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탕자의 비유
탕자의 비유에는 구원과 회개와 변화와 성화 그리고 신앙생활 등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말씀하신 이 이야기에는 놀라운 진리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번 달에 그 일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필자: 이창업 목사
이창업 목사님은 ACT교회, 동송교회, 삼육대학교회, 주안교회를 거쳐 현재는 풍양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가족으로 아내 황필례 사모님과 이여경, 이요셉 두 자녀가 있습니다. 몇 권의 책과 다양한 곳에 기고한 글과 논문이 있습니다.
8월 1일(목)
어머니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요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누가복음 15장 11절)
청년 시절, 먼 나라로 대학생들과 함께 단기 선교를 갔어요. 주먹만 한 함박눈이 내렸고, 버스 안에서 추위를 견디다 못해 새벽녘 누군가 흐느껴 울었고, 이동을 도와주던 운전사가 제일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숙소 욕조에서 침례를 받았던 일 등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일 하나는 소박한 현지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에요.
한 가정을 방문했고,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고 성경도 잘 모르는 청년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싶어서 ‘탕자의 비유’를 들려주었습니다. 부모와 초등학교 딸이 한쪽 소파에 앉아 있었고, 탕자 이야기를 한마디씩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저도 통역하는 형제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당황했어요. 아직 ‘아버지가 달려 나가 탕자를 품에 안고 그를 영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기다리십니다.’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야기들은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끄는 강력한 힘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잘 모르는 먼 나라 사람이나 친구에게 하나님을 소개할 때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해 보세요. 분명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 믿어요.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한이준(원주중앙교회), 김별하(사릉중앙교회)
8월 2일(금)
성경에도 욕이 있어요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누가복음 15장 2절)
탕자의 비유는 누가복음 15장에 연속으로 기록된 세 비유 중 마지막 비유입니다. 이 세 비유는 모두 잃은 것을 찾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잃은 양을 찾아내고, 잃은 은전을 찾아내고, 잃은 아들을 찾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잃은 것은 수고해야 찾아집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고했고, 여인이 잃은 은전을 찾으려고 등불을 켜고 바닥을 쓸면서 수고했고, 탕자의 비유에서는 아버지가 잃은 아들을 찾아내려고 모욕을 감수하며 희생함으로 찾아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그리스도라고, 하늘에서 온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살펴보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이 죄인들과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이렇게 비난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는구나.” 여기에서 “이 사람이”라는 말은 ‘이놈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탕자의 비유와 함께 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죄인을 찾아내려고 오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욕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희생하셨기 때문에 죄인이 찾아진 바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도 그와 마찬가지로 결심도 필요하고 희생도 필요하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김하빈(원내동교회), 김하린(광나루교회)
8월 3일(안)
아버지가 죽기를 바랐어요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누가복음 15장 12절)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아들이 상속을 요구하는 일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것은 “아버지, 빨리 돌아가시면 좋겠어요.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요.”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지요. 유산을 상속해 달라는 요구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일종의 패륜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된 아버지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실제로 개종한 어느 유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탕자의 비유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요. 어느 날 의사였던 아버지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하소연했어요. “내 아들이 내가 죽기를 바라네요.” 깜짝 놀란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들이 유산을 나눠 달라고 자꾸 조르고 있어요.”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유산을 달라는 아들의 말에 심각한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석 달 뒤 죽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 그의 부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남편은 아들이 유산을 요구한 그날 밤에 죽은 거예요!”
탕자는 재산을 처분하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패륜 아들이 먼 나라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박죠엘(속초남부교회), 이시안(용산교회)
8월 4일(일)
아버지는 모욕을 당했어요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누가복음 15장 12절)
중근동 사람들에게 재산의 상속은 아버지가 주도했어요. 그리고 실질적인 상속은 아버지의 사후에 이루어졌어요.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악한 행위였고, 동시에 상속을 주도하고 가정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아버지의 권리를 무시하는 행위였습니다. 뻔뻔하게 유산을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체면은 생명처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할 때 아들에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반응은 현실에서는 한 가지였습니다. 못된 아들을 정신이 들도록 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패륜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아들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 수치와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탕자가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놀라운 희생과 자기 부인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바보라서 아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이 진짜 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윤재이(서울중앙교회), 박하늘(새로남교회)
8월 5일(월)
아버지는 고통스러웠어요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누가복음 15장 12절)
아버지는 재산을 달라고 하는 둘째 아들에게 모욕을 당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을 마치 죽은 사람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아버지는 이런 경우에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를 혼내야 합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중동 사람에게는 ‘명예 살인’이란 것이 있어서 아버지가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자녀들을 죽이는 일이 있습니다. 목숨처럼 중요한 것은 명예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고통당하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체면이 구겨져서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마음이 떠난 아들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는 아들과 더는 함께 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은 자기 연민과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심장이 무너지는 고통은 패륜 아들을 가슴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생긴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패륜 아들이 뻔뻔한 요구를 했음에도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을 향합니다. 완전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 결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완전한 사랑은 오래 참게 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강호(남원교회), 신소담(정읍중앙교회)
8월 6일(화)
집을 떠나는 탕자는 잘 몰랐어요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누가복음 15장 13절)
탕자는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후다닥 처리하고 먼 나라로 떠나 버렸습니다. 집을 떠난 탕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들려주신 지 이미 2천 년이 지났지만 중동의 한 마을에서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아들이 어머니를 돌로 쳐서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장면을 본 어느 학자가 깜짝 놀라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당신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나요?”어머니를 돌로 쳐서 죽인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물론 대단히 깊이 사랑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말이 많아요! 당신도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견디지 못할 겁니다.”
이 상황이 정확히 탕자가 유산을 상속해 달라는 소식이 마을에 알려졌을 때 벌어질 일이었습니다. 만일 그런 소문이 났다면 아버지가 아무리 탕자를 보호하려 해도 마을 사람들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탕자는 집을 떠나기도 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아무런 제재를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집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유산을 달라고 하는 패륜 아들을 보호하려고 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일부러 일찍 상속하는 것처럼 마을에 소문을 냈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아무런 일을 당하지 않고 집을 떠나게 된 것도 아버지의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박하진(표선교회), 박겸(삼육열린교회)
8월 7일(수)
아버지는 그곳에서 죽으셨어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 2:17)
하나님이 에덴동산 중앙에 두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이 완전한 자유를 지닌 존귀한 존재이며, 동시에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드러내는 나무였어요. 이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지만 선악과를 먹은 첫 인류는 죽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범죄 한 첫 인류를 찾아오신 하나님이 두려워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해 주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그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죄인을 위해 죽임을 당하시겠다는 약속이었어요. 하나님은 그 표징으로 양을 잡게 하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셨어요.
생각해 보세요. 범죄 한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죽지 않고 아버지 앞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은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탕자가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네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집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탕자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때 하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살며 움직이며 있는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유현, 이승현(영남삼육교회)
8월 8일(목)
상속 재산 이상의 것을 요구했어요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누가복음 15장 12절)
탕자는 아버지에게 재산을 상속해 달라고 할 때 크게 혼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매를 때리는 대신에 아들에게 선뜻 재산을 나눠 주었습니다. 중근동 사회에서는 혹시 상속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상속은 아버지의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즉 상속을 하더라도 아버지가 잠들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여전히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그 재산에서 나오는 소득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만일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여전히 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탕자는 재산을 처분할 수도 없고 따라서 집을 떠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탕자는 아버지에게 ‘처분권’까지 요구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아버지가 노후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도 다 주셔야겠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즉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는 말은 ‘처분권’까지 내어 주었다는 의미이고, 아버지가 노후에 필요한 ‘살림’까지도 나눠 주었다는 의미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첫 인류를 만나 주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세요. 탕자의 아버지가 못된 아들을 위해 ‘살림’까지 내어 준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범죄 한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기 위하여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죽기로 하셨기 때문에 아담이 죽지 않았고, 지금도 모든 사람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박현유, 박현지(대구성서교회)
8월 9일(금)
재빨리 재산을 처분했어요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누가복음 15장 13절)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음악가와 무용수를 고용하고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고 많은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열 수 있는 매우 큰 연회장을 가진 유력 인사이자 큰 부자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탕자가 넘겨받은 재산들은 매우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의 대부분은 땅과 집과 같은 부동산이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재산에 대한 ‘처분권’까지 받아 낸 뒤 물려받은 재산을 팔려고 했어요.
탕자는 빨리 집을 떠나려 했기 때문에 헐값에 재산을 내놓았지만 재산은 쉽게 팔리지 않았습니다. 탕자가 물려받은 땅은 개인의 소유이기 전에 하나님이 그 공동체에 주신 것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탕자가 그 땅을 싸게 내놓았다고 하더라도 덥석 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탕자는 “며칠이 안 되어” 그 재산을 “현금으로 바꾸었습니다”(새영어성경). 어떻게 탕자는 그 많은 재산을 “며칠이 안 되어” 처분할 수 있었을까요?
즉 “그 후 며칠이 안 되어”라는 말씀과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라는 말씀 사이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이 탕자에 의해 또 벌어진 것입니다. 탕자는 대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을 외지인, 이방인에게 헐값에 팔아넘긴 것입니다. 탕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 집을 떠난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정지민, 정지성(새움교회)
8월 10일(안)
먼 나라로 갔어요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누가복음 15장 13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믿음으로 밟은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약속대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동족에게 팔리더라도 50년이 지나면 다시 본 주인에게 돌아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중동의 ‘농부’가 땅에 관해 보이는 ‘애착’은 오랜 것이고 매우 강했습니다. 공동체 또는 가족의 땅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즉 그들은 “땅이 자기들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땅의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동 지방의 난민들은 전쟁과 분쟁 때문에 선조 때부터 대대로 살아왔던 곳을 잠시 피해서 다른 곳에 피난할 때 피난 지역이 아무리 안전하고 살기 좋아도 절대로 거기에 정착하지 않고 기회가 되면 자신이 살던 땅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탕자는 그런 땅을 외지인에게 헐값에 팔아넘기고, 그 돈을 갖고 먼 나라로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 땅에 심었지만 탕자는 스스로를 그 땅에서 뽑아낸 것입니다. 탕자는 돌아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먼 나라로 갔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돌아와도 맞이해 줄 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탕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그 땅을 팔아 버렸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김예준(삼육중앙교회), 김로이(마포교회)
8얼 11일(일)
마을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어요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누가복음 15장 13절)
둘째 아들이 재산을 현금으로 바꾸는 그 며칠 동안 마을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탕자가 며칠 만에 모든 일을 마치고 훌쩍 떠난 뒤, 탕자의 행동에 놀라고 허탈해진 마을 사람들은 그 일을 허용한 아버지에게 분노했습니다. 공동체의 재산이 ‘외지인’에게 팔렸기 때문에 일어난 분노였습니다.
당시 유대 문헌을 보면 가족의 재산을 이방인에게 팔아넘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결국 이방인들이 그들을 억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주로 활동했던 갈릴리 지역의 많은 땅이 외지인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유대 지역 안에 비유대 마을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갈릴리 지역은 로마 통치에 대한 ‘불만’을 품은 사람이 많았던 지역이었습니다. 자연스레 이 지역은 저항 운동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열심당의 창시자 유다는 갈릴리 사람이었고, 예수의 제자 시몬도 역시 갈릴리 출신 열심당원이었습니다.
탕자는 물려받은 그 땅을 돈으로 바꾼데다가 외지인에게 땅을 팔아넘겼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돌아온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안전할 수 없었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강윤담, 김세린(청암학교교회)
8월 12일(월)
죄는 잘못된 행동 그 이상이에요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누가복음 15장 13절)
죄를 잘못된 행동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관계’의 문제로 보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세요. 탕자가 재산을 상속해 달라면서 그 재산의 처분권까지 요구했을 때 아버지는 죽음의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가 땅을 “며칠이 안 되어” 외지인에게 팔아넘기고 “먼 나라”로 떠나 버렸을 때 마을 사람들은 참담한 일을 막지 않은 아버지에게 분노했습니다. 떠난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슬프고,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죄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버지에게 욕을 돌리게 하고, 아버지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탕자는 공동체의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관계 때문에 낭비는 죄로 여겨졌습니다. 어떤 놀이 혹은 시간을 너무 많이 쓰게 하는 어떤 재미있는 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분리되게 하는 일으므로 그것도 일종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것이 외관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도 하나님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박예빈, 정민재(청암학교교회)
8월 13일(화)
온전하셨던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장 42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 6:9~10, 쉬운성경)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아들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 26: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처럼 기도하셨고, 아들처럼 사셨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탕자의 이 말을 아들이신 예수님의 기도와 비교해 보세요. 탕자의 말에서 아버지의 입장과 명예는 아랑곳하지 않는 ‘죄’의 이기적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나쁜 생각을 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죄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죄를 가벼이 여겨도 문제지만 죄를 행위로만 축소하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눈빛과 말씨와 태도조차도 온전하셨던 분, 억울한 상황에 몰렸음에도 큰소리치지 않은 온전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교만한 정신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정민서, 정민솔(청암학교교회)
8월 14일(수)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했어요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누가복음 15장 13절)
탕자는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절제가 전혀 없는 방탕한’ 생활로 선조들이 물려준 재산을 먼지처럼 공중에 흩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땅, 공동체의 재산이기도 한 땅을 외지인에게 팔아넘긴 탕자의 행동은 하나님과 믿음의 공동체와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는 뜻입니다.
만일 탕자가 재산을 잘 간수했다면 비록 패륜을 저지르고, 공동체의 명예를 더럽혔어도 고향에 돌아올 때 공동체로 회복될 일말의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탕자는 그 재산을 다 없애 버렸습니다. 허세와 낭비는 유대인에게 심각한 영적인 문제로 간주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이방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러한 ‘방탕함’과 ‘낭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탕자의 비유를 듣고 있는 사람들은 탕자를 더욱 용납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오랜 기간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 청중의 삶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단어는 바로 ‘가난’이었습니다. 땅을 잃은 많은 사람이 품꾼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들의 재산을 낭비해 없애 버렸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루하(삼육대 크루교회), 김도연(예문교회)
8월 15일(목)
낭비하는 제자는 해고돼요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누가복음 16장 1절)
탕자는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했습니다. ‘허랑방탕하다’와 ‘낭비하다’라는 말은 비슷한 말입니다. 모으기는 어려워도 써 버리기는 훨씬 쉽습니다.
유대인들은 방탕함과 낭비를 도덕적으로 경멸했습니다. 하나님을 재물과 시간의 주인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낭비’한 탕자의 비유 바로 다음에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언급되는 것은 예수님이 낭비의 문제를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로 가르치셨다는 뜻입니다.
재물이나 시간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예수님은 그것에 주인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할 청지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소문을 듣고 주인이 청지기를 해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재물과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천국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시간은 소중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지금 잠시 누리는 생명과 시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죄인을 위해 대신 죽임을 당하기로 작정하신 덕분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담보로 주어진 생명과 시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마땅합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김도재, 김서은(예문교회)
8월 16일(금)
그 많던 재산을 다 없애 버렸어요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누가복음 15장 13~14절)
무엇이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마음이 아프지요. 없애기 쉬워도 도로 찾기는 매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첫 인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하나님이 다시 회복하여 선물로 줄 수 있기까지 무려 4천여 년이 걸렸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생명’이기도 한 ‘살림’을 낭비하여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탕자는 잃은 것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에게 날마다 주어지는 그 하루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자 유예의 시간입니다. 하루 8만 6,400초는 하나님 아들의 피 값으로 사서 주신 어마어마한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시고 생명을 선물로 주신 분의 뜻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가족을 구원하려고 자신을 속량물로 내주신 예수께서는 덧없는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요청하십니다. 돈을 앞세우고, 없어질 세상 보화를 쌓기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에게 그 일을 멈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만 우리의 것으로 계산될 것입니다. 낭비는 죄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박예봄, 남해솔(예문교회)
8월 17일(안)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어요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누가복음 15장 14절)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재산을 다 없앤 뒤 탕자는 그 땅에서 비참하고 모욕적인 일을 겪습니다.
탕자는 실패했습니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 새로 배웠음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 용감하게 시도했음을 의미할 뿐이다.’라는 말과 같이 실패는 그것을 딛고 일어서면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탕자의 실패는 실패에 관한 긍정적인 잠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실패였습니다. 실패에서 무엇을 배운 것도 아니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탕자의 비유를 듣던 청중은 ‘흉년까지 들어 더욱 궁핍해지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흉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심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리는 심판의 목적은 징계보다 회복에 있습니다. 심판받았으니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돌아와야 하는데 탕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어살았습니다. 재산을 후다닥 정리하고 아버지 집을 단 며칠 만에 떠났던 탕자는 멸시가 가득한 그 땅에 끝까지 붙어 있으려 했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남해찬, 오세진(예문교회)
8월 18일(일)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누가복음 15장 15절)
탕자는 파산했고, 큰 흉년까지 닥쳐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대인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각 나라에 모여 사는 유대인 집단인 ‘디아스포라’가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주변 나라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 4백만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탕자는 동족 유대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새로 찾아온 동족을 도울 훌륭한 조직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동족을 보살피는 일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파산하고 흉년까지 닥쳐 먹을 것이 없는 탕자가 자신의 삶을 뉘우치고 동족에게 찾아가 형편을 이야기하면 넉넉한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유대인 공동체의 도움을 구하러 가지 않고 오히려 정상적인 유대인이라면 식사도 함께하지 않을 이방인을 찾아갔습니다. 이것은 탕자가 타국에서 유대인과 상종하지 않았고 유대인으로 신앙적인 삶을 포기하고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라는 말씀은 이방 나라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데 ‘찰싹 달라붙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할 순간에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것을 따른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장예서, 조영(예문교회)
8월 19일(월)
청중은 탕자의 결정에 절망했어요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누가복음 15장 15~16절)
탕자는 파산했고, 그 나라에 큰 흉년까지 들어서 살기가 어려워지자 이방인에게 붙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탕자가 귀찮아진 그 나라 사람은 이 젊은 유대인 이민자를 쫓아 버리려고 “그러면 돼지를 쳐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탕자는 당연히 ‘뭐? 좀 도와 달라고 했더니 돼지를 치라고?’ 하면서 화를 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탕자는 먹을 것도 주지 않는 그 일을 받아들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돼지를 키우지도 먹지도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 당시 유대 기록을 보면 돼지는 하나님을 떠나 저주받을 사람을 상징했습니다. 탕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부정한 동물을 만져야 했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택하신 백성의 자존심도 모두 포기했습니다. 탕자의 이러한 결정은 유대인들에게 그나마 있었던 동정마저 버리게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절망했습니다.
배고픈 탕자에게 사람이 먹는 쥐엄 열매가 아니라 짐승이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귀한 집 아들이 얼마나 비굴하고 얼마나 비참해졌습니까! 파산한 탕자가 스스로 생각해 낸 자구책은 오히려 유대인에게 반감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공동체로 회복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습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최주영, 황준우(예문교회)
8월 20일(화)
탕자는 쓴 열매를 거두었어요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누가복음 15장 16절)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 7:6)라고 하셨습니다.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발로 밟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돼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서 아무거나 먹고 마시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를 떠난 결과 그는 파산했고, 아무 일이나 해야 할 형편에 처했고, 먹을 것을 얻지 못해 좀도둑질을 하고 안식일도 지킬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영적인 형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슬프고도 안타까운 형편입니다. 탕자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먼 나라”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게 하고, 아버지를 떠나도록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신앙을 양보하고, 세상의 습관에 순응하게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과 참된 안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최산, 김지우(시화교회)
8월 21일(수)
탕자는 자신에게로 돌아섰어요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누가복음 15장 17절)
탕자는 돼지를 쳤지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정신이 아득해진 순간 문득 아버지는 품꾼에게 넉넉한 삯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세상 나라는 돈이 떨어지면 관계도 끊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품꾼도 인격적으로 넉넉하게 대접받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 붙어살려고 했던 첫 번째 자구책이 실패하자, 탕자는 두 번째 자구책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 품꾼으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여기서 회개한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돌이켜”라는 말은 ‘회개’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에게로 돌아섰다.’라는 뜻으로 ‘살 궁리를 찾아냈다.’는 의미입니다. 또 그는 아버지에게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품꾼은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며 외인이었습니다. 즉 탕자는 ‘아버지, 저 돌아왔지만 아버지 집에서 살 거는 아니에요. 제가 없애 버린 재산, 일해서 다시 복구할 겁니다. 일자리나 주세요.’라고 하려고 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고 공동체로 회복되기 위해 탕자가 궁리해 낸 두번 째 방법은 실현 불가능하고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김산(용산교회), 박윤슬(별내교회)
8월 22일(목)
실현 불가능한 무모한 계획이었어요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누가복음 15장 20절)
탕자는 막대한 재산을 다 써버려 먹고 살 수 없게 되자 아버지 집에서 ‘품꾼’으로 일하면서 재산을 다시 마련하려 했습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는 말은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는 말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자리를 얻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외인으로,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그 말이 노심초사 그를 기다렸던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실로 이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탕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유산을 달라고 하는 패륜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재산을 외지인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재산을 낭비하고 없애 버렸습니다. 파산하고 흉년이 들었는데도 회개하지 않고 이방인에게 붙어살려 했습니다. 돼지를 쳤고, 먹을 것을 훔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품꾼으로 일해서 재산을 다시 마련하면 자기 힘으로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모하고 실현 불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길 바랍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살라티엘로 셀리나리(별내교회), 남도영(청학교회)
8월 23일(금)
탕자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어요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누가복음 15장 20절)
탕자는 품꾼으로 살려는 무모한 계획을 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재산을 외지인에게 팔아넘겼을 때 이미 공동체와 완전히 단절됐기 때문입니다. 또 마을 사람들은 탕자가 먼 나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소문을 들어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을의 명예를 더럽히고 공동체의 가치와 질서를 훼손한 탕자가 돌아오는 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본다면 그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마을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쫓아내는 ‘케자자’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마을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 앞에서 마을 주민들이 견과류와 옥수수가 담긴 토기를 깨뜨리면서 ‘너는 너의 기업에서 잘려졌다.’라고 말하며 그를 쫓아내는 의식입니다. 탕자와 같은 망나니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동구 밖에서 이런 소란이 벌어지면 아버지도 탕자를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탕자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기다리며 날마다 동구 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동구 밖에서 머뭇거리는 탕자를 알아보고 달려 나갔습니다. 그를 ‘케자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모든 결정적인 변화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구원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서하연(대구중동교회), 손다온(강릉동부교회)
8월 24일(안)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입을 맞췄어요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누가복음 15장 20절)
탕자는 없애 버린 재산을 스스로 벌어서 공동체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본다면 그에게 분노하면서 그를 쫓아낼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도 거리가 먼 곳에 있는 그를 알아봤습니다.
중근동 어른들은 절대로 뛰지 않았습니다. 원피스처럼 된 통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뛰어다니기가 쉽지 않았고 만일 뛴다면 종아리가 보일 테고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탕자를 향해 달려갑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해서 케자자 의식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패륜 아들을 영접하기 위해 아버지는 또다시 자신을 희생합니다.
탕자는 동구 밖에서 주저하고 있는 자신을 향해 멀리서 달려오는 일꾼의 무리를 보고 놀랍니다. 자세히 보니 아버지였고, 아버지와 함께 달려오는 종들이었고, 마을의 어른이 달려 나가자 마을에 큰일이 생긴 줄 알고 그 뒤를 따라 나오는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동구 밖까지 달려 나온 아버지가 패륜 아들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목을 안고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춥니다. 계속해서…집 밖에서 외인으로 살려고 했던 탕자의 완고한 마음이 전혀 예상치 못한 뜨거운 사랑과 영접에 비로소 변화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품속에서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손다현(강릉동부교회), 노준우(용산교회)
8월 25일(일)
탕자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어요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누가복음 15장 21절)
예수님은 유대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야곱의 귀향 이야기를 다듬어 탕자의 귀향 이야기로 들려주셨습니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무려 51가지나 됩니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듯 이삭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 일으켰습니다. 결과적으로 둘째 아들이 먼 나라로 갑니다. 하지만 야곱은 성공해서 돌아오고, 탕자는 완전히 파산하여 돌아옵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을 되돌리고 화해하려고 각종 짐승, 즉 20억 원이 넘는 선물을 보냅니다. 하지만 탕자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 앞에 드리고 대접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천사와 씨름하다가 골반을 다쳐 다리를 절게 된 90세가 넘은 노인 야곱은 일곱 번이나 땅에 머리를 대며 형에게 절했지만 탕자를 보십시오. 달려 나온 아버지를 보고 엎드리지도 않고 뻣뻣하게 선 채로 입맞춤을 받습니다. 거꾸로 되었고 뻔뻔한 일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잃은 아들을 찾은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춥니다. 탕자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살겠습니다.”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양유나, 이서아(중계동교회)
8월 26일(월)
즉시 아들 자격을 다시 얻었어요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누가복음 15장 22절)
패륜 아들을 맞이하러 동구 밖까지 달려 나온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눈물로 입을 맞추는 아버지! 그러나 탕자는 뻣뻣이 서서 입맞춤을 받고 있습니다. 먼저 입맞춤해야 하는 사람은 아랫사람이에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라도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탕자가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할 때 아버지는 함께 달려 나온 종들에게 말합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개역개정성경에는 그리스어 성경을 옮기면서 빠뜨린 말이 있습니다. ‘빨리’라는 말입니다. 아버지는 ‘빨리’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라고 했습니다. 그 옷은 아버지가 입던 ‘예복’이었습니다. 또 ‘빨리’ 반지를 끼우고, ‘빨리’ 신발을 신기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 아들은 너희가 섬길 주인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한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옷을 입고, 반지를 끼고, 종들이 신겨 준 신발을 신었습니다. 동구 밖까지 달려 나온 아버지에 의해 ‘즉시’ 아들로 복권되었습니다. 탕자가 아들로 회복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고 제공하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최보미(동래교회), 임하나(별내교회)
8월 27일(화)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는 이것이에요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누가복음 15장 27절)
탕자는 즉시 아들로 영접받았습니다. 아들로 복권되는 데 자신이 기여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누군가 탕자의 형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였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평화롭게 탕자를 다시 맞아들였다.’는 뜻입니다.
동구 밖까지 달려 나온 아버지 덕분에 완전한 평안, ‘샬롬’이 이뤄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땅까지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셨습니다. 그 완전한 속죄의 희생을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고(골 1:20) 그래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엡 2:14).
예수님은 탕자의 아버지 이야기에서 ‘회개’가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회개란 무엇일까요? 잘못된 행동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인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회개란 하나님이 이루신 완전한 화목을 염치 불구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아버지와 ‘동행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의 완전한 평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주은(용현교회), 이헌이(울진교회)
8월 28일(수)
탕자는 변화되었어요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했다. ‘서둘러…’”(눅 15:21~22, 쉬운성경)
탕자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동구 밖까지 달려와 자신을 눈물로 영접하는 아버지 품 안에서 탕자는 ‘아버지, 일자리나 주세요. 아버지께 신세 지지 않고 제힘으로 살게요.’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탕자는 변화됐습니다!
눈물로 감격하는 아버지 품속에서 그는 마음이 뜨거워졌고 참된 아들로 거듭났습니다. 함께 달려 나온 종들에게 아버지가 ‘빨리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혀라.’라고 할 때 탕자가 ‘아버지, 괜찮아요.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옷을 입겠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탕자는 다 없앤 재산을 자기가 벌어서 되찾은 뒤 아버지와 화목하려고, 그렇게 공동체로 돌아가려고 생각했습니다.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노력으로 천국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집, 그 동구 밖까지 달려 나오신 하나님이 죄인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인간의 교만과 자부심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나무 위에 달린 하나님이 이루신 완전한 화목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모든 수고를 그치고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완전한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강채은(평택중앙교회), 류하진(주문진교회)
8월 29일(목)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어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누가복음 15장 24절)
당시 마을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사이에 좁은 골목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금세 온 마을이 알게 됩니다. 동구 밖에서 서성이는 탕자를 찾아낸 아버지가 달려 나가자 여러 종도 큰일이 생겼다 싶어 주인과 함께 달려 나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도 서둘러 동구 밖까지 나아왔습니다. 이것이 달려 나가 탕자를 영접한 동구 밖의 광경입니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마을의 장로인 어른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달려 나간 것이 이 아들을 영접하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었고, 눈물로 아들을 영접하고 그를 즉시로 아들로 복권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그런 아비는 없기 때문입니다.
패륜을 저지르고 마을의 명예를 더럽힌 탕자, 완전히 망해서 거지꼴로 돌아온 그에 대해 만약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언짢은 표정으로 그를 나무랐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동구 밖에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전 죄를 기억하고 나무라는 분이 아닙니다. 찾아내신 것으로 감격하고 안심하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잘못을 보지 말고, ‘완전한 평안’으로 탕자를 영접한 하늘 아버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정수아, 신지아(울산중앙교회)
8월 30일(금)
송아지를 잡으라고 하신 이유가 있어요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누가복음 15장 23절)
아버지는 이미 종들에게 ‘빨리’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고 악사를 불러 잔치를 열라고 했습니다. 잔치를 위한 송아지도, 악사를 고용하는 데 든 비용도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송아지 한 마리를 잡으면 마을 전체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잔치를 엽니까? 서둘러 잔치를 연 것은 단지 기뻐서가 아니라 탕자를 다시 아들로 맞아들였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선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이 아들을 다시 아들로 받아들였으니, 이런저런 말을 하지 말고 상속자로 대해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불가능했던 아버지와의 화해, 상속자로 복권되는 일이 동구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한 일입니다. 탕자는 바로 그날 아버지의 옷을 입은 채로 초청받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화목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 역시 아버지가 한 일입니다.
패륜 아들을 영접하기 위해 수치를 감내하고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죄인을 영접하기 위해 하늘 집을 떠나시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탕자는 완전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예전처럼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의 변화, 회개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아버지의 품속에서였습니다. 끊어져 마땅한 죄인이 아버지의 집에서 잔치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크신 희생이 가져온 변화 때문입니다. 넘치는 은혜!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이로연(용인교회), 조이준(삼육중앙교회)
8월 31일(안)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요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누가복음 15장 20절)
집으로 돌아갈 때 탕자는 완전히 회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살려 했고, 결정적으로 아버지 집에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아버지의 옷을 입고 화목의 잔치에 앉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극적인 변화가 있게 되었나요? 그 마음의 변화도 아버지께서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완전히 변화된 다음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모습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달려 나온 아버지께서 새 마음도 주십니다.
탕자는 최악의 아들이었습니다. 패륜을 저질렀고, 가산을 외지인에게 넘겨 버린 무책임한 아들이었고, 허랑방탕하여 남은 연민조차 끊어지게 하였으며, 신앙을 중히 여기지 않는 아들이었습니다. 또 아버지에게 욕을 돌린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에게는 자존심을 세우고 회개할 줄 모르는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한마디로 뭐라고 부르면 좋겠습니까? 아버지는 탕자를 “죽었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런 아들은 없었으면 좋았을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먼 나라로 갔던, 죽었던 아들이 아버지 옆에서 잔치에 참여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죽었던 그를 아버지가 찾아냈고 아버지의 희생과 용서가 그를 살려 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잃은 영혼을 찾아내는 일에 하나님 아버지와 연합한 사람들입니다.
‘재림신앙 이음’ 아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조이엘, 송지율(삼육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