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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시이만물막불존도이귀덕) : 이런 연유로 만물이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법이다.
道之尊(도지존) : 도를 높이고
德之貴(덕지귀) :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夫莫之命而常自然(부막지명이상자연) :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언제나 스스로 그러한(自然) 것이다.
故道生之(고도생지) : 고로 도가 만물을 낳고
德畜之(덕축지) : 덕이 만물을 키움에 있어,
長之育之(장지육지) : 자라게 해주고(長) 배우게 해주며(育),
亭之毒之(정지독지) : 감싸주고(亭) 열매 맺게 해주며(毒),
養之覆之(양지부지) : 먹여주고(養) 덮어줄 것이다(覆).
生而不有(생이불유) : 낳았음에도(生) 소유하지(有) 않고,
爲而不恃(위이불시) : 위하였음에도(爲) 기대하지(恃) 않고,
長而不宰(장이불재) : 다스리면서도(長) 부리지(宰) 않으니,
是謂元德(시위원덕) : 이를 일러 '원덕(元德)' 내지는 '으뜸이 되는 덕'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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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가 만물을 낳고(生) 덕(德)이 만물을 기르면(畜),
사물(物)이 형체를 만들고(形) 기세(勢)가 성장케 하리라(成).
이런 연유로 만물이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법이다.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언제나 스스로 그러한(自然) 것이다.
고로 도가 만물을 낳고 덕이 만물을 키움에 있어,
자라게 해주고(長),
배우게 해주고(育),
감싸주고(亭),
열매 맺게 해주고(毒),
먹여주고(養),
덮어줄 것이다(覆).
낳았음에도(生) 소유하지(有) 않고,
위하였음에도(爲) 기대하지(恃) 않고,
다스리면서도(長) 부리지(宰) 않으니,
이를 일러 '원덕(元德)' 내지는 '으뜸이 되는 덕'이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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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강남 역>
道生之(도생지) : 도는 모든 것을 낳고
德畜之(덕축지) : 덕은 모든 것을 기르고
物形之(물형지) : 물은 모든 것의 틀을 만들고
勢成之(세성지) : 세는 모든 것을 완성시킨다.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시이만물막부존도이귀덕) : 그러기에 만물은 자신을 낳은 도를 존중하고 자신을 기른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道之尊(도지존) : 도를 존중하고
德之貴(덕지귀) :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夫莫之命而常自然(부막지명이상자연) :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故道生之(고도생지) : 그러므로 도가 모든 것을 낳고
德畜之(덕축지) : 덕이 모든 것을 기르고
長之(장지) : 자라게 하고
育之(육지) : 길러주고
亭之(정지) : 감싸주고
毒之(독지) : 키워주고
養之(양지) : 먹여주고
覆之(복지) : 덮어준다.
生而不有(생이불유) : 낳았으나 가지려 하지 않고
爲而不恃(위이불시) : 이루었으나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長而不宰(장이불재) : 길렀으나 지배하지 않는다.
是謂元德(시위원덕) : 이를 일컬어 큰(그윽한) 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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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낳고 덕은 기르니
사물은 형체를 이루고 기물은 완성된다.
이 때문에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니
도의 높음과 덕의 귀함은
벼슬을 주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도는 낳고 기르고 자라게 하고 완성시키며
형체를 주고 바탕을 이루게 하고 길러주고 덮어준다
낳으면서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위해주면서도 뽐냄이 없고
길러주면서도 마음대로 하지 않으니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道生之而德畜之, 物形之而器成之. 是以萬物尊道而貴德. 道之尊德之貴也, 夫莫之爵而恒自然也. 道生之畜之長之遂之, 亭之毒之養之覆之. 生而弗有也, 爲而弗恃也, 長而弗宰也. 此之謂玄德.
[道生之而德畜之, 物形之而器成之]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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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당 역>
道生之(도생지) : 도는 모든 것을 낳고
德畜之(덕축지) : 덕은 모든 것을 기르고
物形之(물형지) : 물건은 모든 것을 꼴지우고
勢成之(세성지) : 세력는 모든 것을 이룬다.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시이만물막불존도이귀덕) : 그러기에 모든 것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
道之尊(도지존) : 도를 존중하고
德之貴(덕지귀) :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夫莫之命而常自然(부막지명이상자연) : 명령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故道生之(고도생지) : 그러므로 도가 모든 것을 낳고
德畜之(덕축지) : 덕이 모든 것을 기르고
長之(장지) : 자라게 하고
育之(육지) : 양육하고
亭之(정지) : 감싸주고
毒之(독지) : 실하게 하고
養之(양지) : 먹여주고
覆之(복지) : 덮어줍니다.
生而不有(생이불유) : 낳으나 가지려 하지 않고
爲而不恃(위이불시) : 하되 기대지 않고
長而不宰(장이불재) : 기르나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
是謂元德(시위원덕) : 이를 일컬어 으뜸이 되는 덕이라 한다 .
<임채우 역>
51 도는 낳고 덕은 기르니
도는 낳고
덕은 기르니,
사물들이 나타나서 형세로서 완성된다.
이 때문에 만물은 도를 간직하며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요,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김은
시키지 않아도 언제나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도는 낳고 덕은 기르니,
키워서 길러주고
성숙시켜 여물게 하며
보살피고 덮어준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일하되 자랑하지 않으며,
길러주되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James Legge 역>
1. All things are produced by the Tao, and nourished by its outflowing operation. They receive their forms according to the nature of each, and are completed according to the circumstances of their condition. Therefore all things without exception honour the Tao, and exalt its outflowing operation.
2. This honouring of the Tao and exalting of its operation is not the result of any ordination, but always a spontaneous tribute.
3. Thus it is that the Tao produces (all things), nourishes them, brings them to their full growth, nurses them, completes them, matures them, maintains them, and overspreads them.
4. It produces them and makes no claim to the possession of them; it carries them through their processes and does not vaunt its ability in doing so; it brings them to maturity and exercises no control over them; -- this is called its mysterious operation.
<Lin Derek 역>
Tao produces them
Virtue raises them
Things shape them
Forces perfect them
Therefore all things respect the Tao and value virtue
The respect for Tao, the value of virtue
Not due to command but to constant nature
Thus Tao produces them
Virtue raises them
Grows them, educates them
Perfects them, matures them
Nurtures them, protects them
Produces but does not possess
Acts but does not flaunt
Nurtures but does not dominate
This is called Mystic Virtue
<장 도연 역>
제51장 만물은 道를 존중하고 德을 사랑한다
道는 만물을 낳고
德은 만물을 기르며
道는 만물의 형태를 만들고
德이 만물을 성장시켰다.
그러므로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히 여긴다.
도를 높이고 덕을 귀히 여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道는 만물을 낳고
德이 만물을 생장 육성시키며
만물을 양성하고 돌보아준다.
그것을 낳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공이 있어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주인이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을 일컬어 현모한 덕(玄德)이라 한다.
<왕필 노자주 / 임채우 역>
도가 낳고 덕이 길러서, (각종) 사물들이 형성되어 형세로(즉 처한 환경에 의해) 완성되나니,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주석>
백서본에는 ‘기’(器)로 되어 있다.
사물이 생겨난 후에는 길러지고, 길러진 뒤에는 형체를 이루고, 형체를 이룬 후에는 완성된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가? 도다. 무엇을 얻어 길러지는가? 덕이다. 무엇으로 인하여 모양을 이루는가? 물(物)이다(즉 사물의 종류에 의해 각자의 형상이 정해진다). 무엇이 시켜서 완성하는가? 세(勢)다(즉 타고난 환경에 의해 각 사물은 완성된다). (타고난 종류대로) 따르기만 하므로 사물은 형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고, (처해진) 형세대로 맡기므로 사물은 완성되지 못하는 것이 없다. 무릇 사물이 생겨나는 소이와 공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모두 말미암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말미암는 바가 있다는 것은 (결국) 도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므로, 끝까지 미루어보면 또한 도에 이른다. 그 인한 바를 따르므로 각자 알맞게 된다.
<주석>
장석창은 ‘물’(物)을 말이나 개 등의 ‘사물의 종류’로 보고, ‘세’(勢)를 사물이 처한 ‘환경’으로 해석했다.(『노자교고』 참조)
物生而後畜, 畜而後形, 形而後成. 何由而生? 道也. 何得而畜? 德也. 何[因]而形? 物也. 何使而成? 勢也. 唯因也, 故能無物而不形; 唯勢也, 故能無物而不成. 凡物之所以生, 功之所以成, 皆有所由. 有所由焉, 則莫不由乎道也. 故推而極之, 亦至道也. 隨其所因, 故各有稱焉.
이로써 만물은 도를 간직하고(혹은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주석>
백서본에는 ‘존’(尊)으로 되어 있다.
도란 사물이 말미암는 바요, 덕이란 사물이 얻은 것이다. 도로 말미암아 (덕을) 얻게 되므로 높이지 않을 수 없고, (덕을) 잃어버리면 손해가 되므로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道者, 物之所由也; 德者, 物之所得也. 由之乃得, 故不得不[尊]; [失]之則害, [故]不得不貴也.
도가 높고 덕이 귀한 것은 명하지 않아도 언제나 저절로 그러한 것이다.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주석>
백서갑본에는 ‘시’(時), 을본과 돈황본에는 ‘작’(爵)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도는 낳고 덕은 기르나니, 키워서 길러주고 성숙시켜 여물게 하며 보살피고 덮어준다.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주석>
‘정’(亭)과 ‘독’(毒)은 ‘안(安)과 정(定)’으로 보거나 ‘성(成)과 숙(熟)’으로 보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진고응, 『노자주역급평개』 참조).
정(亭)은 온갖 형체를 드러나게 해주는 것을 말하고, 독(毒)은 그 재질을 완성함을 말한다. (사물이) 각각 의지할 곳을 얻어 그 몸이 상하지 않는다.
[亭謂品其形, 毒]謂成其質, 各得其庇蔭, 不傷其體矣.
<주석>
[ ]의 6자는 루우열의 교감에 의거하여 보충했다.
<주석>
『주역』 「건ㆍ단전」(乾ㆍ彖傳)에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려서 만물이 형체를 이룬다(雲行雨施, 品物流形)”라고 했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작위하되 내세우지 않으며,
生而不有, 爲而不恃,
작위하되 소유하지 않는다.
爲而不有.
길러주되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長而不宰, 是謂玄德.
덕이 있으나 그 주인을 알지 못한다. 그윽히 어둑한 데서 나오므로 ‘현덕’(玄德)이라고 했다.
有德而不知其主也, 出乎幽冥, [故]謂之玄德也
<Stefan Stenudd 역>
The Way gives birth to them.
Virtue gives them nourishment.
Matter gives them shape.
Conditions make them whole.
Therefore:
Of all things,
None does not revere the Way and honor virtue.
Reverence of the Way and honoring virtue
Were not demanded of them,
But it is in their nature.
So, the Way gives birth to them,
Nourishes them,
Raises them,
Nurtures them,
Protects them,
Matures them,
Takes care of them.
It gives birth without seizing,
Helps without claim,
Fosters without ruling.
This is called the profound virtue.
All Things Are Nurtured
Tao as a source, out of which all things have come into existence, is mentioned several times in the Tao Te Ching . But virtue, te , giving them nourishment, is a somewhat confusing perspective. Human beings need virtue as nourishment for their character and perspectives on life. Perhaps the same thing can be said for the animals – but how can it be expected of plants and dead things?
What is hinted with the statement is either virtue as a kind of principle for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all things, or some animistic standpoint, where everything in the world is connected and in some sense alive. Probably, it’s a combination of both.
To Lao Tzu and his contemporaries, life was something other than it is to us. All of nature, with its movements, changes, and dynamics, could be seen as being alive. Movement is everywhere, so is growth and decay. Therefore, in many cultures it has been taken for granted that all things possess some kind of life. Otherwise, how could they change, and how could they be active, important parts of the human conditions?
We are enclosed in the world and we relate to it in countless ways, so it’s definitely part of our lives. At least in that sense, the world is alive and bound to the same conditions as we are. The world is alive because it matters to our lives.
Also, since Lao Tzu sees Tao as something encompassing all, behind all, he gives equal omnipresence to virtue, the worldly manifestation of Tao. This relation between Tao and virtue is expressed by the last line of this chapter. How Tao behaves is called the profound virtue. So, Tao can be said to have virtue, therefore virtue must be present in everything born out of Tao.
Since Tao is the way things are and ought to be, it can be called virtuous. Tao is the original state of Te , virtue. The nature of Tao is virtuous, but not because it’s bound by virtue. That would make it second. It’s virtuous of itself, whereas the world coming out of it has virtue because of its origin, like genes transporting heredity from parents to children. The whole world and all things in it carry the virtue of Tao with them.
So, there is just one form of virtue, which is from Tao, and its essence is nothing but being in accordance with Tao. We are virtuous when we follow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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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功成而弗居 도덕경 비교
(2장)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10장)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17장)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34장)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51장) 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77장)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德 도덕경 비교
(10장)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21장) 孔德之容, 惟道是從
(23장)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 同於道者, 道亦樂得之, 同於德者, 德亦樂得之, 同於失者
(28장) 常德不離 / 常德不忒 / 常德乃足
(38장)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爲之而有以爲 /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41장) 上德若谷, 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49장)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德信, 聖人在天下, 歙歙爲, 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51장)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存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54장)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55장) 含德之厚 比於赤子
(59장)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 是以早服, 早服謂之重積德, 重積德, 則無不克,
(60장)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63장)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65장)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亦稽式, 常知稽式, 是謂元德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68장)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79장) 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自然 도덕경 비교
(17장)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23장)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25장)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26장) 雖有榮觀, 燕處超然
(51장)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53장)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57장)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
(64장) 不貴難得之貨, 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
(65장) 元德深矣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66장)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疏而不失
(77장)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生 도덕경 비교
(2장)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7장)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10장) 生之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15장)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25장)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료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30장)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34장)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39장) 昔之得一者, 天得一以淸, 地得一以寧, 神得一以靈, 谷得一以盈, 萬物得一以生, 侯王得一以爲天下貞 / 萬物無以生, 將恐滅
(40장)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46장) 天下有道, 卻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47장)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50장)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시虎, 入軍不被甲兵, 시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51장) 道生之, 德畜之 /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55장)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59장)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64장) 合抱之木, 生於毫末
(72장)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押其所居, 無厭其所生
(75장) 民之輕死, 以其上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76장)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兵, 强大處下, 柔弱處上
常 도덕경 비교
(16장)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32장) 道常無名, 樸, 雖小
(34장)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46장) 知足之足常足矣
(48장) 無爲而無不爲,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49장) 聖人無常心(常無心), 以百姓心爲心
(51장)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52장)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55장)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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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명권 http://cafe.daum.net/koreanashram/8IoM/56
제 51장 왜 도인가?
도는 만물을 생기게 하고, 덕은 기르며,
물체는 형상을 지니게 하고, 세(勢)는 만물을 이룬다.
이로써 만물은 도를 높이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다.
도가 높고 덕이 귀한 것은 명령하지 않아도 언제나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는 생기게 하고 덕은 길러서 육성시키며,
열매 맺히고 숙성시켜 보살피며 덮어준다.
낳아 주지만 소유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만 거기에 의지하지 않으며
길러 주지만 주재하려고 하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莫不尊道而貴德.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만물이 생성 변화하는 현상의 근저에 도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동양의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일이다. 도(道)라는 개념 자체를 노자가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도의 개념은 노자뿐만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있는 동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녹아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도가 만물을 낳게 한다는 노자의 주장에 대해 크게 반기를 드는 사람은 없다. 힌두교에서조차도 도를 리타(ṛta)라는 만물의 원리로 해석하는데, 그것이 노자가 말하는 개념과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러한 우주 생성 변화의 원리를 로고스라고 표현하지만 그 헬라 철학적 개념에 신격을 가미함으로써, 하느님이라는 신성한 인격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만물을 생성하는 원리로서의 도가 작용하는 속성으로서의 측면은 덕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도가 만물을 낳으면, 덕은 기르고 육성하는 역할을 한다. 도와 덕은 이래서 낳고 기르는 역할을 서로 하게 된다. 그래서 도와 덕은 만물로부터 존귀함을 얻게 된다. 마치 자식이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물론 닭이 알을 낳듯이 도가 만물을 낳는다는 뜻은 아니다. 도의 생성 원리를 말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도와 덕이 사물을 낳고 기르는 역할 속에서 만물이 나타나서 각각의 형체를 이룬다(物形之, 勢成之). 사물이 생겨나면 자연 속에서 길러지고, 길러지면서 형체를 이루는 것이 또한 자연스럽다. 그 모든 자연스러움의 과정이 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가 낳고 덕이 기른다고 하는 것이다. 도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덕이 없으면 길러지지 않는다. 천지라는 원리는 있어도 햇볕과 물이 없으면 자라지 못하듯이, 햇빛과 물과 같은 덕이 없으면 생장이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도와 덕은 하나로서 공존한다. 음양이 공존하는 원리와 같다.
세(勢)가 만물을 이룬다는 것은 내부적인 도의 원리에 따른 외부적 환경적 추세를 말한다. 타고난 본성에 입각하여 만물은 생성되고 변화하면서도 외형적인 환경적 요인의 추세에 따라 형태를 달리해 간다. 마치 창가에 식물을 두면 일제히 모든 식물이 태양 쪽으로 가지와 얼굴을 내미는 것과 같다. 다윈이 말하는 적자생존이나 자연도태의 원리도 세의 영향 하에 있기 때문이다. 세 그 자체는 중성적 원리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세는 일종의 기(氣)와도 같은 것이다. 도(道), 덕(德), 물(物), 세(勢) 이 네 가지 작용은 모두 도를 근본으로 하여 출발하는 것이고, 덕이 이를 뒷받침하여 만물이 성장 변화해 가는 추동력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도와 덕의 원리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법을 따라서 그렇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 번 노자의 자연주의 사상을 보게 된다.
이러한 자연스러움의 도와 덕의 정신은 만물을 보살피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지만 그 공로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의 주장도 하지 않는데 있다. 그것이 바로 낳아주지만 소유하지 않는, '생이불유(生而不有)'의 정신이요, 도움을 주지만 거기에 의존하지 않는, '위이불시(爲而不恃)'의 정신이다. 이것은 불교의 육바라밀의 보시(布施)의 정신이요, 힌두교의 카르마 요가의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며, 예수가 말하는 황금률의 법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의 황금률은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에게 먼저 대접하라'는 것이지만, 노자는 대접받을 기대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적 윤리 정신이 이 대목에서 빛나고 있다. 이러한 '생이불유'나 '위이불시'의 정신은 또한 길러주지만 주재하려 하지 않는 '장이부재(長而不宰)'의 현묘한 덕(玄德)을 바탕으로 한다. 이상의 '불유(不有)', '불시(不恃)', '부재(不宰)', 이것은 모두 도(道)에는 독점적 욕망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른바 '무욕의 도'를 잘 말하고 있다. 반면에 인간은 '소유(有)', '기댐(恃)', '통치(宰)'에 너무도 미혹되어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도의 자연스런 창조성과 무독점성을 보게 되었다. 그런 반면에 도에 인격성을 부여 해 본다면, 도의 절대적 선(善)과 '생이불유'와 같은 사랑의 기능은 그리스도교의 아가페 사랑과도 비교가 가능하다. '절대 사랑' 아가페와 과 '절대 무소유'의 도는 절대적 선이라는 측면에서 대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도가 만물을 생성시키고 자라게 한다는 것도,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이 만물을 탄생시키고 자라게 한다는 논리와 통한다. 다만 도에 인격성을 부여 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비록 도에 인격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의 자연스런 위대함에 대해 겸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숭경하는 찬미를 아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부여한 경외심도 결국 도가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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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낳고 덕은 기르니 사물은 형체를 이루고 기물은 완성된다
道生之而德畜之, 物形之而器成之
'휵(蓄)'은 기른다는 뜻으로 쓸 때는 이렇게 읽는다. 모든 통행본에는 여기에서의 '기(器)'가 '세(勢)'로 되어 있는데 그 뜻이 모호해서 논란이 있었다. 백서처럼 '기'면 완성되는 것은 기물 그 자체다. 문장 구조로는 능동이지만 의미로는 피동이다(허항생). 『주역』 「계사상」에서는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그 형상〔象〕을 숭상한다"고 했으므로 기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본뜰 수 있는 사물의 형상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이 낳고 기른 뒤에 사물이 형체를 이루고, 그 다음에 기물이 완성된다.
'도'가 만물을 낳는다는 것은 『노자』의 독특한 사유다. 우주의 생명이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대한 『노자』 이전의 사유는 간단하게 정리될 문제가 아니지만 만약 중국에 생명의 탄생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전국시대 전에는 상제 또는 하늘〔天〕이 뭇 생명의 근원이었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조상숭배 사상은 일찍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혈족적 생명이 아니라 우주적 생명의 근원으로 조상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상제 관념과 결합한 이후의 일이다.
이때의 근원 개념은 모두 지상신(至上神)이었다. 그것은 원시적인 다신교 전통이 극복되고 정치적 권력의 통일에 상응하여 신의 세계가 통일됨으로써 형성되었으며, 절대적·인격적이었고, 짝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권능이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와 같았고, 생명의 근원이었으며, 조물주였고, 모든 질서의 담지자였다.
하지만 상제 관념은 은말 '타락한' 천자들이 그 이름을 참칭하면서 퇴조했으며, 인격적 하늘(천)은 그 현실적 담지자인 주 왕실이 몰락하면서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전국시대에는 우주와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특히 전국 말기에는 다양한 사유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전국시대 말기의 새로운 세계관에서는 지상신과 같은 범주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이 건곤이든 음양이든 천지이든 생명은 무언가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파악된다. 이것은 중국이 춘추·전국이라는 불신의 시대를 경험한 뒤에 그 시대의 배경에 있었던 과거의 일신교적 전통을 청산했으며, 그 대신 비록 소박하지만 자연철학적 우주론을 대세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지금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는 『노자』의 말은 비록 도·덕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전국시대 다른 사상가들이 사용하던 어법과 그리 큰 차이가 없다. 가령 "건은 큰 시작을 주관하고 곤은 사물의 완성을 주관한다(「계사상」)"는 말이나 "천지는 태어나게 하고 성인은 그것을 완성한다(『순자』 「부국」)"는 말은 지금 『노자』의 말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또 『관자』 「심술상」에서는 지금 『노자』의 말과 거의 같은 구도를 지닌 말을 발견할 수 있다.
허무·무형한 것을 도라고 하고, 만물을 화육하는 것을 덕이라고 한다. 군신·부자 등 인간의 일을 의라고 하고, 오르고 내리고 읍양하며 귀천에 등급이 있는 것과 가까이하고 멀리하는 일 등의 바탕〔體〕을 예라고 하며, 사물을 가려서 조금이라도 도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살육하고 금주(禁誅)하는 것을 법이라고 한다.
『노자』가 도·덕·사물·기물(그릇)을 이야기했다면 『관자』는 도·덕·의·예·법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물이란 반드시 그릇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의 제도 전반을 가리킬 수 있으므로 두 쪽 모두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일단 여기에서 도와 법의 관계가 어떻게 설명되는지 한번 주목해보길 바란다.
하지만 다음 글에서 그렇듯이 『노자』는 때때로 도라는 말을 생명이 탄생하는 자연적 과정 전체를 담지하는 범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곧 『노자』는 도·덕을 통해서도 만물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도만 언급한다. 이때의 도는 물론 인격적 유일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도의 유일적 지위는 얼마든지 그렇게 해석될 소지가 있었다. 말하자면 건곤이나 음양, 천지는 숭배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도는 될 수 있었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도가 만물을 낳는다는 발언은 시대적 추세와 함께하는 것이면서도 그것에 거스르는 것이었다. 『노자』는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늘(천)이라는 관념을 사용한 주 왕실처럼 자신의 통치술(처세술)에 믿음을 주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벼슬을 주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夫莫之爵而恒自然也
동사정은 "하늘에서 명을 받으면 천자가 되고 천자에게서 명을 받으면 제후가 되니 명을 받는 바가 있으면 명을 준 것이 그를 비천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는 만물보다 앞서서 그 명을 통제하니 누가 그것에 벼슬을 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오징도 이와 비슷하게 해설한다. 이런 해설을 통해서 바야흐로 도는 천자보다도 존귀한 존재가 된다. 도가 천자보다 존귀해지면 천자는 도를 아는 자, 도는 말하는 자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 것인가?
도는 낳고 기르고 자라게 하고 완성시키며, 형체를 주고 바탕을 이루게 하고 길러주고 덮어준다
道生之畜之長之遂之, 亭之毒之養之覆之
교감 부분에서 말한 것처럼 이 문장은 나중에 앞글과 합쳐졌을 것이다. 엄준본을 제외한 모든 통행본에는 이 문장 앞에 "때문에〔故〕"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때문에"나 "그러므로〔是以〕" 같은 접속사가 나오면 앞뒤 문장이 원래 다른 출처에서 오지 않았을까 한번쯤 의심해볼 수 있다. 고형에 따르면 그런 접속사로 다른 두 문장을 연결하는 것은 『노자』의 한 수단이다(2장).
아울러 현행 왕필·하상공·부혁본 등에는 이 문장의 앞부분이 "도는 낳고 덕은 기른다〔道生之, 德畜之〕"로 되어 있다. 앞뒤 문장이 호응하지 않는다고 보고 나중에 '덕'자를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범응원은 자기 판본과 왕필본에는 이 문장에 '덕'이라는 글자가 없다고 하였다. 하상공본도 본문에는 '덕'이라는 글자가 있지만 주에서는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정(亭)·독(毒)은 왕필·부혁·범응원·초굉본만 이렇게 되어 있고 나머지 판본에는 모두 성(成)·숙(熟)으로 되어 있다. 왕필의 주해는 의미가 좀 불분명한데 역순정에 따르면 원래 왕필주에는 "'정'은 그 형체를 주는 것이고, '독'은 그 바탕을 완성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역순정의 견해를 택한다. 범응원은 부혁과 『광아』를 인용하면서 "'정'은 응결하는 것이고, '독'은 편안히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의미가 역순정이 말하는 왕필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 노건은 정·독과 성·숙의 소리와 운율이 비슷하므로 옛날에는 서로 통하던 글자였다고 주장했다. 참고할 만하다.
범응원은 이 여덟 가지의 일을 앞에서부터 두 가지씩 묶어서 각각 춘·하·추·동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낳는 것과 형체를 주는 것〔生·亭〕, 기르는 것과 바탕을 이루게 하는 것〔畜·毒〕, 자라게 하는 것과 기르는 것〔長·養〕, 완성시키는 것과 덮어주는 것〔遂·覆〕이 의미로 보나 운으로 보나 짝이 되는 것 같다.
낳으면서도 자기 것으로 하지 않고, 위해주면서도 뽐냄이 없고, 길러주면서도 마음대로 하지 않으니
生而弗有也, 爲而弗恃也, 長而弗宰也
'불시(弗恃)'는 하상공에 따르면 "그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범응원에 따르면 "자신의 능함을 믿지 않는 것"이다. 범응원의 뜻이 글자의 본뜻에 더 부합한다.
이 문장은 통행본 10장에도 그대로 나온다. 하지만 통행본 10장에 해당하는 백서 부분에는 "위해주면서도 뽐냄이 없다"는 구절이 생략되고 없다. 그곳에서 생략되어 있는 구절은 통행본 2장에서도 나오고, 백서에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나중 사람은 통행본 10장에서 이 구절이 빠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봤을 것이고,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것을 추가했을 것이다.
『노자』에는 이 문장처럼 반복하여 등장하는 문장이 몇 개 더 있다. 그럴 때마다 종래에는 착간(錯簡)의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백서를 보면 그런 논의는 거의 들어맞은 게 없다. 한 명의 저자가 일관되게 쓴 글이라면 같은 구절이 중언부언 나타나는 게 이상하겠지만 『노자』는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없다.
이 말 중에서 적어도 일부는 노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장자』는 다음과 같은 노담의 말을 전한다.
명왕(明王)의 다스림은 공이 천하를 덮을 만하면서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교화는 만물에 미치면서도 백성들은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不恃〕. 그 덕화에 이름을 붙일 수가 없지만 만물이 스스로 기쁘도록 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곳에 서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경지에 노닌다(「응제왕」).
여기 명왕의 다스림은 "낳으면서도 자기의 것으로 하지 않고, 위해주면서도 뽐냄이 없고, 길러주면서도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자』 「달생」에도 "위해주면서도 뽐냄이 없고, 길러주면서도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 보인다.
이것을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此之謂玄德
『노자』에는 '현덕(玄德)'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10·51·65). 주겸지는 그것들이 모두 찬탄하는 말이기 때문에 중복도 피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바로 앞에서도 말했지만 중복되면 어느 것 하나를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병통이다.
메어(1990)는 『노자』가 구전되던 옛 성현의 말을 나중 사람이 편집해서 만든 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노자』처럼 짧은 책에서 여러 번 중복된 구절이 나오는 것은 구전 문학의 고유한 특징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가 제시한 구전의 증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백서본에는 오자가 많이 나온다. 구전되던 것이 막 문자화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같은 내용의 교훈이 곳에 따라 인용된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서술되기도 한다. 셋째, 교훈 자체와 그에 대한 편집자의 코멘트로 구성된 글이 많다. 넷째, 암송에 편하도록 기억을 돕는 장치가 많다. 다섯째, 서로 다른 글을 하나로 만들면서 부자연스러운 접속사를 사용하였고, 연관성 없는 결론을 제시하는 때가 많다. 참고할 만한 견해다(121∼4쪽).
'현(玄)'은 감각할 수 없음, 오묘함, 헤아릴 수 없음, 주인이 없음 등을 모두 포함하는 글자다. 그러므로 어두컴컴하고 거뭇하다. 왕필은 "현덕이란 덕이 있으면서도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여 어두컴컴한 곳에서 나온 듯한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하상공은 "어두컴컴하여 볼 수 없는 것"이 '현'이라고 하였다. 또 소철은 "대덕이 있으면서도 사물들이 알지 못하므로 현덕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요약하자면 현덕은 현묘하여 헤아릴 수 없는 덕(오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10장).
고힐강(1932)은 『노자』 이전에 '현'이라는 말은 모두 검다는 색을 지시하는 말이었지 현묘하다는 의미로 쓰인 적이 없다고 하면서 『순자』에 이런 용례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노자』와 『순자』의 시대는 대단히 가깝다고 하였다. 이때만 해도 『노자』가 『순자』와 가깝다는 평가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또 장서당(張西堂)은 '현'이나 '현빈(玄牝)'은 『장자』 내편까지는 나오지 않는 말로 『회남자』나 『문자』, 『열자』 등에 가서야 나타난다고 하면서 『노자』는 『장자』보다 후대의 책이라고 주장하였다(고사변6 「자서」에서 재인용).
명왕의 다스림은
공이 천하를 덮을 만하면서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교화는 만물에 미치는데도
백성들은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장자』 「응제왕」
[道生之而德畜之, 物形之而器成之]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