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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elStfmanSM안녕하십니까? 에스라의 나무 강단이 제공하는 성경의 어휘 연구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순서로서, 우리가 지난 시간에 안식일의 의미와 준수하는 방법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연구한 끝에, 인류 역사에 아주 중요한 한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책이 바로 『안식일』(The Sabbath)이라는 책입니다. 히브리 학자가 쓴 책을 우리나라의 오만규 박사님께서 번역하여 이미 수십 년 전에 한국 독자들의 손에 전해진 바 있습니다. 오늘 그 역자이신 오만규 교수님을 모시고 그 책과 저자, 그리고 그 책의 사상에 대하여 함께 대화하고자 합니다. 오 교수님, 오늘 귀한 걸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만규 교수: 이런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1981년에 이 책을 번역했는데, 당시에는 한국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책의 초판은 1951년 미국 파라 스트라우스(Farrar, Straus & Young)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이 책 외에도 여러 저명한 저서를 많이 남겼지만, 그가 미국 학계와 신학계에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는 바로 이 작은 책 『안식일』이었습니다. 그가 1972년에 사망하고 7년 후인 1979년에 그의 부인인 실비아 헤셸의 서문이 담긴 재판이 나왔는데, 제가 그것을 1981년에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아마 전 세계적인 번역본 중에서도 상당히 일찍 번역된 축에 속할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1979년 필리핀으로 유학을 갔을 때였습니다. 1980년에 돌아왔는데, 유학 시절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필리핀 교회 최초의 신학자 페르난데스 박사의 저녁 초대를 받아 그의 서재를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제 눈에 번쩍 뜨이는 조그마한 책이 꽂혀 있었는데,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제 눈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그 책의 부제가 '현대인을 위한 의미'(Its Meaning for Modern Man)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안식일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답을 추구해 왔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군대에서 수없이 징계를 받으면서도 안식일을 준수하고, 학생들이 안식일에 학교를 가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까지 이 날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물리적으로는 제6일이나 제7일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도대체 어떤 영적인 차이가 일곱째 날에 있는가?" 하는 것이 저의 큰 숙제였기에 이 책의 제목과 부제가 큰 충격과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페르난데스 박사님께 책을 빌려 복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이었기에 귀국 후 번역에 착수했습니다. 당시에 샘 바키오키 박사가 쓴 『인간의 쉼 없음을 위한 하나님의 대책』(Divine Rest for Human Restlessness)이라는 책도 함께 출판되어, 저의 신앙과 학문을 뒤흔든 두 권의 책이 큰 축복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아주 벅찬 마음으로 밤을 새워 가며 『안식일』을 번역해 1981년에 출판했습니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저 역시 시간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매우 빈약했습니다. 당대 대표적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시간의 노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야말로 철학적 사고와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저명한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Nikolai Berdyaev)는 "시간은 악이며, 인간의 심령을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채우는 치명적인 질병과도 같다"고 부정적으로 피력했습니다.
그러나 헤셸의 책은 저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동경대학 철학교수가 쓴 『시간과 영원』의 번역본이나 어거스틴의 시간론을 다룬 책들도 탐독했었지만, 헤셸의 관점은 어거스틴의 시간론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헤셸이 이런 안식일 신앙의 전통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대교의 저명한 랍비 집안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날 만큼 유대교 고전과 영성에 깊이 익숙해졌습니다. 이후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1940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유대인 학살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두 달 전이었습니다.
미국에 온 지 11년 만에 펴낸 『안식일』로 그는 미국 조야에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는 뉴욕의 유대신학교(JTS)에서 랍비 문학과 유대 신비주의를 가르쳤고,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학교인 유니언 신학교에서도 객원교수로 가르쳤습니다. 미네소타 대학교, 아이오와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등에서도 강의하였고, 1965년 봄에는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민권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예, 서론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짚어주셨습니다. 시간이 무엇인지, 안식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겠습니다. 화면에 보시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의 『안식일』 영문 원본과 오 교수님이 번역하신 한국어판 표지가 나옵니다. 이 책이 처음부터 영어로 기록되었고,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자가 놀라운 필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 대필 의혹이 일 정도의 명저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오 교수님, 이 책의 저술 배경과 구체적인 핵심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오만규 교수: 저술 배경에 대해서는 그의 따님인 수산나 헤셸(Susannah Heschel)의 소개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유대인들이 자본주의 문화에 급격하게 동화되어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거북해하던 시절에 나왔습니다. 심지어 랍비들과 유대교 지도자들 중에서도 영성과 신학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신앙이 없는 '종교 없는 유다이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안식일은 일과 사회 활동, 쇼핑을 방해하여 미국인으로서 성공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었습니다. 헤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현대인들에게 안식일의 참된 가치를 알리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헤셸은 성경이 공간보다 시간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세계를 시간의 차원에서 바라봅니다. 물건이나 장소보다는 세대와 사건에, 영토(지위)보다는 역사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특히 저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은 '카도쉬'(Kadosh, 거룩함)라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 최초로 사용된 곳은 어떤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창세기 2장 3절의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셨다는 대목입니다. 어떤 종교들은 경건의 표시로 공간 속에 거대한 사원과 성당을 짓지만, 유다이즘은 시간 속에 안식일이라는 '시간의 건축물'을 세웁니다. 공간을 정복하는 것보다 시간을 성화하는 데는 전혀 다른 영적 감각이 요구됩니다.
저는 이 '시간의 건축술'(Architecture of time)이라는 표현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간 속에 궁전을 짓기 위한 건축 자재는 무엇일까요? 유대교에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세속과 멀어지는 여러 규칙이 있습니다. 그의 제자인 사무엘 드레스가 엮은 헤셸의 경구집 제목이 『나는 경이를 구했다』(I Asked for Wonder)인 것처럼, 경외감과 경이(Wonder)는 종교의 핵심입니다. 헤셸은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의 개념을 가져와 이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묘사하기 위해 "그분은 어떤 분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안전한 것처럼, 안식일이라는 장엄한 시간의 성소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부질없는 장식이나 거추장스러운 행동을 멈추고 침묵과 부작위(일을 하지 않음)로 나아가는 것이 핵심 자재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또한 헤셸은 유대교가 이웃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정죄하는 본질적 이유는 단순히 율법을 범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 인해 사람의 생명을 다치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생명을 가장 존중하는 유대교 사상의 핵심에 바로 안식일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생명과 그 생명을 지탱하는 자유(Freedom)를 소중히 여깁니다. 시내산에서 선포된 계명들은 신체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넘어 도덕적, 영적 자유를 누리게 하는 법입니다.
헤셸은 안식일과 함께 영혼이 되살아나고 우리에게 '여분의 영혼'이 주어진다고 묘사합니다. 안식일의 성스러운 광채가 가득 차면 분노가 그치고 긴장이 사라집니다. 안식일은 우리가 갈망하는 신부(배우자)이며,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안식일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한 주일의 여새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가 안식일 경험의 깊이를 결정하며, 이 세상에서 영원의 맛을 누리지 못한다면 내세의 삶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세계의 존립은 일곱째 날의 거룩함에 달려 있습니다.
진행자: 정말 구절구절이 보석과도 같습니다. 시간이 가장 소중한 성소라는 말씀인데, 헤셸 교수가 이 책에 『현대인을 위한 의미』라는 부제를 붙인 만큼 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안식일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은 무엇입니까?
오만규 교수: 헤셸은 안식일을 '시간의 성소', '시간의 궁전', '시간의 지성소'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임종 전까지 다음 세대를 향해 "세상이 불합리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역사는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는 그분의 기대를 실현할 능력이 있다"고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인간 내면에 있는 죄악된 가인의 표식보다는 결국 하나님의 형상이 승리할 것이라는 신념이었습니다. 현대의 기술 문명은 공간의 정복을 자랑하지만, 참된 가치는 시간의 성화에 있습니다. 안식일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공간에서 사물에 작용하는 중력의 법칙과 같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우리의 영적 생존에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진행자: 성경을 보면 안식일에 대한 언급과 동시에 공간적 거룩함인 성소(성전)에 대한 말씀도 많이 나옵니다. 특히 레위기 19장 30절과 26장 2절을 보면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경외하라"고 하여 시간과 공간의 거룩함을 동시에 말씀하십니다. 이 거룩함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만규 교수: 헤셸의 관점에서 거룩함의 우선순위는 '시간의 거룩함(안식일)'이 제일 먼저이며, 그다음이 '사람(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함, 마지막 셋째가 '공간(성소)'의 거룩함입니다. 공간은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으며 인간의 구별을 통해 거룩해지지만,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본질적으로 먼저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가 그의 저서 『신성한 것』(Das Heilige)에서 말한 거룩함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 느끼는 피조물 의식과 경외감'입니다. 속된 인간이 하나님을 대할 때 느끼는 경외함이며, 그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이 안식일의 가르침입니다. 헤셸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들이 최고의 덕으로 삼은 '선(Good)'을 언급하며, 이 선의 개념을 '거룩함(Holy)'의 수준으로 높여 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 위에 거룩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12장 14절에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처럼, 거룩함은 우리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진행자: 오 교수님,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과 안식일 계명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신 적이 있는데, 그 부분도 짧게 들려주십시오.
오만규 교수: 십계명의 제10계명은 "탐내지 말라"는 명령이 두 번 반복되어 강조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상 탐심은 결심만으로 쉽게 제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탐심을 다스릴 장치로 제4계명인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물질과 공간에 대한 집착과 탐심을 내려놓고, 대신 안식일이라는 '시간의 거룩함'을 사모하고 탐하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을 사모할 때 비로소 세상의 탐욕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영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또한 안식일에 부여된 핵심 개념은 '메누하'(Menuha, 안식/평안)입니다. 창조의 제7일에 하나님께서 메누하를 지으심으로 천지를 완성하셨습니다. 시편 23편의 "쉴 만한 물가"가 바로 이 메누하의 물가입니다. 아람어 성경 구절 중에는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표현 대신 "안식일을 탐하셨다"고 번역한 곳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고 탐하신 날이 바로 안식일이며, 이 안식일의 메누하가 모든 성도님의 삶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진행자: 예수님께서는 복음서에 기록된 이적 중 절반가량을 안식일에 행하셨습니다. 안식일의 치유 사건과 안식일의 본질적인 의미는 어떻게 맞닿아 있습니까?
오만규 교수: 헤셸의 성과 속을 구별하는 시각은 훌륭하지만, 자칫 성의 개념이 너무 까다로운 규칙이 되면 사람을 속박할 우려가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왜곡되게 이해하여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거룩함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생명을 살리고 선을 베푸는 실천이 안식일의 참된 정신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진행자: 예수님의 진술 중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하신 말씀의 뜻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오만규 교수: 신학적으로는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예배를 받으시는 대상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동시에 '인자(人子)'라는 단어를 보다 넓게 적용하면, 안식일은 본래 인간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제정된 날이며 인간이 그 날의 축복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신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안식일의 분포를 보면 구약의 에스겔서에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공교롭게도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을 자주 '인자야'라고 부르십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의사였던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에 안식일이 가장 많이 언급됩니다. 이는 안식일이 단순한 율법의 날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 치유,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1981년에 이 책이 번역되었을 당시 한국 개신교계에는 안식일에 대한 편견이 매우 강했습니다. 안식일을 이야기하면 율법주의나 특정 종파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 개신교 출판사인 성광문화사를 통해 이 책이 소개되고 미국의 신학 흐름이 전해지면서, 한국 개신교계 안에서도 안식일의 깊은 영성에 주목하고 편견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권의 명저가 가진 사상적 위력을 보여준 셈입니다.
진행자: 그렇습니다. 오 교수님이 40여 년 전에 번역하신 이 책이 여전히 우리에게 큰 올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짧은 생애 중 7분의 1을 구별하여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길잡이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어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누어 주신 오만규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메누하의 평안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핵심 요약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