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님이 누워 계시는 곳은 참으로 아늑하고 늘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연세 많으신 아버님께서 지극 정성으로 볼 보신 탓에 잡초 한 포기 구경하기 힘 들다.
살아 생전의 후덕한 인심이 음택에서 조차 그 빛이 은은히 빛나는 것 같아 어머님을 찾아 뵈올
때 마다 넉넉한 마음에 몹시도 기분이 좋아 진다.
성묘를 마치고 산 아래로 잠시 내려다 보노라면 할아버지가 손수 지으셔서 우리 부모님께서도
한 시절 같이 사셨던 방 두칸 일자형 평기와집이 보인다.
큰 어머님께서 돌아 가신 이후로 사는 사람이 없어 폐가가 된지 오래된 집인데 아련한 추억만
가슴을 시리게 한다.
뽕나무 회초리로 고추밭의 떡개구리도 잡고, 감나무가 있는 산비탈 밭둑에서 말벌집 건드려
보는 스릴도 쨤쨤히 맛 보다가 해가 기울 때가 되면 마당 한 켠에 모깃불 피워 놓고 큰 어머님께
서 소여물 끓이는 아궁이에서 막 건져 내 오시는 군감자 한바가지 받아, 멍석 위에서 껍질도 채
벗기지 않고 연신 입으로 퍼 넣고 나면 얼굴은 비록 똥 파 먹은 개 주둥이 같지만 시골에 놀러
와서 맛 볼 수 있는 재미의 최고점에 이르게 된다.
원숭이들은 시간만 나면 서로의 털을 골라 주면서 친근감을 표시하는데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몸 속에 있는 이를 잡는다고도 하고, 털 밑에 붙어 있는 염분 덩어리를 뜯어 먹는다고도 한
다.
이를 서케라고도 하는데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홍어와 가오리 정도의 차이가 나는, 다른 종류라
고도 한다. 머리에 사는 이는 검은 색이고 옷 속에 붙어 사는 이는 당연히 살색이다.
혜초 스님이 쓰신 왕오천축국전을 보면, 서역 어느 지방에는 몸에 사는 서케를 집어 어금니에
올려 놓고 지그시 터 뜨려서 먹는다는, 사람들 얘기가 나온다.
시골에는 밤만 되면 불청객이 찾아 오신다.
이, 빈대, 벼룩, 모기.
벼룩은 평균 30cm 정도를 써젼트 졈프를 하는데 마루에 누워서 달빛 사이로 마당 쪽을 보노라
면 모기와 벼룩이 정말 개떼처럼 새카맣게 달려 든다.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잡혀 갔다가 심양 노예 시장에서 전 재산 팔아서 들고 간 가족들 덕분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 온 분들을 조선 동포들은 애처로운 마음으로 맞기는 커녕 환향년(화냥년)
이라고 홀대를 한다. 비슷한 말로는 갈보라는 욕도 있다. 빈대 갈자를 쓰는데 어느 넘에게 끈질
기게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다고 그리 이름하였다고 한다. 물론 양코벡이 한테 들러 붙으면 양
갈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양껏 피를 빨은 빈대는 크기가 서리태(쥐눈이 콩) 정도까지 부풀어 오르는데 죽을 힘을 다하
여 손톱으로 터 뜨리면 노린재 냄새 비슷한 악취가 진동을 한다.
피를 갈구하는 빈대의 집요함은 정말 놀랍다.
어느 분이 빈대를 피하고자 밥상 위에 올라 가니 상다리를 타고 빈대가 오르는 지라 상다리 밑
에 물을 담은 사발을 받혀 두니 이 번엔 빈대들이 벽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 가선 레인져 부대처
럼 공중에서 낙하하여 공격을 하더래나요.
날밤을 꼬박 새게 마련인데, 문지방에 머리를 베고 누운 사촌형은 아무 일 없는 것 처럼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잘도 잔다.
악몽이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지긋지긋한 밤을 보내고 나면 필히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
해우소,변소,뒷간,통시,측간, ...
일본의 어느 회사원이 우연히, 독일 치하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안네 프랭크가 쓴 안네 일기란
책을 보곤 여성 생리대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고 무심코 술자리에서 상사인 과장에게 얘기를
던졌는데, 사업 수완이 좋은 이 과장이란 분이 직접 면으로 된 구식 생리대를 착용해 가면서 힘
들게 연구하여 안네란 상표로 처음 선을 뵌 제품이 오늘 날의 현대식 생리대의 시초가 된 것이
다.
용변 후에는 뒷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시골이란 동네는 참으로 난감하다.
흔하디 흔한 신문지 한장 구경할 수 없는 시절이었던 듯 하다.
요즘은 그냥 무심코 휴지라고들 칭한다. 원명은 과연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들 수 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 유세차 탄, 열차에서 급서한 고 신 익희 선생이 그 직전에 화장실을 가고져 비서관
에게 뒤지를 달라고 소리 치는 글을 읽은 기억도 있다.
예전에는 호박잎이나 보드러운 풀, 아님, 가는 지푸러기를 많이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어느 분의
얘기에 의하면 가는 막대에 짚을 부드럽게 비벼서 칭칭 감은 뒤에 화장실 추녀 속에 요즘의 가
족들 수대로 꽂혀 있는 치솔처럼 꽂아 두었다가 일을 본 후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이름하여
밑씻개라고도 한다더군요.
쬭발이넘들은 화장실 앞에 말뚝을 약 10m 간격으로 두 개를 박고 그 사이에 새끼줄을 널어
뜨려 둔다고 하더군요.
눈이 많이 오는북해도 지방에는 이른 새벽에 맨 처음으로 용변을 보신 분은 두 다리 사이에 새
끼 줄을 끼고 걸으면 쌓인 눈 덕분에 비데 효꽈도 있다고 하는군요.
첫 새복부텀 재수엄게 스리 왼 넘의 똥 얘기를 그리 장황스럽게 하느냐구요?
잘 먹고 잘 싸는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란 건 선승들께서도 자주 법문하신 얘기입니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란 영화에서도 푸이가 쟁반에 응가를 하면 그 즉시 내시들이 모양과
냄새, 반죽정도를 살펴서 건강을 첵크하는 장면도 나오더군요.
쏘련의 어느 대통령이 외국 방문시 머무른 호텔 아래 층에 저 같은 첩보 요원들이 하수 배관을
미리 뚫어 놓았다가 그 분이 보신 응가를 받아서 정밀 분석을 하여 질병 유무를 살폈다는 얘기
도 있더군요.
풍납동에 있는 아산 병원 병실 복도 끝에서 바라 보는 야경은 오색찬란한 유람선이 백미어더
군요. 노환에 잘못 주저 앉으시다가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꼼짝도 못하시는 어머님은 벌써 생긴
욕창 땜에 이만 저만한 곤욕을 치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시니 수시로
설사를 하시는데 혼자선 죽어도 못하겠다는 간병인 아줌마가 냅다 소리 질르면 잠시 들어 가선
일을 보곤 애처로운 마음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복도로 바삐 쫓겨 나오곤 했었습니다.
밖으로 보이는 야경은 극락이고 유리 한장 너머 이 곳 병실은 무간지옥이란 생각이 자꾸 들더만
요.
내 가장 소중한 어머님이 저러한 고통을 당하는데도 이 못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더군요.
관세음보살님외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자존심 강한 어머님은 한사코 아들은 들어 오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잘난 효년(불효를 잘 하시
는 시집간 여성을 총칭하는, 돌삐님의 특수용어임) 들은 어느 새 남편 밥을 해야 한다, 자식 새
끼 밥 걷어 먹어야 한다며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쮸구리고 앉아 일을 보는 분들이 몹시도 부럽단 생각도 들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뻔질나게 드나 드는 화장실을 제 발로 들어 가지 몬하는 순간 내가 선 이 곳이
바로 생지옥이 되더군요.
그저 지하에 있는 의료기상에서 부지런히 환자용 기저귀 사 오는 일로 하루 하루를 보내기만 했
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수행을 많이 하신 큰스님께 집요하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저기 상단에 정좌하고 계신 부처님을 우상이냐,사람이냐, 아님 거 무었이냐고 말입니다.
큰스님이 아무런 주저없이 무심코 답변하시더랍니다.
" 아! 그건 그냥 누런 똥막대기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것이 바로 떵이어서 장황하게 해학적인 언사를 늘어 놓았습니다.
아직 나이가 넘 어려서 늘 어머님이 그리운 정향사의 앙증맞게 구여운 돌삐 합장드립니다.
카페 게시글
불자님 글방
똥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깊은 의미에 대한 심도 높은 성찰
돌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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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29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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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찌 오늘은 지가 먼저?<움출>...돌삐님의 지극하신 효심이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네요..ㅋㅋㅋ아침부터 떵 소리 많이 들어서 오늘은 뭔가의 복이 들어올것만 같읍니다요....떵=복 ...꿈에서도 ㄸ.꿈 꾸니 돈이.ㅋㅋ들어오데요.지는 ...제가.이상타구요???ㅎㅎㅎ.()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늘 깨어 있는 마음..
돌삐님 정말 잼나게 잘 읽었습니다, 어린 동심의 세계로 가는거 같아요!! 저 어렸을적하고 똑같네요~!
돌삐님 벌써 세월이 많이 흐른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결같은 돌삐님의 효심 감격입니다. 또한 자식사랑도 끔직하시죠.
ㅋ~ 구여운 액세서리같은 형용사로 글의 포인트를 꼭 두고가시는 모습이 너무 유머러스합니다~~~돌삐님 마음의 여백과도 같고~~~늘 행복하셔요~~~()
돌삐 거사님의 글을 읽노라면 어찌 이리도 자기에게 다가온 반연에 그리 가슴으로 순간 순간 놓치지 않고 느끼며 사셨나 하며 감탄할 뿐입니다.어느 스님이 그러시데요 如來(같이 옴)는 자기에게 오는 모든 반연에 한 순간도 놓치지않고 공부 하신분이라 하던데, 그래서 닦고 쌓으신 功을 우리에게 德으로 회향하신다구요.
아마도 돌삐 거사님도 아직 어리시니 살아가실 더 많으날을 그동안 알게 모르게 거사님 가슴 깊은 곳에서 홀로 느끼고 깨달으신 그 커다란功力을 우리에게 큰 德으로 회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극락 왕생 하시었을 거사님의 사랑하는 엄마에게 또 한번 큰 효도를 하시기... 항상 좋은 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