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추사관
추사 김정희 선생이 남긴 아주 유명한 작품이 있다. ‘세한도’이다. 나무 몇 그루와 동그란 창문이 난 길쭉한 집은 그림의 이름을 들으면 곧장 떠오른다. 세한도 속 건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제주도의 대정읍은 추사 선생이 9년간 유배 생활을 지냈던 곳이다. 세한도는 그가 유배 온 지 5년째 되던 해에 그린 것이다. 이곳 제주도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탄생했다. 세한도는 그의 제자인 우선 이상적을 위해 그린 것인데, 이상적은 스승이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연경(베이징)에서 필요한 책을 구해주며 스승을 도왔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탄생한 것이 세한도이다.
전 편에서 단산을 소개했다. 단산에서 1km쯤 떨어진 안성리에 추사유배지가 있고, 그 앞에 제주추사관이 있다. 그 제주추사관이 세한도 속 집과 똑같은 형태로 서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건물은 그림 속 모습처럼 꾸밈 없고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림에 채색이 더해지고 노란 꽃들이 활짝 피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거대한 갈색 건물은 분명 근처 건물들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튀지 않고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게 인상적이다.
제주 추사관
추사관의 입구는 지하에 있다. 건물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있고, 추사관이라고 한자로 쓰인 현판 아래 출입구가 있다. 고요를 깨고 조심스레 들어가 보면 세한도를 비롯해 추사 선생이 남긴 글귀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그가 제주에서 완성한 추사체를 비롯해 서체를 연구해 온 흔적과 그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예산 화암사에 보낸 <무량수각>등 현판도 많이 썼는데, 단산 앞 대정향교의 <의문당>도 그가 써내려 준 것이다.
전시관 내부에는 기증된 자료들로 풍부하게 채워져 있다.
추사관에서 나와 골목을 따라 몇 발자국 걸어가면 바로 추사유배지가 나온다. 누명을 쓰고 유배 온 그가 머물렀던 강도순의 집이다. 예전엔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되던 곳이었지만 1984년 강도순의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된 곳이다. 복원된 유배지는 밖거리, 안거리, 모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안거리는 집주인인 강도순이 가족들과 생활하던 곳이고, 밖거리는 추사 선생이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던 공간이다. 본래 문하생이 많아 ‘그의 문하에는 선비 3천 명이 있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인데, 유배 생활 중에도 많은 제자를 길러내는데 힘썼다.
안거리
밖거리
그리고 모거리는 그가 기거하던 곳이다. 그의 유배 이야기를 보면 흡사 옥살이가 아닌가 싶을 만큼 극도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그에게 주어진 제한은 위리안치이다. 왕족이나 고위관리에 적용되던 유배형 중 하나인데, 집 둘레에 울타리를 치거나 탱자나무 가시덤불로 주변을 싸서 그 안에서만 지내게 해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 무거운 형벌이다. 내가 이런 벌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신세 한탄만 하다 시간이 흘렀을 것 같다. 하지만 오히려 추사 선생은 자신을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 학문과 예술을 깊게 파고들었고, 벼루 열 개에 구멍을 내고 붓을 천 자루나 닳아 없어지게 할 정도로 정진한 끝에 완성한 것이 추사체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코 안주하지 않았던 그의 흔적을 보며 가슴 속에 표현할 수 없는 경의를 가지게 되는 곳이다.
모거리
제주추사관
주소: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관람시간: 09:00~18:00(입장마감 17:30)
입장료: 무료
하멜상선전시관
뜻하지 않게 제주에서 지낸 또 다른 인물이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선원인 하멜이다. 산방산 맞은편 용머리해안으로 내려가다 보면 커다란 상선 하나가 당장이라도 출항할 기세로 정박해 있다. 하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하멜상선전시관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서기인 하멜은 1653년 선원 64명과 함께 일본 나가사키로 향한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 큰 난항을 겪고, 하멜을 포함해 생존한 선원 36명은 제주도에 표착한다.
서양인 수십 명이 갑자기 표착한 사건은 당시 조선 입장에서도 굉장히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멜 일행은 표착한 이후로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날들을 보낸다. 조선에 표착해 네덜란드에서 귀화한 박연을 통해 정체를 파악한 조정에서는 훈련도감에서 근무하던 박연 아래에 이들을 두고 활용할 계획을 했으나 하멜 일행은 조선에서 지내기를 원치 않았다. 번번히 탈출을 하려 시도하고, 송환 요청을 했지만 무위에 그쳤고, 조선을 방문한 청나라 사신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했으나 감형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잡역에 종사하며 힘겹게 시간을 보낸 하멜은 선원 7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한 이후 13년만에 나가사키로 탈출한다. 이후 남은 선원들을 송환하기 위한 교섭을 진행했고, 2년 후 모두 네덜란드로 귀국하는 데 성공했다. 하멜은 자신이 겪은 것을 바탕으로 하멜표류기를 썼다. 그냥 보면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여행기이다. 출판되자마자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쓰여진 목적은 정당한 보상금을 청구하기 위함이었다. 그 안에는 조선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에 대한 내용이 세세하게 담겨 있었고 외국인이 이렇게 한국의 면면을 자세히 소개한 것은 하멜이 처음이었다. 이는 미지의 세계였던 조선이 유럽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멜상선전시관은 작지만 하멜 일행이 겪은 흥미로운 일화를 만날 수 있다.
하멜 전시관은 내부도 목선처럼 되어 있으며, 1층에서는 모형으로 전시된 선박들을 볼 수 있고 2층에서는 하멜 일행이 겪었던 사건들과 이야기들이 그림과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다. 당시 선상 생활을 간단하게 구현한 공간도 있다. 전시 내용이 많지 않고 공간이 작아 금방 둘러볼 수 있고, 입장료가 무료라 용머리해안이나 산방산을 방문하는 김에 부담없이 가볍게 찾아가면 괜찮은 곳이다.
전시관 인근에 세워진 하멜 기념비. 하멜 일행이 표착한 정확한 지점은 아직도 불명확하다.
하멜상선전시관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16-7
입장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