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균(金光均)
1914년 경기도 개성출생
송도 상업 고등학교 졸업
1926년 {중외일보}에 시 <가는 누님> 발표
1936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
1950년 이후 실업계에 투신
1990년 제2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3년 사망
시집 :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寄港地)}(1947), {황혼가(黃昏歌)}(1957), {황조가(黃鳥歌)}(1969)
성호부근(星湖附近)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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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2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 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멀 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었다.
({조선일보}, 19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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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조선일보}, 1938.1.8)
와사등(瓦斯燈)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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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단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
늘어선 고층(高層), 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 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 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조선일보}, 193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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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생
김광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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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머언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薔薇).
목장(牧場)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고가선 : 고압 전류를 송전하는 전선
({조선일보}, 1939.7.9)
외인촌(外人村)
김광균
하이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단 마차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힌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花園地)의 벤취 위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었다.
외인 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단 별빛이 내리고,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위에선
분수(噴水)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시집 {와사등}, 1939)
추일 서정(秋日抒情)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하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인문평론}, 19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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