통해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에 기록된 노아홍수 사건을 부인합니다. 설화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거대한 대홍수를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거짓이라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지는 것이나, 여호수아가 아모리와 싸울 때, 아얄론 골짜기에서 해와 달이 멈춘 것이나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의 병이 치료될 때, 그 증거로 해의 그림자가 10도 물러간 것도 거짓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홍해가 갈라진 것을 비롯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시고, 제자들이 행한 것들도 모두 거짓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까지도 거짓이 되어, 성경은 빈 껍질만 남을 겁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대홍수로 인해,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과 짐승들 외에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멸절된 것처럼, 장차 지구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때의 물심판과 앞으로 있을 불심판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계 21: 1을 보시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대홍수로 심판한 뒤, 노아의 가족으로 인해 세상에 새 인류를 시작하였듯,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지으심으로 완전한 재창조를 이루고, 대대로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노아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로 다시 채우시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벧후 3: 12 - 13을 보시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홍수를 확실히 믿었기에 120년간 방주를 만들었고, 120년간 홍수를 외쳤던 것입니다. 젊음과 삶과 생명을 다 바쳐, 홍수를 외쳤던 것입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나오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우리는 종종 악한 생각들과 걱정에 억눌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말씀을 통해 계시하시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묵상을 시작하는 이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하나님 말씀보다는, 세상과 사람의 말,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과 기분에 따라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믿음의 결핍 현상입니다. 다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며, 다시 한 번,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는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6 - 7을 보시면,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라고 합니다. 노아는 말씀대로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홍수가 일기 시작했을 때, 노아의 나이는 600세였습니다. 이는, 노아가 기력이 쇠하였지만,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이 120년이 걸렸습니다. 이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 대해 처음 말씀하셨을 때를 추정해보면, 노아가 480세였습니다. 이 때부터 노아는, 축구장의 한 배 반의 규모가 되는 방주를 짓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는, 120년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하여, 실천함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곧, 당시로서는 기묘하고도 실제적이며, 현실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일을 120년간 행하였던 겁니다. 마치, 노아는 당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돈키호테와 같은 행위를 120년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방주에는 세 아들과 며느리를 포함한 8식구만 들어감으로,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듣고,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이러한 실천이 그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했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이 홍수로 인하여, 장인, 장모등 처가 식구들과 친구, 지인등 모두를 잃을 수 있었기에, 반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실천했습니다. 이로써, 그와 그의 가족들은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땅 위에 남는 유일한 생존자가 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노아의 식구라면 어떻겠습니까? 생존했다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할까요? 우리를 제외하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멸절되었는데 말입니다. 아마, 살았어도, 두려움과 공포와 고독감등으로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홍수를 피하여 방주로 들어간 것은, 오늘의 우리가 교회에 나옴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방주가 오늘날의 교회이며,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본문 6: 18절을 보시면,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 방주로 들어가고”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운 언약이고 우리와 맺은 언약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방주로 들어가야 합니다. 또, 7: 1을 보시면,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과 사도들이 세운 교회로 이어져,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됩니다. 행 16: 31을 보시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눅 14: 23을 보시면,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주체자가 하나님이시기에, 방주를 떠나서는,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 바쁘기 때문에,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사업하는 일에 바쁘기에, 방주 안으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마 24장과 눅 17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고, 이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고, 철저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알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벧후 2: 5을 보시면, 노아는 “오직 의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을 향해서, 또,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을 향해, 방주 안으로 들어와서 구원을 얻으라며,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목교회가 오금동과 송파 지역에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이 시대의 노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