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기다리던 시간
제20회 대상
허상문
오로라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지만 오로라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경이驚異라는 오로라를 만나기 위해, 지상의 마지막 남은 순백의 빙하를 찾기 위해 북극으로 떠났다. 오로라와 빙하 천국이라는 알래스카를 자동차로 달리면서도 나는 오로라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초조감을 느꼈다. 지금 내가 달리며 내뿜는 자동차의 매연에 질린 오로라가 어찌 그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를 지나 북극선 위 카츠브 지역까지 차를 몰고 신나게 달렸다. 그곳은 여름 석 달은 밤이 없는 지역이고, 겨울 두 달은 낮이 없는 지역이다. 어둠이 밀려와 세상은 고요해져 갔지만, 북극곰과 나무와 꽃들은 잠들지 못했다. 그들은 수런대며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근심하고 있었다.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인간이 이제 더는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로라는 라틴어로 ‘새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로라는 빨강 초록 노랑의 다양한 색채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칠흑의 하늘에 커튼처럼 펼쳐진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자연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같은 북극 지방에서만 간혹 볼 수 있다. 태양에서 방출된 빛의 일부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공기 분자와 반응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연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이 지역이 아직 철저하게 원시적 자연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원주민들은 오로라를 ‘공놀이’라고 부른다. 오로라를 보면서 휘파람을 불면 오로라가 가까이 굴러 다가오고, 개처럼 마구 짖으면 오로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오로라는 이승을 떠난 영혼들이 저승에 모여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오로라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나 같은 여행자를 최종 여행지까지 안내하는 또 다른 영혼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어둠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로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는 이 풍진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헤매고 있는 슬픈 영혼이다.
우리는 모두 한조각 별이 되어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한 많은 이승에서나 아득한 저승에서나 별이 되어 별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다시 한 몸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별에서 태어나 별로 살다가 별로 환생할지 모른다. 너와 나는 죽어서 별이 되어 저 밤하늘에서 다시 만나리. 별들로 모여 옛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추억을 쌓아갈 것이다. 사백삼십 광년을 달려 이제 막 지구에 도착한 북극성처럼, 우리는 별이 되어 뒤늦게나마 서로의 헐벗은 영혼을 달래줄 것이다. 오로라는 슬픈 영혼을 달래주려는 또 다른 영혼의 불빛이다.
그 옛날에는 모두가 하나였다. 밤하늘에 모인 별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다독이고 있듯이, 강을 만나면 물이 되어 함께 건너고자 했다. 하늘과 별, 강과 물, 모두가 하나였다.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함께 넘어지고 함께 일어났다. 번개와 홍수도 우리를 갈라놓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흩어지고 멀어졌다. 알래스카와 북극 지역에서 자연은 아직도 있는 모습 그대로 인간을 맞이하고 보낸다. 쓰러진 나무는 쓰러진 대로 썩은 나무는 썩은 대로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킨다. 알래스카는 인간 삶의 적층積層이 어떻게 쌓여 왔고 어떻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무너진 아름드리 큰 나무에 나이테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는 그를 통하여 세월과 기억의 적립을 읽을 수 있었다. 나이테에는 지난 시간의 아픔과 슬픔이 담겨 있다. 나이테는 자연의 역사이며 인간의 역사이다.
이곳에서는 오래된 숲을 베어내어 길을 만들고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자연은 천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견딘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특화된 일이 아니다. 저 오랜 세월을 꿋꿋이 견디어 가는 자연의 만물을 볼 때 저들이 살아가는 고난의 무게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인간 삶이 이 우주를 지탱하는데 아무리 엄청난 공헌을 했다고 하지만 인간이 만든 상처는 너무 깊다. 또한 그것을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전 지구가 폭염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이다. 알래스카와 북극 지역도 섭씨 30도를 오르내린다. 이곳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더위라고 한다. 북극 지역의 이상 기후에 에스키모 후예인 원주민들도 공포에 떨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자연 상태를 유지하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리고, 집을 잃은 곰들은 여기저기 헤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재앙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고 있지만, 지금 지구는 축복과 재앙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북극의 녹아내리는 빙하를 통하여 나는 불을 본다. 인간이 대지에 질러대는 거대한 불 난리로 인해 빙하는 거침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지구는 이글대는 화로가 되어가고 뜨거운 온탕이 되어간다. 인간은 자연을 침탈하고 살육하지만, 자연은 여전히 어디서나 너그럽다. 인간과 달리 자연은 모든 것을 용서해주며 제 자리에 서 있다. 곰과 펭귄과 연어에게 돌아갈 집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집을 잃은 자들은 어디서나 처참하다. 이제 그들에게 낯익은 보금자리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라지고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연을 찬미하고 시를 짓는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별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앞의 현상일 뿐이다. 그 아래에는 죽음이 있다. 시인은 구름과 별을 바라보면서 위대한 생명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것은 곧 죽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알래스카 데날리(Denali)의 거대한 자연 속에서도 동물과 꽃과 나무들은 저마다 제 자리에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 가치를 보인다. 아무것도 아닌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일이다.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그들이 주인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하루가 멀다고 여기저기를 파헤쳐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든다. 자연에 앞서 인간이 먼저라고 하면서, 수백 년 동안 자라온 나무를 베어내고 숲을 없애는 것을 예사로이 생각한다. 그들은 무지하게도 자연이 없어지는 것이 곧 인간이 멸망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자연이 없다면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숲과 나무와 물이 없다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인간도 결국 집을 잃고 여기저기 헤매고 있는 북극곰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인간은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하고 있다. 지금 북극곰이 흘리는 눈물을 머지않아 인간도 흘리게 될 것이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오로라가 사라져 가지만, 인간은 자연에 대해 갈수록 교만해져 가며 자연을 이용대상으로만 생각한다. 나는 북극 지역에서 수 백 년 된 빙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녹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제 곧 이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당장 내일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이 지구를 파헤치고 이용하는 데만 골몰할 것이다. 푸른 지구는 자꾸자꾸 검게 변해 간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어디에서도 희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에서는 희망을 볼 수 있지만, 인간에게서는 절망의 모습만 보인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저지르는 탐욕과 집착과 타락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자연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돌보아야 할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봄날의 나비처럼, 여름의 산들바람처럼, 가을의 단풍처럼, 겨울의 흰 눈처럼 살아가야 할 것이지만 인간은 오직 혼자만 잘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오로라는 결국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오로라는 이제 영원히 그 모습을 인간에게 보여주지 않을지 모른다. 앞으로 갈수록 자연은 인간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찬란한 '새벽'이라는 축복이 아니라 어두운 ‘밤’의 저주를 줄 것이다. 어둠이 지나야 빛나는 태양이 뜬다고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이 초록별 지구에는 밝음보다는 어둠이 짙어가고 있다. 인생이 그렇듯이 언제나 저무는 시간은 빨리 왔다 빨리 간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간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과 서서히 작별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듯이 오로라도 우리에게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고 밤하늘은 더욱 어두워져 갔다. 검은 적막의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소리쳤다. 오로라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