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오늘 듣는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실 때까지 꽤 긴 시간에 관한 짧은 내용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광야로 가십니다. 복음은 이것을 성령께서 하신 일로 소개합니다. 광야를 나타내는 말은 신약 성경에서 ‘광야’ 또는 ‘외딴곳’으로 번역됩니다. 인적이 없는, 군중들로부터 떨어진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실제로 복음에서 이 낱말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셨 던 장소로(마르 1,35), 군중을 피해 쉬셨던 장소로(마르 1,45; 6,35) 표현됩니다. 이미 이런 내용은 광야가 단지 유혹의 장소만이 아니라 기도하는 곳이면서 휴식을 통하여 무엇 인가를 준비하는 장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광야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잊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백성이 사십 년간 광야 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이 사십 년은 하느님 께서 약속하신 땅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위한 가장 중요 한 여정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백성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시고(탈출 3,14 참조) 계명을 주셨으며, 만 나를 통하여 일용할 음식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광야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사제와 같은 백성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백성에게 중요한 모든 것들이 외딴곳인 광야에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어로 광야의 뜻이 ‘말씀’과 연결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비록 광야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고 모든 것이 결핍된 곳이지만,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이 곳에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그들과 함께하십니다. 광야는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는 광야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광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하느 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홀로 남겨지고 쉽사리 희망을 찾기 어려울 때, 우리는 광야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광야에 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시험합니다. 하느님으로 부터 멀어지도록, 우리의 눈이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 유혹입니다. 광야는 모든 것을 떠나 홀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사순 시기 는 ‘광야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절제와 보속의 시간이면서 은총과 자비를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주님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그분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 허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