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irvana in a few words: Buddha`s enigmatic instruction on Bahiya
몇 마디 말씀 아래 열반을 깨닫다: 바히야 존자에게 준 부처님의 비밀스런 가르침
You should train like this; in the seen there will be merely the seen, In the heard there will be merely the heard, in thought there will be merely the thought, in the known there will be merely the known.
That`s how you should train.
When you have trained in this way, you won`t be ‘by that’. When you are not ‘by that’, you won`t be ‘in that’. You won`t be here nor beyond, or in between the two. This is the end of suffering.
너는 이렇게 훈련하라. 보여질 때 단지 보여짐만 있을 뿐, 들릴 때는 단지 들림만 있을 뿐, 생각되어질 때는 단지 생각되어짐만 있을 뿐, 알려지는 때 다만 알려짐만 있을 뿐.
이렇게 너는 훈련하라.
이렇게 훈련하면, 너는 거기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좌우되지 않기에 너는 그 속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속에 있지 않기에)너는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고, 그 둘 중간에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고의 끝남이다.
Ud 1.10 우다나 1.10
2. Buddha` instruction on Malunkyaputta
말룽키아 존자에게 준 부처님 가르침
What do you think, Malunkyaputta? Do you have any desire or greed or fondness for sights known by the eye that you haven`t seen, you`ve never seen before, you don`t see and you don`t think would be seen?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룽키아야? 아직 보지 못했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대상을 눈으로 보려는 어떤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이 너에게 있느냐? 보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가?
No. 아닙니다.
In that case, when it comes to things that are to be seen, heard, thought, and known, in the seen, merely the seen, in the heard merely the heard, in the thought merely the thought, in the known, merely the known.
SN 35.95.10
그렇다면, 보여지고, 들려지고, 생각되어지고, 알려지는 것이 일어날 때 거기엔 단지 보여짐, 들려짐, 생각되어짐, 알려짐만 있을 뿐이다.
Malukyaputta`s poem of understanding Buddha`s instruction
3. 붓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한 말룽키아의 시
When you see a sight, mindfulness is lost as attention latches on pleasant feature. Experiencing it with a mind full of desire, you keep clinging to it.
대상을 볼 때 알아차림을 잃어버리면 즐거운 곳에 주의가 가 달라붙는다.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대상을 경험하면 너는 거기에 달라붙는다.
Many feelings grow arising from sights. The mind is damaged by covetousness and cruelty. Heaping up suffering like this, you are far from extinguishment.
보는 데서 많은 감정이 일어난다. 탐욕과 잔인함으로 마음은 손상을 입는다. 이런식으로 고통이 쌓이면 소멸에서 아주 멀어진다.
SN 35.95. 12~13 숫타니파타 35.95.12~13
When you see a sight with mindfulness, there is no desire for sights. Experiencing it with a mind free of desire, you don`t keep clinging to it.
Even as you see a sight and get familiar with how it feels, you
wear away, you don`t heap up: that`s how to live mindfully.
Eroding suffering like this, you are said to be in the presence of extinguishment.
SN 35.94.24~25
알아차림을 갖추고 대상을 보면 거기엔 대상에 대한 욕망은 없다. 욕망이 없는 마음으로 대상을 경험하면 거기에 붙들리지 않는다.
대상을 볼 때 그것이 주는 느낌에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너는 이내 싫증을 내고 그걸 쌓아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알아차리고 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통이 줄어들어 소멸(열반)이 목전에 있다고 말한다.
숫타니파타 35.94.24~25
첫댓글 스님 예전 글에서 sati( mindfulness,念)를 마음챙김(or 알아차리기?)로의 번역의 모호함에 관해서 말씀하신거 읽은거 같고.. 모스님은 sati를 '바른 기억' 이라 하셨고 스님은 '憶念'이라 하셨고..
저역시 그 말씀이 공감되서 sati는 '알아차리기를 잊지말고 기억하기' 라고 혼자 개념정리했는데.
윗글 읽으니 mindfullness(sati)는 '알아차리기' 로만 번역해도 충분한거 같네요. 기억하는거야 기본이니까요. 치매 아니라면..
sati는 범어 smriti에서 유래했는데, 기본 의미는 기억, 상기, 억념, memory, recollection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마음 수행에 이 단어를 도입하셔서 그 뜻이 함축적이고 풍부해졌어요. 이것을 한자로 번역하다 보니 억념, 염, 정념, ,,이렇게 되었다가, 선종에서 또 다른 의미를 덧붙이고, 조선 500년 동안 불교용어 사용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하다가, 겨우 1980~90년대 부터 '알아차림, 마음챙김, 마음 새김, 주의 기울이기, 바른 기억, ...등등으로 번역하여 통용되고 있는 실정. 현재는 어느 한개의 번역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 그래서 아예 sati 원어로 쓰는 사람도 있음. 영어로는 mindfulness, awareness로 거의 통일된 느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