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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의 희망 보고서
1. 시가 나를 불렀기 때문에
2. 미지의 그것에 무형의 사건이 있다
3. 불태우는 삶의 조각
4. 우리에게 잠시 당신이었던
5. 우리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6. 저녁부터 희망은 시작되었다
7. 비밀은 없지만 알 수 없는 세계
8. 모호해서 아름다운
9. 기둥 너머에
10. 적당히 아름답자
11. 그래. 시가 주는 힘으로 며칠은 배부르겠지.
12. 내가 있기에 즐거운 것들
13. 체포되는 시들
14. 시가 주는 상쾌함
<1>
시가 나를 불렀기 때문에
지난 날, 만났던 시를 다시 만나는 기쁨도 있지만, 지난 날 만나지 못했던 시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시가 있었기에 어제를 버틸 수 있었고, 시가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고, 시가 있으므로 내일을 꿈꿀 수 있다. 시가 나를 불렀기 때문에, 나는 살아가고 있다.
시를 보면서 가끔씩은 울고 있는 내 마음을 본다. 그 마음이 정화되고 정화되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고, 절망적이었던 마음이 희망적으로 바뀌는 순간, 그 기쁨의 순간. 잠시잠깐이었지만, 그 기쁨의 순간은 오롯이 나를 바꾸어놓고 내 미래를 바꾸어놓는다.
시를 만난다는 건 그래서 기쁜 일이 된다. 나를 다듬고 다듬는 일, 내가 희망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일. 내가 가지기도 하지만, 나누어주기도 하는 일.
나누어준다고 내가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손은 비어있을지 몰라도 마음은 풍족하니, 이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을까.
시가 나를 불렀으므로, 그러므로 나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이 되어가고
시가 있음으로 인해 누군가의 삶도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는다. 우리는 믿는다.
<2>
미지의 그것에 무형의 사건이 있다
1. 진행 중, 진행 중인 것들
삶은 진행 중, 진행 중인 것들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든 삶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지금을 말하지 않고는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살기 때문에 계속 진행되고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삶은 계속된다. 삶은 진행 중, 진행 중인 것들이다.
2. 미지의 그것
미지의 그것에 대해서 말하자. 미지의 그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그것일까. 어쩌면, 미지의 그것은 이미 이해한 그것이고 이미 알고 있는 그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당신, 모른 척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지, 친구인 당신은 이미 알고 있지. 우리 사이의 그것에 대해서. 대체 그것이 뭘까. 이해와 관용과 미움과 슬픔 사이, 그것일까.
삶은 진행 중이고, 그것은 지나가고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앎. 그것이 지나가고 있다.
3. 무형의 사건
유형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지의 그것은 여전히 어딘가 있고, 무형의 사건이 어딘가에 또 있다.
불청객이 반가운 날, 미지의 그것이 우연히 발견되는 날. 무형이 사건이 일어나 비로소 유형의 사건이 되는 날.
비로소 너를 본다. 영혼이 다 빠져나간 듯한 너. 너를 바다에서 건져 올린다. 너는 미지의 그것이고 무형의 사건이다. 너는 애초에 없었지만, 비로소 이 세상에 나온다. 진행 중, 진행 중인 무형의 삶, 진행 중인 미지의 그것, 진행 중인 무형의 사건. 모든 진행 중인 것들이 비로소 유형의 삶이 되는 순간, 네가 있다. 너는 이 세상에 있다.
<3>
불태우는 삶의 조각
가끔, 나를 난감하게 하는 시집이 있다. 별다른 감동이 없고, 북마킹을 해야 할 시들도 별로 나오지 않는 시.
어쩌면, 불태우기 위해 뭔가가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안되는 건 안되는 거지. 당연한 걸.
순식간에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어떤 것들은 실제로 불태울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서 불태워 버리는 거야. 그게 그것의 의도가 아닐까. 그래도, 몇 편의 파편은 남겠지. 이 순간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하기엔, 그냥 그렇게 넘어지니까.
<4>
우리에게 잠시 당신이었던
때로는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느낌은 없지만, 부분적으로 화악 와 닿는 느낌들이 있다. 그런 느낌은, 그래도 '한번은' 이라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그 소망에는 좋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내 마음을 강렬하게 울릴 거라는 한껏 부분 들뜬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당)신이었던 신이 잠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신인지 신인지. 신은 만물을 창조하였고 우리가 순리대로 살아가길 기대하지만 인간은 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과 신은 조화롭지 않다. "당신과 나”가 조화롭지 않은 것처럼.
시간에 순응하고 그 시간을 덤덤히 바라보면서, 신에 속한 당신과 나의 사이도 덤덤하게 바라보는 순간, 당신과 나 사이 뿐 아니라, 비로소 우리가 된 사람들까지도 아무것도 없는 빈 병에 담아 나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든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는 당신과 일치가 되므로 비로소 우리가 되고 우리는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그 무언가로 인해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라진다. 사라짐으로서 이루어지는 무언가. 비로소 영원이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우리의 중간쯤에서 어딘가로 영원히.
어딘가에서 남은 일 년. 걱정은 하지만, 작은 걱정들이다. 그 걱정은 어쩌면 당신에 대한 걱정. 당신이 나와 일치되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걱정.
나와 일치했던 당신이 사라짐으로서 느끼는 몸은 붉고 흐리고 빠르다. 그 몸은 다시 어딘가에 있다.
당신이 사라졌고 나의 몸도 어딘가로 흡수된다. 그러므로 인해 이제 몸은 당신의 것도 나의 것도 우리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어딘가로 가고 있고 그 어딘가는 아무도 눈뜰 수 없어서 알 수 없는 곳. 알 수 없는 세계로 우리는 가고 있다.
우리는 사라졌고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당신도 사라졌다. 소문만 무성한 어느 알 수 없는 세계에서는 아직도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알 수 없는 세계로 간다. 알 수 없어서 덤덤한 세계. 모르니까 오히려 담대히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를 어딘가로 보낼 수 있으리라. 어딘가는 어려운 세계이지만, 꼭 가야만 하는 세계. 그런 세계에, 잠시 신이었던 "우리”가 간다.
<5>
우리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1.
늦은 잠을 자고 늦은 잠에 비하면 조금 일찍 일어난 아침. 핸드폰을 확인하고, 별다른 소식이 없음에, 잠시 실망을 내려 놓는다.
새벽, 무엇을 위해 읽고 있는지, 무엇을 읽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무언가를 읽어나간다. 읽어나가면서 찾는 의미. 때로는 무작정한 삶이 내게 다른 이유를 주기도 한다. 뭔가를 읽는 것의 무의미성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의미성. 그런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삶이다.
2.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방향에서 무언가가 시작되지만, 적어도 내게 정답은 아니다. 존재 의미 자체가 정답은 아니니까.
때로는 존재자체가 존재의 착오로 인해 길을 잃고 헤맨다. 때로는 존재를 착각할 수도 있고, 존재를 부정할 수도 있다. 그 존재가 너인 나다. 나에게 존재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어떤 존재는 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무언가가 바쳐질 때, 존재가치가 생기고 비로소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 힘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때가 절정의 순간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을 돌보는 것을 할 수 없다면, 존재의미를 잃게 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누군가를 위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적어도 어리석지는 않은 생각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실패의 연속이고 넘어지면 계속 일어나는 연습을 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오래된 실패. 그 힘이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실패해 봐야만, 비로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치열하게 살다보면, 실패가 많을 것이고, 그 실패는 잘 씌어져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그렇게 삶은 탄생한다. 치열한 삶의 고백. 별다른 실패 없이 성공만 계속해서 하는 사람들의 삶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좌절해 봤고, 실패해 봤고, 처절하게 눈물 흘려 봤을 때, 진정성을 획득하게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는 것의 지독한 반복.
존재한다는 것. 오늘의 확실한 절망을 믿는 것. 그 절망에서 벗어나려 애쓰기보다는 그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위로할 때, 사람은 비로소 그 절망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비로소 삶은 존재의미를 드러낸다.
3
오늘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인정받고 싶다는 어떤 욕망을 내려놓는 것은 아닐까.
나의 인생이 50년은 아니지만, 어쨌든 살려고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고, 욕망을 내려놓기에는 힘든 시간이다. 그럼에도, 무소유로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삶이 아닐까.
<6>
저녁부터 희망은 시작되었다
그래, 나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지.
이제부터 시작되는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내 삶의 시작이 하필이면, 저녁부터였던 거야. 밝은 아침이 아닌 저녁. 삶이 이제 시작되려 하는데, 어둠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당황스런 나에게 너는 말하곤 하지.
내 삶은 덤이라고.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은 걸 보면, 나에겐 아직 아픔이 남아있는데,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내 삶은 덤이라고 말하는 거야.
네 삶에 덤이 있기 전에는 온통 찔린 자국뿐이었지. 그 시절들을 나는 잊지 않았어. 그 시절들이 있었기에, 나의 저녁은 덤이 되지. 덤이 되는 내 삶이 마냥, 평온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덤에 나의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소식이지.
이제 나도 조금씩 움직여보려고. 찔린 상처들에 아파하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을게. 아주 조금,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보려고.
그래,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을 때, 저녁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지. 그 저녁, 희망이 있을까. 물론, 조금은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어. 컴컴한 하늘, 빛을 밝히려면 형광불빛이 필요하고 그걸 키우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내 손뼈는 바스러지도록 아팠지만, 그러나 다시 나의 단단한 주먹은 재기를 노리지.
그래, 저녁을 밝힐 수 있는 것은 형광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반딧불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때는 촛불이, 때로는 라이터불이 밤을 밝히기도 하지. 희망은 하나가 아니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내게 와.
그래 내 눈 저편에 네가 있지. 희망이 있지. 너는 희망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꿈이었다가.
저녁은 그렇게 지나갔어. 뭔가 고통스러운 듯하면서도, 많은 걸 발견해 희망적이었던 저녁이. 그리고 첫새벽이 왔지. 새벽은 왜 절망스러울까.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야, 절망이 정갈하게 단장이 되면 희망이 되지. 절망 속에 희망이 있어. 첫새벽에 내가 절망하는 이유는, 너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지. 그 기다림은 이제 얼마 안 남았으므로 나는 다시 희망을 갖지.
그래, 네가 내게 온다면, 강물 소리를 들려주지. 나는 너를 기다리지. 너는 희망이었다가 사랑이었다가 꿈이었다가, 때로는 절망이기까지 하지. 나는 네게 오늘도 내가 보고픈 시를 들려주며 네가 사랑으로 오기를 기다리지. 오늘도 기다림이 행복했다던 어느 시를 떠올리며 오늘도 너의 행복한 하루를 응원해. 너는 나의 꿈, 나의 사랑, 나의 절망. 그리고 나의 희망.
<7>
비밀은 없지만 알 수 없는 세계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휴일, 다소 침침한 눈이다. 벌써, 늙어버렸나. 이러한 생활이 나는 오래되지 않았다. 가끔, TV를 멀리서 보면, 눈이 침침해지곤 했다. 그럴 때는, 한참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다. 아니면, 눈을 감은 채, 멍을 때리고 있던가.
비밀은 없는데 알 수는 없는 세계, 그 세계에는 뭐가 있을까. 어쩌면, 비밀은 없는데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로 그 세계는 완성된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은 들어오라고 말하지 않았고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서로 저절로 알아가게 되고 그 세계에 비밀은 간직하고 있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밀이 만들어진 세계. 둘만의 비밀일 수도 있고 또, 나만의 비밀일 수도 있고, 또는 비밀이 아닐 수도 있는 세계.
아마도 이 세계을 이해하는 순간, 그 이해의 다른 쪽에는 또 다른 비밀이 있어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8>
모호해서 아름다운
진부한 듯 하지만, 진부하지 않고, 이상한 듯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그래서 신선한 건지, 진부한 건지조차 헷갈리는 것들은 그래서 좋았다.
이름 모를 것들처럼 구체적으로 이름을 부를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 신비로운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야생.
좀체 드러나지 않는 정체들. 그 정체들은 어쩌면, 끝날 때까지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만, 이름은 없는, 글을 쓰지만, 또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을 사는. 모호해서 황홀한, 그런 글들.
어느 순간에, 내 곁에 바싹 다가선 야생의 사랑, 좀체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누구의 모습인가.
<9>
기둥 너머에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을 어느 순간, 이해되는 순간이 있고 우연한 계기로,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 계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와 있으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저 너머의 세계로 왔음을 인식하곤 깜짝 놀라곤 한다.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사실이 있고 말은 하지 못했지만, 알려주고 싶은 진실이 있다. 그 너머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며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치열하게 진실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그 너머의 세계는 끊임없이 사실대로 말해달라 유혹한다.
모기는 모기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기가 모기로서 끝나지 않을 때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며 저 너머의 세계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
저기 저 기둥 너머에는 진실이 존재하며 그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지금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며 그 날을 위해, 조금만 나를 재어둔다.
느낌으로 "좋다"고 느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머리로 먼저 이해하려 하지 말자. 일단 느끼고, 이해는 천천히 해도 된다. 이런 말을 나에게 되뇌이며, 나는 오늘도 느낌으로, 느낌으로 나아간다.
기둥 위에 있을지도 모를 진실을 찾아 오늘도 나는 너머의 감을 기웃거린다.
<10>
적당히 아름답자
있잖아. 그런 순간들이 있어. 너무 아름다워서 잠깐, 멈칫, 했는데, 그 아름다움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순간. 너무 순간적으로만 아름다워서 미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리는 아쉬운 순간. 그래, 아름다운 생이지. 처음부터.
그래, 세상에 당연한 건 없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질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슬픔에 빠졌던 것일까.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았는데,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서? 어떤 사실에도 시선을 한쪽으로만 고정시키진 말아야 한다는, 그래야 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 그래, 그건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몰라.
반가운 마음이 온통 글이 되고 그 글이 아름다움이 되지. 아름다움이 너무 커서 글이 될 수 없는 아이러니. 그래, 너무 큰 기쁨은 때로는 불안으로 다가오기도 하지. 잠시 묵혀 둘 필요가 있는 거야.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되면 좋겠지만, 너무 지나치지는 말자. 아름다움도 적당할 때, 실망이 없고, 아름다움이 적당할 때, 그 아름다움도 오래가지 않을까. 너무 아름답지는 말자. 적당히 아름답자.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적당한 글로 표현되어 나왔으면 좋겠어.
<11>
그래. 시가 주는 힘으로 며칠은 배부르겠지.
그래. 시가 주는 힘으로 며칠은 배부르겠지.
잔잔한 마음에 물결이 일듯, 감수성을 조금씩 파고드는 시가 있지. 그것이 꼭 내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네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이것도 저것도 죄가 된다는 말이 있던데, 뭐가 죄가 된다는 걸까 살짝 궁금증을 가졌지 사랑한 게 죄일까 좀처럼 의문은 풀리지 않는데
뭐가 죄인지는 모르지만 그 죄 때문에 결국 네가 아닌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 그렇구나.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지은 죄가 있는 거구나. 어쩌면.
아름답지 못해 죄를 지었다는 말일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지만 그러지 못한 우리의 만남이 글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아, 그것도 아름다운 것일까.
그렇지. 지구는 둥글지. 돌고 돌아가다가 그 어느 순간 만남은 이루어지겠지.
아무 나무에나 집을 짓지는 않겠지. 새들도. 우리의 세상도 그러하겠지. 아무 집이나 지을 순 없지. 박준이 짓는 시의 세상은 불편한 곳이 아니라, 편안한 살림인 것이 아닐까.
너머 너머에 그대가 있겠지. 그 너머 너머엔 나도 있겠지. 그 너머너머엔 우리가 있겠지. 그래, 시가 주는 힘으로 며칠은 배부르겠지. 그 이후의 배고픔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으려나. 그래도 결국은 방법을 찾겠지. 나도,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어야겠어. 나, 잠깐만, 죄 좀 지을게.
<12>
내가 있기에 즐거운 것들
요즈음은 시집 한권씩 통째로 읽는 재미에 푸욱 빠져있다. 한권을 다 읽어야 비로소 시를 읽었다는 느낌이 들만큼, 시에 목말라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고, 한권씩으로는 왜인지 성이 차지 않는다. 먹어도 먹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봐도 봐도 갈증이 난다. 왜일까. 왜 만족하지 못할까.
사모하는 일에 끝이 없고 기다림에도 끝이 없다. 사모하므로 기다릴 수 있고 기다림이 있어 의미 있는 삶이 된다. 님의 존재는 크고 그리고 나의 존개도 비로소 커진다. 끝이 없는 사모의 잔잔한 미로. 시를 보고 싶은 마음에 끝이 없는 것처럼. 나는 또 하나의 시집을 곁에 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시들은 내가 있어서 즐겁고 나는 그 시들이 있어서 즐겁다.
<13>
체포되는 시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 되기도 하고 밤이었다가 낮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한 시들은 감동 대신 재미를 주고, 일탈의 통쾌함 대신 쾌활함을 준다. 일탈이라 여길 수도 있으나, 일탈이라 하기엔 그 주제가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슬프기까지 하다.
슬퍼도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는, 그래서 건강한, 삶. 그 삶들을 마냥 웃어제끼기에는 힘들 법도 한데, 그냥 웃어버린다.
시대의 아픔을 모른 척 하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모를 어떤 이의 시들, 아름답게 체포되기를.
<14>
시가 주는 상쾌함
오랜만에 시 속으로 빠져든다. 의외로 빨리 읽히고 재미있는 시들. 시 속에 빠져들기 전까지, 시는 그냥 감상적이어서 별로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잘 쓴 시들은, 오히려 재미있다.
누군가가 나를 버리고 나는 물을 버리고 물은 상처받고. 이런 표현들이,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아마도 언어가 주는 상쾌함이리라. 정결한 언어가 주는 시적인 상쾌함은 나에게 시집을 끝까지 읽게 하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그냥, 느낌이 좋아, 읽는 게 즐거워서 시를 따라 간다. 내용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나중에 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많이 알았을 때 따져 볼 일이다. 그저, 시적 언어가 주는 상쾌함, 상쾌한 시가 주는 즐거움, 그 길을 따라 시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 순간, 시의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리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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