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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옻나무입니다, 옻오르면 왜 긁게 되냐고요?
옻나무 겨울눈. 당진시 정미면 구은봉산. 2016. 3. 4
옻나무 새순. 당진시 남산. 2015. 4. 24
옻나무 열매. 당진시 정미면 구은봉산. 2015. 8. 10
옻나무 단풍. 세종시. 2015. 10. 22
옻나무. 대전시 동구 식장산생태공원. 2015. 11. 15
1. 나는 옻나무입니다
저는 옻나무입니다. 제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현생인류 중, ‘인간’ 중, ‘한국인’이라는 여러분들과 ‘지금’ 이야기하게 된 까닭을 먼저 말하겠습니다. 제가 속한 식물은 여러분들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보다 아주 나이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몇 초도 안 되는 과거에 ‘진화’라는 개념을 알아냈습니다. 저 옻나무도 현실적인 시간개념으로 볼 때 장구한 세월동안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생물의 관점에서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어 생존을 모색했습니다. 영양물질도 있을 테고, 방어물질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만들어내는 물질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지요. 제가 만들어낸 물질 중에서 인간 특히 한국인들에게 몸에 좋다는 물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낙엽활엽수라고 봄이 되면 새잎을 내고, 꽃을 피워,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트립니다. 새잎을 온전하게 키우기 위해 많은 물질이란 젖을 줍니다. 그런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일지는 몰라도, 무슨 이유에서 그리됐는지는 몰라도, 무엇이라도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상태에 놓인, 한국인의 아주 먼 조상의 한 사람이 우연히 제 새잎을 꺾어 먹게 됐습니다. 생으로 씹어 먹었을 수도 있고, 데쳐서 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 그 사건이 제게는, 아니 우리 옻나무들에게는 비극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내 새순을 먹은 그 사람, 평소 배가 냉해 설사도 자주 했는데, 저의 잎을 먹고는 상태가 아주 좋아진 것입니다. 한동안 보물처럼 아끼며 자기만 따먹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살펴보니 빌빌대던 이가 화색이 좋고 건강해졌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유를 모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살살 뒤따라가 보았더니 저를 꺾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염탐꾼도 그리 해 보았고, 우연의 일치인지 그 사람도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한 참 세월이 흘러 저의 새순은 한국인의 조상에게는 현대말로 치면 봄철 최고의 건강식이 돼버렸습니다. 여기다 저의 줄기를 잘라 닭과 함께 삶아 먹어보았더니 효과가 더욱 좋아진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우리 옻나무와 한국인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돼 지금도 여전합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더욱 극성스러울 정도입니다. 우리 옻나무가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 소문을 확대재생산하게 되면서,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옻나무만으로는 수요가 부족해진 것입니다. 이제 한국인들은 우리를 집단으로 ‘재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나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낸 물질이 하필 한국인의 몸에도 좋다는 사실이 알려져 저를 비롯한 옻나무들이 이렇게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우리라고 그저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식물이므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줄기에 가시를 만든다든지, 먹거나 만지면 부작용을 일으키는 물질, 이른바 독성물질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옻나무는 독성물질을 만들어 지니고 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했습니다. 즉 우리가 만든 독성물질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는 독이 됐으니까요. 약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독성물질을 무력화시켜 약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진화했고, 다른 이들은 그 진화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만나러, 제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빌린 이유는 어떤 한국인, 우리의 독성물질 때문에 고생하는 이의 질문, 즉 옻이 오르면 가려워 긁게 되고 그러면 상처가 생겨 보기 흉해지는데도 왜 자꾸만 긁게 되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 설명해주기 위함입니다. 물론 앞으로의 설명은 제 상상의 산물이므로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2.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우리 옻나무가 어쩌다 인간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 됐습니다. 다음백과 민속특산식물사전에 옻나무의 효능이 적혀있는데요. 대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하의 보약입니다. 정말 적힌 대로라면 이런 보약을 돌같이 보는 인간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효능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우리 옻나무에 그렇게 열광하나 봅니다.
* 허리 통증, 근육통, 어깨 결림, 멍들었을 때 어혈(나쁜 피)제거
* 항암 효과에 뛰어난 우루시올 50% 함유
* 숙취해소, 위장보호 효과
* 원기 회복과 정력 증진의 효과
* 속이 냉하거나 손발이 찬데 효과
* 장이 부실하여 설사가 잦은데 효과
* 현대병, 성인병 예방 차원의 보양음식
* 어혈과 적취를 풀고 혈액과 체액의 순환을 돕는 효과
* 만성질환의 치료와 기력을 활성화하는 효과
* 폐암, 위암세포, 생장억제기능 항암제보다 더 뛰어나 면역력이 강해져 탈모
* 구토 같은 부작용을 적게 하는 효과
한국인들은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을 자주 사용하데요. 스스로 공격하거나 방어할 수 없는 미물 굼벵이도 밟혀서 죽을 지경이 되면 몸부림칩니다. 그렇듯이 마음이 아무리 온순한 사람도 남에게 불이익을 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게 속뜻이라고 합니다. 인간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방어용 물질을 만들어 줄기와 가지, 잎에 골고루 저장했습니다. 그 화학물질을 먹거나 만지면 예상하지 못한, 평소와는 아주 다른, 살갗에 아주 괴로운 반응을 일으킵니다. 한국인들은 그런 증상을 ‘옻올랐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옻을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있는 나무’ 즉 ‘옻나무’로 불리게 됐습니다.
생물에게는 ‘면역’이란 기능이 있습니다. 어떤 생물이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해로운 물질이 침입하면 제거하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 이런 일련의 생리작용을 면역체계라고 합니다. 해로운 침입자(항원)가 들어오면 방어자(항체)가 나섭니다. 성공하면 방어자는 그 침입자를 기억하고 심지어 효과적인 방어방법(면역)까지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어자가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특정한 화학물질을 방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만지면 옻이 오르게 됩니다.
옻도 병이니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을 것입니다. 인간들은 인터넷이란 것을 만들어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더군요. 다음 카페 ‘산야초 약술’에 보니 ‘옻올랐을 때의 처방법’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나열했습니다. 우리 옻나무가 볼 때 옻이 오르면 무척 괴롭나 봅니다. 참으로 여러 가지로 옻을 치료하고 있네요. 끝에는 “칠해목, 까마귀밥여름나무가 역시 좋습니다. 나무와 잎 뿌리를 주전자에 한 줌 넣고 달여서 수시로 먹으면 쉽게 가라앉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濕布(습포)라는 말은 액체로 된 약이나 물을 헝겊에 묻혀 환부를 덮는다는 말입니다.
① 산초나무 잎을 달여 濕布한다. ② 찹쌀을 빻아서 환부에 붙인다. ③ 팽나무(느릅나무科)잎을 달인 물로 濕布한다. ④ 보리 짚을 태워서 잿물을 넣어 그것으로 닦아낸다. 실제로 분말을 물에 반죽하여 붙여도 좋다. ⑤ 옻오름에서 피부염을 발생시키는 것은 가다랭이를 쪼개어 쪄서 말린 포를 물에 넣고 아교가 될 때까지 진하게 끓여 마시면 좋다. ⑥ 게 즙을 바르면 좋다. ⑦ 도라지(길경)의 줄기 및 잎을 생으로 즙을 내어 붙이거나 말린 것은 물에 담가 즙을 내어서 붙인다. ⑧ 밤나무 잎을 물에 진하게 달여서 濕布한다. ⑨ 산초나무의 果皮를 달여서 가려운 부분을 씻어준다. 또는 줄기의 껍질, 잎, 열매 등을 끓여서 患部에 濕布한다. ⑩ 수양버들(버드나무)잎을 진하게 달여서 濕布한다. ⑪ 삼나무 잎을 달인 물로 환부를 닦아준다. ⑫ 쇠뜨기(筆頭菜)를 생즙을 내어 닦아주거나 달여서 씻어준다. ⑬ 털머위(菊花科)나 범의귀의 생잎과 줄기를 묶어서 즙을 내어 환부에 붙인다. ⑭ 부추의 생잎을 찧은 즙을 환부에 붙이거나 박하 잎을 달여서 환부를 씻어준다. ⑮ 대싸리의 열매를 넣고 달인 물로 濕布하거나 혹은 떨어진 마른 잎의 가루를 주머니에 넣고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꺼내어 濕布한다.
인간들이 이른바 ‘과학’이라는 부르는 연구방법을 발전시켜 옻오르게 하는 주성분을 찾아내 우루시올(urushiol)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리고 이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을 제거한, 우리들 옻과 닭을 주재료로 사용해 만든 ‘옻닭’이 좋기는 하나 겁나서 못 먹는 이들을 위한 상품도 내놓고 있습니다. 하여간 우리 옻이 한국인들에게 ‘몸에 좋긴 좋은가’ 봅니다.
3. 옻오르면 왜 자꾸만 긁게 될까
한국인들 중에 지극히 조심성 없는 사람을 제가 압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만든 제도인 초등학교 다닐 때 여러 차례 옻으로 고생하고, 성인이 돼서도 최근 해마다 옻으로 시달렸는데도 최근 또 옻이 올라 치료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옻이 오르면, 경험상 해로운줄 알면서도 왜 자꾸만 긁게 될까”라는 말을 자꾸 되뇌더군요. 그래서 저 옻나무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도 우리 조상님들이 물려준 유전자에 설계된 대로 살아가니 딱히 이것이 원인이라고 끄집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이럴 때 주로 나타내는 습성인 ‘상상’을 해봤습니다. 상상의 결과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연가시가 살아가는 방법을 먼저 보겠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인터넷 다음 백과 ‘과학향기’에 보면 연가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다음과 같습니다. “연가시의 알은 오직 육식곤충의 몸에서만 부화를 하고 기생을 하는데 곤충의 몸속에서 성장하다가 성충이 되면 곤충의 몸에서 빠져 나와 민물로 돌아온다. 성충이 되면 기생충에서 수생 곤충으로 탈바꿈하기 때문. 그런데 연가시는 물 밖 공기 중에 노출되면 금방 죽는다. 따라서 연가시는 기생했던 곤충의 신경을 자극해 곤충을 물가로 유인하고 더 나아가 물에 뛰어들게 만든다. 즉 기생했던 곤충이 물에 빠지면 그 사이 곤충의 몸에서 빠져 나와 물속에 알을 낳는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연가시는 기생했던 곤충의 신경을 자극해 곤충을 물가로 유인하고 더 나아가 물에 뛰어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도 무엇을 만들어내려면 그만큼 에너지를 사용해야합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우루시올이라는 성분이 굳이 필요 없다면 그것을 만들 에너지를 다른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루시올을 만들어내는 까닭은 우리 몸을 방어하기 위함입니다. 이왕 만들 것이면 효과가 크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도 우루시올을 만들어내면서 시행착오를 거쳤겠지요. 그 결과가 지금 옻오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을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옻오른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합니다. 적절하게 치료하지 않으면 살갗이 붓고 열이 나며 무척 가렵다고 합니다. 가려운 데를 긁으면 시원하지 않습니까?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긁습니다. 옻에 면역된 이는 아마 모를 것입니다. 긁으면 긁을수록, 세게 긁으면 세게 긁을수록 그 시원함이 극치에 달합니다. 살갗이 떨어져나갈 정도로 긁을 때도 있습니다. 그 시원함을 어떤 인간은 ‘쾌감’이라고도 말하더군요. 그렇게 긁고 나면 상태가 호전되는 게 아니라 더욱 악화됩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반복됩니다. 만약 인간의 얼굴 부위에 옻이 올라서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 인간의 관점에서 정말 보기 흉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한 인간이 다음에 부주의로 또 옻이 올랐다고 해서, 그 가려움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이런 현상은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부르더군요. 어쨌거나 우리는 그 우루시올이라는 물질이 유발하는 인간의 행동이 그렇게 나타나도록, 우리 조상이 물려준 유전자의 설계대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 옻나무의 관점에서 볼 때 우루시올에 감춰진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쾌감’이란 ‘미끼’입니다. 인간이 평상시에 살갗을 그렇게 긁으면, 긁지도 않겠지만, 고통만 느낄 것입니다. 옻이 올라 가려워 긁을 때 고통만을 느낀다면 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옻은 그저 그만큼에서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경고는 무의미하겠지요. 대신 고통보다는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성분을 만들어 섞은 것입니다. 그래야 흉한 몰골이 되고, 그만큼 괴로워지고, 그래야 그만큼 우리를 멀리하게 되고, 멀리한 만큼 우리는 그만큼 안전해지니까요.
4. 공존의 경계를 넘지 말아 주오
저는 지금 인간들 중에 한국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인간들보다 나이가 많아도 한참 많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저 옻나무가 한국인들이 말하는, 상대에 대하여 공경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문체 즉 경어체(敬語體)를 쓰는 이유를 말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이 우리 옻나무를 그렇게 괴롭히면 저주의 말을 퍼부어야하는데도 말입니다.
풀과 나무들 즉 식물들은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기방어수단이 별로 없습니다. 저 옻나무만 하더라고 그렇습니다. 봄에 많은 에너지를 들어 키운 새순을 따러 오는 동물이 오는데도 도망가지 못합니다. 어렵게 키운 새순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식물들은 내 몸의 일부가 없어져도 치명상이 되지 않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동물들이 진화시킨 통증 수용체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통증 수용체를 만들었다면 지구는 아수라장이 될 것입니다. 많은 세월동안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식물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우리 나름대로 강구한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대부분 우리의 생존을 위해 사용하고 일정부분 동물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 몸이 상하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들은 대개 5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시각과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말합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우리 식물에게는 인간들보다 훨씬 많은 감각 수용체가 있다는 사실이 속속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발표하면 대체로 그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감각 수용체를 발표하는 이들을 생물생리학자라고 부르더군요. 이런 과학자들이 말하는 감각 수용체로 우리 몸의 일부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대처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토끼가 풀을 뜯으면 뜯긴 풀은 급히 이웃 풀들에게 보내는 경고물질을 만들어 확산시킵니다. 이웃 풀이 그 물질에 함유된 아주 미세한 성분이 경고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식물도, 적어도 저 옻나무도 제 몸이 잘려나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대처를 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우루시올이고요.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식물로서의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일정부분 저를 동물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그래왔습니다. 문제는 제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저를 학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죽습니다. 제가 죽으면 여러분 한국인이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옻나무는 그만큼 줄 것입니다. 비단 저 옻나무만이 아닙니다. 모든 식물로 확대하면 결국 식물에 대한 학대는 인간에게 손해입니다. 지금껏 식물과 인간이 공존해왔듯이 그 정도로 저 옻나무를 대해달라는 목적으로 경어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인간 특히 옻을 좋아하시는 한국인 여러분! 부디 제 희망이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옻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