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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왕 남천설은 허구다] 마한은 금주(金州) 금마군에 있었다
《삼국지》권 30 위지 동이전 한전의 원문에는 남천(南遷)이란 대목이 없다.국내에서 발행된 사료에만 남한 으로 남천했다는 대목이 추가된것이다.이것은 분명 후에 추가된 왜곡이다. 《삼국지》<위지> 동이전 將其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국사편찬위원회의 윗부분 해석과 번역은 잘못된것이다. 바다를 경유한다는 말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바다를 경유하였다고 하였다. 원문은 '바다로 도망하여'다. 그러니까 장수들과 좌우궁인들을 대리고 바다로 도망하여 마한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이라고 불렀다로 해야 맞는 해석인데 바다를 경유했다고 하였으니 다음에 나오는 해중(海中)까지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위략에서 말하기를 조선에 남아있던 준왕의 자손과 친척들은 성씨를 한씨로 쓰고 있었지만 준왕은 해중(海中) 바닷가운데 섬에 있으면서 서로 왕래를 끊었다. 그러나 준왕의 대가 절멸된 후에도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들이 한인중에 있었다.로 해야 옳을텐데 성씨를 사칭하였다고 하고 그리고 해외(海外)라는 말이 없는데도 해중(海中)을 해외로 왜곡한것이다. 한씨로 사칭하였기 때문에 왕래를 끊었다고 한 해석도 잘못된것이다. 그 원인은 위만이 한나라로 통하는 해로를 막고 통행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씨라는 성의 기원이 이미 시경 한혁편에 나오는 한성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기록도 밝혀져 있는 사실이다. 원문대로 해석을 했어야 한다. 아니면 그 대목에서는 주석을 달아 설명을 했어야 한다.
<장산군도의 구글지도>. 마한도가 있는 대왕가도
장산군도에서 본 대련의 비사성. 대흑산 아래로 보이는 도시는 새로운 공업 개발지역으로 굴뚝이 없는 산업체들만 입주가 가능한 곳이다. 세계적인 첨단 산업을 꿈꾸고 있는 경치가 뛰어난 고장이다. 이곳이 모두가 우리의 선조들이 개발하고 피를 뿌리며 지키던 낙원이었다는 사실을 후손들은 기억하여야 할것이다.이 주변에 관광지로 개발된 금석탄이 잇다. 당시에 벌어졌던 사건들을 취합하여 분석하면 아래와 같은 등식이 성립된다. 첫째 준왕은 고 평양성이 있던 사문도(현 장도)에서 남천한게 아니라 동천한것이다.그리고 그들은 요동반도의 남쪽 장산군도의 대왕가도(마한도)에 정착하여 삼한을 통괄하여 다스렸다. 《위략》에 의하면 후에 이곳은 한나라때 낙랑군 소속이었다는 사실이다.그것은 후한의 광무제때를 말한다.만약 당시 마한이 익산 금마군에 있었다면 한의 낙랑군 소속이 될 수 없는 것이다.한무제가 우거조선을 칠 무렵 조선상 역계경은 우거에게 간언을 하였다가 의견이 상충 하자 이천여호를 인솔하여 떠나게 되는데 동쪽에 있는 진국으로 갔다고 하였다.옛날 진국이란 진한을 말한다고 《삼국지》<한전>은 말한다.따라서 진한은 장산군도의 대왕가도에 있었으 므로 고 평양성이 있던 사문도(현 장도)의 동쪽이 된다.이러한 문제들은 한반도의 재 한사군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것이다. ▶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 《위지》30 ▶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魏略曰:初,右渠未破時,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東之辰國,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위략》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為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有三種,一曰馬韓,二曰辰韓,三曰弁韓 。 辰韓者,古之辰國也。《삼국지》<한전> , 燕人衞滿亡命,為胡服,東度浿水,詣準降,說準求居西界,收中國亡命為朝鮮藩屏。準信寵之,拜為博 士,賜以圭,封之百里,令守西邊。滿誘亡黨,衆稍多,乃詐遣人告準,言漢兵十道至,求入宿衞,遂還攻 準。準與滿戰,不敵也。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魏略曰:其子及親留在國者,因冒姓韓 氏。準王海中,不與朝鮮相往來。其後絕滅,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漢時屬樂浪郡,四時朝謁。魏略曰:初,右 渠未破時,朝鮮相歷谿卿以諫右渠不用,東之辰國,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亦與朝鮮貢蕃不相往來。 익산 금마설에 대해서 단재 신채호는 다음과 같이 부정하였다. 삼국지에 , “준 ( 準 )- - - 달아나 바다로 들어가서 한 ( 韓 ) 의 땅에서 살며 한왕 ( 韓王 ) 이라 이름하였다 ( 準- - - 走入海 居韓地 號韓王 ). ”고 하였고 , 위략에는 , “준의 아들과 친 척으로 나라에 머물러 있는 자는 성을 한씨라 하였다 ( 準子及親 留在國者 冒姓韓氏). ”고 하였 다 . 익산 금마군은 준왕의 남천지가 아니다 . 월지국을 전사 ( 前史 ) 에는 백제의 금마군 ( 金馬郡 : 지금의 益山 ) 이라고 하였지마는 , 이것은 속전 ( 俗傳 ) 의 익산군 마한 무강왕릉 ( 武康王陵 ) 이라는 것을 인하여 무강왕을 기준의 시호 ( 諡號 ) 라 하고 , 부근 미륵산 ( 彌勒山 ) 의 선화부인 ( 善化夫人)의 유적을 기준의 왕후 선화 ( 善花 ) 의 유적이라 하여 , 마침내 기준이 남으로 달아나서 금마군 ( 金馬 郡) 에 도읍하였다고 한것이다 . 그러나 무강왕릉은 딴 이름이 말통대왕릉 ( 末通大王陵) 이요 , 말통은 백제 무왕 ( 武王 ) 의 어릴 때 이름 ( 무왕의 이름은 `마동'이니 삼국유사의 薯童은 그 의 역이고 , 고려사 지리지 의 末通은 그 음역 ) 이요 , 선화는 신라 진평대왕 (眞平大王 ) 의 공주로 서 , 무왕의 후 ( 后 ) 가 된 아이고 , 백제를 왕왕 마한이라 함은 역사에 그 예가 적지 아니하니 , 이따위 고적은 한갓 익산 ( 益山 ) 이 백제의 옛 서울임을 증명함에는 부족할뿐더러 , 마한 50 여 국 중에 윌지국과 건마국 ( 乾馬國 ) 이 있으니 , 건마국이 금마군 ( 金馬郡) 곧 지금의 익산일 것 이므로 , 월지국 ----마한의 옛 서울은 다른 나라에서 찾음이 옳다 . 송나라의 《통고》는 금주 금마군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려는 백제의 금주 금마군을 남경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렇듯 왜곡된 사실을 두고 강단사학게에서는 2015/10/16일 이를 합리롸 하기 위하여 학 술토론을 벌렸던 것이다.요즘 토론에 동원되고 있는 한국고대사학회 소속의 바로 그 인물들이 었다.국제뉴스를 통해서 소식을 알아본다. (익산=국제뉴스) 오승권 기자 = 익산시와 한국고대사학회가 박경철 익산시장을 비롯한 시민, 관련 전문가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조선과 익산'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문화 재조명 및 고조선 준왕의 남래를 기점으로 형성된 역사명칭을 통해 익산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좌장을 맡은 종합토론으로 이어졌다. 거쳐 현전하는 형태로 정착되었는지를 사료를 통해 전승의 사실성을 뒷받침했다. 에서 본 고조선 시기 환황해 교류'와 박준형 동은박물관 학예연구사의'문헌을 통해 본 고조선의 대외교류와 익 산', 김규정 전북문화재연구원 원장의'유적ㆍ유물을 통해 본 고조선 세력의 확산과 익산'발제를 통해 고조선 시기의 익산을 중심으로 한 대외교류활동 및 고조선 세력 등에 대해 조명했다. 준왕의 남래지를 전주 일대로 보려는 견해도 있지만, 고려시대 이후 역사기록에 준왕의 남래지를 모두 금마군 으로 비정하고 있다"며 "이들 사서가 보다 앞선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준왕의 남래지 는 유적의 다소를 떠나 금마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으며 마한의 중심지 또한 익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 조법종 우석대 교수의 '준왕조선의 남래와 일본 명칭의 기원'발제에서 준왕남래설의 형성과정과 백제에 기원 을 둔 '일본'명칭에 대한 내용 등을 다뤘다. 있는 의미와 고조선 소멸 후 그 정통이 마한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에 대한 연구성과 등을 재검토함으로써 고조선 과 익산과의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고 있는 지역으로서 학회차원에서 익산의 역사문화적 가치입증을 위해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 겠다"고 밝혔다.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도 익산이 지니고 있는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가치입증을 위한 구체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 ^
평소에 제가 궁금했던 부분들을 여쭈어 봐도 될런지요. 위지에서 한을 기록하면서 남쪽은 왜와 접하였고 그 지방은 사방 4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단에서 주장하는 한반도 남부를 지칭하면 , 어떻게 생각해도 이 지역을 사방 사천리라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어르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는데요 문제는 남여왜접.. 남쪽으로 왜와 접한다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바다를 두고 경계를 삼은 것이 아니라 한반도 남쪽에서 한과 왜의 경계가 있었거나 아니면 열도에서 왜와 한의 경계가 있었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보는데 후자 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열도의 왜의 여왕 비미호 卑彌呼 의 이름이 마한의 나라 이름에
좋은 질문 하셨습니다.그 답은 조선반도를 요동반도로 옮겨 생각하시면 많은 사료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남쪽으로 왜와 접한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우선 중삼한의 위치와 분포를 알아야 합니다.1차로 <통전>의 변방전에서 삼한의 위치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등장하는 비리 卑離 와 연결이 된다고 볼 여지는 없는 것인지요
삼국사기 태조왕 기록에 왕이 마한과 함께 요동을 정벌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신채호 선생님과 어르신이 이야기 하신 것처럼 한반도 남부의 금마산에 있던 마한이 요동을 정벌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 한의 위치 비정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런지요..
태조대왕 69년(서기 121년) 12월, 왕은 마한(馬韓), 예맥의 1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한나라 군사와 힘을 합쳐 싸웠으므로 우리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출처] <삼국사기> 태조대왕조에 나오는 마한의 정체|작성자 위궁
70년(서기 122), 임금이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입하였다. 부여왕이 병사를 보내 요동을 구하고, 우리를 격파하였다.[마한은 백제 온조왕 27년에 멸망하였는데, 지금 고구려왕과 함께 군사 행동을 한 것은 아마도 멸망한 후 다시 일어난 것인가?]
七十年 王與馬韓穢貊侵遼東 扶餘王遣兵救破之[馬韓以百濟溫祚王二十七年 滅 今與麗王行兵者 盖滅而復興者歟]
[네이버 지식백과] 태조대왕 [太祖大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選自【古籍十八種】/通典/邊防典凡十六卷/卷一百八十五 邊防一/東夷上/序略
秦并天下,其淮、泗夷皆散為人戶.其朝鮮歷千餘年,至漢高帝時滅.武帝元狩中,開其地,置樂浪等郡.至後漢末,為公孫康所有.魏晉又得其地.其三韓之地在海島之上,朝鮮之東南百濟、新羅,魏晉以後分三韓地 하략...
중기 삼한은 바다위에 떠있는 섬이었습니다. 쉽게 이해가 되십니까? 당시는 요동반도를 조선으로 기준한 셈이지요.
* 其三韓之地在海島之上,朝鮮之東南百濟、新羅,魏晉以後分三韓地
뿐만이 아니라 《위지》<열전>에도 백제나 신라가 바다에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증만 가고 확증이 없던 상태였는데.. 이제야 이 글을 봅니다. 공부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시민이쓰는역사 만약 님께서 임나일본부에 대한 새로운 출판계획을 추진중이시라면 지금 토론이 되고있는 삼한의 위치문제에 많은 신경을 쏟아야 될것입니다.새롭게 밝혀져야 할 임나일본부설은 중국의 동북공정 못지않게 중요한 쟁점입니다.
@구산(九山) 지금 그 말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 일본서기를 읽으면 일본의 문물은 마한 진한에서 시작되었으며, 변한의 것도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음. 이를 깨닫지 않고 읽으면 이해하기 어려움. 예로부터 한韓에서 (일본의) 문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음. 이 나라(일본) 가 열리고 나서 무엇이든 생겼다고 생각하는 탓에 한 韓의 언어를 일본식 ( 和訓 ) 으로 읽고 여러가지 설을 내세움으로써 끝내 그 본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음 "
- 충구발 衝口發 소고 , 강석원 -
이 사람 말이 사실이다. 라고 하는 것이 제 책의 주요 테마입니다..
@구산(九山) 에도시대 국학자 후지와라 사다모토가 한 말인데.. 진한의 경우, 7세기에 열도 방문한 중국 사신 배청이 열도에서 秦王國이 있다고 기록하여서 진한에 열도에 있었던 것은 사실로 확인되지만 마한의 경우는.. 마한도 열도에 있었을 것이다. 라고 추측만 하고 .. 후지와라 사다모토가 왜 일본이 마한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했는지 감을 못 잡았는데 지금 한탄중입니다.. 왜 이것을 이제 보았나 하고.. ㅜ_ㅜ
http://blog.daum.net/edustock/53
http://blog.daum.net/edustock/52
후지와라 사다모토가 어째서 일본이 마한 진한에서 시작한거 모르고 일본서기 읽으면 뻘짓이다. 라고 이야기 했는지 이제 정확히 알았습니다. 이 사람도 통전을 본 것 같네요... 나름대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으음.. ㅜ_ㅜ
그림 다시 다 정리하고 일이 많아 지지만.. 이 부분 꼭 삽입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