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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자 소설부문 (65호)
존재의 집
시골 길에서 남녀 반장과 부반장 네 명이 가을의 코스모스길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가을빛이 무르익어 길가의 코스모스가 만발했다. 나는 반장인 한은석과 나란히 섰고 은지는 장성수과 같이 나란히 섰다. 나는 은지를 자세히 한 번 훑어보았다. 청색 니트 조끼에 분홍색 스커트를 입어 청바지에 쉐타 차림의 나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예쁜 여자아이 모습이었다. 우리는 학교의 모든 회의나 행사에서 선도적 존재였다. 그래서 우쭐하며 그 작은 시골마을에서 최고라는 엘리트 의식에 들떠 있었다. 학교일을 같이하다 보니 넷은 어느덧 친숙해지고 성수와 은석은 나보다 예쁘장한 은지를 더 좋아했다.
시기심이었는지 은지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며 나의 존재가 자꾸 초라해지는 듯 해서 견딜 수 없었다. 늘 기침을 자주하고 가래로 골골거리던 은지! 겨울이면 손발에 동상이 걸려 울퉁불퉁한 모습, 손을 잡으면 차갑고 싸늘한 감촉이었던 은지였다. 거기에 비해 온기가 넘치는 나의 건강 체질이 내가 은지보다 낫다고 여기는 유일한 점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 사십이 넘었는데도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미자를 통해서 은지의 결혼생활을 들을 수 있었고 가끔씩 만날 수 있었다. 약속장소에 나가면 은지는 언제나 먼저 와 있었다. 귀부인처럼 성장을 하고 나타났지만 친한 듯 하면서도 여전히 이상한 거리감이 있었다.
사월의 어느 봄날에 나는 같은 학교 동기 선생의 권유로 명동에 위치한 교회에 나갔었다. 명동성당과 함께 교회 탑은 개신교의 성장을 상징하는 듯하였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 교회를 성장시킨 큰 목사님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살아온 정직하고 청빈스런 그의 삶을 흠모하였기 때문이다. 그 목사님은 원로가 되었고 이제는 새로 부임된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목사였다. 예배당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잔잔한 선율의 음악에 맞춰 찬송을 하였고 고개 숙여 기도를 드렸다. 이어서 담임목사의 메시지가 시작되었다.
그는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혀의 권세, 혀를 자갈먹이는 경건, 혀의 의지적 훈련 등에 대해서 성서의 근거를 들어 간결하며 설득력 있게 진행했다.
“여러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외쳐보세요.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라는 가요를 부르던 가수는 늘 그렇게 노래하고 외치더니만 정말 쨍하고 해 뜬 날처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왜 자살을 합니까? ‘자살’의 반대말이‘살자’가 아닙니까. 자살충동이 있을 때 자꾸 ‘살자’라고 외쳐 보세요! 그러면 살고자 하는 의욕이 생깁니다. 자꾸 큰소리로 ‘다 잘 될거야!’,‘난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외쳐보세요 그러면 그렇게 됩니다. 혀에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의 설교를 청종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언어에 따라 그들의 생각이 흐르고 있는 듯한 감화된 표정이었다. 그의 언어는 생각의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에는 영원을 사모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을 생래적으로 소유하고 있어서일까. 과학문명이 발달했어도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대한 신념!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의 삶에도 어떤 내부의 불씨처럼 영향력을 발하고 있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일주일마다 드리는 이 예배라는 행위는 자신을 성찰하고 그 존재 앞에서 다짐하며 미래의 삶의 보장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다소는 위로와 기복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나 그것은 모든 종교에 어느 정도는 필요한 영역이다. 그 시간이야말로 삶의 요약이며 역사이며 발전의 통로가 열리는 길이다.
목사의 설교는 힘이 있었고 진실한 호소력이 있어 감동적이었다. 조용한 목소리에는 경건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모두들 일주일의 자신들의 생활을 혀 사용과 관련하여 새롭게 창조하고자 하는 희망찬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예배를 마치자 성가대의 잔잔한 합창소리와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드리는 사람들, 먼저 나가는 사람들 속에 조용히 예배당 밖으로 나섰다. 내가 그 많은 인파를 뚫고 교회 예배당 뜰 쪽으로 나오자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희아야!”
누군가 손을 흔들면서 다가왔는데 은지였다. 옆에는 남자와 팔짱을 끼고서 표정도 매우 밝아 보였다. 서울 아가씨의 세련된 차림이었다. 단발파마 머리에 앞가르마를 하여서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양 귀밑으로 흘러내리게 하여 지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
“인사해. 내 약혼자야!”
나는 어리둥절하여 남자 쪽을 향해 목례를 했다. 남자는 머리에 희끗한 새치가 몇 개 보였고 얼굴은 하얀 편이었으며 양 볼은 어린아이 볼과 같이 앳된 모습으로 어딘지 모르게 지력과 안력이 모자라보였다. 은지의 미모가 빼어나 대비되어서 그랬는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y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서영석씨야. 이쪽은 고향친구인 민희아예요. 서울로 발령받은 중학교 교사거든요!”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주변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은지는 보랏빛 외투에 눈에는 보랏빛 화사한 화장을 하고 있어서 한결 우아해 보였다. 남자는 그런 미모의 여자를 자신이 소유하게 되었다는 우월감에 약간 어색하고 부자연스런 태도를 보였다.
“곧 결혼도 하겠군요. 혹시 사귀는 분이 없다면 교수를 준비 중인 제 친구를 소개시켜 드릴까요?”
난 말없이 비프스테이크를 절반쯤 먹고 약속이 있다면서 바쁘게 그들과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자신의 약혼자에 비교해서 못생겼다고 생각했는지, 원체 미인을 밝히는 속물이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표정이나 분위기는 나에게 모멸감을 주었다. 그 불쾌한 감정은 한동안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서 와. 어머! 희아도 왔어?”
“응, 너를 많이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방학이라 시간도 있고 해서 함께 왔어!”
오랜만에 방문한 은지네 집은 일산의 고급저택으로 없는 것 없이 잘 갖추고 있었지만 왠지 활기가 없어 보였다. 은지의 얼굴도 축이 났고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가 거실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은지는 저녁을 차리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왠지 그 행동에도 활기가 없는 분위기라 우리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응접실의 장식이 놓여 있는 크리스탈 장식장에 그녀의 시댁과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다. 모두 부유한 사람들 얼굴처럼 윤기가 흐르고 귀티가 났다. 맨 앞에 나란히 앉은 그의 시부모는 좀 까다로운 분위기였다. 왼편의 남편과 함께 비스듬히 서있는 은지는 왠지 위축되어 있는 분위기였다.
“아이가 없어서 시댁식구들의 구박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봐!”
“결혼 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칠년이 지났는데도 애가 없으니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어떻겠어!”
잠시 후 식사준비가 되었는지 은지가 식탁 쪽에서 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시장함을 느끼며 식탁 쪽으로 갔다. 그런데 식탁에 펼쳐진 메뉴는 우리를 실망케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위해서 정성껏 차린 식단이 예상되었으나 저녁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무말랭이와 오징어젓갈, 그리고 깍두기, 두부조림, 콩조림 그리고 콩나물국이었다. 이와 같은 식단은 기본 밑반찬으로 반찬이 없을 때나 간단히 먹는 메뉴였다. 나는 그의 밥상을 받으면서 어렸을 때 은지가 우리 집에 놀러 와 밥 먹을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자는 밥 먹는 것이 깔짝깔짝하여 복이 없어 보인다!”
은지는 언제나 밥도 젓가락으로 먹고 반찬도 조금씩 입에 오물오물 우아한 자세를 익히려는 듯 그렇게 먹었다. 나는 밥볼을 불리며 큼지막하며 푸짐하고 복스럽고 맛있게 먹는 편이었다. 엄마는 그 때마다 밥은 우리 희아가 복스럽게 먹는다고 칭찬했다. 은지의 얼굴은 여전히 예쁘지만 왠지 냉정하고 복스럽지 않아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겨우 이렇게 대접한단 말인가!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를 무시하였다 생각하니 불쾌하고 섭섭했다. 생활형편이 어렵다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 같으면 성찬은 아니더라도 삼겹살 파티나 닭도리탕 정도로 간단하지만 먹음직하게 차렸을 것이다. 우리가 메마르고 허전한 식사를 마치자 그의 남편이 돌아와서 커피를 마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원한 베란다 쪽으로 옮겨서 화투를 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너 이것 일등이었잖아!”
언제나 삔 따먹기와 화투에서 나에게 졌던 은지는 그 옛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민화투를 치자고 하며 나에게도 화투를 던졌다. 나는 그것을 밀치며 구경만 하고 따분하게 하품을 했다. 옆에는 미자가 등에 업고 온 승재가 재롱을 떨고 있었다. 화투를 깔고 있는 자리에 아이가 다가와서 화투를 집으려고 했다. 은지의 남편 영석은 그 아이를 자신도 모르게 밀쳐내려 하다가 볼을 어루만지고 귀여워했다. 아이는 초승달이 떠 있는 화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커다란 눈동자를 깜박였다.
“아이! 귀여워! 우리는 왜 아기가 생기지 않는 거야, 너 때문이야!”
늘 습관적으로 내뱉던 말인 듯 그는 자연스럽게 쏟아내었다. 순간 은지의 얼굴은 가장 불행한 표정으로 나락하고 말았다.
“왜 그런 기계는 안 나오나? 여자와 남자가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아맞히는 기계 말이야!”
기가 막혔다. 나는 은지가 인물도 볼품없고 하는 짓도 덜 돼 보이는 이 남자에게 무엇에 반하여 결혼하였는지 의아했다. 정말 은지가 아까웠다. 은지의 표정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지만 애써 그 표정을 감추려고 명랑한 척했다.
“자, 어서 해. 네 차례잖아!”
은지는 신경질적으로 못들은 척하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 미자에게 다그쳤다.
“응, 아! 벌써 만원이나 잃었어!”
미자가 돈을 잃어 좀 따분해 하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어머? 벌써 아홉 시네! 이제 일어나자, 더 어둡기 전에!”
“왜 벌써 가려고?”
잠깐 돈 따는 재미에 빠져있던 은지는 과장하며 뭔가 잊어버리려 애쓰는 듯했다. 집에 돌아가려고 현관 입구에서 비스듬히 열려있는 방이 보였다.
“여기는 무슨 방이니?”
내가 방문을 밀치며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피아노가 놓여 있고 첼로도 놓여 있고 클래식 기타까지… 그리고 방안의 벽엔 명화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화와 초상화가 여기 저기 놓여 있었다. 그것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실내 장식이었다.
“너 전시회 할 거야? 왜 이렇게 그림이 많지?
“응, 좋은 것 사 모아 두었던 거야. 아기가 생기면 정리하려고 그래!”
말끝을 흐리며 말하던 은지의 표정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비싼 그림은 아낌없이 사며‘손님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마음을 쓰니 무슨 복을 받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몹시도 서운하였고 은지에 대한 친구관계도 멀어져갔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은지와 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조그만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놀이를 같이 하는 단짝동무였다. 은지는 우리 마을에서 논과 밭을 제일 많이 소유한 부잣집 딸이었다. 부잣집의 딸이라 그런지 피부도 곱고 키도 크고 또한 가족 중에 막내라 형제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내가 부러워하는 모든 풍족한 것을 다 가졌고 거기다가 공부도 잘하여 나와 언제나 전교 1,2등을 다투었다. 나는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고 일곱 남매 중에 첫째인 장녀였다. 맏딸로서 가난한 식구들의 경제난에 동참해야 했다. 은지네 마당에는 겨울 내내 따뜻하게 난방할 땔감의 볏단이 높이 올라가 쌓여 있었지만 우리 집의 조그만 마당에는 갯벌을 막아서 자라난 잡초들을 땔감으로 쌓아 두었는데, 그것은 낮고 엉성하게 쓰러질 듯 말듯 초라했다. 겨울의 땔감을 미리 떨어지기 전에 나는 갯벌의 허허벌판으로 찬바람을 맞으며 잡초들을 자르러 나가야만 했다.
내가 낫으로 그 질긴 관목의 잡초를 자르고 있을 때 은지는 따뜻한 방에서 TV를 보고 <새 아씨>연속극을 즐기고 <여로>의 태연실의 연기를 즐겼고 읍내에 가서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농사철의 바쁜 날에 어머니의 모내기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난 자주 학교에 결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은지는 반장이 되어 선생님의 사랑과 반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은지는 서울로 시집 간 큰 언니가 보내 준 옷으로 공주처럼 예쁘게 치장하여 우리 마을의 멋쟁이였다. 칼라가 넓은 세라복과 초록과 빨강의 물방울무늬의 니트 세타를 입었을 때는 그 예쁜 얼굴이 귀족의 자제처럼 돋보였다. 나는 언제나 땟물이 찌든 나이롱 상의에 소매부분은 콧물을 훔쳐서 번쩍이고 있었다.
이른 봄, 사월이 되면 은지가 분홍색 치마를 입을 때, 늘 나이롱 바지만 입고 다니던 나는 예쁜 치마를 사달라고 엄마에게 울며 조르다가 머리를 쥐여 박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은지는 신데렐라요 나는 콩쥐 신세였다. 황량한 벌판에서 나무를 긁어모아 새끼줄로 든든하게 묶어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길은 서글펐다. 배고프고 숨이 차고 힘들어서 잠시 쉬려고 논두렁 담 벽에 기대어 섰다. 지친 시야에 저물어 오는 노을 저편이 펼쳐졌다.
“기륵기륵 기륵기륵….”
기러기 떼가 노을 진 창공으로 사라져갔다. 난 사라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며 아득한 저편의 세계를 상상하곤 했다. 기러기가 마치 나의 힘찬 미래를 찾아 날아가는 듯했다. ‘두고 보자. 난 은지 너보다 더 행복한 여자가 될 거야. 반드시 잘난 남편을 만나고 옷도 너보다 예쁜 걸로 해 입고 먹고 싶은 귤도 마음껏 먹고…’ 은지가 일등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렇게 학교를 결석해서라고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나뿐만 아니라 극빈한 학생은 농번기에 결석하는 일이 잦았던 때이다.
“희아 엄니 계슈!”
은지 엄마였다. 엄마에게 곗돈을 받으러 오셨다.
“아! 형님이유!”
엄마들은 나이에 띠라 형님, 동생하면서 의가 좋은 편이었다. 마루에 올라서자 엄마는 찐 고구마와 식혜를 내왔다.
“좀 드세유.”
내가 은지 엄마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자는 어쩜 저렇게 혈색이 좋을고! 무엇이든지 잘 먹어서 좋겠네. 우리 은지는 동상도 잘 걸리고 감기는 빠지지 않고 잘 걸려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은지엄마는 사십이 넘어서 가진 늦둥이라서 은지가 약하다고 푸념했다.
“별 걱정을 다 하쇼. 은지는 얼굴도 이쁘고 참하고 공부도 잘 하는디, 무슨 걱정이우. 우리 희아가 말괄량이 같아서 도리어 걱정이구먼요!”
“억척스러워서 잘 살겠어!”
“형님도! 계집애가 억척스러워서 무엇에 쓴당 가요!”
은지 엄마는 벌써 허리가 약간 기울어진 중늙은이 모습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엄마는 삼십대 중반으로 아직은 젊었다. 은지 엄마는 내가 놀러 가면 언제나 맛있는 간식을 주셨다. 내가 은지네 집에 자주 가는 기쁨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은지와 나는 무더운 여름이면 석류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나란히 배를 깔고 엎드려 숙제를 했다. 밭에는 고추잠자리와 파리가 붕붕거렸고 텃밭에서는 상추와 쑥갓이 자라고 참외와 오이, 가지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우리 엄마는 땡볕에서 모내기로 허리를 펴고 싶어도 제대로 못 피며 힘든 노동을 하고 있을 때, 은지 엄마는 텃밭에서 김도 메고 꽃밭도 가꾸는 것이 소일거리였다. 은지 엄마는 채마밭에서 대바구니에 참외를 가득 담아 가지고 평상에 올라오셔서 노랗고 작 익은 먹음직한 참외를 깎아서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자! 달다. 어서 먹어 봐라!”
나에게 은지 엄마가 한쪽 집어 주었다. 우리 집에서는 제사 때나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다. 나는 받아서 맛있게 먹으면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은지가 부러웠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예 저녁까지 은지네 집에서 먹고 집에 돌아갈 때가 많았다.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강낭콩을 푹 삶아 그 즙에 밀가루를 떼어 만든 콩 수제비를 끓여줄 때는 정말 맛이 있었다. 거기에 먹음직한 열무김치, 멸치조림, 콩장, 꽁치구이 등… 짜디짠 우리 집 김치와 반찬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자! 더 먹어라, 니는 어쩜 그렇게 먹성이 좋고 복스럽게 생겼냐! 은지 니도 희아처럼 좀 먹어 봐라!”
나는 두 사발이나 배불리 먹고 집에 돌아왔다.
“니가 거지냐!”
엄마는 빨리 집에 오지 않고 그곳에서 눈치를 보면서 먹을 것을 힐끗거린 나를 짐작하면서 화를 내며 매를 들었다.
“계집애가 해가 저물면 일찍 와서 설거지도 하고 방 청소도 할 것이지,나이가 열세 살이나 먹었는데도 어찌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냐!”
나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싹싹 빌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6학년의 졸업반이 다가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우리 마을에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예쁜 여자아이가 서울에서 전학을 왔다. 그 여자아이는 은지보다 더 예뻤다. 눈이 크고 코도 오뚝했다. 우리가 부러운 것은 그 애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빨강색 원피스에 시원한 커트머리! 그리고 예쁘고 큼직한 눈은 서울의 세련된 소녀의 모습으로 시골뜨기인 우리들을 압도했다. 유류상종이랄까 은지는 선영이라는 아이와 급속도로 친하기 시작했다. 이제 은지는 우리 집에 놀러오지도 않았고 선영이하고만 다녔다. 선영이와 단짝이 된 은지는 차츰 나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은지가 전교 회장이 되고 공부도 잘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다. 은지 아버지는 학교의 대표 육성 회장이었고 그런 빽으로 반 아이들에게도 으뜸으로 돋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굴도 예뻐서인지 한편의 여자애들은 은지를 추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은지가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순전히 빽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실 니가 더 똑똑하고 실력이 있다. 니가 농번기 때 결석을 하지 않았어도 일등은 하 고도 남았어. 은지 그 가시나 말이다 우리 촌구석 아이들을 무시하고 요즘 선영이하고만 어울리는 것 알고 있냐?”
드디어 우리도 의기투합하여 한 패가 되어서 은지와 선영이 편과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어 내편의 여자 아이들을 끌어 들이고 빽으로 앞서가는 은지를 저지했다. 은지 편의 아이들은 우리 편에게 <못난이>라고 놀려댔다. 우리 편의 아이들은 모두 얼굴도 호박 같고 뚱뚱이들이라고 대놓고 놀려댔다. 결국 우리 6학년 여학생은 <빽쟁이> 패와 <못난이> 패로 나뉘었다. 그들은 우리의 약점을 들춰내고 공격했다. 사실 나의 패 아이들은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착하고 의협심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은지 편은 약간 간살 끼가 있고 아부의 근성을 가지며 스스로 예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기질의 아이들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학교 밖의 논두렁과 냇가 사이의 버드나무와 보리밭을 근거지로 삼아 접전을 벌이기로 했다. 우리는 보리밭 쪽에 모였고 저편은 버드나무 밑에 모였다. 우리는 입에 나팔 모양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못난이라고 무시한 가시나들아! 이리 나와 한 판 붙어볼까!”
저쪽도 지지 않고 큰 소리로 나팔 입을 모아서 외쳤다.
“니네들이 그럼 못난이들이지. 거울을 한 번 봐라. 어디 한 군데라도 이쁜 구석이 있냐. 입은 찢어지고, 코는 주먹코고, 먹는 것은 돼지 같고…”
“뭐? 뭐라고 이 간살스런 가시나들아. 언제는 잘 먹는다고 부러워하더니만….”
“뭐가 부러워? 그냥 빈말로 하는 것도 모르냐. 그러니까 못난이지.”
“……!”
결국 그 날의 접전은 우리의 패배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놀려대는 말에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억울했지만 나는 우리 편의 분함을 무마하기 위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그냥 참자…!”
그날 밤 나는 억울해 잠이 오지 않았다. 여아로서 제일 자존심 상하게 하는 <못난이>라는 조롱을 받자, 아이들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무시하고 놀려 댔는가 정말 속이 상했다. 그냥 천진스런 장난으로 여겼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분통이 터졌다. 그날 밤 나는 은지의 약점을 짜내기 시작하였다. 결코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이 때 안방에서 어른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가가 어렸을 때부터 손발이 차갑고 동상에 잘 걸리더니 결국 아기가 들어서지 않았어. 한약방에 가서 몸이 따뜻하게 하는 약을 몇 첩 먹었는데도 여전히 석녀여! 그나저나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어찌할까!”
앞집 기식이 아줌마가 엄마와 뜨개질을 하면서 푸념하고 있었다. 드디어 확정하였다! 은지의 약점이 떠올랐다. 나는 늘 잠재의식 속에 너무도 예쁘장하고 몸이 약한 여자들이 아기를 못 낳는다는 이미지를 가졌었다. 화려하고 부잣집 여자들이 여느 여자처럼 쉽게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결정적 비극을 연속극이나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았던 것일까! 이제 은지가 감기로 골골거리며 코 바람나는 소리를 내면 ‘아이 못 낳는 계집아이’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은 은지의 분위기와 이미지에 썩 잘 어울려서 내편의 아이들도 이미 사실이 되어버린 것처럼 예언적 주술력을 가지고 그 말을 뇌까렸다.
은지가 약하여 원기소라는 영양제를 먹을 때, 나를 건강하고 발랄하며 아기도 쑥쑥 잘 낳는 건강한 여자로 여기며 우월감에 취하였다.
어느 날 우리 편의 아이와 은지편의 아이가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이 아기도 못 낳을 병신아!”
은지에게 대들면서 또 한 번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무슨 소리냐? 어른도 아닌데 아기를 왜 낳아? 귀신 신나락까는 소리는 작작해라 이 못난이들아!”
우리들은 계속 주술처럼 놀렸다. 그것은 하나의 신앙처럼 되어 은지가 동상에 발이 얼어 절룩거릴 때나 시험 때는 코피를 흘릴 때 주술력이 살아 역사하는 듯했다.
어느덧 우리는 6학년 졸업식을 맞이했다. 은지는 졸업식 때 그야말로 화려한 공주차림을 하고 많은 내빈들이 모인 식장의 시상식에서 모든 상을 석권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장상, 학교장상, 모범학생상….
나에게 떨어진 건 겨우 우등상과 새마을 회장상이었다. 그 후 우리는 중학교의 뺑뺑이 돌리기의 당첨으로 나는 공립중학교로, 은지는 사립중학교에 입학한 후 이제는 각자의 삶의 환경에 익숙하여 초등학생 동창들은 그 존재가 기억에서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은지를 만난 것은 대학 4년의 여름방학 때였다. 서울의 명문여대 의상학과에 다니는 은지는 그 미모가 한결 더 돋보였다. 늘씬하고 커다란 눈동자에 어느 남자라도 한 번 보면 오래토록 시선이 머물며 가슴 설레게 할만 했다.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고향을 방문한 나와는 달리 은지는 서울의 최신식 디스코 바지에 레이스가 화려한 흰색 블라우스로 세련된 모습이었다.
모처럼 시골에 내려온 우리 동창들은 읍내의 디스코텍에 갔다. 은지는 춤도 아주 세련되게 잘 추었고 말씨도 서울 말씨를 사용해 분위기가 어색할 정도로 우리와 달랐다. 나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지만 위스키나 칵테일 종류의 술도 잘 마셨다. 은지는 한 때 B양조회사의 아들과 연애 중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결국 남자 쪽의 반대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는 소식을 은지와 친하게 지냈던 서울파로부터 들었다.
그 후 결혼하기 몇 해 전, 언젠가 은지와 찍은 사진을 보다가 앨범을 덮고 지쳐서 겨우 잠이 들었었다. 주인 노파는 곗돈을 탈 때가 되었는데 소식이 없었다. 내일은 노파에게 곗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깜박 잠이 들었다.
은지는 남자와 손을 잡고 갈색의 벌판을 걷는다. 들판에 은지네 집처럼 보이는 한옥이 보였다. 그 집에서는 굴뚝에서 솜털처럼 뭉게뭉게 연기가 멈추지 않았다.
“구… 구해줘요. 사람 살려요!”
그녀의 남편은 부엌에서 계속 짚을 넣고 불을 때고 있었다. 아궁이의 열기와 빨간 불빛 가운데 비쳐진 남자는 조롱의 악마적인 미소를 지으며 불을 계속 지피우고 있었다. 은지는 방이 뜨거워지자 숨이 막히듯 허둥대고 있었고 창문을 두드렸다.
“사람 살려!”
나는 벌떡 꿈에서 깨어 일어났다.
“휴…!”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땀에 흠뻑 젖어 침대에 내려와 냉수를 마시러 정수기 쪽으로 다가갔다. 정수상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나는 정수기에서 뽑아낸 냉수를 시원하게 목을 적시며 고개를 흔들었다. 새벽 세시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은지가 꿈에 나타났을까! 그것도 아주 불길한 징조를 담고….
나는 창문을 조금 열어놓았다. 바깥 공기는 차갑고 밤안개가 깔렸는지 촉촉해 보였다. 밤하늘에 반달이 뜨고 다가오는 정월을 예비하고 있었다. 나는 늘 하던 새벽독서 습관대로 나의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 때 맞은편의 거실 쪽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에 있는 재서에게 천만 원을 보내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새벽이라 그런 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도 똑똑히 들려왔다. 아마도 미국에 있는 아들이 달러가 올라서 생활비가 이만저만 쪼들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신경을 끄고 여전히 스탠드 불만 가볍게 켜 놓고 테이블 의자에 다시 가 앉았다. 어제 저녁 앨범에서 꺼낸, 어린 시절의 은지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은지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악몽처럼 은지의 모습이 뇌리에서 맴돌았다. 이제 벌써 미명으로 창문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아침안개는 많이 걷히고 온 세상이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날 미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은지 말이야, 이혼 했어!”
“왜?”
“남편이 의처증 증세가 심한가 봐. 그래서 직장에 하루에도 몇 번씩 집에 전화하며 어디 갔는가 확인했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은지의 부정으로 몰아붙였다나 봐!”
“병원에 안 가봤어?”
“한약방에서는 은지가 몸이 약하고 손발이 차서 아이가 들어서기 어렵다고 했는데 내가 볼 때는 남자에게도 뭔가 석연치 않은 것 같아. 그 집안은 자손이 귀한 집안이라 은지가 마음고생 많이 했어.”
‘아기도 못 낳을 병신아…!’ 나는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린 시절에 무심코 퍼부었던 그 말! 실로 놀랍고 두려웠다.
“민 선생 계셔요!”
비몽사몽간에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나쁜 목소리다. 주인 노파였다. 나는 일어나 문을 열었다. 노파는 무슨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쭈글쭈글한 앙상한 손이 징그러워 보였다. 노파는 사정이 있어 자신의 집을 팔게 되었으니 이사를 가달라고 말했다. 이사비용은 피아노 값은 제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주인의 사정으로 계약 기한 지나기 전에 세입자가 이사 가게 되는 경우, 이사비용 일체를 주인이 보상해 주어야 하는데, 억지를 부렸다. 나는 그 노파가 <죄와 벌>에서 나온 고리대금업자 노파처럼 여겨졌다. 주인공 라스콜리니프가 노파를 죽이고픈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노파는 평소에도 전기세나 물세에 터무니없이 나에게 많은 액수를 부담시켰다. 다투기 싫어서 그냥 달라는 대로 지불했지만 좋은 감정은 아니었다.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라서 세상살이에 좀 무지해 보여서 만만해 보였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이 나서 곗돈을 해약할 테니 돌려달라고 소리쳤다
“언제 곗돈 받은 적 없는데… 증서를 가져와 봐요!”
기가 막혔다. 곗돈을 받았다는 영수증 교환이 없는 것이 큰 사단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노파는 도리어 아연해하며 백지장이 된 내 얼굴을 쏘아보며 선수를 쳤다.
“내가 나이 많은 늙은이라고 무시하는데, 사기 쳐 먹는다고 학교에 쳐들어가서 교장에게 소리쳐볼까! 어디 운동장에서 한 번 소리 질러 볼까!”
협박과 악다구니로 입에 하얀 거품을 내면서 으르렁거렸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대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나서인지 옆집 아줌마 둘이 대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세상에 곗돈을 안 받았다고 잡아떼고 돈을 안 주니 어떻게 하죠? 아주머니!”
“뭐요? 그럼 저 번에 초등학교 노처녀 선생에게 하던 수법을 그대로 쓰고 있잖아!”
그 아줌마 말에 의하면 그 때도 젊은 여교사에게 초등학교에 쫒아가서 학교 운동장에 교장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난리법석을 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착한 여선생은 자기 때문에 일이 더 시끄러워질까 봐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곗돈을 뜯겼다니까요!”
그 아줌마들에게도 내놓은 노파였다. 그 후 나는 새로 집을 알아보고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나의 뒤통수에다 욕설을 퍼부으며 악다구니 쓰는 노파가 보였다. 차 안에 몸을 실은 나는 두 눈을 감고 말았다. ‘저건 독사다!’그날 밤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에서 나는 그 노파를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다. ‘저런 악종들이 오래 살아서 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빨리 병에 걸려 죽어라. 빨리 죽어라, 악종아…!’
그날 밤 나의 분한 마음은 살기로 가득했다. 독한 저주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나 강한 그 열기는 창밖으로 유성의 꼬리처럼 공중을 뚫고 나간 듯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빛들이 음산하게 번쩍였다. 나는 혹시 길에서라도 그 노파와 마주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난 어느 날 난 매월 삼십만 원을 은행에 적금하여 만기가 채워져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간 날이었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낯익은 삼십대 초반의 여인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가끔씩 그 노파의 집에 찾아왔던 시집 간 딸이었다. 딸은 그렇게도 강했던 어머니가 다정했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시름시름하더니 결국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었다. 순간 나는 온 몸이 떨려왔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음 날 아침,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고 월드컵 경기장 근처를 조깅하기 시작했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밝아오는 미명 속에 나 때문에 불행해진 것 같은 은지와 노파가 떠올랐다. 순간 엄숙하며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직 미명 속에 밝힌 가로등 불빛 속에 오래 전 쏟았던 불화살과 같은 붉은 기운이 공중의 석화처럼 반짝거렸다. 그것은 생명을 가지고 공중에서 펄럭이며 그 임무를 잊지 않고 내뱉은 자의 소원대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 못 낳을 병신아!…’,‘빨리 죽어라, 악종아!…’공중에 그 기운이 돌아다녀 결국 그 열매를 맺고야 말았다. 나는 월드컵 공원의 숲을 빠져나오면서 좀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과거에 쏘았던 독한 혀의 화살이 은지와 노파에게 꽂혔다. 나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고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 이제 은지를 위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찾고 외치자! 이렇게 다짐하게 되자 비로소 두려움과 가책이 사라지고 은지의 새로운 존재의 집이 기대되었다.
그 후 나는 새로운 말들을 찾는 연습에 돌입했다. 은지가 좋은 사람도 만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것은 새벽별처럼 나의 가슴에 창조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졌다.
며칠 후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은지 남편입니다. 은지 수첩에 댁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길래 이렇게 전화 걸었습니다.”
남자의 풀죽은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웬지 불길한 느낌이 확 전해져 왔다
“은지가 어떻다구요?”
“예…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아이와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자는 의사의 강요에 은지는 스스로 아이를 선택했나 봅니다!”
나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안고 밝아오는 여명 속에 희미하게 슬픈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은지를 위한 존재의 집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예고되지 않은 반전의 기발함
공부도 잘 하고 얼굴마저 이쁜 은지는 영원한 나의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은지를 향한 엉뚱한 저주를 퍼붓는다.
“아이도 못 낳을 병신아!”
이 저주는 은지의 실상이 되어 남편을 바꾸는데도 여전히 아이를 낳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지의 새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오는데….
이 작품이 바로 한애자의 단편 「존재의 집」 내용이다.
은지와 나와의 갈등구조는 태생적인 것부터 존재한다. 내가 독신인데도 결혼을 거듭하는 은지는 질투의 대상일 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를 비롯한 주위의 제삼자들은 은지의 비극적 영혼세계에는 접근도 할 수가 없다. 그녀는 무슨 생각이나 고민을 하며 세상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만 제 3자에게는 관심 밖의 사소한 까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민지의 마지막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아이를 낳다가 은지는 죽었습니다! 아이와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의사의 강요에 은지는 스스로 아이를 선택했나 봅니다!”
이 섬찍한 클라이막스의 반전을 위해 작가가 숱하게 그려놓던 사연들이 이유 있는 복선이었음이 드디어 드러난다.
한애자의 작품은 이번 호의 수작이다. 작품의 군데군데에서 서툰 표현이 다소 결점이 되고 있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큰 틀에서 보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징조로 보인 것이다. 건투를 빌어 마지않는다.
나에게는 문우나 스승이 없었다. 소설을 공부하기 위해 홀로 독학하며 많은 작품을 읽고 필사를 하며 언젠가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과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대하면서 작가는 한 세계를 상상의 속에서 구축하고 건설하는 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통해 삶의 모형을 창조하고 하나의 세계를 건설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위대하며 하늘이 부여한 특권처럼 여겨졌다.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이 왜 그렇게 기쁘고 설레이는지…. 어렸을 때 엄마에게 많은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장화홍련전. 흥부와 놀부, 심청전, 콩쥐와 팥쥐, 나무꾼과 선녀… 등 이야기를 들으며 말 할 수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어갔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가! 이제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생수와 같은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부터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다. 삶을 공감하고 치유하며 정화시키는 그런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을 창작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제 사람과 하늘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로 발돋움하려 한다. 먼저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부족한 글을 추천해 주신 신문예 잡지사에도 감사드린다. 아울러 “당신은 참 글을 잘 써요”하며 항상 격려하고 도와주신 남편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전북 군산 출생, 공주사범대학 졸업
수필 「배 아픈 세상」으로 데뷔
월간《문학세계》에서 교사, 월간《창조문예》에서 희곡 「미인완성도」로 등단
현재) 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