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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샤론강좌(성경의 힘) - 제43강 율법과 계명 2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땅에서 복을 받고 싶은 사람들, 복스러운 삶을 살기 원하는 분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는 분들, 우리 삶이 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구약에 있는 율법 플러스 산상보훈,
그리고 바울서신 속에 대개 앞부분은 교리편이고, 뒷부분은 윤리편 실천편인데, 그런 실천적인 것을 잘 살펴봐야 돼요. 제가 한번 그런 부분만 전부 뽑아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문제를 한번 따로 정리할 마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때 율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이것을 지키면 애굽에서 구원해 주겠다 한게 아닙니다. 애굽에서 그냥 나와서 그리고나서 이미 애굽에 바로왕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은 후에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어떻게 살면 거룩하게 되는지, 어떻게 살면 복을 받는지, 그런 규정으로 레위기라는 법을 주신 거예요.
그것을 알고 구약을 읽으면 전혀 구약성경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
율법의 기능을 단지 자기가 죄인된 것을 깨닫게 했다. 이게 바울이 한 말이고 루터가 주장했던 것인데, 그것은 율법의 기능을 결과론적으로 볼때 그렇다는 거야.
사실은 율법은 죄를 깨닫기 위해서만 준게 아닌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도 그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만짓고 복은 고사하고 저주나 받고 이렇게 된 것을 놓고 결과론적으로 볼때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 목적론적, 율법의 처음에 목적론적으로 볼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죄만 깨닫게 할려고 준게 아녜요.
만약에 율법의 기능이 율법의 목적이 그저 죄만 깨닫게 하는 것 같으면 가만 놔두고 실컷 죄를 지어서 너희가 실컷 죄인된 것을 알아라. 그리고 하나님도 아무 화낼일도 없겠죠.
아닙니다. 여러분 역사서와 예언서를 제대로 안봐서 그렇지, 역사서와 예언서를 보면 분명히 그것을 지키면 복 받는다고 주셨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고 진노하시고 애를 태우시고.. 그런 것을 다 안보니까 그런소리를 하는 거예요.
결과론적으로 보면 안되고, 처음에 율법을 주셨을때, 본래 목적 목적론적으로 보자는 거예요. 일단.
율법을 주신 처음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법을 주셨던 목적을 제가 일곱가지 정도로 정리를 해 봤어요.
맨 먼저 율법을 주셨던 처음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데 있다는 겁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말은 구별되게, 세상사람들과 구별되게 하는건데, 그러면 어떻게 구별되느냐?
지금까지 살아왔던 애굽사람들과 현저하게 구별되게.
그리고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땅을 더렵혔던 가나안 7족과는 현저하게 구별되게 거룩하게. 이렇게 하기 위해서 일단 주신 거예요.
두 번째, 이스라엘 사람들을 복되게 할려고..
여러분 그 율법을 잘 보면 복받는, 정말로 그 법대로 그 땅에서 이루어지면 복스러운 민족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셋째는 삶을 얻고 복을 얻는다.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사람들은 복을 얻었는데 너무 단명해. 명대로 못 살고 그 백성중에서 끊쳐지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 있죠? 살만하자 그만 세상 떠났다.
어떤 사람은 오래 살긴 사는데 일평생 거지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 삶은 얻었는데 복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키면 삶을 얻고 복을 얻어. 그러니까 명대로 살고, 사는것도 어떻게 사느냐? ‘수가 높고 나이많아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 돌아가셨더라’
‘아브라함의 행한 그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175세까지 살고 범사에 잘되고 복을 받았어요.
율법을 잘 지키고 계명과 율례를 따라살면 그렇게 될 수 있는거죠.
네 번째, 이방인들에게 선교하기 위해서 이 법이 주어진 거예요.
‘너희처럼 이렇게 복스러운 법을 받은 민족에 세상에 어디 있느냐?’ 하고 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 세상사람들이 부러워 할거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참 아름답게 살아서 세상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부러워할 정도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복을 받는 거예요. 또..
다섯 번째,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평강을 얻게합니다..
여러분 생명을 얻었는데, 역시 오래 살아도 평강이 없어봐요.
반대로 평강은 얻었는데 너무 짧게 살아버리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삶을 얻고 복을 얻는 것은 영생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율법은 영생을 주는게 아니고 이 땅에서 삶을 얻고 복을 얻게 하는 겁니다.
여섯 번째,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어요. 율법이.
하나님 섬기는 법도가 있어요. 아무거나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예절과 법도가 있다는 거예요.
일곱 번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관계가 시작되어, 마침내 마음을 다하소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데까지 가야 돼요.
이것이 우리 신앙의 목표점이고 목적점이기 때문에 이런 일곱가지 목적 전체가 율법을 잘 공부하게 되면 이런 단계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이런 목적은 안보고, 단지 그저 율법이라는 것이 죄를 깨닫게 하는데만 목적이 있다고 마틴루터의 단견(短見)에 속해요. 그래서 훗날에 칼빈이 말할 때 율법은 성화의 채찍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경을 제대로 읽어보면 훤히 보이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최소한 7년마다 한번씩 성경 전체를 낭독하고 가르치고 해야되는데 이것을 하지 않았죠.
참고로 신명기 31장을 펴 봅시다. 신명기 31장 9절에 보면,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그러니까 율법을 주신 목적 중에 하나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거예요.
제가 오경을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200번을 읽어본 것 같습니다. 모세오경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이 오경을 제대로 읽어 봤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돼요. 틀림없이.
그리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목적은 거기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론적 보니까 그렇게 안되었을때, 그 목적대로 되지 되지 않았을때,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율법이 오히려 인간이, 차라리 율법이 없었으면 범한것도 없었을텐데, 율법이 있으니까 모조리 범해서 현저하게 죄인된 것이 드러났다. 이것이 바울의 결과론적 해석이죠.
그래서 이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을 복되게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 삶을 얻고 복을 얻게 하지도 못했고요, 선교하는 것은 고사하고 선교를 당하고 말았어요.
율법을 가르치지 않았더니 생명과 평강은 고사하고 고통과 사망을 겪었습니다.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했고 결과론적으로 보면 우상숭배에 빠졌어요.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고사하고 마귀의 자식들, 독사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어요.
이것은 결국은 율법 교육이 실패 했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론은 그렇게 된 거예요.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바울이 말한대로 그렇게 된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악하고, 얼마나 어리석으며, 얼마나 미련하고,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스스로 큰 죄인됨을 깨닫고 어쩌면 우리가 어찌할꼬 할때 구세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을 부르셨으니까 어쩌면 그 율법이 죄인들의 죄인됨을 깨닫게 하는데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본 것이 바울의 해석이죠.
그러나 율법이란 것이 다만 죄인들의 죄를 깨닫게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켰을때 실제로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온전히 다 지키지 못했어도, 여러분 다윗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지킬려고 노력하고 그 정직한 성품으로 율법대로 살려고 했죠.
그렇다고 완전히 다 지킨 것은 아니죠. 그렇지만 지킬려고 했던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신거죠.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구약시대에 나타나는 구약성경에서 이름을 거명할수 있는 인물중에 가장 율법을 사랑했던 분이 있다면 에스라가 아니겠는가 싶어요. 에스라.
모세는 자기가 다 기록하고 언제 율법을 사랑하고 할 시간도 없이 세상을 떠나버렸죠. 오경을 다 완성하자 곧 천국에 갔을테니까요.
그러나 그 율법을 깨닫고 그 율법과 계명과 법도를 그렇게 사모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소중히 여겨서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던 분이 있다면 에스라라고 봅니다. 에스라.
그 에스라는 정말 위인이죠.
그 에스라 같은 분은 우리 기독교나 유대교나 다 존경하는 위인이고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민족의 스승을 랍비중에서 최고 랍비를 ‘랍반’이라고 해요. 랍반. 최고 랍반을 에스라, 그리고 힐렐, 가말리엘..
이런 분들은 굉장히 의로운 경건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오늘날도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킨다는 것, 아무리 우리가 구원받았고 또 성령의 도우심이 있다고 할지라도, 워낙 우리가 육신적 삶에 익숙한 세상적 삶에 얽매이거나 익숙한 우리에게 그 율법을 다 완전히 지킨다는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율법을 몰라서 못 지키면 몰라도, 일단은 알도록 가르치고 배우고 그리고 지킬려고 노력할 때, 우리 삶이 거룩해지고 복받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 율법속에 있는 것을 하나씩 배워서 실천할려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볼때, 제가 볼때도 아주 복스럽게 보인다니까.. 성도들의 삶을 볼때..
그 이야기는 조금 더 있다가 구체화해서 말씀드리죠.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믿음을 가졌다면 율법을 지킬려고 했을 거예요. 구약시대 사람들이 믿음을 가졌다면 어떤 믿음이냐?
율법을 지키면 온갖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고요, 반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그 언약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어기면 복받은 것의 네배씩이나 저주받을 얘기를 한 거예요.
신명기의 복과 저주 이야기를 할때, 신명기 28장 1절에서 14절까지는 복받는 얘기이고, 신명기 28장 15절에서 68절까지가 저주받는 얘기예요.
그 저주 이야기가 복받는 이야기의 네배정도 됩니다.
그렇다면 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다면 복을 받고 싶은 욕심에서라도 율법을 지켰을 것이고, 또 저주 받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율법을 지켰을 거예요. 믿었다면..
결국은 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뭘 말하느냐하면 믿지 않았다는 것이 되어요.
좀 어렵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약속과 율법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지키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만약에 우리가 이 율법을 지키면 땅에서 복을 받는다고 분명히 되어 있는데, 신명기 28장에 복받는 얘기는 계속 설교하면서 율법을 못지킨다고 해봐요. 오늘날 율법을 안 지켜도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러면 복 받습니까? 그것은 아니지않습니까?
그래서 세밀히 정밀하게 공부해보면, 그것을 지키면 정말 복스러운 백성이 됩니다.
그리고 복 받게 되어 있어요. 이런 부분을 전혀 공부를 안했다는 거죠.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두가지 원인이 있겠는데,
첫째는, 지도자가 가르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매 7년 정기 면제년 초막절 마다 온 국민 남자 여자 유치원생 외국인까지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이 율법을 낭독하고 설명해서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게 하라, 배우게 하라.
이렇게 했는데 이것을 안했기 때문에 가르쳐도 국민이 배울까말까한데, 안가르쳤으니까 어떻게 배우겠어요.
둘째는, 믿음이 없었다는 거예요.
믿음이 있었다면 복을 받고 싶어서라도 지켰을 것이고, 저주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켰을 것인데,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믿음이 없었다는 거죠.
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 말씀드리는데, 제가 율법의 효용 율법의 유익을 강조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고, 구원받은 그 이후에, 은총으로 값없이 구원받은 그 이후에 거룩한 삶을 위해서 복된 삶을 위해서 우리가 지키고, 또 우리가 그것을 지킴으로 우리의 경건한 삶의 모습을 보여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흠모하고 존경하고 거룩한 사람들로 인정을 할게 아녜요. 사람들이.
만약에 우리가 세상사람들이 먹는 것 다 먹고, 세상사람들이 입는 것 다 입고, 세상사람들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그대로 따라 살아버리면 믿는사람과 안믿는사람 차이가 뭐 있겠습니까? 단지 차이가 꼭같이 살고는 천당갈 욕심 하나 더 있는 것 그것밖에 차이가 안나는 거죠.
그래가지고는 우리가 성도(聖徒)라고 하는 거룩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나중에 구체적으로 뭘 어떤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은 그것은 시간이 많이 걸릴테니까..
하여간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전혀 사람의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으심.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순종과 그리스도의 피와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가 은총으로 대속의 은총으로 구원받지만, 그러나 구원을 받은 후에는 성실히 율법을 가르치고 배우고 지켜서 행하게 하라. 제자를 삼아서 가르치고 지켜서 행하게 하라는 거죠.
지극히 작은 계명 하나도..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할때 그 ‘성경’은 그때는 구약을 말해요.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말할 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할때, 그때 성경도 아직은 신약은 성경이라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그때는요. 구약을 말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구약성경 어떤책도 66권중에 어떤책도 우리가 가감할수 없습니다.
뺄 수 없고 더할 수 없고 그대로 다 배우고 가르쳐야 돼요.
그리고 그 율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율법을 요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람을 건강하게 위생적으로 사는 것, 그리고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다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 그런거예요. 율법의 정신이..
그것을 어떻게 폐합니까?
율법 전체의 목적과 그 정신이라는게, 하나님 사랑하는 것, 이웃 사랑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이 건강하게 복되게 사는 것, 그리고 윤리적으로 건전하게 사는 것, 그리고 생명있는 모든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 이런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폐한단 말이예요? 말이 안되는 얘기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어서 거룩하게 되고, 복된 삶을 살아갈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이 우리에게 위탁된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지켜야하는 율법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지켰던 그 수준의 불완전한 율법이 아니라, 거기에다가 예수님의 교훈, 더 완전케 하셔서 완성시키신 완전한 율법을 가르쳐서 우리의 삶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성도의 삶이 온전케 되는 것, 이게 예수님 뜻이예요.
이것이 예수님의 바램이고 교훈이고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도 못해가지고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이 있겠는가 세리도 이같이 하느니라’
세리도 세리끼리는 잘 지냅니다.
마태복음 5장 46절-48절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래서 우리 믿는사람들이 구역예배 모일때 믿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고, 믿는 사람도 다 안모여서 속을 썩이고, 이래가지고는 안돼요. 반드시 믿는사람 다섯가정에 안믿는사람 한가정쯤 초대해야돼요. 거기에 의미가 있는거죠.
저는 맨처음 예수믿을때부터 구역예배하는 목적은 구역끼리 돌아보는 정도가 아니고, 거기에 누군가를 꼭 한가정을 초대하는 거예요.
만약에 믿는사람이 두가정 세가정밖에 없는데 안믿는사람 열가정 초대하면 그사람들이 분위기 잡아가버리니까 안돼. 거꾸로 믿는사람 다섯가정 모일때 안믿는가정 한가정쯤 초대하는 거야. 그 사랑의 분위기에 감동되게..
그렇게 해서 형제에게만 문안할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 그런 가정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 있을때 목사를 부르지 말고 앞집 뒷집 옆집 전도대상자 그런 사람을 초대하라고 해요.
어떤 사람들이 주의 종 잘 섬기면 복 받는다 맨 그런 유치한 소리 하는데, 주의 종은 사모님이 잘 섬기게 놔두고, 옆집 사람들 앞집 사람들 우리의 사랑과 관심과 기도의 대상 전도 대상자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에게 문안하고 그들이 어려울때 더 빨리 달려가고 해야지.. 믿는사람끼리만 너무 놀지 말고, 여러분 안믿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사람이야 믿는 사람은 오죽 사랑하겠습니까?
항상 관심의 영역이 믿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넘어갈수 있도록..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런 말씀들이 굉장히 중요하고 실제적으로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여러 율법들 중에서 폐한 율법도 없는게 아니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율법의 일점일획도 폐하지 않는다’ 하는 말씀이 있고, 또 ‘율법의 일점일획이 떨어지는 것보다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쉬울 것이다’ 이런 말씀도 있고, 또 어떤곳에는 ‘그 첫 번째것을 폐하신 것은 둘째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런말도 있는거야.
어디 보면 꼭 폐한다는 말도 있고, 폐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성도들로서는 참 힘들죠. 이런 것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모형으로 지키던, 모형으로 명령되었던 율법은 실상이 오면 폐하는 거예요.
모형으로 하던 것, 가령 예를들면 동물제사, 즉 양이나 소나 염소나 멧비둘기 산비둘기 새끼 두 마리 이런걸로 제사하던 것들은 다 모형이거든요.
예수님이 제물로 드려질 것을 모형으로 드린 제사법, 이런 것은 실상이 왔기 때문에 폐한 겁니다. 우리가 양이나 소를 잡아서 제사할 일 없죠. 이제는.
그 다음에 육체에 행하던 할례, 육체에 표를 하던 그 할례의 경우는 아무리 육체에 표를 하고도 그 마음에 할례받지 못하고 율법의 참된 의미와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이 안되었을때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마음 가죽을 베고 그 영혼이 거듭나서 마음의 할례 곧 세례가 오게 되니까 육체의 할례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그것은 안해도 상관없어요. 그렇다고해서 할례가 해롭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역시 할례는 유익하다는 거죠.
구원의 조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거예요.
그리고 그 외 유대지방의 문화 안에서 그들의 관습법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형님이 후사없이 돌아갔을때, 동생이 그 형수방에 들어가서 후사를 잇게하는 것, 그것은 관습법이고 그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고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 자손을 이어가는,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그 관습법으로 있던 그런것은 지금 우리가 할수 없겠죠.
우리나라 같으면 보통 동생이 아들을 낳아 형님에게 양자로 주는 이런 것은 하지만 형수방에 시동생이 들어가서 대를 잇게 하는 것은 관습법이기 때문에 우리는 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폐해진 법중에 하나죠.
이렇게 폐해진 법까지 다하니까 유대인들이 유대인 학자 중에서 ‘마이모니데스’라는 사람이 613조나 추려서 이것이 하나님 명령이다 하고 뽑았는데, 제가 체크해 보니까 230내지 240가지 그정도는 지금도 우리가 지킬 필요가 있는 율법들이고, 나머지는 거의 다 관습법이거나 모형으로 행해진 폐해진 거예요. 2/3정도나 3/5정도는 지금 우리가 지킬 필요가 없는 그런 율법이 있습니다. 실제로..
반대로 613가지 명령중에 230가지 250가지 그정도는 지금도 여전히 지켜야만 옳은 그런 법이예요.
그 다음에 둘째, 영원히 폐하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 영원히 폐하지 않는 법.
그것은 윤리와 도덕법, 영원히 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해야 돼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셔서 산상보훈에 있는 엄청난 수준의 윤리라는 것은 구약 레위기 19장에 있는 윤리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예요.
그것은 예수 믿은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는 유대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그런 뜻이예요.
그 다음에 실제적인 삶의 윤리이기 때문에 폐하지 않는 것이고, 이것도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음식물 규정. 구약성경에 보면 음식물 규정이 있는데, 이것도 상당히 우리 기독교가 오해한 거예요.
음식물 규정은 폐했다 하니까 신약시대 기독교에서는 아무것도 먹어도 괜찮다. 물론 아무거나 먹어도 지옥에는 안 갑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먹지 말라하는 음식들은 식품 영양학적으로 혹은 환경 생태학적으로 볼때, 먹지말라는 것은 안먹는 것이 훨씬 좋아요.
최근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너무너무 못 살았죠. 우리는 1년에 어릴때, 중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1년에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먹는 것은 1년에 한번 아니면 두 번. 그것도 쇠고기는 거의 엄두도 못내고, 1년에 돼지고기 한번쯤 먹어보거나 두 번쯤 먹어보거나 이정도밖에 못 먹었어요. 생선도 한달에 한번 먹거나 말거나. 이렇게밖에 못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갑자기 20년동안에 얼마나 잘살게 되었느냐? 20년 동안에 40배 내지 50배 잘살게 되었어요.
갑자기 너무 잘살게 되고 너무 소득이 높아지니까 그동안 고기 못 먹던 한이 맺혀서 얼마나 고기를 많이 먹는지, 지금은 세계에서 고기를 제일 많이 먹는 나라가 한국사람이예요. 한사람이 5인분 먹어요. 여러분 이런 것은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수 없는 일이예요.
육식 문화가 오래 흘러온 지역을 가보면 한사람이 1인분 먹습니다. 1인분. 그리고 양이 딱 자기 손가락 네 개정도 이상 먹지 않습니다. 그렇게 먹고 채소를 샐러드를 이만큼씩 먹어요.
그러니까 고기를 그만큼 먹어도 문제가 안되고,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렇게 먹다가 보니까 장의 길이가 짧아요. 육식을 잘 소화해내는 소화기능이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오랜동안 채소와 곡식 과일을 먹어왔기때문에 장이 굉장히 길어요. 초식동물처럼. 장이 계속 길어져서 동물성 단백질이 분해될때 나오는 암모니아 개스 같은게 장안에 오래 머물면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또 개스도 있고요.
그래서 육식은 하되 가리고 또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서 먹지말라 하는것을 안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거예요. 구원과 상관있는 것이 아니고, 건강에..
그러나 육체노동을 해서 에너지가 항상 모자라고 늘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은 돼지고기 조금 먹었다 할지라도 그게 고지혈증으로 가거나 그렇게 안됩니. 지방질이 다 타서 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날 땀 한방울도 안흘리죠. 육체노동 거의 안하죠. 걷지도 않고 세발만 가도 차타고 가고 그러니까 이제는 동물성 지방질을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일반 영양학자도 다 똑같이 말합니다. 성경만 말하는게 아니라..
성경은 지금부터 3500년전에 동물성 지방질을 먹지 말라는 것이고, 피를 먹지 말라고 되어 있어요.
그것이 무슨 종교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먹는 겁니다.모형도 아니고...
그래서 제 주변에 식품 영양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저의 식품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시더니 성경이 현대 식품 영약학보다 3500년 앞섰다는 거예요. 똑같은 고백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도행전 10장에 베드로가 검은 보자기에 싸서 내려오는 부정한 동물들을 하나님이 잡아 먹으라 했으니까, 신약시대에는 아무거나 잡아 먹어도 괜찮다. 삼척동자도 들어도 웃을 얘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아무거나 먹으라는 얘기가 아니고, 유대인들의 의식속에 이방인들을 부정한 짐승으로 봐요. 왜 부정한 짐승으로 보느냐? 정한 짐승은 쪽발이 갈라져야 되는데 사람은 쪽발이 안 갈라졌잖아. 그리고 정한 짐승은 새김질을 해야되는데 사람은 새김질을 안하니까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가축으로 봅니다. ‘고이’라고 해서. 가축으로 보는데, 굽도 안갈라지고 새김질도 안하는 먹을수 없는 고기니까 부정한 동물이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만약에 그때 그 환상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고넬료 집에 안간다는 거예요. 이사람이 틀림없이. 부정한 짐승의 집에 가서 더럽힐 수 없다 해서 안갈것이 분명하니까, 너희 유대인들이 부정한 짐승으로 보고있는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깨끗케 한거야.
그러니까 부정하다 하지 말고 고넬료의 집에 가거라 거리낌 없이..
그것을 보여주는 그런 하나의 교훈 아주 유치한 교훈이죠 사실은. 하도 유치하니까 그때만 해도..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신약시대에는 아무거나 다 먹어도 된다. 그것은 말이 안되지않습니까?
또 먹는 것을, 음식문제를 가지고 폄론하지 말라, 폄론하지 말라 할때도 개고기 돼지고기 먹는 것을 두고 폄론하지 말라한게 아니라, 이방인 세계에서 시장에 내다파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들이 시장에 유통되는 거예요. 다 못먹으니까.이런 것을 먹은 것을 가지고 먹었다 안 먹었다 시비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게..
저도 지금 개고기나 돼지고기 먹는 것 가지고 정죄할 맘이 있는게 아닙니다.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해롭다는 거예요.
담배를 왜 못피게 하는 겁니까? 여러분 담배피면 지옥가요? 안가요? 담배 핀다고 지옥에는 안가겠지만 그게 몸에 해롭다는 거죠.
그런것처럼 성경에서 제가 금한 것을 다 보니까 실제로 몸에 해로운 거예요.
유익은 20% 안되고 해로운 것이 더 많다 그럴때는 먹지 못하게 한 거예요.
쇠고기도 먹을수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육골분, 축산 폐기물을 갈아서 소머리 꼬리 족발 소가죽 이런 것을 냉동 건조해서 분말을 만들어 곡식사료에 섞어서 먹인 영국산 미국산 그런 쇠고기는 위험해요.
쇠고기를 먹을수 있는거지만 사료를 잘못 먹인 그런 쇠고기는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볼때는 레위기에서 가려라 한 것 보다 지금은 더 가려야돼요.
미국 같은데서는 슈퍼박테리아, 이른바 항생물질 내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그런 지독한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들어왔을때는 어떤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지금 현재 얼마나 심각한지 AIDS문제는 저리가라는 거예요. 슈퍼박테리아 때문에.
이것이 병원에서 옮겨요. 병원에서..
내성을 가진 지독한 균이 병원에 있다는 거예요. 대개. 병원성 슈퍼 박테리아.
이런 것이 지금 가축들을 기를때, 대량사육을 하다보면, 예를들어 닭을 기를때, 통닭용 육계 이런 것은 단위면적당 엄청난 마리수를 집어 넣습니다.
만약에 병 한번 들어버리면 그 병든 닭만 못쓰는게 아니고 양계사 시설 전체를 못쓰게 만들어 버려요. 그러면 양계사 새로 땅 사서 이전할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아예 병이 들지 않게끔 충분히 항생물질을 섞어서 통닭을 만들어내면 그건 위험한 거죠.
그런 통닭을 1년에 한 마리 먹었다. 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계속 먹고 습관적으로 먹고 밤에 야식할때마다 먹고 자꾸 먹으면 우리 몸속에 항생물질이 많이 쌓이게 되는거죠.
결국 항생물질 내성이 생겨요. 우리 몸도..
앞으로 항생물질을 많이 투여하는 그런 사료, 그런 사료로 기르는 가두리 양식장에서 기르는 회도 문제가 되겠고, 미국산 영국산 쇠고기. 먹어서는 안되겠죠? 돼지도 위험해요. 돼지는 굽도 안 갈라졌고..
우리 경상도쪽에 속담중에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다’ 그런말이 있어요. 옛날부터 일반 민간 속담 속에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다 그런말이 있는데, 대개 우리가 육체적으로 노동을 너무 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질이 타서 없어지지 않고 고지혈증, 고지혈증에서 거기다가 콜레스테롤이 점점 더 증가해서 피가 탁해진다든지 그러면 심혈관계 혹은 순환기계 혹은 뇌 속에 무슨 치매 이런 것을 가져올수 있습니다. 동물성 지방질 때문에..
이런 것은 상식선이어서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극히 삼가야 할 음식으로 인식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정보를 3500년전에 주신 레위기 속에 레위기 11장 속에 다 기록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특히 우리 한국사람은 젓가락을 매 끼니마다 들고있기 때문에 젓가락 보세요. 11장이죠. 11장. 젓가락 들면 레위기 11장.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먹지 말 것인가? 금방 분별할수 있어요. 읽어보면.
그래서 물고기 중에서도 메기, 뱀장어. 특히 메기가 제일 환경호르몬에 많이 오염되어 있는데, 메기를 잡아서 환경호르몬 수치를 재면, 물속에 일반 강물속에 녹아있는 환경호르몬 수치를 1이라고 하면, 메기 몸속에는 200만배. 이정도로 오염되어 있을 겁니다.
그정도로 메기라는게 아주 더러운, 먹이사슬 맨 꼭대기 입이 커서 작은 물고기 다 잡아먹어요. 이게. 그러면 결국은 물속에 있는 모든 환경호르몬들이 맨 마지막에 쌓이는 곳이 메기몸에 쌓인다고 봐야 돼요.
이런 것은 진작에 먹지 말라고 한거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오리고기는 고혈압에 좋다고 하는데, 오리도 잡식성이고 물에 있는 것 더러운 다 건져먹기 때문에 온갖 더러운 것들이 오리 속에 있습니다. 닭도 마찬가지고 오리도 마찬가지..
구약에서 먹으라고 했던것도 지금은 환경이 너무 오염되었기 때문에 성경보다 더 가야 돼요. 더..
어떤 사람들이 믿음으로 먹으면 괜찮다. 아니 믿음으로 농약 먹어보세요. 괜찮은가?
‘기도함으로 거룩해짐이라’ 하는것도 기도함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모든 식물을 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상에게 바쳐졌다 할지라도 시장에 내다팔면 우상의 침이 흐린것도 아니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먹으면 된다 그런뜻이지, 몸에 해로운 것을 기도하면 괜찮다 그러면 안돼요.
성경에서 먹지말라고 한 것을 먹지 않고, 혹시 먹을수 있는 동물인데, 양이나 소 이런 것들이 다른 신전에 바쳐졌다가 다 먹지 못하고 시장에 유통되는 것,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런 것 음식을 반드시 가려야 돼요.
오늘날 그 결과로 볼때 음식을 잘 가리고 있는 경건한 유대인, 몰몬교 신자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자들 피가 깨끗해요.
지난번 SBS리포터가 피를 조사했는데, 삼육학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교단에 속한 학교가 있는데, 삼육학원 고등학교 학생들이 피가 깨끗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것도 우리가 먼저 알고 누리고 가르치고 배우고 해야 될텐데..
오늘 우리가 환경호른몬 때문에 10대 20대 청소년들의 정자량이 절대치가 부족합니다. 40대 50대 어른들의 절반도 안돼요. 정자량이. 그 다음에 정자량만 문제가 아니고 정자의 활성도가 떨어져요. 10대 20대 청소년들이..
너무 오염된 음식을 많이 먹게되고,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게되고, 또 석유화학제품 속에 너무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40대 50대 어른들 보다도 젊은 아이들이 성기능이 떨어진다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가 신불신간에 음식이 똑같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건강상태도 믿지 않는 사람과 하등 차이가 안나고 다 똑같이 오염되었습니다. 몸들이..
그래서 저는 우리가 율법속에 음식을 가리라 한 내용이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에 나오는데, 레위가 11장을 해석한 게 신명이 14장이예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먹지말라고 한 것 보다도 우리가 좀더 식품영양학 혹은 환경 오염에 대해서 공부를 더 한 다음에, 훨씬 더 까다롭게 가려야 돼요.
이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나 우리 후손들의 건강을 위해서.
이런말은 아마 제가 알고있기는 아무 교회에서도 말하지 않고 저 혼자 이야기 하는 것 같애요. 저는 십년전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 성도들 가정에는 그릇 다 바꿨습니다.
성경에 그릇애 대해서 오염된 그릇은 깨뜨리라는 말도 있어요. 지금은 플라스틱 그릇은 거의다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절 쓰지 않습니다. 10년전에 다 바꿨습니다.
제가 예배당을 설계하거나, 제가 사는 집을 건축할 때는 건축소재 자체도 할수 있다면 환경호르몬 나오지 않는 것, 석유화학 제품이 사용되지 않는 소재로 집을 짓습니다.
이런것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환경도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되겠고, 음식도 우리가 더 정하게 해야 되겠고, 모든 면에서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이 뒤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경에 있는 교훈들은 일반 상식, 일반 지식보다 3500년 앞선 것이 많아요.
그런 것이 놀랍게도 율법과 계명이 있다는 거예요.
그동안 우리가 구원받는것만 가지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까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입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너무 세속주의로 빠져버리는 데, 이것은 큰 손실이라는 거죠.
예수님께서 오셔서 실제로 무시하거나 폐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닙니다.
율법이 아니고, 그 율법 정신을 크게 벗어난 탈무드 미쉬나 게메라 토셒타 학가다 이런식으로 자꾸만 성경을 과잉해석하는 것.
이런 해석들을 폐한 것이지 율법의 본 정신은 절대 폐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까지 어설픈 그런 학자들이 율법무용론자처럼 가르쳐 온것은 구약도 신약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한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이렇게 주장하게 되면 아마 여태까지 잘못가르친 분들 잘못 배운분들이 큰 혼란에 빠지게 될텐데, 제가 몇말씀을 더 드려서 정리합시다.
예수님께서 특히 윤리적인 말씀을 쭈욱 말씀하신 결론에 가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한다
주초를 그 반석위에 놓은 연고”라고 할때, ‘나의 이 말’은 전부 윤리적인 이야기예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 믿는 교리를 확실히 갖고 있다 할지라도 윤리적 삶이 없는 신앙은 기초가 윤리인데, 다시말하면 목회자가 되기전에 사람이 먼저되고, 사람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바로 되어야 돼요. 윤리적으로. 윤리가 바로 안되면 신학도 제대로 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3년 가르칠때, 제일먼저 교리 무슨 믿음으로 구원받는 교리부터 가르친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딱 산에올라 앉으시니 제자들이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하고 시작한 것이 윤리교육을 한 거예요.
윤리교육을 철저히 해 놓은 다음에 그 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의 대속의 죽음을 보여 주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 후에 재림까지 가르친 다음에 성령은 그 다음에, 성령체험은 그 다음에, 오순절은 그 다음이예요.
오늘 교회가 전혀 윤리적인 교육은 하나도 하지 않고, 나오는 사람마다 그냥 신비 신비 기복주의로 복 복 이렇게 하면 아주 이것은 잘못 된 거예요. 교회가 잘못되어 가는 거예요.
정말 예수님께서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자고..
처음에서 성도가 나오면 철저하게 윤리적으로 가르쳐야 됩니다.
그 윤리가 안되면 다 무너집니다. 결국에는.
율법을 가르치지 않고 성화의 과정을 무시하고 하게되면 성도들의 삶이 방자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싶으면 유럽 교회를 가 보세요.
성경 가르치지 않던 유럽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가보시면 다 무너졌습니다.
산상보훈이라는 계명, 이런 말씀들은 불신자들을 위해서 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즉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어서 거듭난 성도들이 윤리적으로 살아야 되는 삶의 원칙으로 주신건데,
이것을 실천하지 않았던, 그것을 실천했던 초대교회는 유럽을 기독교로 만들었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던 작금의 유럽 기독교는 신앙 다 팔아먹고 세상으로 가버렸어요.
그래서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이 산상보훈을 지키지 않고, 먹는것도 아무거나 다 먹고, 입는것도 온 몸을 다 드러내는 그런 노출광처럼 이렇게 입고 다니니까, 타종교 사람들이 제일 세속주의로 타락하고 부패하고 그런 야하고 아주 음란한 그런 종교처럼 봅니다. 사람들이.
실제 우리가 내면이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겉에 우리 기독교를 포장하는 문화가 너무 세속적이니까.
그래서 우리가 물론 포장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죠. 그러나 내용이 중요하면 포장을 잘 해야돼요. 포장이 잘 안되니까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생활이 전혀 계명을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생활로 가고있기 때문에 윤리적인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고, 레위기에 있는 음식물 규정을 무시한채 오늘 아무것이나 다 먹기 때문에 성도들이 건강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성도 윤리가 빠지니까 무너지는 것이고, 육체의 건강도 음식을 가리지 않으니까 무너지는 것이고, 환경도 우리가 관심없이 그저 환경보존, 다시말하면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그런 생명에 대한 어떤 외경심,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에 생태계가 현저하게 파되되고 있습니다.
이 책임이 결국 누구에게 있느냐? 첫째는 우리 목회자들. 성경을 가르치고 성도에게 가르치는 목회자들 혹은 신학자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예수님 말씀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하기를 제몸같이 사랑하고, 생명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최고의 율법을 지키는 거죠.
그러나 그러한 삶의 자세는 그 인격의 윤리적 측면에서 건전한 것이지만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물 규정과 환경 위생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것이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고 복되게 살기 위해서는 그 율법속에 버리지말고 그대로 우리가 지키면서 우리 자손들에게 가르쳐야 돼요.
이런 주제는 오늘날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것이 솔직한 현실입니다.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유대교 신자들과 몰몬교 신자들 그리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자들 이런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삶의 모습도 거룩하고 경건하다는 거예요. 솔직히.
반면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에서 어디서도 어디서도 경건한 모습을 찾아볼수가 없어요. 딱 예배시간에 예배당안에서는 굉장히 경건한 것 같은데, 삶의 현장에서는 세상사람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경건의 모양은 있었어요. 옛날에는. 지금은 경건의 모양도 없어져 버렸어요. 능력은 고사하고 경건의 모양도 없어졌다는 거예요.
음식물 관계든지 사형제도이든지 모형으로 제정된 율법이라는 것은 실상이 오면 폐하는 거죠. 그러나 모형이 아니고 실제적인 것들은 영원히 폐하지 않는 겁니다.
제가 613조라는 오경안에서만 물론 ~하라 ~하지말라는 것을 다 뽑아낸 건데, 이것을 면밀히 살펴보니까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될 법이 많이 있다는 거죠.
이것은 유대인 학자중에, 그때가 12세기말에 본명이 모세 벤 마이몬이라는데, 보통 이사람 마이모니데스라고 합니다.
스페인계, 세파라짐 유대교 학자중에 아주 저명한 학자입니다. 이사람이 다 캐낸 거예요. 오경을 가지고 꼭짜서 ~하라, ~하지말라 이런것을 빼내었는데, 613조라는 거죠.
제가 비교 대조해 보니까 중복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어떻든 그렇게해서 율법이 613조라는 것은 처음부터 613개를 하나님이 번호 매겨놓은게 아니고, 그러니까 1000년, 900년 전에 그때 그 학자가 그런식으로 해봤는데, 저는 그 부분을 거기에다가 지금도 우리가 지킬 부분도 챙기고, 그리고 율법서 외에도 많이 있지않습니까? 율법서 오경 말고 역사서 예언서 신약성경에도 우리에게 명령된 명령이 많이 있다는 거죠.
이런것은 우리가 꼭 챙겨서 우리 삶에 실천하게 되면 우리 삶이 좀더 다듬어 질 것이고, 이런것을 실천없이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도 사는 삶은 완전히 세상사람처럼 살아버리면 성도라는 이름이 무색한 것이 되죠. 아무 의미도 없죠.
계명중에서 특별히 해석을 보면 모세가, 신명기를 보면 모세가 해석한 건데, 레위기를 가지고 해석하면서 설교하는 것이 그 책의 성격인데, 십계명을 이야기 하다가 모세가 십계명 앞부분,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향한 계명이 10가지 계명중에 보통 우리가 앞의 네 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대개 그렇게 배웠죠. 그것은 유대인들의 착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면 안돼요.
앞의 네계명이 아니고, 1계명부터 3계명까지가 하나님을 위한 거예요.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너나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문안에 유하는 객이나 육축이나 일하지 말고 숨을 돌릴수 있게 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게 아닙니다. 사람을 위한 거예요.
그래서 그 앞에 세가지 계명을 두고 모세는 해석을 할때, 오늘날 신학교 학자들이 ‘나 외에 다른신이란 뭐냐’ 이런식으로 한게 아니고, 모세는 그 세가지 계명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하면, 바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이렇게 해석한 거예요.
그 뒤에 여러 가지 율법이 있을때, 그 율법 다 묶으면 결론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하라’ 너도 엿새 일하고 나면 하루 쉬고 싶지 않느냐? 남종도 여종도 똑같은 육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쉬게 하라는 겁니다. 사람을 위한 겁니다.
유대교가 하는 그 틀을 못 벗어나고, 네 번째 계명을 예수님께서 분명히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해줘도 여전히 안식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지키는줄 알고, 여러분 우리가 안식일 지키는게 아니죠. 주일을.. 주일과 안식일이 달라요.
안식일이라는 것은 사람들과 육축들과 종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것이고,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일을 지키라고 이런말 없습니다.
우리 성경 66권중에 주일을 지키라 그런말 없어요. 우리가 주일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기로 한 거예요. 교회가.
구약시대의 안식일과는 달라요. 안식일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것이고. 물론 엿새 일하고 하루 쉰다는 의미도 있지만, 주일이라는 것은 교회가 성령과 교회가 성령이 주재하는 교회가 주의 첫날에, 안식일은 일곱째날입니다. 우리는 주의 첫날 한주의 첫날에 하나님께 예배하기로 우리가 정한 거예요. 우리 정성으로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것도 정확하게 하지않기 때문에 지금도 어떤분이 설교할 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우리가 무슨 유대교입니까 안식교입니까? 아니거든요..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일에 주의 첫날에 하나님께 한주의 삶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 경배함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성령과 교회가 정한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돌비에 새겨준게 아니고..
이런것도 그 계명의 정신들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역사를 알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교회가 하나님께 첫날을 예배함으로 드린 것이지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해야 돼요.
그래서 계명이라는 것을 좀더 성실히 공부하고 폐해진 것은 아까 얘기했죠? 모형으로 하던 것을 폐한 겁니다.
그리고 의식 중에서 좀더 승화던 것들이 있는데, 더 완성된..
예를 들어서 유월절 같은 것은, 유월절은 양을 잡아서 피를 바르고 양고기를 먹고 하던건데,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부활하심으로서 완성되었으니까 우리가 수난절과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그게 진짜 유월절이죠.
그리고 칠칠절 혹은 오순절 하던 것은 이스라엘백성과 하나님이 약혼식 하듯이 시내산 밑에서 언약을 맺은 날을 기념하는 건데, 지금은 성령이 오셔서 돌에 새긴 법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성령의 법이 오는 날, 오순절이 아니고 이제는 성령강림절로 이렇게 해서 조금 달라진거죠.
그리고 초막절 수장절 장막절 하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초막에 살았던 것과 수장절 하는 것은 똑같은 날 지키면서 거두어서 가을에 저장을 했다 하는 의미로 지키는 건데,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로 그렇게 좀더 그 명령의 정신을 따라서 성령과 교회가 정해서 우리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겁니다.
그런 명절법은 그렇게 달라진 거죠.
그래서 완전히 폐해진 것, 영원히 폐하지 않는 것. 그런 것을 스스로 충분히 분별할수 있을 거예요. 스스로도..
성도들이 이런 것을 꼭 목회자의 끄는대로 끌려갈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근본 법 정신을 그 의미를 목적과 동기를 바르게 알면 스스로 충분히 분별할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할때는 억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기쁨ㅇ로 이해를 하고 그 목적과 동기를 이해하고 기쁨으로 따라가는 거예요.
즐거워서 동참하는 거예요. 이런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율례와 계명과 법도 중에서 어떤 법이 폐해진 것이지, 왜 폐했는지 어떤 것이 영원한 법인지 왜 영원한지 이런 것을 충분히 분별할수 있단 말이죠. 이제는. 성도들이라도..
왜냐하면 지금은 우리 기독교인들 수준이 거의 다 학벌이 평균이 대졸이예요. 고졸을 찾기 힘들 정도로 학력이 높기 때문에 조금만 공부하게 되면 성경 어렵지 않게 공부할수 있어요.
오늘은 계명에 대해서 살펴 봤습니다.
앞으로 시간나면 제가 세밀히 다루지 못했던 부분들, 꼭 우리가 오늘도 실천해야 될 부분들을 목록을 만들어서 소개할 그런 계획이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땅에서 복을 받고,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해서 끝까지 계명을 잘 분별하고 지켜서 복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정리]
◎ 율법을 주셨던 목적
1.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2.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복되게 하기 위하여
3. 삶을 얻고 복을 얻게 하기 위하여
4. 이방인을 선교하기 위하여
5.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과 평강의 언약
6. 하나님 경외하게 하기 위하여
7.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기 위하여
◎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원인
1. 지도자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
- 신명기 31장 9절-13절 불순종
2. 믿음이 없었기 때문
- 믿음이 있었다면 복을 받고 싶어서라도 지켰을 것이고, 저주받는 것이 두려워서 지켰을 것인데,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믿음이 없었다는 것.
◎ 율법 전체의 목적과 정신
1. 하나님 사랑하는 것
2. 이웃 사랑하는 것
3. 건강하게 위생적으로 사는 것
4. 윤리적으로 건전하게 사는 것
5. 생명있는 모든 것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
→ 따라서 율법을 폐할 수 없다.
→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어서 거룩하게 되고, 복된 삶을 살아갈수 있다.
◎ 율법의 존폐(存廢)
1. 폐해진 율법 : 모형으로 지키던 율법은 실상이 오면 폐한다
모형 |
실상 |
동물제사 (양, 소, 염소, 비둘기를 잡아서 제사) |
예수님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영원한 제사) |
할례 (육체에 유대인의 표) |
세례 (마음에 성령으로 인침, 영혼의 중생) |
관습법 (대를 잇는 방법중 수혼법) |
. |
2. 폐하지 않는 율법
윤리, 도덕법 |
- 레위기 19장의 사회윤리 →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 예수님에 의해 더 강화됨 - 영적인 사람이 되기전에 윤리적인 사람이 되라 |
음식물 규정 |
- 레위기 11장의 음식물 규정 - 백성들의 건강과 위생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존속 - 지금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더 가려서 먹을 것. |
3. 의식 중에서 더 승화된 절기
안식일 |
주일 |
유월절, 무교절 |
수난절, 부활절 |
칠칠절, 오순절 |
성령강림절 |
수장절, 장막절 |
추수감사절 |
※ 예수님께서 실제로 무시하거나 폐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그 율법의 정신을 벗어난 탈무드나 미쉬나 게메라 토셒타 학가다 등 과잉해석되어 율법의 정신을 크게 훼손한 유대교 장로들의 유전을 무시하셨고 지키지 않으셨던 것이다.
◎ 율법 613 조
- 세파라짐 유대인의 학자 마이모니데스, 본명은 모세스 벤 마이몬(1135~1204)에 의해
- 오경을 "토라"라고 인식하고 그 중에서 명령들을 추출
= "~하라"라는 적극적인 명령 : 248가지
= "~하지 말라"하는 부정적인 명령 : 365가지
- 중복이 상당히 많고, 오늘날 우리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부분이 많다.
- 지금도 지켜야 할 율법 : 약 250가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