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조신사계(調信詞戒)
쾌적수유의이한快適須臾意已閑
암종수리노창안暗從愁裏老蒼顔
불수갱대황량숙不須更待黃粱熟
방오노생일몽간方悟勞生一夢間
치신장부선성의治身藏否先誠意
환몽아미적몽장鰥夢蛾眉賊夢藏
하사추래청야몽何似秋來淸夜夢
시시합안도청량時時合眼到淸凉
조신대사<調信大師>
즐거운 시간 잠시뿐 마음은 어느새 시들어
남모르는 근심 속에 젊던 얼굴 늙었네,
다시는 좁쌀밥 익기를 기다리지 말지니
바야흐로 힘든 삶 한순간 꿈인걸 깨달았네,
몸을 닦을지 말지는 먼저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하거늘
홀아비는 미인을 꿈꾸고 도적은 장물을 꿈꾸네
어찌 가을날 맑은 밤의 꿈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의 세계에 이르겠는가.
위 게송은 조신대사(調信大師)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측기식(仄起式) 사계(詞戒)다. 압운(押韻)은 상평성(上平聲) 산통(刪統) 운통(韻統)에서 한(閑), 안(顔), 간(間)과 하평성(下平聲) 운통(韻統) 양통(陽統)에서 장(藏), 량(凉)으로 작게(作偈) 하였다. 인물별(人物別) 한시(漢詩) 세계(世界)를 맞추다 보니, 불가불(不可不) 운통(韻統)을 맞추어 보았다. 이 시는 두 운통(韻統) 작시(作詩)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신대사(調信大師) 편에 보면 조신(調信) 스님이 명주 장원에 관리를 맡아 가게 되었다. 장원에 이르러 태수(太守) 김흔(金昕)을 보고 홀딱 반해서 연모(戀慕)하게 된다. 그래서 낙산사(洛山寺)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에게 태수 딸과 부부인연(夫婦因緣)을 맺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으나 태수(太守) 딸이 정혼(定婚)이 정해져서 시집을 가고 말았다. 조신스님은 관세음보살 앞에 나가서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원망하면서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데 법당으로 태수 딸이 들어오면서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법당(法堂)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을 했다. 저는 일찍이 스님 얼굴을 한번 본 뒤 사모(思慕)하는 정이 있었으나 부모님이 정혼을 한 바람에 억지로 시집을 갔으나 이제는 스님의 아내가 되어 죽어서도 같은 무덤에 묻힐 것을, 약속하고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서 40년을 함께 살면서 슬하에 자식을 다섯을 두었다. 사는 살림살이는 변변치 못해서 집은 네 벽뿐이고 먹은 음식은 콩잎이나 명아주국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마침내 조신스님은 가족들을 이끌고 사방팔방으로 걸식으로 입에 풀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10년 동안 초야를 떠 돌다보니, 입은 옷은 메추라기가 달린 것처럼 너덜너덜 해어지고 찢어지고 구멍이 송송 나 몸도 가리지 못한 상 거지꼴이 되었다. 강릉(江陵)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열다섯 살 된 큰아들이 굶어 죽고 말았다. 조신스님은 대성통곡(大聲痛哭)을 하면서 아들을 길가에 묻고 남은 네 자식을 데리고 우곡현(羽谷縣)에 도착하여 띠 풀을 엮어서 집을 짓고 살았다. 50년을 못 먹고 굶고 거지꼴로 살다 보니, 두 부부가 늙고 병이 들어눕게 되었다. 열네 살 딸 아이가, 구걸을 하다가 동네 개에게 물려서 들어눕자, 탄식하고 통곡하다 부인이 눈물을 씻고 갑자기 말을 했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날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꽃다운 나이에 옷차림도 깨끗했지요, 한 가지 맛있는 음식이라도 당신과 나누어 먹었고, 몇자 되는 따뜻한 비단 옷감이 있으면 당신과 함께 옷을 해서 입었죠,
집을 나와 함께 산지50년 만에 정분(情分)은 가까워졌고 은혜와 사랑이 깊어졌으니 두터운 인연(因緣)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이래로 몸은 쇠약해지고 병이 날로 깊어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지니, 이집 저집 구걸도 이젠 부끄러운 일 아이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려도 돌봐 줄 수가 없으니, 어느 겨를에 사랑의 싹을 틔워 부부의 정을 즐길수 있겠습니까? 젊은 날의 고와 던 얼굴과 아름다운 웃음도 풀잎 위의 이슬이 되었고, 지초(芝草) 난초(蘭草) 같은 약속(約束)도 회오리 바람에 날리는 버들 솜이 되었나이다. 당신과 내가 있어서 근심만 쌓이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거리만 많아지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옛날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소. 당신이나 나나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여러 마리 새가 함께 굶주리는 것보다는 짝 잃은 난 새가 거울을 보면서 짝을 그리워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힘들면 버리고 편안하면 친해지는 것이 인정상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고 멈추는 것 역시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데도 운명(運命)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제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기뻐서 각자 아이 둘씩을 나누어 데리고 떠나려 하는데 아내가 말했다. 저는 고향으로 갈 것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그렇게 헤어지는 순간 조신(調信) 스님이 꿈에서 깨어난다. 태수 딸이 시집을 가는 바람에 관세음보살님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원망하면서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꿈속에서 태수 딸과 백년(百年) 부부인연(夫婦因緣)을 맺고 자식 다섯을 두고 가난에 쪼들려서 고생 고생하면서 사방팔방(四方八方) 구걸(求乞) 행각(行脚)을 하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고 자식 둘씩 나누어 헤어지면서 꿈 깬 이야기기가 삼국유산 조신(調信) 스님 편이다. 화옹(和翁)이 조신대사(調信大師) 선화를 보고 한시(漢詩) 게송(偈頌)을 읊어 보았다, 한번 김흔 여식 보자마자 조신스님 깊은 사랑에 빠졌네! 꿈에 태수 딸 만나자 결혼하여 오십년을 함께 살았네! 슬하에 아들딸 다섯을 두었는데 가난하여 굶기를 밥 먹듯이 했네! 해현령에서 한 자식 굶어죽자 통곡을 하고 우 현령에 초막 짓고 겨우 연명타가 춥고 배곯아 병(病)까지 들자 탄식하기를 홍안(紅顔)의 아름다운 미소도 풀 위에 맺혀있는 아침 이슬이네! 지초와 난초 같은 약속의 정분도 회오리 바람에 날리는 버들 솜이 되었구려! 식솔과 이별하고 꿈에서 깨고 보니 수염과 머리카락 다센 백두옹(白頭翁) 일세! 이것이 조신대사(調信大師)의 하룻밤 꿈이라네그려!<一場春夢 一見金昕女 調信深戀慕 夢逢太守女 婚後五十年 膝下五子女 窮乏飢飯事 痛哭蟹縣嶺 結草羽曲縣 飢寒病歎息 紅顔巧笑美 草上之朝露 約束芝蘭情 柳絮飄風飛 食率離別醒 鬢髮盡白翁 調信一宿夢 <和翁> 우리 인생도 따지고 보면 조신의 꿈과 같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 아니겠는가? 아등바등 몸부림쳐봐도 깨고 나면 꿈인 것을 어쩌겠는가? 오늘은 조신대사 시세계(詩世界) 운통(韻統)을 맞추어 보았습니다. 여여법당 화옹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