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Posted by 김도연 on 2008-10-30 00:00:00 in 2008 김연수, 문장배달, 문학집배원 | 0 댓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김도연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어.
집요하게 배달되는 그녀의 편지였다. 나는 그녀의 문자메시지를 지우고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걸어가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전화기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간단하고 퉁명스런 인사말이 부자간에 오가는 동안에도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어머니를 찾았지만 놀러 가고 없었다. 대낮인데도 아버지는 취해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에 말예요. 소의 콧물과 침에 피가 조금 섞여 나오면 왜 그러는 건지 아세요?”
“그건 왜 묻냐?”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거죠. 아버진 소를 오래 길러봤으니 잘 알 것 같아서요.”
“너, 손 안 팔았지? 거기 어디냐?”
“아, 팔았다니까요! 돈까지 부쳐드렸잖아요.”
아버지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114로 가축병원을 찾지 않은 게 후회막심이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조차 없는 곳에 나는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또 편지를 보냈는지 신호음이 아버지의 취한 목소리와 섞여 귓속을 후비고 다녔다.
“내 지금 당장 농협에 가서 통장으로 돈 도로 보낼 테니 소 싣고 집으로 와! 알아들었냐?”
“아, 팔았다니까요! 소가 왜 그러는지 그거나 알려줘요!”
“왜 그러긴! 피곤하니 그러지! 하여튼 당장 돌아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테니 그리 알아!”
● 출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열림원 2007 (51-52쪽)
● 작가 : 김도연- 196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남.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2000년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 소설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십오야월』『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산문집『눈 이야기』가 있음.
● 낭독: 박기산- 배우. 연극 <심판> <로미오와 줄리엣> <난타> <삼류배우> 등에 출연.
이승준- 배우. 연극 <관객모독> <흉가에 볕들어라> <포트> 등에 출연.
윤복인- 배우. 연극 <갈매기> <첼로> <처음해 본 이야기> 등에 출연.
● 음악 : 베이스 갱
몽골에 갔을 때의 일이에요. 시골 농가를 방문했죠. 송아지가 자꾸 어미 젖을 빨아먹으려고 하니까 십대 초반 그 집의 아들 녀석이 송아지를 쫓아내고는 손에다 뭘 묻혀서 어미 젖에 바르더라구요. 제가 쫓아가서 물었어요. “너 지금 어떻게 한 거니?” 알고 봤더니 송아지가 젖을 빨지 못하게 똥을 묻힌 것이더군요.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그 애는 맨발로 초원을 뛰어다니더군요. 말을 타고 가서 양떼를 몰고 오더군요. 무지하게 무거운 물통을 메고 오더군요. 그 애한테 제가 말했어요. “네가 나보다 훨씬 더 낫다.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네가 눈감고도 하는 일들을 하나도 못한다니까.”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같은 걸 잘 하냐면 그것도 아니어서 아직 이 모양 이 꼴이에요. 누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니까요.
2008. 10. 30. 문학집배원 김연수.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