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1) -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필적할만큼 인문사회 분야 도서 중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인류의 탄생부터 현재 AI의 출현까지 인류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었던 핵심적인 요인을 추적하며 우리의 현재적 위치와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전달한다. 몇 개의 글을 통해 <사피엔스>의 내용을 정리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지구에서 살고있는 ‘호모’ 종을 일컫는 말이다. 지구 상의 모든 인간은 동일한 종에서 유래하고 전파된 단일 인종이다. 학자들은 동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간의 이동은 유럽과 아시아로 이어졌고 이어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네시아아와 호주와 같은 해양 지역까지 인간이 거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인류 이전에 다른 종의 ‘호모’들이 지구상에 존재했다. 특히 ‘호모 사피엔스’와 동일한 시기에는 ‘네안데르탈인’이라 불리는 유사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차이가 조금 있는 인류가 있었다. 두 종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어느 순간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고 ‘호모 사피엔스’만 남게 된 것이다.
이런 생물학적 성공에는 어떤 요인이 작용했을까? 사피엔스는 어떤 동물보다도 육체적 한계가 많았고 힘도 약했다. 그들의 생존은 육식동물이 먹고 남은 뼈를 먹거나 야생의 것들을 채집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보잘 것 없고 중요하지 않은 생물의 종이 어떻게 점차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인류의 성공을 크게 3가지 혁명의 결과로 본다. 그것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다. 이 글에서는 오래된 원시 시대의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의 발생 그리고 의미와 영향을 살펴본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을 말한다. 사피엔스는 ‘언어’를 발견했고 그것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는 분명 직립이나 불의 사용과 같은 육체적, 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동반하였지만 실제적인 변화의 시작은 언어적 변화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인지혁명부터였다. 언어의 사용은 우리와 우리 세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더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사냥의 복잡성이 증가하였고 사회적 관계의 다양성이 확산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규모가 더 크고 응집력이 큰 집단을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어의 사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 즉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도 가져왔다. 전설, 신화, 신, 종교는 바로 인지혁명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존재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은 사피엔스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허구의 것’에 대한 믿음을 공유했을 때 성공적인 협력이 가능하게 했고 이러한 협력은 사회적 형태의 급속한 혁신을 이끌어내었다.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는 바로 이러한 ‘상상의 힘’이 가진 폭발적인 힘에 의해서 였다. 현재의 우리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피엔스의 삶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발견된 무덤에서의 뼈와 부장품을 통해 불완전하게 추정할 뿐이다. 오랜된 시간의 흔적은 ‘침묵의 커튼’으로 숨겨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섣부른 추정은 조심해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뼈와 석기가 결코 말해주지 않는 정보도 있다. 인접한 사피엔스 무리 간의 동맹이라든가, 그런 동맹을 축복하는 망자의 정령이라든가, 정령들의 축복을 얻기 위해 마을의 주술사에게 은밀히 건네는 상아구슬이 그렇다. 이런 침묵의 커튼은 수만년이 걸친 역사를 감추고 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전쟁과 혁명, 열광적인 종교 운동, 심원한 철학 이론, 빼어난 예술작품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원전 1만 2천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나타난 변화는 ‘농업’의 시작이었다. 아마도 농업은 우연하게 떨어진 낟알이 자라는 것을 보고 채집과는 다른 방식의 방법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농업의 시작은 분명 생산의 규모를 늘렸고 정착 생활 형태로 주거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농업의 시작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고 인류의 규모를 늘렸다는 점은 정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농업혁명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춘다. 농업혁명이 단위 토지 당 식량생산을 늘려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사실일지라도 사람들 개개인에게 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더 나은 식사와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일련의 개선이 합해졌지만, 개인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위계적인 계급적 질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아진 생활환경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탄생시켰으며 지배자와 엘리트를 출현시켰다.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엘리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농업혁명은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간의 괴리’를 가져온 것이다. 농업혁명이 가져온 삶은 결코 보통의 개인에게는 안락한 삶이 아니었다. 더 힘들고 더 착취당하는 삶의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학자들은 수렵채집인들의 삶이 더 나은 삶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문명 농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좋든 싫든 ‘농업혁명’은 사피엔스의 삶에 절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식량의 생산이 늘어나고 이주의 삶에서 정주의 삶으로 변화했으며 계급적 위계에 의해 엘리트와 평민의 구분이 나타나자 이러한 것들을 통합하고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삶의 형태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 중요해졌다. 작은 공동체는 점차 ‘국가’의 형태로 발전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사피엔스는 ‘상상과 가상의 것’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게 된다. 문명의 시작이자, 권력의 시작이며, 통제의 시작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상상의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첫댓글 -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인류의 진화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놀라운 지적 발달에 따른 것이다. 생각, 사고, 추측, 상상... 공동체, 민족, 국가, 사회... 이러한 모습을 하나로 집대성(?)한 유발 하라리의 해석과 통찰력은 표현력까지 더해져 인간 역사에 대한 베스트셀러의 탄생을 알렸다. 무언가 많이 부족한 면이 보이는 듯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하는 해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꽤 커다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