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思惑의 假에서 空觀으로
두 번째로 思惑의 假를 이해하고 공관에 들어가 법을 두루 파하는 것에도 바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혹의 가를 밝히고, 둘째는 관을 체득함을 밝히며, 세 번째는 그 위계를 밝힌다.
(가) 사혹의 가
思惑의 假란 탐욕과 진에와 우치와 아만을 말한다. 이것은 鈍使[둔한 번뇌]라고 이름 하며, 역시 또 正三毒[직접적인 三界의 독이라는 뜻인가]이라고도 이름 한다. 三界를 걸쳐서 열 가지를 이루며, 또한 三界는 대체로 九地인 것임에 관련시켜서[삼계 중에서 욕계에서는 참다운 선정이란 이루어지지 않은 탓으로 욕계를 하나의 경계로 보고, 욕망이 사라진 경계에 가까운 마음의 상태에서의 선정도 원래 선정이라 하지 않고 색계의 初禪에 가까운 상태에 불과하므로 욕계의 선정은 未至定이라고 한다. 그 위로 정식으로 색계에 第四禪까지 있고 무색계에 역시 第四禪까지 있으니 이 三界를 보통 九地라고 한다. 물론 욕계에서도 우리는 어느 순간에 욕계를 떠난 경지가 있어서 그때 선정을 얻었다면, 이것은 분명히 미지정이 아닌 어떤 근본적인 선정일 수도 있다고 하는 이론들도 제기되어 있으나,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므로 보통 삼계를 九地라 하여 욕계를 하나의 경계로 처리한다.] 그 각각의 地에 九品이 있으니[상, 중, 하의 삼품에 또 삼품이 있어서 상상품, 상중품, ... 하하품으로 되는 것] 합 八十一품인 것이다. 初果[성문의 第一果, 즉 預流果]에도 또한 일곱 번(의 생사)이 있으니 아직 다 소진하지 못한다면 등불이 꺼지려다가 바야흐로 더 성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또한 욕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부인이 아니면 간음하지 않고, 또 역시 진에가 있다고 하더라도 땅을 갈면서도 죽이지 않으며[벌레, 또는 해충들도 죽이지 않는다는 말], 또한 어리석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性實[외도 샤앙카에서 주장하는 自省이라는 물질의 근본의 質料因이 있어서 그것이 상주불별하다는 것을 말함]은 헤아리지 않는다. 道共戒[見道位 이상의 성자들이 無漏定에 들어가서 얻는 성인들만의 戒體를 말함]의 힘의 任運[자연히 스스로 運爲되는 일]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正煩惱라고 이름 하는 것으로서, 견혹이 난망하여 無方으로[무제한으로] 경계[주위환경의 모든 조건]에 접촉하여 집착을 일으키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思惟라고 부르는 것은 깨침에 따라서 이름을 얻는 것으로서, 처음은 진실을 관하는 일이 얕으며 또한 事障[事法에서의 장애라는 말인데, 어떤 형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의 장애라는 뜻이니 생사윤회를 지속시키는 장애를 말함. 반대로 진여에의 도달을 장애하는 것을 理障이라고 하지만, 이장은 이른바 根本無明을 말함]이 있어도, 나중에는 진실을 사려함이 무겁게 되면 이 미혹은 곧 제거되는 것이다. 따라서 思惟惑이라고 이름 한다.
여러 사람이 말하였다.
“욕계를 貪이라 하고, 상계[색계, 무색계]를 愛[애착의 뜻]라고 이름 한다.”
「成論」의 사람[成實論을 소의경으로 하는 성실종]은 이 말을 비난하여 上界에는 味禪의 貪[어떤 선정에 들었을 때, 그 선정의 상태가 참으로 안락하고 적정하여 그에 쾌락을 느끼고서 그것에 침몰하여 그 이상의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함. 小乘禪에서도 이것을 극히 경계하고 있음. 이것의 반대말이 淸淨禪 또는 無漏定임]이 있고 下界에는 欲愛가 있다고 하지만, 愛와 貪은 함께 통하는 것이다. 무슨 뜻으로 한편으로 기울여서 판단하는가? 만일 하계에서는 탐이 무겁고 상계에서는 탐이 가볍다고 말한다면, 탐이 가벼운 것은 탐이 아니라는 말인가? 이것도 또한 하나의 가지런한 것이다. 다만 부처님께서 이승에 계셨을 때 緣에 대하여 별도로 설하셨는데[대상에 따라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설하셨다는 뜻] 假名이란 정하여진 것이 없으니 어찌 하나의 본[一例, 근본적인 표준]으로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다만 번뇌를 불러 얻게 할 따름이다. 곧 모름지기 그런 생각을 파하고 제거하여야 한다. 어찌 고생하여 탐이니 애니 하는 것을 다툴 것인가? 비유하건대 오물을 제거하는 데는 다만 물리치는 것이 우선인 것이지 분별이[이것이 오물 중에서도 어떤 종류의 것인가, 기타 등등의 것을 비교분석하는 일 따위] 급한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도에 들어가는 것은 그 핵심이 방편에 있는 것이지, 名相은 곁으로 처리될 것뿐인 것이다. 만일 상세하게 알려고 한다면, 「비담론」이니 「성실론」에 구체적으로 모두 이것이 밝혀져 있으니 그것을 살펴서 찾아야 할 것이다. 空, 假의 觀은 지금 논하는 것이다. [이 탐이니 애니 하는 것을 가지고 매우 날카롭게 또 길게 비난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천태종에서의 강력한 논쟁 대상이 바로 성실종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임. 성실론에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태종에서는 심지어 성실론을 소승의 논서라고까지 매도하였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