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니 (隨筆)
김인희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예전에 한여름 더위를 가마솥더위라고 했다. 더러 찜통더위라고도 했다. 그러나 올여름의 더위에 비하면 예전의 더위 수식어는 차라리 정겹다. 하늘과 땅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장마철 습기와 합병하여 온몸을 끈적끈적하고 뜨겁게 감싸고돌았다. 한낮은 물론이거니와 한밤중에도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매체 일기예보는 연일 사상 초유의 고온이요 열대야 기록을 쓴다고 난리다.
전에는 아무리 더운 날도 집 안에서 선풍기 켜고 가만히 있으면 견딜 수 있었다. 바깥에 출입할 때도 양산을 받치고 드나들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다. 어쩌다 양산을 들고 외출했다가 목덜미에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고 큰 나무의 그늘에 들어가서 잠시 쉬면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더라도 한차례 바람이 지나가면 땀을 말릴 수 있었다. 옷 속이 흥건하게 땀으로 젖더라고 바람이 상쾌하게 흔들어 주면 기분도 좋아지곤 했었다.
그러나 올여름에는 어쩌다 지나가는 바람도 뜨겁다. 등줄기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을 때 상큼하게 흔들어 주던 바람도 습기를 가득 머금고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과 다르지 않다. 낮이나 밤이나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더러 TV를 통하여 도시 아파트단지를 보는 날에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빽빽한 숲처럼 회색 빌딩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선 도시 건물마다 버드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에어컨 실외기를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 태산이다.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가 얼마나 무더위를 가증시키겠는가.
이래저래 무디기가 둘째라면 서러운 나만 해도 그렇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낮에 에어컨을 끄고 견디면 좋으련만. 나 하나쯤 에어컨을 끈다고 열기를 낮출 수 있을까. 땀 흘리면서 참는 것도 오지랖이지 하면서 자위하고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초유의 더위에 남극 빙하가 녹고 있다고 했다. 시베리아 영하의 기온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기온을 갱신하는 주범은 환경오염이라고 했다. 우리가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생활에서 배출하는 쓰레기, 개발이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파괴하는 삼림, 프레온 가스 등이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였다. 썩지 않는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바다를 표류하면서 거대한 섬을 만들었고 해양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지구의 허파 역할을 담당했던 아마존 밀림이 개발이라는 인류문명에 파괴되고 있다.
예전에 공익광고로 방영되었던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라는 광고 문구를 낡은 세리프처럼 읊조려 본다. 21세기 최첨단 IT시대 한복판에 서서 잊어버린 연가를 떠올리듯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두 주먹을 힘주어 쥐어 본다.
우선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의식에 불꽃을 점화하고 싶다. 언어는 인격이라고 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는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그 언어를 활자로 찍어낸 글은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사람들의 가슴에 화인처럼 각인시킬 수 있다. 우리 덕향문학이 그 선두주자가 된다면 시대의 절실한 요구에 부응하게 된다. 하여 역설한다.
덕향문학 목요 문학강의실 “삶이 詩가 되다!”에서 시제를 환경과 자연을 선정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이 오염되면 직격타를 입는 대상이 곧 우리 사람이 아니겠는가. 환경이 파괴되면 우리 삶도 무너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자연이 곧 우리 삶이요, 환경이 곧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 연장선에서 필자의 소리 없는 외침이 타당하지 않은가!
이 또한 지나가리니!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당면하는 위기의 순간에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문구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새 힘을 얻고 마지막 박차를 가하게 하는 응원이 되기도 했다. 살인적인 혹서(酷暑)는 시간이 지나면 선선한 가을바람에 자리를 내주고 꼬리를 감추게 마련이다.
그러나 날로 오염되는 자연, 나날이 파괴되는 환경은 결코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는 문구로 치부할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되어 우리 인간의 목을 단단히 조여올 게 불 보듯 선명하다. 덕향문학의 문우님들! 삶이 詩가 되는 생명력을 불어넣어 詩를 쓰고 글을 쓰시라. 자연과 환경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공존해야 할 운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