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코트를 주름잡은 ‘농구 대통령’이 허재였다면 초록 그라운드를 사로잡았던 ‘축구 대통령’은 누굴까요? 바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입니다. 홍명보 선수는 MLS의 LA 갤럭시를 끝으로 25년 간의 선수생활을 접었습니다.
[은퇴 발표하는 홍명보]
홍명보는 지난 8일 은퇴 기자회견을 통해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월드컵 당시 사령탑 거스 히딩크 감독이 홍명보의 체력을 문제로 대표팀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입니다.
홍명보는 스스로 대표팀 탈락이 오히려 더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 자신의 마지막 투혼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한국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된 동기부여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축구 대표팀 세대교체 논쟁
홍명보의 은퇴 기자회견이 가슴에 새겨지는 이유는 최근 한국 대표팀의 문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4일 새벽에 벌어진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대 레바논전에서 시종일관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친 한국은 레바논과 1-1 무승부의 졸전을 펼쳤습니다.
[지친 표정으로 레바논 선수들과 인사하고 있는 대표팀]
이로 인해, 축구계 일각에선 자성의 목소리와 대대적인 대표팀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흔히 말하는 한국 축구의 고질적 습성인 “뻥축구’가 부활했다”, “중원의 리더 부재가 심각하다”는 식의 진단이 그것이죠. 이런 문제점 진단과 동시에 대안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데요. 대안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는 게 바로 ‘유명세 = 태극마크’라는 등식을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는 거죠.
이는 히딩크 감독이 홍명보를 대표팀에서 탈락시킴으로써 분발의 기회를 부여했듯, 월드컵 4강 신화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체하고 있는 한국대표팀 선수들에게 외부 충격요법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바로,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 엔트리 경쟁을 위한 세대교체를 지금부터 단행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야구에선 한 포지션에 복수의 경쟁자를 두고 상호 경쟁시켜 향상된 경기력을 필드로 분출시키는 시스템을 플래툰 시스템(Platoon System)이라고 하는데요.
바로 이런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 선수의 네임밸류에 의한 베스트 일레븐 선정이 아니라 오로지 실력만으로 검증된 ‘울트라’ 베스트 일레븐으로 대표팀 진영이 짜여져야 한다는 거죠. 이렇게 된다면, 선수 상호간의 경쟁과 발전을 통해 대표팀의 경기력은 상승하게 된다는 겁니다.
2002년 월드컵 멤버를 주축으로 하고 올림픽 대표팀의 선두주자들이 주전자리를 위협하는 도전과 응전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 데 현재 대표팀에서는 그런 내부경쟁이 활발치 않은 게 문제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어디선가 생명력을 듬뿍 함유한 물이 흘러와야 하는데요. 그 선두주자로 박주영(고려대)과 박규선(전북 현대)를 꼽고 싶습니다.
‘뻥축구’로 회귀하는 원인 – 일대일 돌파 능력 부족
이 두 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인 일대일 돌파 능력의 부재가 가장 큽니다. 2002 월드컵 당시엔 끊임없이 뛰는 지구력으로 상대의 빈 공간을 선점, 수비 포메이션을 무너뜨렸지만, 현재 대표팀엔 2002년 당시의 지구력엔 미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베스트 일레븐 전체의 지구력이 떨어지는 경우는 출중한 테크닉과 스피드를 겸비한 소수의 선수가 수비 포메이션의 균형을 깨는 충격이 필요한 거죠. 즉, 자신의 마크맨을 따돌리고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공격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되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폭발적인 스피드와 일대일 돌파능력을 겸비한 선수가 현재 대표팀에 긴급수혈되야 할 1순위들이죠.
세대교체의 키워드 - ‘제 2의 황선홍’ 박주영
흔히들 아시아 청소년대회에서 팀을 결승으로 이끌고 대회 MVP와 득점왕(6골)을 독식, 일본의 ‘괴물’ 히라야마 소타, ‘일본의 희망’ 모리모토 다카유키와의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둔 박주영을 ‘제 2의 황선홍’이라고 부릅니다. 즉, 황선홍 이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자리를 차지할 후보 0순위라는 거죠.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으로 볼 때 박주영의 가능성은 황선홍의 수준을 능가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황선홍이 정확한 위치선정과 탄력있는 공중 플레이를 주로 구사하는 타겟맨이었다면(30대 이후엔 섀도우 스트라이커로도 활약) 박주영은 스스로 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발빠른 스텝, 그리고 안정된 드리블링을 모두 지니고 있는 섀도우 스트라이커에 가깝다는 점이죠.
특히, 박주영에게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그의 발목의 유연성과 한 템포 빠른 스냅슛입니다. 박주영이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터트린 2개의 골은 그의 발목 유연성이 한국의 맨땅 축구에선 보기 힘든 수준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수비수의 태클이 들어오기 전에 폭발하는 짧고 간결한 스냅슛은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상대 수비진을 헤짚고 다니면서 슈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능력 또한 대표팀의 투톱 안정환-이동국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낫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공격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순간 스피드 또한 기존의 투톱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저(低) 중심’ 즉, 무게중심이 상체보다는 하체로 내려와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상대 수비수가 자신의 움직임을 사전 예상치 못하게 하는 필수 요건이죠. 즉, 낮은 무게중심을 지닌 선수는 순간적인 위치 이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상대 수비수와의 공간 점유 경쟁에서 한 템포 앞서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박주영이 이 경우죠.
다만, 한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은 그의 체격 조건(182cm)의 기대치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제공권 싸움입니다. 제공권 싸움에서 앞서기 위해선 상대 마크맨과의 몸싸움이 필수적인데 박주영은 이 부분에서 아직 미흡한 감이 없지 않죠. 바로 반 니스텔루이와 같은 원톱보다는 베르캄프나 라울과 같은 섀도우 스트라이커를 스스로 원하는 이유죠.
박주영을 지도한 변병주 청구고 감독은 박주영의 IQ가 150이나 될 정도로 경기를 읽고 스스로 풀어가는 지능형 플레이가 탁월하다고 밝힌 적이 있으며 이천수(누만시아)-최성국(울산 현대)를 지도한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두 명의 선배를 능가할 잠재력을 지닌 걸로 박주영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파워 넘치는 ‘윙백’ 박규선
한국 축구가 뻥축구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돌파력 부재입니다. 중원에서의 돌파가 안되므로 한번의 패스로 최전방 공격수에게 공격 기회를 부여하는 극도로 단순한 플레이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문제점을 풀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선수가 대인 돌파능력을 갖춘 선수의 존재죠. 바로 이 선수로부터 공격의 물꼬를 터 나가야 합니다. 올림픽대표팀의 우측 윙백을 맡고 있는 박규선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수비수답지 않은 개인기를 겸비, 상대 윙백과의 대결을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울체고 시절엔 공격수로 활약한 경험도 있습니다.
게다가, 박규선의 장점은 동작이 작지 않고 크다는 점이죠. 이는 아시아권보다는 유럽리그와 같은 상위 레벨의 팀을 상대할 때 절대 필요한 메리트죠. 박규선은 아시아권 선수 답지 않게 선이 굵은 플레이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규선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한 걸로 평가할 수 있는 거죠.
다만, 문제는 포지션 중복입니다. 현 대표팀의 우측 윙백은 송종국(페예노르트)입니다. 박규선과 겹치기 때문에 사실상 문제가 있는 거죠.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으로 송종국을 김두현(수원 삼성)이나 김정우(울산 현대)가 맡고 있는 볼란치로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요.
이 이유는 바로 현 대표팀의 문제가 바로 스피드 부족으로 인한 미드필드 싸움에서 상대팀을 제압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대표팀 내에서 공격과 수비를 조율, 템포 사커를 구사하고 미드필드에서의 스피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스피드와 테크닉, 그리고 경기를 읽는 눈을 가진 송종국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봅니다.
즉, 송종국을 볼란치로 기용하고 스피드와 돌파력이 뛰어난 박규선을 우측 윙백으로 기용하면 대표팀에 부족한 공격 파괴력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박규선의 문제는 크로스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과 아직 경기 전체를 읽을 수 있는 시야가 부족하다는 점인데요. 이는 지속적인 크로스 훈련을 통한 크로스의 정확도를 향상과 A매치의 경험 축적을 통해 보완해 나갈 수 있는 문제입니다.
2006 월드컵 대비 - 양박(兩朴) 중심의 세대교체 절실
현대 축구의 흐름인 압박축구에선 사실상 포지션의 경계가 허물어 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즉,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플레이어는 상황적응적인 관점에서 임기응변과 순간적인 포지션 적응력을 길러야만 하는 거죠.
이제 2006년 독일 월드컵도 1년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축구의 미래인 ‘양박(兩朴)’ 박주영과 박규선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을 펼칠 수 있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두 선수에게 ‘기회’를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 세계는 ‘축구 천재’ 웨인 루니(잉글랜드), 까를로스 테베스(아르헨티나), ‘신동’ 프레디 아두(미국)과 같은 신예 스트라이커로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루니는 17세 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으며 아두는 14세의 나이로 MLS 데뷔전을 치뤘고 독일 월드컵 출전이 확실합니다.
반면, 한국의 차세대 주자 박주영은 청소년대표의 꼬리표를 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대비해 세계 각국은 신예 스트라이커를 집중 양성하고 있는 반면, 한국 축구는 그들의 행보에 다소 뒤진 느낌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독일 월드컵을 박주영과 박규선, 이 두 선수와 이미 대표팀에 합류한 김동진과 같은 ‘젊은 피’를 보다 과감하게 수혈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