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인생극장] 날개접은 까치 한번 더 날고싶다 |
드라마가 따로 없다. 정신없이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그들이 뛰어온 곳은 다이아몬드 한복판이지만 그들 가슴 속에는 기쁨과 한숨,그리고 온갖 풍상이 담겨 있다. 그들의 한 많고 사연 많은 인생 파노라마를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 상영한다.
앞집 감이 빨갛게 익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까치’. 그 유연한 몸놀림과 빛깔은 늘 예사롭지 않았다. 프로야구의 ‘가을까치’ 김정수(41).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저마다 “이제 가을까치가 슬슬 기지개를 켜겠는데?”라며 김정수의 등장을 예견했다. 그것도 18년 동안이나. 그때마다 김정수는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고 현역생활을 접으면서 이제 가을잔치의 살아 숨쉬는 신화가 됐다. 지난 10월27일 SK에서 방출,프로 최고령 선수에서 지도자를 꿈꾸고 있는 김정수. 영원한 보금자리 광주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 중인 김정수에게서 굴곡 많은 야구인생을 들어봤다.
▲ 배고픈 왼손
김정수의 아버지는 전남 화순 탄광 광부 출신이다. 탄광촌에서 희뿌연 연기와 함께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광주로 이사를 했다. 광주 학동에서 동네야구를 하다가 야구에 매력을 느낀 김정수는 4학년 때 광주 남초등 야구부에 입단,본격적인 야구인생을 시작한다. 처음 마운드에 올라 오른손으로 볼을 던지다 답답해진 김정수. “야,왼손으로 던지면 안 되냐.” 아이들은 모두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왼손으로 피칭자세를 바꾸자 아이들의 웃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오기와 깡다구가 실린 볼은 미트를 쩌렁쩌렁 울렸다. 중고등학교 시절 김정수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고 그 틈바구니에서 돈도 짭짤하게 받았다. 하지만 모두 가족의 생활비로 들어갔다. 연세대 입학조건으로 아버지 취직자리를 마련했고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도 도맡아 했다.
▲ 엉덩이로 들어간 연세대
연세대에 입학한 김정수는 1학년 때 2시간 동안 매를 맞았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낙향했다. 1년 동안 방황을 거듭한 김정수. 당시 감독이 아버지를 만나 거품을 물면서 설득한 끝에 학교로 돌아왔다. 하지만 선배들의 입단조건은 단 한 가지. ‘선배들에게 10대씩 맞고 들어오던지 아니면 거부.’ 결국 김정수는 100대 가까이 매를 맞고 다시 연세대 교문을 들어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프로에서 보자. 150㎞짜리 데드볼로 그날 당장 은퇴시켜주지?.” 하지만 막상 프로에서 대면했을 때 그런 악감정이 눈녹듯 사라졌다.
▲ 가을낙지
중고등학교까지 몸이 무척 야위었다. 고등학교 시절 182㎝의 키에 몸무게가 고작 65㎏이었다. 그래서 별명이 ‘낙지’였다. 빼빼 마른 몸으로 흐느적거리면서 피칭을 한다고 붙은 별명. 가을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와인드업 모션에서 한 다리로 중심을 잡지 못해 좌우로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유연함과 폐활량. 81년 대표팀에 뽑혀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김정수는 체력측정 결과 마라톤 선수보다 폐활량이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나 심각하게 전직을 고려했다. 유연함은 골프에서도 그의 능력을 배가시켰다. 한번도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보기 플레이를 한다. TV로 선수들 스윙 모션을 몇 번 보고 따라한 것이 전부.
▲ 가난에서 유연함이 나왔다
몸이 유연한 것은 후천적. “춥고 배고픈 어린 시절 산나물과 채소가 주식이었지. 소고기나 닭고기는 생일에 한번 볼까 말까 였고. 하지만 결국 그런 건강식이 내 몸을 유연한 알칼리성으로 만들었나봐.” 프로데뷔 이후 육류 섭취를 하다 보니 몸무게도 90㎏까지 늘었다. 근육통으로 고생했고 결국 5년 만에 옛날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고깃국도 국물만 먹고 술을 마실 때는 밥을 먹지 않는다. 칼로리 높은 술과 안주를 생각해서다. 육류보다 생선과 야채로 영양보충을 했다. 만 41세에도 한국시리즈에서 자신 있는 피칭을 보인 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비롯됐다.
▲‘억’ 소리 들었으면
김정수는 이름값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가장 연봉을 많이 받은 것이 96년 해태에서 우승하고 다음해 받은 9,600만원. “400만원만 채웠으면 나도 억대스타인데. 하기야 내내 놀다가 가을에만 한번 해주니 많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김정수의 돈에 대한 철학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보관’하는 것. 궁색하게 살지 말고 있을 때 쓰자는 주의다. “나처럼 자금회전을 빨리 해주는 사람이 많았다면 한국에 IMF는 없었을 것이다”며 웃는다. 선동렬 정회열과 함께 해태 시절 ‘말술 트리오’인 김정수는 술자리에 가면 기본이 3차. 지금까지의 술값만 따져도 집 몇 채에 벤츠 몇 대는 샀을 것이라고.
▲ 나도 부드러운 남자
김정수의 다음 목표는 지도자. 하지만 그의 강한 성격 때문에 많은 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러나 이제 김정수는 달라졌다. “지도자를 하기 위해서는 화합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워낙 강해 사고도 많이 쳤지만 이제 고개 숙이고 부탁할 자세가 돼 있다.” 한국시리즈 9회 진출,8회 우승,한국시리즈 통산 7승3패1세이브. 감히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단다. 프로 최고의 우승 제조기 김정수. 팬들은 가을까치의 울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한다.
■ 김정수 프로필
▲생년월일=1962년 7월24일 ▲체격=182㎝,82㎏ ▲혈액형=A형 ▲소속팀=광주남초등학교-전남중-광주진흥고-연세대-해태(86∼99)-SK(2000)-한화(01∼03)-SK(03) ▲가족관계=부인 이명숙씨(39),3녀-다연(12) 다슬(8) 다정(6) ▲프로성적=600경기 출전,방어율 3.31,92승76패34세이브 ▲수상경력=86년 한국시리즈 MVP,프로통산 600경기 등판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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