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55,10-11; 로마 8,18-23; 마태 13,1-23
폭우로 돌아가신 분들과 실종되신 분들, 구조작업 중인 분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예전에는 날씨를 하느님께서 주관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환경은 물론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록적인 폭우를 포함한 기상 이변 현상들은 기후 변화의 영향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하고 계신 생태적 회심의 중요성이 더 크게 와 닿는 요즘입니다.
오늘은 농민 주일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96년부터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는데요, 농민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도시와 농촌이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맞게 살 것을 다짐합니다.
‘농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99년, 제가 부제일 때 사목 실습을 하며 만난 분들입니다. 당시 부제들에게 한 달 동안 원하는 사목 분야에서 실습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데요, 저는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공소 사목을 지원했고, 당진 본당 돌마루 공소에서 한 달간 사목 실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집집마다 다니며 농사일을 도와드리고, 밤에는 밀린 논문을 쓰며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삶을 살았는데요, 그때 지냈던 한 달을 가지고 이렇게 24년째 울궈 먹고 있습니다.
공소에 도착한 날 저녁, 성모회장님이 가마솥에 밥을 해주셨는데, 회장님 밭에서 딴 콩깍지가 솥 주위에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당시 저는 부제였지만, 로만 카라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부르시지 말라고 해도 교우들께서 저를 계속 신부로 부르셨는데요, 성모회장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신부님 콩밥 좋아하슈?” 지금 콩밥을 하고 계신 것이 분명한데 그럼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좋아하쥬~” 모든 분들이 사투리를 쓰고 계셨기 때문에 저도 어느새 사투리를 쓰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견진 교리를 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주교로 개종하면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게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살아야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입니다. 콩만 다 집어넣는다고 콩밥이 되는 게 아니라 밥 사이사이에 콩이 들어가서 향긋한 콩 냄새를 풍겨야 콩밥이 됩니다.” 어르신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 후로 한 달간… 콩밥만 먹었습니다. 오늘은 이 집, 다음날은 저 집 가서 농사일을 도와드리고 밥을 얻어먹었는데, 저만 가면 모든 집이 콩밥을 했습니다. ‘그 양반 뭐 좋아혀?’ ‘아 콩밥을 그렇게 좋아한다대~’ 그렇게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간 첫 번째 집에서 밥을 먹는데 밥공기도 엄청나게 컸고, 밥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남기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꾸역꾸역 다 먹었습니다. 다음 날 다른 집엘 갔는데 이 집도 밥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절반쯤 먹다가 “도저히 다 못 먹겠네요”하고 남기려 했더니 “워째~ 저희 집은 찬이 션찮아서 그런가 못 드시네유~” 그러시길래 “아녜요! 먹을게요! 먹을게요!” 그러고 꾸역꾸역 또 다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간 콩밥을 엄청나게 먹고는 무척 건강해져서 신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한 달간 농사짓는 분들과 살면서 얻은 결론은, 정말로 농민들은 순수하시다는 것입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과 한 달 만에 헤어지면서 눈물로 이별을 했는데, 몇 달 뒤 제 사제 서품식 때에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경축 김유정 유스티노 사제 서품”이란 현수막을 단 버스 한 대가 서품식장에 도착하고 수십 명의 교우들께서 내리시는 것을 보고 정말 돌마루공소 신자들다우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많은 집이 벼농사 외에 담배 농사도 짓고 계셨는데 전매청에서 담뱃잎의 등급을 매기러 올 때가 되자 너도나도 제게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좋은 등급 맡게 해 달라고. 그리고 전매청 직원이 나오자 정말 원님 모시듯 극진히 대접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분의 말 한마디에 따라 농사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농민들께서 땀 흘려 열심히 농사를 짓더라도, 결국 나라가 그 농사일을 어떻게 셈해주는가가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농민주일을 맞아 농민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릴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가, 농사 짓는 분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되어 있는지 살펴 보고, 개선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십사는 말씀도 드립니다. 제가 만났던 교우들 대부분이 대출받아 농기계를 구매하시느라 많은 빚을 안고 계셨고, 한 해의 소출이 끝나면 수익금 대부분을 빚 갚는데 쓰고 계셨기에 그 마음이 더 간절합니다.
우리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은, 아니면 그 윗대 조상이라도 농민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농민의 자손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도 농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 자신도 농부라고 말씀하십니다. 씨뿌리는 이는 당신 자신이시고 우리 마음이라는 밭에 당신께서 직접 말씀의 씨를 뿌리십니다. 씨앗이 어떠한 열매를 맺을 것인지는 밭이 어떠한 상태인가가 결정합니다.
우리 마음은 길가입니까, 돌밭입니까, 가시덤불입니까, 아니면 좋은 땅입니까. 그것을 알아보는 기준은 지금 내 마음 안에 어떤 말씀이 살아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시면 됩니다. 요즘 자주 깜빡깜빡해서 잘 잊어버리시지요? 그런데 머리로 얼마나 많은 성경 구절을 외고 계신지를 여쭙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성경 말씀이 무엇인가, 그러한 말씀이 있는가를 여쭙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말씀을 읽거나 들었는데도, 마음에 품지 않고 사라져버렸다면 내 마음은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말씀이 뿌리를 내고 열매를 맺을까요. 시시때때로 그 말씀을 반복해야 합니다.
지난 사순특강 때 우리는 섭섭한 것은 자꾸 되뇐다 했습니다. 왜? 까먹을까봐. 감사한 것은 곱씹지 않는다 했습니다. 왜? 기억할까봐. 내가 무엇을 되뇌고 있는지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집니다. 내 삶은 내가 되뇌는 말의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성경 말씀을 되뇌야겠습니다. 말씀을 되뇔 때 말씀은 마음 안에 뿌리내리고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농민주일을 맞아 창조 질서 보전에 협력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오늘 대전 주보 2면의 글을 참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식습관이 기후 변화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제철 과일을 먹는 것도 하느님의 창조 질서 보전에 협력하는 길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 주님, 저희 안에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소서. 아멘.
* 대전주보: 대전주보 뷰어 (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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