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새싹
김남숙 nasukim57@daum.net
석류나무에 싹이 텄다. 삼월에 묘목을 구해 심었는데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겨울잠을 자던 나무였다. 나무가 깨어나기를 바라며 잡초를 뽑고 땅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었다. 마음이 통한 걸까, 초록에 지쳐 단풍이 드는 이 가을에 기적처럼 싹이 튼 것이다.
가을 화단은 나른하고 쓸쓸하다. 봄부터 화사하게 밝혀 준 온갖 꽃들이 다 스러지고 이파리마저 말라 바스락거리고 있다. 그곳에서 보송보송하게 기지개를 켜는 석류나무 새싹은 어린아이의 손바닥처럼 야들야들해 보는 눈을 아리게 한다. 초록의 튼튼한 잎사귀가 되려면 얼마만큼의 햇볕이 더 필요한 걸까. 아직 한낮의 열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가을에 싹을 틔운 석류나무처럼 나도 늦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평생을 몸담았던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이들도 결혼해 집을 따나가자,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긴 세월 치열하게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내 작은 울타리 안으로 크고 작은 태풍이 몰려들었다. 강한 바람에 몸이 휘청거려도 나를 붙잡아주는 책 속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제 내 안의 태풍은 잦아들었으나 창밖에 누군가는 아직 찬바람 속에 서 있을 것만 같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속삭이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의 이야기들은 온통 엉킨 실타래 같았다. 오랫동안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분노와 슬픔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주민센터에서 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강의를 듣고, 합평을 통해 내 글도 점점 모양새를 갖추었다. 잘 보이고자 화려하게 쓰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단순한 무늬의 뜨개질을 하듯이 이야기를 엮어 보았다. 한편의 글이 완성되는 동안 겹겹이 엉켜있던 감정들이 걸러지면서, 나의 삶도 점점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부터 어쩌다 남편과 다투어도 전처럼 미운 마음이 오래가지 않는다. 툭하면 화내는 남편도 실은 너무 외롭다고 소리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타인의 속마음을 짚어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혼자 마당에서 풀을 뽑거나 천변을 산책하며, 내 안에 꿈틀대는 글감들과 대화를 나누는 날들이 신선하다. 등단하고 책을 발간한 선배들이 부럽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싹처럼 꿈을 꾸는 하루하루가 나는 참 근사하다.
연두색 가을 새싹은 채 한 주도 지나지 않아 제법 잎사귀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얼마나 햇볕이 그리웠으면 저런 여린 몸으로 메마른 줄기를 뚫고 나온 것일까. 곧 낙엽이 질 텐데 언제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을 것인가 하는 걱정은 내려놓기로 한다. 내 삶의 의미가 담긴 수필 몇 편이 세상에 나와 누군가의 마음을 적신 것처럼. 가을 새싹도 그 모습 그대로 자기 생을 완성해 가는 중이니까. 짧아진 가을 해도 꼬리를 길게 늘이고 한 줌의 햇살을 더 얹어주고 있다.
출처 동서문학 20(‘24.5.15.발행)
첫댓글 좋은 수필인 듯 싶어서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늦깎이 글쓰기하는 분들께 새싹을 틔우게 하는 희망글이네요.
언제ㅡ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어떻게ㅡ가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 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