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의 밤
신달자
홀로 와인 반병을 마셨으니
나는 지금부터 미쳐도(島)에 닿는다
양(量)의 선을 넘으면 언제나 저미는 핏줄을 안고 운다
아버지는 큰 부자였지만 주색잡기로 쫄딱 망해 고향 쫓겨나
서울 변두리 살며 누울 때도 고향 바라보며 눕는다고 했던 아버지
어느 날 술 한 잔 마시고 "고향 떠나 10년에 청춘은 늙어어" 울던 아버지
그 눈물 아버지 피같이 내 가슴 위로 흘렀지
아버지 바람나 집에 뜸할 때 술로 배를 채우며 울어 울어 울었던 어머니
불현듯 마당 가운데 서서 아리랑을 살 찢어지게 부르다 쓰러지는 미친 여자
그 모습 아직 나를 발광하게 만드는데
나의 성장에는 빈 공간이 없어라
누구도 볼 수 없는 공간마다 젖은 손수건이 무겁게 흔들거려
아버지 어머니 눈물 지금까지 따라왔어라
빈 와인 병을 들고 가슴을 치며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애간장 저미는 내 노래가
방울 방울 눈물방울
‘연분홍치마’를 몇 천 번을 불러도 기다리는 남자는 오지 않고
오늘 밤도 취한 나를 두고 봄날은 간다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2023. 4
신달자|1943년 경남 거창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간절함』 『열애』 『북촌』 등. 저서 『고백』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 『나는 마흔에 새의 걸음마를 배웠다』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