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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아사상의 정신치료적 의의
/ 한별정신병원 최 훈 동·신 성 웅
초록
이 글은 불교의 '비자아(非自我; anatta)' 교리를 심리치료적 측면에서 이해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저자는 가장 초기의 불교 정경(니카야스)을 검토하고 '자아가 아닌' 생각을 추출했다.
불교적 자아(또는 자아)는 최근의 심리학적 자아(또는 자아)와 같지 않다.
그것은 5 개의 집합체 ( ⁇ )로 구성된 단일체보다 오히려 체계적인 존재입니다.
'아나타'는 '자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처는 자아나 자아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아나타'에 대한 불교의 교리는 의존적 기원( ⁇ ; paticcasamuppada)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불교와 심리 치료는 믿음이 아니라 내성에 의해 고통으로부터 해방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정서적 통찰이 심리치료에서 행동과 성격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 참된 통찰도 그러하다.
'not-self'의 심리 치료적 중요성은 의식과 무의식의 순응의 인식과 소멸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심리치료적 분석은 불교에 도입될 수 있으며, 'paticcasamuppada'의 명상적 사색은 심리치료에 도입될 수 있다.
서 론
인간이 당연시하는‘나’라는 개념은 안전함과 불멸을 추 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러한 실체론적인 자아개념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사람이 붓다이다. 존재의 생성이 본 체로부터 유출(流出)된다거나 존재의 생성을 어떠한 본체 가 주재한다는 브라마니즘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붓다는 ‘나’라는 존재가 현상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본체 로서의 자아는 없다고 주장한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유일한 사상이 있다면 그 것은 연기법이다. 연기(緣起;paticcasamuppaˉda)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 생긴다는 뜻이다. 다양한 조건에 의존 되어 있다 하여 의존적 발생(dependent origination)이라 고도 한다. 서로 의존되어 있는 것으로서의 연기는 직선적 인과론(linear causality)보다 넓고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는 서양철학에서 실체가 환경과 섭동을 통해 변할 수 있고, 작용 자체가 존재에 대신하며 본질과 현상을 구 별하지 않는 관계론적 사고와 연관된다.1) 연기법은 여래 (如來)의 출현 여부와 관계없이 성립하는 진리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2)되는 보편적 진리로서, 불교의 기본 교리인 삼 법인, 사성제, 팔정도, 오온, 십이처 등이 모두 연기의 구조 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붓다 최초의 설법이자 깨달음 의 경험으로서 불교수행론의 중심에 서 있다. 사성제는 자 아의 현실태인 고성제(苦聖諦)와 자아의 성립조건인 집성 제(集聖諦), 무아의 증험인 멸성제(滅聖諦)와 무아의 체득 과정인 도성제(道聖諦)로 이루어진다. 사성제(苦集滅道)에 서 볼 수 있듯이 불교는 인간의 삶을 고통으로 파악하고 이 고통의 근원이 집착이고 집착의 근저에는 존재 또는 자아 라는 실체를 고집하는 무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어두운 무명의 상태(무지)에서 밝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불 교의 수행 과정은 마음의 미지의 영역인 무의식을 탐색하 고 이를 깨달아 가는 통찰정신치료에 비견할 수 있다.
불교의 방대한 사상 가운데 불교심리학이라 할만한 부 파불교의 구사론과 대승불교의 유식사상이 전개되기 전 초 기 불교경전에서는 어떻게 마음의 고통을 보고 있고 그 해 결책으로서 무아 사상이 갖는 정신치료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불교와 정신치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고통의 해결 방법에서는 접근 방식 이 전혀 다르다. 정신치료에서는 자아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반해, 불교는 고통의 원인으로서 집착의 근저에 존재 또 는 자아의 실체를 고집하는 잘못된 견해로서 유신견(有身 見;sakkaˉya dit••thi)을 말하고 있다. 즉 존재가 실재한다 는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 무아를 꿰뚫어 보아야 바른 견 해를 얻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깨달음 에 있어 자아라는 견해 또는 개념이야말로 가장 큰 장애로 보는 불교의‘무아’의 의미를 정신치료와 연관하여 검토 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며, 현대정신의학의 생물학적 관점 에서도 무아의 의미를 비교 고찰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고 생각된다.
방 법
1) 불교의 무아사상을 문헌해석학적 방법을 통해 살펴 보았다. 특히 초기 불교경전인 니까야를 집중 분석하여 무 아의 의미를 규명한 후, 이 무아사상이 후기 대승불교의 공사상으로 발전하는 관계를 대승경전(금강경, 반야심경 등)과 연결시켜 핵심만 살펴보았다. 본고에서 인용하는 니 까야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전재성 역주)에서 출판한『쌍 윳따니까야』 11권과『맛지마니까야』 5권이다. 부드럽지 못한 번역은 원전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필 자가 윤문하였다. 그밖에 인용된 한문 경전들은 다양한 번 역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문 원문을 게재하고 저자의 번 역을 붙였다.
2) 무아사상을 정신치료적 견지에서 이해하고 비교하기 위해 심리정신의학과 생물정신의학에서 보는 자아 및 자기 개념의 흐름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결 과
불교의 무아사상 인도 사상가들의 주된 관심사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현상 의 배후에 있는 실체의 탐구였다. 기원전 500년경을 중심 으로 성립한 우파니샤드 문헌에 이르면 현상의 배후에 있 는 통일적 원리로서 우주의 궁극 실재인 브라만(Brahman), 그리고 이것을 주체화한 아트만(Aˉtman)이 등장한 다.3) 인간 내부에는 자기보호와 자기보존이라는 두 가지 관념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자기보호를 위해서, 어린아이 가 부모에 의존하듯이, 인간은 신으로서 브라만을 창조하 고 그에게 보호와 안정을 위탁한다. 또한 인간은 자기보존 을 위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영혼인 아트만이라는 사상을 만들어냈다. 무지와 나약함과 두려움과 욕망 속에 서 인간은 자기를 위로할 두 가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불교는 모든 현상은 무상(無常)하므로 고통 이고 무아라는 논리 구조를 전개한다. 모든 사물의 보편적 특성인 <無常-苦-無我>를 불교에서는 삼법인(三法印)이 라 한다. 삼법인 가운데 무아는‘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로 서 술되는 연기적 무아이다. 영원히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 은 없다는 무상은 비단 인간 존재뿐 아니라 모든 존재에 적용되는 논리이다. 모든 고통은‘실체적 존재로서의 자기 있음’이라는 착각(無明)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무아 는 깨우쳐야 될 엄연한 현실이자 모든 고통과 불행을 치 유할 수 있는 수행 방법이 되기도 한다.
불교의 자아 개념
불교는 자아를 규정하면서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가지 존 재다발인 오온을 설정한다. 오온(五蘊;色·受·想·行· 識)은 존재의 물질적(신체적) 요소(色)와 정신적 요소(受 想行識)들의 무리를 일컫는다. 이 신체적·정신적 과정들 로서 오온을 자신으로 여기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하여 다 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범부는 물질(色)이 나이고 나의 것이 물질이고 나 가운데 물질이 있어 나는 물질이고 물질은 나의 것이 라고 속박되어 지낸다. 그런데 그 물질은 변하고 달라 진다. 변하므로 그에게 우울과 슬픔, 고통, 절망이 생겨 난다... (중략)... 의식(識)이 나이고 ... 의식이 나의것이 라고 속박되어... 절망이 생겨난다.4)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을 구성하는 물질(色)뿐만 아니라 정신적 과정인 느낌(受), 지각(想), 형성(行), 의식(識)을 각각 나이거나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이어서 이렇게 오온을 나라고 여기는 행위가 형성(行)이라고5) 설 명한다. 또 이 오온에 근거하여‘이것이 나이고 이것이 세 상이고 죽은 후에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게 존재할 것이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것6)이라고 한다
조건적 존재로서의 무아
따라서 자아의 실체 없음은 다섯 가지 존재다발(五蘊)의 분석과 관찰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이 세상에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조건지워지고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인간 존재는 오온 즉 다섯 가 지 존재다발로 이루어져 조건에 의해 생성되었다가 조건 에 의해 변하고 사라지는 것일 뿐, 불변의 실체인 자아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에 대한 개별적 실체를 부인하는 이러한 연기(緣起)의 이치는 몰리야 팍구나와 붓다의 문답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세존이시여, 누가 집착합니까?”,“그와 같은 질문은 옳지 않다. 나는‘누가 집착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누가 집착한다’고 말했다면‘세존이시여, 누가 집 착합니까’라는 질문은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세존이시여, 무엇을 조 건으로 집착이 생겨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이 올바 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해‘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 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난다’라고 답변하 는 것이 옳다.”7)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누가 집착합니까”라는 주체에 대한 질문은 실체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타 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도와 무아
불교의 무아는 자아가 있다-없다는 이분법적 개념이 아 니다. 불교는 항상 이분법적 대극 논리를 지양하고 양극 단을 피하는 중도를 설한다. 이 또한 존재론적 오류에서 벗어난 것으로 연기적 입장이다. 다음과 같은 대화에서 붓 다의 중도적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과거세에 있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을 까? 나는 과거세에 어떻게 지냈을까? …중략… 나는 미 래세에 무엇이 될까? …중략… 또는 현재도 나는 있는가? 나는 없는가? 나는 무엇인가? 이 존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 면‘나의 자아는 있다.’라는 견해나‘나의 자아는 없 다.’라는 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나의 이 자아는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서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체험하는데, 나의 자아는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는 견해가 생 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견해의 왜곡, 견해의 결박 이라고 부른다. 수행승들이여, 견해의 결박에 묶여 대부 분의 사람들은 태어남, 늙음, 죽음, 우울, 슬픔, 고통, 근 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8)
무아의 진정한 뜻은 유론(有論)-상주불변하는 자아가 있 다는 견해-도 아니고, 무론(無論)-자아가 없다는 견해도 아니다. 이것은 무아가 존재(存在)의 문제가 아니라 의 식(意識)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무아’를 논의할 때 많은 사람들이,‘내가 없다면 누가 윤회하는가? 누가 생각 하고 누가 행동하는가?’, 이렇게 회의에 빠지지만, 이것은 무아를 존재-비존재의 문제로 착각한 데서 연유한다.‘내 가 있다’,‘내가 없다’라는 존재-비존재의 분별은 오온이 조작해낸 허위의 자아의식이다. 붓다는 이 오온적 자아의 식을 모든 고통과 죽음, 윤회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중도 (中道), 곧 연기를 봄으로써 이 어둡고 이기적인 자아의식 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수행의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무상(無常)과 고(苦)인 무아
오온(色受想行識)으로서의 인간은 몸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色)와 마음의 작용인 정신적 요소(受想行識)의 총화 이다. 그러나 오온의 어느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물질적 요소나 정신적 과정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항 상 존재하는 별개의 실체로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 혜의 눈으로 깊이 성찰하면 물질(느낌·지각·형성·의식) 은 무상하고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 니라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괴롭고 괴 로운 것은 실체가 없으며 실체가 없으므로‘이것은 내 가 아니며 이것은 참으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 아가 아니다’. 이와같이 올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중략... 의식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으므 로 ...나의 자아가 아니다.9)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五蘊)에 대한 분석에 따르면, 인 간의 안이나 밖에 자아 또는 자기라는 상주하는 불멸의 본 질이 있다는 사상은 거짓된 신념이고, 단지 정신적인 투영 일 뿐이다. 무아의 전제 조건은 자아를 구성하는 정신적 신체적 요소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름 등불이 타오를 때에 기름도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심지도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불 꽃도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불빛도 무상하고 변화 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여, 그런데 어떤 사람이 기름 등 불이 타오를 때에 기름도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심 지도 무상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불꽃도 무상하고 변화하 는 것인데, 그 불빛만은 영원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 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10)
이와 같이 물질이나 정신이나 모두 변화한다. 따라서 이 것들을 변함 없는 나라고 믿는 것은 실제와 다르다. 주관 으로서 여섯 가지 내적인 감역(眼耳鼻舌身意)과 객관으로 서 여섯 가지 외적 감역(色聲香味觸法)이 무상한데, 내적 감역과 외적 감역을 조건으로 생기는 의식을 불빛처럼 영 원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상하므로 고라는 것은, 끊임 없이 변하고 있는 이러한 내적 외적 감각들을 탐착하면 우울과 고통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다음을 보자. “미가잘라여, 기분 좋고 즐겁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 고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고 애착의 대상이 되는, 시각에 의해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다. 만약에 수행승이 그것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탐착하면, 기뻐하고 찬양하고 탐착 하기 때문에 환락이 생겨난다.
미가잘라여, 환락이 생겨 나면 괴로움이 생겨난다고 나는 말한다.11) 감관에 의해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그것을 즐기고 집 착하게 되는데, 즐거움에 집착하면 괴로움에 이른다는 것 이다. 여기에서 즐거움마저 결국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불 교의 심오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실체 없음으로서의 무아
시각을 조건으로 형상을 조건으로 시각의식이 생겨나 서, 이 세 가지가 만나는 것이 접촉이고, 접촉을 조건으 로 느낌이 생겨난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난 다... 그런데 시각이 자아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형 상이 자아라고 해도 맞지 않다. 그 둘에 의해 생긴 시각 의식이 자아라고 해도 맞지 않다... 시각접촉도, 느낌도, 갈애도 자아라고 하면 맞지 않다... 청각도...소리도..., 후 각도... 냄새도..., 정신도... 의식도 자아가 아니다.12)
이 경은 시각 영역의 무실체성에 대한 설명과, 청각· 후각·미각·촉각·정신 영역의 무실체성에 대한 설명을 분석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 동하고 인식하는 각각의 나’라는 생각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체로서 자아와 그 각각의 대상’이 별 개로 존재한다는 신념이 바른 견해가 아니라는 것이 자아 의 실체를 부정하는 무아의 논리이다. 존재의 다발로서의 오온을 분석하면 결국 여섯 감역(육입;六入)에 도달한다. 육입은 눈·귀·코·혀·몸·정신의 여섯 감각기관에 의 해 인식된 세계라는 뜻으로‘육입처(六入處;salaˉyatana)’ 라고도 한다. 즉, 오온이 나라는 생각의 근거는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우리의 삶에 보고 듣 고 생각하는‘자아’가 존재한다는 신념이다. 그러므로‘거 짓된 나와 세계’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육입처’이다.13) 이러한 오온과 육입처의 무실체성은 공성(空性)을 특징으 로 하는데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물질(色)은 포말과 같고 느낌(受)은 물거품과 같고 지각(想)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行)은 파초(芭焦)와 같고 의식(識)은 환영과 같다.” 14)
포말, 물거품, 아지랑이, 파초, 환영 등은 실체 없음을 상 징하는데, 이는 오온(五蘊), 즉, 몸과 마음이 상호 의존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그 본질은 비어있다는 공성(空性:sun´n ´- ataˉ)을 뜻한다. 이것은 대승 반야부 대표 경전인 <금강경> 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모든 현상은 마치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 으니 마땅히 이렇게 보라)
사물들 속에 내재하는 실체는 없다는 것이 공성(空性) 이다. 자아 현상 또한 같은 논리에 의하여 관습적이고 상 호의존적인 나는 존재하지만 고정된 실체로서 나는 존재 하지 않는다
고뇌의 극복과 무아
불교의 깨달음이란 연기법(緣起法)을 여실히 보는 것이다. 연기법을 본다는 것은 이 세계의 모든 현상과 존재, 사물들 을 개별적인 고립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건적 관계 로 보는 것이다. 연기란 여러 조건과 원인에 의존해서 발생 한다는 뜻으로 조건적 발생 또는 의존적 발생이다. 연기의 법칙을 깊이 이해하면 무아-자아의 비어 있음-를 깨닫게 되어 자신과 타자의 상호 연관성을 경험하게 되고, 세계와 의 단절감이 사라지고 이기적 욕망과 공격성으로부터 자유 로워진다. 반야부 경전의 압권인 <반야심경>을 살펴보자.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 苦厄(관자재보살이 지혜의 수행을 깊이 하여 오온이 모 두 비어있음을 비추어보고 모든 고통과 장애로부터 자유 로워졌다.)
이 구절은 무아사상의 목표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오온, 즉 자아의 공성을 꿰뚫어볼 때 자아에 대한 착각이 사라 지고 모든 고통의 원인인 이기적인 갈망과 욕구가 멎게 된다는 것이다. 무아사상은 고유한 존재에 집착하는 것이 정신적 고뇌의 근원이라고 진단하고, 비어 있음을 자각하 는 공성의 체험은 고뇌의 근본적 치유의 길임을 함축한다.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 목표인 내적 평화와 자유의 실현, 즉 열반과 해탈에 이르는 길이 곧 무아사상인 것이다.
정신의학의 자아·자기 개념
발달심리학적으로 나라는 자아의식은 모태 시절과 출생 직후에는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체가 모태와 분리된 후 점점 나와 세계(대상)를 구분하기 시작하고 어느 정도 자립이 완성되는 5~6세에 이르러야 나를 분명하게 인식 하고, 죽음을 이해하고 자살을 생각하는 나이는 적어도 10 살이 지나야 되고, 자아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은 청소년 기이다. 이는 자아의식이 뇌를 비롯한 신경계의 발달 및 성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가 하면 분자생물학에 서의 자아는 세포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이 규명 한 최소 자아이다. 그러나 유전자나 단백질이 단독으로 작 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의 전기적 화학적 연결인 시 냅스 그리고 각종 신경전달물질과 그 수용체의 복잡한 정 보 네트워크를 형성하여야만 정신 기능들의 작용이 이루 어진다. 본 논문에서는 정신분석학, 자기심리학, 분석심리 학 등 심리학적 관점에서 자아, 자기 개념을 먼저 살펴보 고, 행동의 주체로서 뇌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 고 있는 생물학에서 바라보는 자아, 자기 개념도 아울러 살펴보기로 하겠다.
심리학적 관점
심리학에서는‘나’ 또는‘자기’를 인식하는 것의 의미 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자기 인식(self-awareness)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포함된다. 즉, 현실성과 통합성(reality and integrity;나는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며, 한 명의 사람이다), 연속성(continuity;나는 이전의 나와 동일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동일한 나로서 남을 것이 다), 경계성(boundary;나는 다른 사람 또는 외부의 사물 들과는 구별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활동의 주체성(activity;현재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은 바로 나이다) 등을 갖추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나 바람직한 자기 상에 비추어서 자신을 평가하는 자기 평가(self-evaluation)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규정하 는 자아 정체성(ego identity) 등이,‘자기’에 대한 일반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심리적인 의미의‘나’를 규정하기 위해 마음의 영역을 의식-전의식-무의식의 구조로 나누어 본 것이 Freud의 초기 이론이다. Freud는 이후 자아의 개념을 도입하여, 주 관적으로 경험하는 주체이면서 정신 안에서 작동하는 여 러 정신 기제를 조직화하는 정신 기능을 총체적으로 일컫 는 말로 자아를 정의하였다. 자아에 대한 개념이 변화하 면서 그 사람의 주관적 경험의 주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여러 정신 기제들을 총괄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강조되었 다.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이 발전하면서 자아와 자 기를 구분하여 사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고, 대체적으 로 자기는 그 사람, 특히 외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측면을 강조하였으며,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정신의 구성 요소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구조 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자아 안에 자기를 포함시켜서‘자 기 역할을 하는 자아(ego-as-self)’와‘시스템으로서 작 용하는 자아(ego-as-system)’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15)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에서는 자기를 이드, 자아, 초자아보다 더 상위의 정신 구조라고 보기도 하였다(Gedo, 1979; Kernberg, 1982; Klein, 1976; Kohut, 1977). 대상 관계 이론에서는 자기의 표상과 대상의 표상 사이의 내적인 관계를 중시했지만,
자기 심리학에서는 실제로 외 부의 누군가와의 관계가 중요하고 이를 통해 자기 통합 (self-cohesion)과 자기 존중감을 느끼게 된다고 보았다. Kohut는 초기에는 자기를 일종의 자기 표상(self-representation)에 불과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았으나, 후 기에는 주관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시행하며 여러 수 단을 이용하여 자기 존중감을 유지하려는 주동적 자기(initiative self)와, 이를 경험하는 경험적 자기(experiential self)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16) 또한 자기대상(self object)이라는 개념을 주장하였는데, 과장된 이미지(grandiose self)와 이상적인 부모상(idealized parental imago) 은 상상 속의 자기의 모습이‘대상’으로서 투영된 것(mirroring selfobject)이므로‘자기대상’이라는 것이다.
Stern은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자기에 대한 느낌17) (sense of self)이 존재하며 순서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 고 발달한다고 보았다. 일생의 첫 두 달 정도 되어서 이 제 막 생겨나는 자기(emergent self)는 주로 신체적인 욕구에 기초한 신체적인 자기 느낌이고, 핵심적으로 자기를 느끼는 느낌(core sense of self)은 두 달에서 육개월 사 이에 생기는데 대인관계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7개월에서 9개월 사이에 가장 발전된 개념인 주 관적인 자기 느낌(sense of subjective self)이 생기고, 언 어적 또는 범주적 자기 개념(verbal or categorical sense of self)은 15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생긴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구술(口述)적인 자기 느낌(narrative sense of self)은 3세에서 5세 사이에 경험되는데 이것은 훗날 정 신분석을 받을 때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기술하는 경우에 관찰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분석 심리학에서 자기(Selbst)라는 말은 의식계에 국한 된 자아(ego)와 달리 의식과 무의식을 구성하는 모든 콤 플렉스들과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은 존재이자, 의식과 무 의식을 통틀어 하나가 되는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한다. Jung 에게는, 자기란 전 인격의 통합체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 뿐 인지적으로 이해 되거나 한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월적인 개 념이다.18) 또한 자기는 궁극적으로는 정의되거나 기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생물학적 관점
세포 안에 존재하는 유전자와 단백질이 분자생물학이 규 명한 최소 자아이다. 유전자와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무수 한 신호와 명령을 주고받는 정보 네트워크를 이루어 생체 를 조절하고, 개체 발생의 방향은 유전체가 갖고 있는 유 전정보에 따라 결정된다. 세포들은 심지어는 암세포나 바 이러스도 유전자의 지시에 따른다. 그러나 유전자가 곧 나 라거나 영혼이라 할 수 없듯이, 나라는 정체는 어느 하나 의 절대 원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 이는 뇌과학적 측면에 서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감각 기관에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이전 경험 과 본능적 경향에 의해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기 능을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이라고 한다. 여기에 는 감시(monitoring), 정신적 여력의 분배(resources allocation), 과제 관리(task management), 갈등 해결(conflict resolution), 기억 재생(memory retrieval) 등이 포 함되는데, 이들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 영역이 관 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9) 그러나 전전두엽에 장애가 있는 환자라 할지라도‘나’라는 핵심적인 느낌은 유지하 고 있고, 일인칭 시점과 삼인칭 시점의 차이에 대한 연구20) 나‘나’와 관계된 낱말에 대한 연구, 그리고 자기를 인식 하는 뇌 영역(mirror system)이 전전두엽 이외에 두정엽 의 역할이 크다는 연구결과들을 보면21) 전두엽 이외의 영 역도 행동·경험 주체로서의‘나’에 참여함을 시사한다.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적 연속성을 지닌 자기 개념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전 두엽-측두엽-두정엽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이 참여하는 데, 현재의 자기와 관련된 감각적인 정보는 전내측 전전두 엽(anteromedial prefrontal cortex)에서 처리한다는 연 구보고22)도 있다.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는 독특한 감정· 사고·행동방식인 성격 또는 인격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선 천적인 기질(temperament)과 개인적인 특성(character) 이 있다. 한 사람의 기질은 그 행동을 하게 되는 동기와 행 동, 정서적인 측면과 적응적인 측면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Cloninger는 기질의 네 가지 차원을 열거 하였다. 그것은 위험 회피(harm avoidance), 새로운 것의 추구(novelty seeking), 보상에 대한 의존(reward dependence), 끈기(persistence) 등이다.23)
기질적 요소에 의한 일차적인 감정(primary affect)은 신피질이나 해마 등에 의해 추상화, 상징적인 해석, 분석 과 연역적인 논리 등으로 자기 자신과 외부 세계에 대한 견해를 갖게 된다. 그리고 기질적인 요소에 의한 육체적인 감정과 욕동 등을 인지적으로 조절하며 그 의미를 평가하 게 되는데, 이것이 어떤 유형을 가지고 비교적 일정하게 유 지될 때, 이것을 그 개인의 특성(character)이라고 한다. 이를 정신분석에서는 방어기제, 이차적 사고 등으로 해석 하기도 하였다. 신경계 회로의 패턴은 유전적으로 결정되 는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이미 존재하던 여러 신경접합 (시냅스)들이 무작위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실제로 적응 하는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시냅스가 형성되었 다가 환경적인 영향과 개인의 경험에 의해 적응에 필요한 시냅스만 선택적으로 살아남고 나머지 시냅스는 자연소실 (apoptosis)되는 것도 개인의 특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 다. 시냅스 전 세포가 시냅스 후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효 율이 증가한다는 Hebb의 시냅스 가소성(plasticity)은 후 천적인 경험에 의한 뇌 회로의 변화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성격적 특성은 유전적 요인으로는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며, 어떤 특성은 정량적으로 평가하 기조차 어렵다. Mischel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어떤 순간 의 사람의 행동 양상이나 생각, 동기, 감정 상태는 기질적 요소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24)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태아줄기세포(fetal stem cell)의 복제로 동일 개체가 생겨나도 원래 개체가 갖는 기억을 공 유할 수 없는데, 이 기억들은 신경세포와 시냅스, 이들을 아우르는 정보 네트워크에 저장되므로 이러한 연결주의 (connectivism)는 실체론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25) 이상에서 살펴본 심리정신의학이나 생물정신의학의 입 장은 모두 절대 자아가 존재한다거나 특정 부위가 실체적 인 자아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고 있기보다는, 역동적이 고 조건적인 자아의 개념으로 자아나 자기를 파악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서양 철학과 과학이 현상의 배후에 실재하는 실체 규명으로부터 출발하였고 이에 근거하여 실 체론적 입장을 취해 온 정신의학의 기존 관점이 서서히 변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고 찰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몸과 마음속에 변하지 않는 실체 로서‘나’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안전함과 영 원함을 갈망하여 고정적이고 영원한 자신(self)이라는 개 념을 고안해냈는데, 이는 의식적 산물이 아니라 무의식적 산물이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아라는 관념 은 이기심·갈애·집착의 원천이자, 증오·분노·속임수· 교만·우울·불안·공포 등 모든 고통의 원천이다. 따라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아의 관념이 실재와 일치하지 않는 환상이고 거짓된 신념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26) 즉, 무아는 자아의식 또는 자 아 개념을 소멸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교는 우리 자 신을 포함한 모든 현상이 그 자체 속에 내재하는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연기적 사실을 명확히 깨닫고 나면 집 착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되고,‘나’와‘나의 것’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파생된 번뇌들도 일어나 지 않게 되어,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인식하는 주관과 대상으로서의 객관이라는 주관-객관 구도와 함께 현상 안에 본체가 있다는 현상본체의 철학 구도를 갖고 있는데, 그동안 정신의 위치나 형태 등의 규명을 모색하여 심장과 뇌를 이야기해왔던 것 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실체론적 사고는 심지어 불교의 공(空)사상을 해 석할 때도 반복된다. 무르티(Murti)와 슈에이어(Schayer) 에 있어서‘공’이라는 용어는 칸트의 누메나(Noumena) 와 같이 우리의 경험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실재(實在) 를 지칭한다.‘공의 무상함’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이,‘공’ 이라는 낱말의 의미가 어떤 대상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사 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스트렝(Streng)이 지적한 것처럼 공사상(空思想)을 왜곡해 온 서양철학의 공통된 실 수이다.27)
그러나 현상은 있으나 본체는 없다는 연기적 성찰의 현 대적 전형은 정신의학, 특히 정신치료의 분석 과정에서 볼 수 있다. 현대 정신의학의 견해는 정신이 신체와 별개로 분 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신체의 총화로서의 정신, 좁 게 말하면 뇌의 기능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다양한 조건 (전기적 자극, 화학적 변화 등)에 따라 다양한 정신 상태가 일어날 뿐이다. 정신은 곧 신체적 정신에 다름 아니다. 심 리학적 관점 또한 정신의 주체로서 자아나 자기 개념을 도 입하여 심리기제(mechanism)를 설명하고 있지만, 불멸의 실체로 파악하는 고정된 자아라기보다 역동적인 자아이다. 게다가 자아는 심신기능 만으로 머물지 않고 사회적 조건 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한다. 서양철학에서, 의미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까르트 등은 실 체란 주어가 되지만 술어가 되지 않으며 존재적으로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28) 이런 의미에서 현대 정신의학의 심리학적 관점과 생물학적 관점에서 규 명되어온 자아는 실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화이트헤 드의 개념29)에 가깝다하겠다. 따라서 실체의 개념을 관계 론적으로 확장한다면 정신치료의 상호관계에서 역동적인 자아는 고정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인 간의 마음을 정태적으로 보지 않고 수많은 조건들에 의해 발생되고 상호 의존관계로 파악하는 불교의 연기론과 흡 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무아는 고정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 니라 불멸하고 연속성을 지닌 실체도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다.30)
불교는 모든 고통은 세상의 모든 것과 나 자신이 영원 하기를 기대하는 소망과 실제로 무상한 현실 사이에서 괴 리를 느끼기 때문에 비롯된다고 본다. 자기라는 개념, 즉 자아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느낌(受)들이 인격화하면 서 나타나는 것이다. 불교의 12연기에 의하면, 모든 느낌 들은 갈애(愛)에 의해 나의 것(取)으로 하는 소유화를 거 쳐‘내’가 되는(有) 인격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인간 존재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오온 현상에서 인격적인 부분인‘나’라는 관점을 없애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좋다 나쁘다는 판단 없이 있는 그대 로 현실을 받아들이면 변화와 성장, 치유가 자연스럽게 일 어난다. 이것은 곧 통찰명상(vipassanaˉ meditation;insight meditation)의 수행법이기도 하다. 불교의 근본 번 뇌로서 갈애는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욕동에 해당한다. 불교에서는 이런 갈애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을 목표로 한 다. 정신치료에서는 욕망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 지만, 프로이드가‘이드가 있던 곳에 자아가 있게 하라.’ 고 한 것처럼, 욕망 대신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자아가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은 양자가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무아란 단순히‘자아 없음’이 아니라 자아라고 믿는 실 체가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나라는 개념 안 에는 무수한 나의 속성들과 그것을 나의 것이라고 소유화 또는 동일시하는 인격화 과정이 내포되어 있는데, 무아는 바로 그러한 과정이나 현상을 나 또는 나의 것으로 개념 화시키는 것을 집착이라고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착은 강렬한 애착으로 모든 번뇌와 갈등의 원인과 조건 이 된다는 것인데 무아는 이 집착을 지우는 작업이다. 나 라는 견해를 지워내는 수행 작업은 지혜로 통찰하는 일이 며, 정서적으로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 감 을 의미한다. 즉, 인지적으로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나 왜 곡된 신념체계로부터 벗어남과 아울러, 좋고 싫어하는 감 정 상태로부터 벗어나 흔들림 없는 평정의 상태와 자비롭 고 긍정적인 마음 상태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 러므로‘무아’의 정신치료적 의미는 의식적·무의식적인 집착을 인지적으로 자각하고 정서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정신치료에서 정서적 통찰이 환자의 성격과 행동의 변 화를 일으키는 것은 불교에서 진정한 깨달음만이 고통의 소멸인 해탈로 인도하는 것과 유사하다. 불교나 정신치료 에 있어서 분석적 통찰은 단순한 지성적 이해에 머물지 않 는다. 정신치료에서는 지적 이해(intellectual insight)가 아닌 정서적 깨달음(emotional insight)만이 치료적 변화 를 가져온다. 불교도 관념적 이해(解悟)가 아닌 체험적 깨 달음(證悟)에 의해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추구하는 불교수행과 정신치료는 양자 모 두 분석적 통찰에 의한 깨달음 없이는 진정한 변화(해탈 또는 치료)도 없다는 데 일치하고 있다.
불교와 정신치료는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지만, 불교의 무아에 이르는 과정이 욕망의 소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정신치료를 뛰어 넘고 있으며, 자신이 의식하고 있지 못 하는 무의식을 통찰하는 수준은 자아의 방어기제나 저항, 전이와 역전이 등의 심리기전을 자세히 규명한 정신치료 가 보다 세밀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불교는 사념처에 대한 통찰 수행에 정신치료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고, 정신치료는 불교로부터 고통의 근원적 해결 방법으 로 제시되는 아집에 대한 연기적 성찰을 도입함으로써 정 신치료의 깊이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깨달음의 전제 조건인 정신적·신체적·언어적 행위를 청 정하게 하는 계행(戒行)도 정신치료적 견지에서 그 의미 를 깊이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고, 마음 집중(止)과 꿰 뚫어 봄(觀)을 특징으로 하는 명상(선) 수행의 도입도 정 신치료가 연구해야 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 론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기와 중도, 공으로 표현되는 무아는 자아 초월도 아니고 자아 없음도 아니다. 무아가 부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자아 속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본체(실체)가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진정으로 무아 를 깨달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집착과 분노 와 같은 나쁜 감정들이 소멸된다. 자성의 비어 있음을 깨 달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과 타자, 세계와의 상호 연관 성을 경험하게 되고 단절감도 사라진다.
무아의 가르침은 상상적 신념의 어둠을 몰아내고 지혜의 광명을 비쳐주는 것이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부 분을 통찰한다는 것은 지적인 작업과 정서적 체험 작업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은 불교와 정신치료의 일치된 주 장이다. 무아는 어떤 견해나 관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있 는 그대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정 신치료도 어떤 견해나 관점을 가지지 않고 정신적인 투사 나 왜곡 없이 사물을 봄으로써 성숙한 인격의 회복을 목 표로 한다. 이처럼 불교와 정신치료는 양자 모두 자기 자 신과 대상을 객관적이면서 중도적으로 봄으로써 치료적 변 화를 나타내어 마침내 고통의 해결에 이르게 한다.
이상을 간추리면,
1) 불교의 자아는 오온(五蘊;다섯가지 존재 다발)이 라는 신체적 정신적 통합체로서 연기적 자아이며, 실체적 자아가 아니라‘자아상’ 또는‘자아 개념’이다.
2) 정신적·육체적 과정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실체적 믿 음이 나에 대한 집착과 소유, 세계와의 분별을 낳아 대립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고 불교는 주장한다.
3) 자아의 부정 또는 소멸로서의 무아는 사물의 실제 모습을 자각하는 원리이자 고통과 갈등의 치유방법이다.
4) 무아의 정신치료적 의미는 의식적·무의식적 집착을 자각하고 소멸시키는 것으로서 인지적 통찰과 정서적 통 찰을 포함한다. 5) 불교의 연기적 무아는 현대정신의학의 관점과 어긋 나지 않는다.
중심 단어:불교·정신치료·무아·자아·자기·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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