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Antonio Stradivari, 1644년경 - 1737년 12월 18일)는 바이올린 장인이다. 그가 만든 악기들은 그의 라틴어 이름인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원래 나무 세공사였으나 바이올린 만드는 데 흥미를 느껴 열여덟 살 되던 해에 바이올린 제작사로 유명한 니콜로 아마티의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니콜로의 제자들 중에서 바이올린 제작 기술을 가장 열심히 배우는 제자였다.
각종 공구 다루는 법을 비롯해, 단풍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소리의 공명을 잘 받아들여 깨끗한 소리를 낸다는 것, 단풍나무 중에서도 오랫동안 물에 담갔다가 잘 말린 나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몸통의 길이가 36센티미터, 두께가 3센티미터일 때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는 것, f자 모양의 구멍은 균형이 잘 잡혀야한다는 것, 표면에 칠하는 니스의 배합 비율이 음질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 등을 하나하나 터득해나가면서 바이올린 장인으로서 기초를 튼튼히 쌓아갔다.
스무 살이 넘자 그도 니콜로의 다른 제자들처럼 바이올린을 혼자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 자기만의 확고한 원칙 하나를 정했다. “아무리 정성들여 만들었다 하더라도 좋은 소리가 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부숴버린다. 그런 바이올린에는 절대 내 이름을 넣어 팔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다른 제자들은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 바이올린을 싼 값에라도 팔았지만 그는 결코 팔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서른여섯 살 된 해에 안토니오도 자립하여 자기 작업실을 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여러 형태의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실험에 몰두했다. 인간의 목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자개, 상아, 흑단 등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그는 스승 니콜로 만큼 유명한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었다.
그는 젊은 날에 세운 원칙을 더 철저히 지켜나갔다. 눈이 어두워지고 손이 무뎌진 여든이 되었을 때에도 좋은 소리를 내지 않는 바이올린이 만들어지면 망설임 없이 부숴버렸다. 그는 1737년 90세가 넘어 사망할 때까지 그런 원칙을 지키며 1116개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지금 약 700여 개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직 아무도 그 소리의 신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세계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다.
그가 죽은 지 2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그가 만든 173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역사상 최고가인 29만 7250달러에 경매되었다. 그러나 그의 친구가 만든 바이올린은 1만 달러에 팔렸다.
자신의 본질을 지키는 힘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 언자나 자신이 서 있게 됩니다. 물질 앞에 서 있으면 내가 물질이 될 수밖에 없고, 영혼 앞에 서 있으면 나 자신을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평생 자신의 영혼 앞에 섬으로써 지금도 자신의 본질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혼을 팔고 나면 세상을 다 얻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출처 : 정호승 산문집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