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폭포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평화에의 증언>(1957)
이 시는 고매한 정신의 속성과 영향을 폭포에 기대어 쓴 시이다.
이 시는 ‘폭포’에 대하여 쓴 것이 아니라 ‘고매한 정신’을 쓴 것이다. 이 시에서 나오는 폭포 물결의 속성은 ‘고매한 정신’의 속성이다. ‘폭포(瀑布)는 곧은 절벽(絶壁)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規定)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向)하여 떨어진다는 의미(意味)도 없이/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쉴사이없이 떨어진다’. 이러한 폭포의 떨어짐은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처럼’ ‘떨어’지는 것이다. 폭포를 통하여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은 ‘무서’워하지 않고 ‘규정(規定)할 수 없’고 ‘무엇을 향(向)하여’라는 인위적인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니며 ‘계절(季節)과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쉴사이없이’ 나아가는 속성을 지닌 것이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人家)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瀑布)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는 것은 폭포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음을 말하는 것 같지만 폭포가 내는 소리를 ‘곧은 소리를 내며’라고 한 것은 폭포가 아닌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에 대하여 말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폭포의 소리가 우렁찰 수 있으나 ‘곧은 소리’를 낼 수는 없다. ‘곧다’는 것은 ‘②마음이나 뜻이 흔들림 없이 바르다.’는 뜻으로 폭포가 낼 수 없는 소리이다.
이 구절은 ‘밤’을 ‘불의가 집권한 암울한 시대’의 관습적 상징으로 보면 이 구절은 누구도 자신을 들어낼 수 없는 암울한 시대에도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올바른 소리’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 ‘곧은 소리’는 단지 ‘고매(高邁)한 정신(精神)’ 혼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은 소리는 소리이’기 때문에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르는 속성이 있다. ‘곧은 소리’는 어두운 시대상을 고발하는 ‘시’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르다’는 ‘①말이나 행동 따위로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거나 오라고 하다. ⑦어떤 방향으로 따라오거나 동참하도록 유도하다.’이다. 그러므로 폭포의 ‘곧은 소리’는 ‘마음이나 뜻이 흔들림 없이 바’른 소리들을 불러 동참하도록 하여 보다 큰 소리를 이루는 속성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밤에 ‘인가’에서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에 빠져 있는 화자에게 들린 ‘곧은 소리’는 화자의 주의를 끌었을 것이고, 이에 유도되어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에 주의를 기울인 순간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폭포의 ‘물방울’처럼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은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 정신적인 큰 충격을 준다. 화자가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나타’는 ‘나태’를 말하고 ‘안정’은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태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을 모르는 상태로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에 빠져 있는 화자는 일상생활에 빠져 지금이 밤인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일반적인 국민을 말하는 것이다.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에서 ‘취-하다’는 ‘1. 어떤 기운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다. 2. 무엇에 마음이 쏠리어 넋을 빼앗기다’는 의미로 이 구절은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에 다시 정신이 흐려질 순간을 주지 않거나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에 마음이 쏠리어 넋을 빼앗길 순간을 주지 않거나 또는 이 둘 다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것이든 화자에게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음을 말한다.
화자는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라고 한다. ‘뒤집어 놓을 듯이’가 아닌 ‘놓은 듯이’이다. ‘놓을’은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행위이고 ‘놓은’은 이미 바라는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여기에 ‘듯이’가 붙으면 ‘짐작이나 추측의 뜻을 나타’낸다. 화자는 폭포로 상징된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이 자신에게 ‘취(醉)할 순간(瞬間)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듯이’가 붙었다는 것은 화자가 아직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의 ‘곧은 소리’에 완전히 동조되지 않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완전히 동조 되었으면 ‘뒤집어 놓고’라고 썼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자가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의 ‘곧은 소리’가 부르는 소리에 ‘곧은 소리’로 응답하지 않을 것은 아니다.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지는 거대한 정신 앞에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에 빠져 있던 화자가 갑작스런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여서 외부의 충격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의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는 ‘폭포’는 없다. 이러한 진술은 모순이다. 시에서 모순은 역설이다. 설명이 가능하다. 이 부분이 역설이라는 지적은 있었지만 설명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다. 그 이유는 이 시를 폭포를 노래한 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 1연에 나오는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을 시인이 폭포가 지닌 속성 중의 하나로 제시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폭포에 대하여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을 쓰려고 한 것이다.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가장 적합한 사물을 찾아서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려고 한 것이고 이 사물로 ‘폭포’를 선택한 것이다.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은 추상적인 것이고 그 개념을 뚜렷하게 규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무한히 넓고 큰 정신이다. 그러므로 ‘높이도 폭(幅)도 없이’는 ‘고매(高邁)한 정신(精神)’의 크기를 말한 것이다. 이를 폭포에 비유하여 ‘높이도 폭(幅)도 없이/ 떨어진다’고 진술함으로써 역설처럼 보인 것이다.
이 시는 고매한 정신의 속성을 폭포를 통하여 나타냈으며 이 정신은 암울한 시대상황에서 올바른 소리를 외쳐서 나타와 안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거대한 정신적 충격을 준다는 내용이다. 2005.08.19금 오후 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