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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지 제15장. 조선제의 유래
또 예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열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었다.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내니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지방 토산물을 가져와 바쳤다.
산악족들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족들은 생선과 조개를 바치며 빌었다.
“조제에 나아가 생선과 양을 희생으로 바치오니 오미의 피를 맑게 하여 창생의 허물을 그치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조선제朝鮮祭였다.
이때에 산악과 해양의 족속들이 생선과 고기를 많이 먹으므로 교역하는 물품들이 거의 포와 조개류와 가죽류였다.
그리하여 희생제를 지냄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하고 공에 보답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손가락을 피에 꽂아 생명을 되돌아보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에 보답하였다.
이는 희생물로 오미의 잘못을 갚고 허물 그치기를 바람이니 바로 육신을 지닌 괴로운 심경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매년 제를 지낼 때 물화가 폭주하므로 나루와 포구에 해시海市를 크게 열었다.
부정을 없애고 몸을 깨끗이 하여 지리를 살피며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가치와 양을 정하고 물건의 성질을 따져서 그 쓰임새를 밝혔다.
또 부도 팔택八澤의 모양으로 못을 파고 굽이쳐 흐르는 물 사이에서 굿하고 점을 치며 물질의 풍요를 바라는 의식을 행하면서 모여 잔치를 열었다.
모든 족속들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峰에서 오엽서실인 잣을 얻어 봉래해송蓬萊海松이라 이르고 오행五幸을 은혜롭게 얻어서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에 산업이 일어나 교역이 왕성해지므로 천하가 넉넉하였다.
[원문] 又設朝市於 澧陽交地之腹 設海市於八澤 每歲十月 行朝祭 四海諸族 皆以方物供進 山岳 우설조시어 예양교지지복 설해시어팔택 매세십월 행조제 사해제족 개이방물공진 산악
諸族 供之以鹿羊 海洋諸族 供之以魚蚧 乃頌曰 "朝祭供進 魚羊犧牲 五味血鮮 休咎蒼生" 제족 공지이녹양 해양제족 공지이어합 내송왈“조제공진 어양희생 오미혈선 휴구창생”
此謂之朝鮮祭 是時 山海諸族 多食魚肉 交易之物 擧皆包貝皮革之類故 乃行犧牲之祭 使 차위지조선제 시시 산악제족 다식어육 교역지물 거개포패피혁지류고 내행희생지제 사
人反省報功也 揷指于血 省察生命 注血于地 環報育功 此代物而償五味之過 願其休咎 卽 인반성보공야 삽지우혈 성찰생명 주혈우지 환보육공 차대물이상오미지과 원기휴구 즉
肉身苦衷之告白也 每歲祭時 物貨輻湊 廣開海市於津浦 除祓潔身 鑑于地理 行交易之法 육신고충지고백야 매세제시 물화폭주 광개해시어진포 제불결신 감우지리 행교역지법
定其値量 辨物性之本 明其利用 又象鑿符都八澤之形 報賽於曲水之間 會燕而行濟物之儀 정기치량 변물성지본 명기이용 우상착부도팔택지형 보새어곡수지간 회연이행제물지의
諸族 取五瑞之實於 蓬萊圓嶠之峰 卽栢子也 謂之蓬萊海松 惠得五幸而歸 自此四海興産 제족 취오서지실어 봉래원교지봉 즉백자야 위지봉래해송 혜득오행이귀 자차사해흥산
交易殷盛 天下裕足 교역은성 천하유족
[해설] 1. 조시 매년 10월에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조제朝祭를 지내기 위해 모인 것을 말한다. 조시朝市가 열린 곳은 예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지로 중국 섬서성 장안부근이다. 예澧는 물 이름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중의 하나로 꼽히는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禹貢所載隨山浚川之圖 1209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에는 예수澧水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중국 섬서성의 태백산 쪽에서 발원하여 장안을 감싸고돌아 황하로 흘러간다. 다른 하나는 호남성에 있는 숭산을 끼고 돌아 양자강가의 동정호로 흘러가는 물이다. 양陽은 한수漢水의 북쪽을 가리킨다. 한수는 섬서성 태백산 쪽에서 발원하여 호북성을 관통하여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다. 그러므로 한수의 북쪽을 흐르는 예수는 장안을 감싸고돌아 황하로 흘러가는 물임을 알 수 있다. 대청광여도(大淸廣輿圖 1603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에 예수와 황하가 만나는 곳에 조읍朝邑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 부근이 예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지로 조시를 연 곳으로 보인다. 이곳은 중국대륙의 중심이며 육상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한 환웅천왕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서 신시를 연 섬서성 태백산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2. 조제 매년 10월 섬서성 장안부근에 조시를 열고 조제朝祭를 지냈는데,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지방토산물을 가져와 바쳤다. 이것이 후일 조공朝貢으로 변한 듯하다. 단군조선이 대륙전체를 다스렸음을 알 수 있다. 조제는 인류가 낙원인 마고성을 상실하게 된‘오미의 화’를 반성하고 마고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간절한 의식이었다.
1) 매세십월每歲十月 행조제行朝祭 매년 10월에 조제를 지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10월을 상달이라고 부르며 1년 농사를 마감하고 수확한 곡식으로 감사하는 제천의식을 거행해왔다. 이는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으로 이어졌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예濊를 보면 “항상 시월에 절기행사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데, 이를 무천이라 한다” 고 하여 10월에 거행하는 제천행사가 아주 성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은 10월 3일을 개천절로 기념하고 있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천이란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ㆍ이화세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사건을 가리킨다. 조제를 환웅천왕의 도읍지인 섬서성 장안부근에서 연 것도 환웅천왕의 개천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부도지로부터 10월에 성대한 제천의식을 거행하는 이러한 풍속들이 단군임검의 조제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6월, 기원 직후 부족국가 시대 동예東濊의 제천풍속으로 알던 무천舞天 행사가 이보다 앞서 고조선에서 열렸다는 고문서 기록이 발견되어 부도지의 기록을 뒷받침하였다. 인천시립박물관 윤용구 박사는 “1907년 영국의 A. 스타인이 중국 감숙성 돈황현에서 반출해 간 돈황문서의 토원책부兎園策府에 지금은 전하지 않는 사서인 <위략>을 인용해 고조선에서 10월에 무천이 열렸고, 출정에 앞서 소를 잡아 그 발굽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출처 : 한국일보 2005-06-10 22:50)
2) 조제공진朝祭供進 어양희생魚羊犧牲 조제에 나아가 생선과 양을 희생물로 바쳤다. 산악족들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족들은 생선과 조개를 바쳤다. 조선의‘선鮮’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조제에 올리는 대표적인 희생물이 생선과 양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이 산악족과 해양족을 아우르는 거대한 나라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한자에서 제후들이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던 것을 조공朝貢,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조빙朝聘, 조선의 들을 나타내는 조야朝野가 천하를 의미하는 것 등을 보더라도 단군임검 당시에 조선이 대륙전체를 아우르는 천자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오미혈선五味血鮮 휴구창생休咎蒼生 조제에 나아가 생선과 양을 희생물로 바치오니 “오미의 피를 맑게 하여 창생의 허물을 그치게 하소서”하는 간절한 기도다. 처음에 인류는 지상낙원인 마고성에 살면서 품성이 순정하여 능히 조화를 알며, 지유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고 밝았으며 그 수명이 한량이 없었다. 그러나 포도를 맛보고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는 습관을 가짐으로서 사람들의 혈육이 거르지 않은 술처럼 탁해지고, 심기가 혹독하게 변하여 하늘 성품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수명은 짧아지고 죽을 때 천화遷化하지 못하여 썩게 되었다. 이것이‘오미의 화’다. 오미를 먹음으로 인하여 거르지 않은 술처럼 탁해진‘오미의 피’를 생선과 양 등의 희생물로 대속함으로써 다시 지상낙원인 마고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가 바로 조제였다.
3. 해시 매년 10월에 조제를 지낼 때 물화가 폭주하므로, 발해만과 황해 주변의 네 나루와 네 포구에 해시海市를 크게 열어 사해제족들이 서로 특산물을 교환하였다. 해시에서는 교역의 법을 정하여 시행하고, 굿하고 점을 치며, 물질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면서 잔치를 열고 모든 족속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시며 즐겼다.
4. 팔택 팔택八澤은 단군임검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홍익인간ㆍ이화세계의 터전으로 삼은 발해만과 황해 일대의 수상교통 요지에 만든 8개의 못이다.“팔택에 해시를 열었다.”는 구절과 “매년 제를 지낼 때 물화가 폭주하므로 나루와 포구에 해시를 크게 열었다.”는 구절을 통하여 바로 팔택에 사진사포를 설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제13장에서“네 나루와 네 포구는 천리간격으로 잇달아 동과 서로 빙 둘러 늘어섰다”고 하였다. 위의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에서 중국 동해안에 대륙택大陸澤, 뇌택雷澤, 대야택大野澤, 진택震澤 등 4개의 못이 있다. 이들 4개의 못은 황하 등의 물길이 자주 바뀌면서 위치도 시대별로 많은 변동을 보이는데, 천진에서 양자강까지 대략 천리 간격으로 배치하면 발해만 서쪽 4개의 못은 아래의 지도처럼 된다. 발해만의 동쪽인 한반도 쪽에는 고대지도가 없어서 고증하지 못했다. 다만 만주벌판과 통하는 요하하류, 압록강과 한강하류, 영산강 하류 등이 수상교통의 요지로 단군임검이 사진사포와 8택을 만든 목적과 부합된다. 이를 발해만 동쪽 4개의 못이 있는 지역으로 하면 부도지에서 묘사하는 사진사포와 8택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아래 지도처럼 표시할 수 있다. 또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에서 도이島夷, 래이萊夷, 우이隅夷, 회이淮夷 등 우리겨레인 구이九夷가 천진에서부터 양자강 아래지역까지 중국 동해안에 광범위하게 살았음이 표시되어 있다. 13장에서 “나루와 포구 사이에는 6부六部를 설치하여 모든 족속들이 거처하며 살게 하였다.”는 증언과 일치한다. 이는 발해만과 황해 일대가 단군임검의 터전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5. 봉래해송
잣을 말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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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도지>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단군조선의 핵심지역인 부도의 신시, 조시, 해시의 위치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존의 김은수님 해설서 등을 보면 부도의 신시를 섬서성 장안부근, 조시를 漢江 이남의 무산지역, 팔택을 양자강 유역으로 비정함으로써 부도지가 전하는 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신시를 섬서성 장안으로 파악한 문제점은 부도지 13장 댓글에서 언급하였습니다.
2. 조시의 위치와 관련하여 김은수님는 澧는 澧水이고, 陽은 漢水 이북을 가리킨다고 말하면서도 조시의 위치를 한수의 이남인 巫山부근으로 비정하여 앞 뒤가 맞지않는 해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3. 부도지는 팔택이 三海의 주변에 동과 서로 천리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고 했는데, 김은수 번역본은 팔택을 양자강 유역으로 비정하여 부도지 본문과 동떨어진 해석을 함으로써 동이족들이 중국 동해안을 주무대로 활동하였던 역사적 사실과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해석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