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국어
<표준어의 정의>
Bannie Park ・ 2020. 11. 2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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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표준어의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일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영어를 써서 표준어를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몇 해 전에 오페라를 보러 가서 프로그램북을 사려고 줄을 선 적이 있었다. 그때 바로 내 앞에 서있던 한 여성분이 무슨 영어 단어를 말하고 프로그램북을 사가셨다.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어서 그런 곤란한 상황을 겪을 일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놀랐던 것 같다. 미국식 영어 단어를 듣는 순간 "대박" 이라는 말부터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 영어 단어를 몇 번이나 되뇌이며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속으로는 가관이네 하면서). 내가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이렇게 한국어의 정체성을 해치는 사람들이다. 아직도 유투브에서 에어컨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미국에서는 에어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사람을 봤다. 오래 전부터 이런 말을 하는 무식한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한국에서 하는 말은 콩글리쉬이고 틀린 말이라면서 자꾸 한국어를 영어로 고쳐 쓰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말이다. 정말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외래어 표기법이 있고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맞게 표준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약속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에어컨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영어이기 때문에, 미국 사람이 말하는 것과 똑같이 말해야 한다? 이런 넌센스 같은 법칙이 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한국어의 절반은 한자어이고, 한자는 중국에서 왔다. 하지만 지금 쓰는 한자어에는 중국식 한자어보다 일본식 한자어가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비슷한 단어가 들릴 때가 많다. 다시 말하지만,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한자어를 보고 우리말이 틀렸다고 교정하려는 짓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중국어 전공자 중에서 그런 허튼 짓을 시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말이 되느냐는 말이다. 왜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이랑 똑같은 한자를 쓴다고 해서 똑같이 발음을 해야 한단 말인가. 우습지 않은가? 심지어 타일러조차도 한국어를 말하면서 미국식 영어 단어를 쓰지 않는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한국 사람처럼 말 잘하는 타일러라는 수식어는 있을 수 없었다. 타일러조차도 표준어를 사용하는데, 한국인이랍시고 한국어 발음과 표기법도 몰라서 쓰겠는가. 나는 사실 외국인보다 그런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유투버부터 제대로 한국어를 교육해주고 싶다. 일본 사람이 McDonald's를 마그도나르도라고 발음하게는 그렇게 웃긴가? 한국 사람이 McDonald's를 맥도날드라고 발음하는 게 이상한가? 그건 그냥 일본 사람이라서 당연한 거고,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다.
일본 사람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어쩔 수 없이 모국어에 길들여져서 발음에 제약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어떤 발음이든 발음은 비교의 영역이지 절대로 비하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외국 사람이 한국어 발음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제 <대한외국인>에서 어떤 외국인이 "다친 마늘"이라고 발음을 해서 정답을 외치고도 결국 정답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우리는 그 외국인이 "다진 마늘"을 발음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병신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본 사람도 한국 사람도 절대로 병신이 아니다. 그런데, 병신처럼 저런 걸로 말도 안되는 비하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 사람이 진짜로 어디가 제대로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에어컨을 어떻게 말하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지금 당장 알 필요도 없다. 반대로 에어컨이라는 단어를 언제부터 어떻게 왜 쓰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런 걸 알려주는 게 아니라 미국식 영어를 강요하는 사람을 만나면 꼭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다. "너는 영어를 무척 잘하니까, 연세대어학당에 가서 외국인들이랑 같이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겠구나"라고 말이다. 언젠가 영어가 한국어의 절반을 차지하는 날이 온다해도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처럼 말하는 날은 죽어도 오지 않을 테니까. 너가 매일 쓰는 외래어가 한국어 맞춤법에 맞는지 한 번이라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써라. 제발 좀 똑똑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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