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가르멜 여자 수도원
저희 수도공동체는 2019년 12월부터 마산교구 주보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가르멜 수도회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이고, 저희들은 특별히 마산교구의 모든 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르멜산에 기원을 두고 있는 봉쇄 관상 수도회인 가르멜 수도회는 BC 900년경에 사셨던 엘리야 예언자의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향한 열정에 불타고 있습니다.” (1열왕 19,10) 라는 말씀을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정신을 따라 살고자 했던 순례자들이 1150년경 가르멜산의 엘리야 샘 근처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여 1210년경 정식 수도회로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습니다.
1562년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기존의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여 스페인 아빌라에 첫 맨발 가르멜 여자 수도원을 창립하였고, 십자가의 성 요한의 도움으로 1567년 맨발 가르멜 남자 수도원도 창립하였습니다.
로마에 총본부를 두고 있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는 총장님의 권한 아래 남자가르멜, 여자가르멜, 재속회로 구성되어 있고, 현재 한국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은 저희 고성을 비롯하여 대구, 대전, 밀양, 상주, 서울, 천진암, 충주에 설립되어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가 원한 가족적 모습을 보전하기 위해 수녀원 정원은 21명이며,
이 인원을 넘으면 새 수녀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설립된 새 수녀원은 독립된 공동체로, 가르멜에서는 본원이나 분원의 개념이 없습니다.
고성 가르멜은 마산교구장이셨던 故 장병화 요셉 주교님의 초청으로 1984년 7월 16일 설립되었으며, 하느님의 은총 아래 설립 35주년이 되었습니다.
가르멜의 영성은 수덕적이고 관상적인 삶의 형태인 엄한 봉쇄 안에서
자기 포기와 침묵, 고독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기도의 사도직을 실천하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기도로 이루어져, 미사를 중심으로
하루 일곱 번의 성무일도, 아침 저녁 각 1시간의 묵상기도, 영적독서, 휴식, 노동 (제병, 미사주, 소규모의 밭농사, 과수재배 등) 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져 있으며, 온종일 하느님 현존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교회의 딸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정신에 따라, 저희는 세상과 지역교회의 문제에 깊은 관심과 일치, 연대감을 지니면서 교회와 사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교회의 심장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탄을 향해 떠나는 순례
“구세주 빨리 오사 어두움을 없이하며 동정 마리아에서 탄생하옵소서.”
교회의 새해를 알리는 대림시기가 시작되면 가르멜 수녀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어둠과 고요로 덮인 수녀원의 복도를 행렬하며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하루 피정을 시작하는 수녀님에게로 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공동체 행렬은
우리의 일상이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순례의 여정임을 느끼게 합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전혀 다른 차원인 세상으로 내려오신 성자 예수님.
가브리엘 대천사를 통해 성령으로 말씀을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들으신 성모님.
꿈에 천사의 말씀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신 주님의 양부 요셉.
힘들고 낯선 상황에서도 ‘피앗’으로 응답하시며 순례의 길을 걸어가셨던 이분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하나도 품지 않으셨기에 ‘하느님의 말씀’만을 온전히 품을 수 있으셨고,
그로 인해 말씀의 탄생이라는 성탄의 기쁨을 전 인류에게 안겨 주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가난한 모습은 타성에 젖어 익숙해진 생각, 말, 행동, 가치관에 안주해 있는 나에게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 여정을 계속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만나고,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탄생하시도록 키워나가야 합니다.
하느님 현존으로 가득찬 가르멜 수녀의 수방 (修房) 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합니다.
과거 2000년 전 우리에게 참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나오신 예수님, 내 마음의 골방에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다시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전 인류에게 선물이 되었듯이, 나 또한 순례의 길에서 자라난 말씀이
내 이웃에게 새로운 선물이 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고 잉태하며 새롭게 태어날 성탄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나라고 초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요한 5,11-12)
(2019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주보 가톨릭마산 2387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