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섬 나오시마.
딱 물 한잔 마신 시간이 지난 듯 했다. 인천공항에서 문우들과 만나 한 시간 사십분의 비행은 그랬다. 우린 목적지인 나오시마에 가기위해 일본 시코쿠섬 동북부에 있는 다카마쓰 공항에 도착했다. 다카마쓰는 인구 육십만으로 시코쿠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곳은 우리가잘 아는 사누키우동이 유명하여 관광객들은 특별히 훈련된 택시로 우동투어도 한다고 했다.
아침 여덟시 반 비행기를 타느라 새벽부터 설쳤더니 시장기가 들었다. 우선 유명하다는 우동골목에서 배를 채우고 천 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모습을 보이는 야시마지로 향 했다. 그곳의 전망대에서는 멀리 바다와 다카마쓰 시내도 한눈에 보인다고 했지만 다음 날의 목적지를 위한 휴식을 택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갔다. 창가에 놓아둔 작고 예쁜 화분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모습은 비슷하지만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내 호기심을 불러냈다.
다음 행선지는 일본 에도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정원 리쓰린이었다. 호수와 어울어진 자연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최소한으로 간섭하는 자유로움을 주었을 때 더 아름답다. 이곳의 자랑은 천여 그루의 소나무를 삼백 년 동안 분재로 키워낸 것이라 한다. 작은 가지 하나하나에도 철사로 오랜 동안 꽁꽁 묶여있었을 나무는 아름답기보다 처연한 기분을 들게 했다. 뒤틀리고 꼬여있는 기묘한 모양의 나무를 얻기 위해 소나무의 자유로움을 박탈시킨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씁쓸해 졌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자연을 아끼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다다오를 태어나게 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튿날 비가 올 거란 예보와 달리 나오시마는 화창한 날씨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십분 동안의 짧은 항해 후에 미야노무라항에 닿았다. 섬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조수에 떠밀려 와 해변에 멈추어 서있는 듯한 빨갛고 커다란 호박이었다. 바로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인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다. 제주도에서 노란색의 호박에 크고 작은 검은 점들을 수없이 그려놓은 그녀의 작품을 본 터라 반가웠다. 그녀는 심한 강박증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무수한 점들을 하나하나 그려내면서 치유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도 깊이 잠재한 고통을 글로써 점점이 나타내, 너른 바다 앞에 펼쳐 보인다면 그녀처럼 치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첫 번째 목적지인 안도다다오가 산기슭에 지은 베네세하우스로 갔다. 그의 건축물은 제주에서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시멘트의 질감 그대로 쌓아 올린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예술엔 절대적인 것이리라. 사진작가인 문우의 설명을 들으며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 했다. 안도다다오는 자연과 건축은 공생 관계라는 개념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며 빛과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을 지어 예술로 승화 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건축에 사용하는 칙칙한 재료조차도 시적 승화라고 표현한 사람의 말에 차츰 수긍이 갔다.
베네하우스의 작품을 둘러보고 지중 미술관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걸어가는 산 길 옆으론 서울보다 빠른 봄바람이 찾아와 수줍은 진달래의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낮은 산 위에 오르니 지면으론 최소한의 외관을 보이며 지하에 지어진 지중 미술관이 나타났다. 꽃을 좋아했던 모네를 위해 가꾸어 놓은 작은 정원을 지나 수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빛의 예술가 이였던 모네와 빛의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가 서로 만나고 있었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만남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인공적인 빛을 피해 자연광을 택한 수련은 네모진 천장에서 비추는 한줄기 햇빛 아래 피어 있었다. 빛이 곧 색채라고 말한 모네는 빛의 흐름 따라 순간순간 다르게 피어나는 수련의 모습을 그려냈을 것이다. 꽃을 사랑한 모네는 어떤 더러운 물도 정화시키는 수련의 신비로움을 알고 있었을까?
지중 미술관에 있는 두 명의 설치 미술가 월터드마리아와 제임스터렐도 빛을 향한 예술가들이다. 빛이 만들어내는 마법은 늘 우리와 함께 하지만 깨닫지 못한 것을 알려주었다. 빛이 없다면 어떤 형상도 볼 수 없을 터, 빛은 가장 본질적인 예술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모인 세 명의 예술가와 안도다다오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빛은 어디에나 차별 없이 주어지는 우주의 선물이며 생명이라는 것을.
모네를 뒤로하고 섬의 오래 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마을 혼무라를 들렀다. 구리 제련소로 중금속에 오염되어 폐허가 된 섬을 다시 살려 낸 베네세 홀딩스의 후쿠다케 회장의 인간적인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는 섬에 오면 주민들을 만나보라고 했다. 예술을 품은 뒤,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꼭 물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골목길엔 아직도 쌀쌀한 봄바람 때문인지 작은 가게들마저 문이 닫혀있었다. 길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주민들도 눈에 띄지 않아 그들에게 묻진 못했다. 잘살자는 뜻인 베네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기업을 가진 훌륭한 사업가는 황폐한 땅에서 웃음을 잃고 사는 노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찾아주는 방법으로 예술을 택하기로 했을 게다. 기업의 이윤은 문화에 쓰여야 하며 돈 버는 자체가 목적이 되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삼십년간 1조원의 돈을 쏟아 부어 행복의 섬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기업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참으로 그리워한다.
예술은 수련처럼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들은 행복 할 것이다. 한 기업가와 자연으로 집을 짓는 건축가가 만나 이루어 낸 기적의 섬 나오시마. 인간을 껴안고 있는 예술과 사람을 아끼는 기업가의 심성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행복의 섬 나오시마를 내려다보았다. 진실한 마음과 그것을 아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어디서든 희망은 발견될 것이다.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발견하는 여행을 해야 한다.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여행이 되어야한다는 마르셀 푸루스트의 말이 생각난다.
비행기는 어느 듯 바다를 건너 우리의 땅 위를 날고 있었다.
첫댓글 "예술은 수련처럼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킨다."라는 문장이 압도적입니다. 이 문장이 빛나 보이는 것은 구성 요소들이 이 문장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공이 예술로 승화된 곳, 그래서 자연이 더욱 멋있는 곳, 꼭 가보고 싶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좀 재미없이 진부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