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693 술회述懷 69 감시感時 때를 느껴서
천촌만촌호화개千村萬村蕎花開 천 마을 만 마을에 메밀꽃이 피었는데
일성량성홍안래一聲兩聲雁鴻來 한 소리 두 소리 기러기가 온다.
절물쟁영인이로節物崢嶸人已老 철 만난 물건들 분명한데 사람 이미 늙었고
감시소객심유재感時騷客心悠哉 때를 느낀 詩人 마음도 유장悠長 하여라.
이문촌사수신도已聞村舍收新稌 마을 집에서는 이미 새 곡식 거뒀다고 들었는데
부도화치종모래復道火菑種牟來 또 화전 밭에 보리 심고 온다고 말한다.
로자산중유생애老子山中有生涯 늙은 사람 산중에 生計거리 있어서
소포자두수류류小圃紫豆垂纍纍 작은 밭에 붉은 콩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십년위객서부동十年爲客西復東 십년 동안 길손 되어 서쪽으로 동쪽으로
불각한서상추이不覺寒暑相推移 춥고 더운 것 서로 변하여 옮기는 것 깨닫지 못하였네.
여금쇠병와산구如今衰病臥山丘 이제 와서는 쇠하고 병들어 산언덕에 누워 있어
세관일세춘부추細觀一歲春復秋 한 해의 봄 되고 다시 가을 되는 것 자세히 보았노라.
공명세상호사이功名世上好事耳 공명이란 세상의 좋은 일만 될 뿐이라
아독무심공백두我獨無心空白頭 나 홀로 마음에 없어서 공연히 백발이 되었네.
장지미마세월주壯志未磨歲月遒 큰 뜻은 마련하지 못하고 세월은 빠른데
정반혜고명조추亭畔蟪蛄鳴啁啾 정자 가에 귀뚜라미 또르르 울고 있네.
감시感時 때를 감지하나니
온 천지 마을마다 메밀꽃 활짝 피고
한 두 가닥 울음소리 기러기 떼 날아오네.
제철 만난 것들은 우쭐대건만 이 몸은 이미 늙어
때를 감지하는 시인의 마음은 우울해진다오.
듣기로는 마을 집들은 햅쌀 벼를 추수했다는데
나는 또 화전에 보리 파종하고 돌아오는 길이라네
산에 사는 늙은이도 먹고는 살아야하기에
작은 텃밭에는 붉은 콩이 주렁주렁 매달렸다오.
십년을 나그네로 이곳저곳 떠돌다보니
추위와 더위가 언제 바뀌는지도 몰랐다네.
지금은 쇠약하고 병들어 산언덕 오두막에 누워 지내니
봄이 또 가을이 되는 한 해 풍경을 자세히 바라본다네.
세상에 공적과 명예를 떨침은 좋은 일이라 들었는데
나만 홀로 무심하고 허무하게 백발이 됐네.
장대한 뜻을 갈고 닦지도 못하고 세월만 까먹었으니
정자 옆의 여치마저도 저리 울어댄다오.
►‘메밀 교蕎’ 화곡禾穀의 하나. 메밀
►소객騷客 소인騷人. 詩人.
초楚나라 시인 굴원屈原(BC343~BC278)이 지은 離騷賦에서 유래한 말로 詩人과 文士를 일컬음
►‘찰벼 도稌’ 찰벼. 벼
►화치火菑 황폐한 밭에 불 질러 火田을 일굼.
►종모種牟 보리 종자. 보리 파종播種
►추이推移 일이나 형편形便이 차차 옮아가고 변함
►혜고蟪蛄 누고螻蛄. 여치. 여칫과의 곤충昆蟲
►조추啁啾 (의성어·의태어) 새 우는 소리
감시感時 시절을 느끼어
千村萬村蕎花開 천 마을 만 고을 메밀꽃 피어있고
一聲兩聲鴻雁來 한 소리, 두 소리 기러기 떼 날아온다
節物崢嶸人已老 철 만난 사물들 쟁영한데 사람은 늙어가고
感時騷客心悠哉 시절을 느낀 시인은 마음이 유장도 하여라
已聞村舍收新稌 마을 집에는 이미 새 곡식 걷었다는데
復道火菑種牟來 화전에 보리 심고 온다고 다시 말 하는구나
老子山中有生涯 산중의 늙은이 생계 있으니
小圃紫豆垂纍纍 작은 밭에 붉은 콩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十年爲客西復東 십년을 나그네 되어 동으로 서로 다니다가
不覺寒暑相推移 추위와 더위가 바뀌어 온 것도 몰랐도다
如今衰病臥山丘 지금처럼 쇠하고 병들어 산언덕에 누워
細觀一歲春復秋 한 해가 봄 되고 가을됨을 자세히 보았도다
功名世上好事耳 세상 공명이란 좋은 일인데
我獨無心空白頭 나만 홀로 무심히도 덧없이 백발로 늙었도다
壯志未磨歲月遒 큰 뜻 닦지 못하고 세월만 빨라
亭畔蟪蛄鳴啁啾 정자 가, 쓰르라미와 땅강아지 울어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