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문(祭文)
장 학사 자목(張學士自牧)에게 드리는 제문/ 이규보(李奎報)
모월 모일에 양온승 동정(良醞丞同正) 이(李) 아무는 삼가 맑은 술의 제물을 갖춰 태복경 보문각 직학사(太僕卿寶文閣直學士) 장공(張公)의 영전에 제사 지내나이다. 장씨(張氏)의 집안은 예부터 이름을 떨쳤으니 공이 이 가세를 이어받아 꽃다운 후예로서 우뚝 뛰어나셨습니다. 시(詩)는 장고(張枯)에게서, 초서는 장지(張芝)에게서 얻었고, 필법은 장연국(張燕國)에게서, 문사(文辭)는 장구령(張九齡)에게서 얻었으니, 10년 동안 제고(制誥)를 맡아 임금의 모훈(謨訓)을 펼치는데, 그 내용이 법다워서 알차고 빛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아, 슬프도다. 벼슬이 겨우 시종(侍從)에 그쳐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지라, 이 때문에 은택이 백성들에 못 미치고 시대에 두루 쓰이지 못하여 사람들이 다 탄식했으니, 어찌 나만의 슬퍼할 일이겠습니까. 내가 옛날 약관(弱冠) 시절에 과감히 자부심을 가져 어떤 험한 길이 앞에 닥치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심지어 남의 시비를 논하되 말을 거침없이 마구 하니, 당시 조관이나 사부들이 눈을 흘겨 두려워하는가 하면, 혹시 그들의 집에 가더라도 못 들어오게 문득 문을 닫아버렸는데, 공은 처음 한 번 보고 전부터 친한 사람같이 대해 주셨습니다.
마루에 올라 말을 나누매 서로가 마음을 털어놓아 간격이 없는지라, 급히 가동(家童)을 시켜 술과 안주를 베풀어 놓고는, 담 너머로 어떤 손을 부르니 그는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었습니다. 피리를 불고 흥을 도와 여러 번 잔을 주고받으며 달빛 아래서 어깨를 붙잡고 옷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이로부터 계속 뵙게 되었는데 뵐 때마다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술에 취해 시를 읊고 저를 후생(後生)이라 해서 혐의를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저에게 시 3수(首)를 주셨는데, 시가 마치 구슬 소리가 쟁쟁하듯 울리었으니, 시가 이렇게 호탕하고 글씨 역시 능숙하셨습니다. 꽃 피는 봄, 잎 지는 가을, 눈 내리는 저녁, 구름 컴컴한 낮에 언제나 저를 불러 그윽한 근심을 씻지 않을 때가 없었으니, 마음을 서로 비추고 정신을 서로 통함이 공을 제쳐 놓고 그 누구에게 구하리요. 아, 슬프도다.
하늘이여 우리의 문수(文帥)를 빼앗아 갔으니 시단(詩壇)은 앞으로 누가 이끌어 갈꼬. 회포가 얽혀서 다하기 어렵고 하늘의 이치는 아득하기만 하구려. 길고 긴 이 세상에 노성(老成)한 이가 없으니 내 누구와 함께 의논하리요. 눈물을 닦으면서 통곡하는 소리를 공은 듣고 계십니까. 아마 공은 별이 되어 하늘에 계실 테지 어찌 이 세속에 묻혀 있으리요. 바라건대 왕림하셔서 나의 정성인 이 음식을 흠향하소서.
祭張學士自牧文
月日。良醞丞同正李某謹以淸酌之奠。祭于大僕卿寶文閣直學士張公之靈。張氏之族。自古尤披。公能世家。擢秀芳枝。得詩於枯난001。得草于芝。得燕國之茟。得九齡之辭。十年掌制。皇謨敷施。旣典而實。亦曄而猗。嗚呼。官唯止於侍從。位未踐於鼎司。所以澤不加於民。用不周於時。人所同嘆。寧獨予悲。我昔弱冠。果敢自負。蒺藜在前。直前不顧。論人是非。到口輒吐。搢紳士夫。橫目瞿瞿。雖蹈其門。輒鑰厥戶。公一見之。似昔有素。登堂與語。輸示肺腑。亟命家童。設酒與脯。隔墻喚客。其人能笙。吹笙佐歡。屢釂巨觥。月下扶掖。顚倒衣裳。自爾連謁。見輒忘形。與之賦詠。罔嫌後生。贈之三詩。玉鏘其鳴。詩旣奔放。草復縱橫。花開之春。葉脫之秋。雨雪之夕。雲陰幽幽。靡不呼我。陶寫幽憂。心照神契。捨公誰求。嗚呼哀哉。皇天兮奪我文帥。詩壇兮孰主其籌。糾纏兮難窮。天理兮悠悠。世無老成。吾誰與謀。抆淚痛哭。公尙聞不。想爲星兮列彼天。寧汨沒兮隨流。庶或枉駕。歆我信羞。
외구(外舅) 대부경(大府卿) 진공(晉公)에게 올리는 제문/ 이규보(李奎報)
장소(葬所)에서 올린 것이다.
모월 모일에 직한림(直翰林) 이(李) 아무는 돌아가신 외구(外舅) 대부경 진공(大府卿晉公)의 영전에 공경히 제사 지내나이다. 생각하건대, 존령께선 침묵 정숙하시어 말이 적으며, 빛이 바깥에 드러나지 않고 안으로 비치십니다. 그리고 보위(步緯 천문(天文)ㆍ역수(曆數) 등)에 밝은데도 스스로 표시하지 않고, 담기(膽氣)가 굳세어 그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아, 슬프도다. 지위가 구경(九卿)에 올랐으니 작은 벼슬이 아니었고, 나이가 70을 넘었으니 요사한 것이 아니시건만,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돌아가신 이것이 슬픈 일이옵니다. 한마디 말씀도 남기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아주 가셨으니 말입니다. 옛날 제가 일찍 부모를 잃어서 저를 가르칠 이가 없었는데, 공에게 온 뒤로부터 직접 훈계와 격려를 받아 능히 분발하여 사람이 되었으니, 이것은 공의 도와 주신 덕택이었습니다. 아 슬프도다.
옛날엔 부인을 맞이할 때 부인이 남편의 집으로 시집오게 되어, 그 부인의 집인 처가를 의뢰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장가갈 때 남자가 처가로 가게 되어 무릇 자기의 필요한 것을 다 처가에 의거하니 장인ㆍ장모의 은혜가 자기 부모와 같다 하겠습니다. 아 우리 악공(岳公)이시여, 특히 저를 돌보아 주심이 주비(周備) 하셨는데, 이제 버리고 가시니 저는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하리까. 어떻게 해서 명산 기슭에 터를 잡을꼬. 우선 여기에 흙 한 주먹을 덮어 영결합니다. 영혼이 계시거든 저의 소박한 제수를 흠향하소서.
祭外舅大府卿晉公文 葬所行
月日。直翰林李某。敬祭于亡舅大府卿晉公之靈。惟靈沈靜寘言。韜光內炤。明于步緯。不自表表。毅然膽氣。不露其徼。嗚呼哀哉。品登九卿。官不爲少。年餘七旬。壽不爲夭。其得暴疾。是所傷悼。一言莫宣。瞑目長逝。粤予早孤。無我敢敎。及來于公。親炙訓勵。能奮爲人。公助其翥。嗚呼哀哉。古者親迎。婦嬪于壻。其賴婦家。無有幾許。今則娶妻。男歸于女。凡己所須。婦家是據。姑舅之恩。有同怙恃。嗟嗟岳公。篤我周備。棄之而殂。吾將疇倚。何以厝兆名山之趾。落石一掩。永訣於此。猶有英魂。歆我薄祀。
아내에게 지내는 제문/ 이규보(李奎報)
남을 대신해 지었다.세 글자가 한 구이다.
나이 16에 나에게 시집왔는데, 그때 벌써 곤칙(壼則 내법(內法))이 익숙하고 부의(婦儀)가 아담한지라, 나의 지시하는 대로 잘 따랐고 시부모를 섬기되 조그마한 허물도 없었으며. 게으름 없이 제사를 정성껏 모셨고 모든 어려움과 험한 일을 함께 겪었네. 집이 조금 윤택해지자 명을 빌지 못해 문득 가 버리니 꽃이 홀연 졌구려. 하늘의 하시는 일이라 어찌할 도리 없도다. 창자가 찢어지고 눈물이 떨어져, 박주나마 한 잔 가득 채웠으니, 나의 정성인줄 알고 한번 마셔 주었으면 좋겠소. 아, 슬프도다.
祭妻文 代人行○三言
云云。年二八歸于我。壼則閑婦儀雅。予所指輒迎迓。事舅姑鮮微過。謹篜嘗無小惰。方艱難同坎坷。家稍潤命不假。奄爾徂花忽謝。天使然無可奈。腸已裂淚隨墮。酒旣薄盈一斝。諒吾誠一啜可。嗚呼哀哉
영혼문(迎魂文) / 이규보
네 글자가 한 구이다.
운운. 그 하늘에 있는가, 아니면 땅에 있는가. 맞이하는 대로 여기에 오는가. 우두커니 서서 기다립니다.
迎魂文 四言
云云。其在天耶。抑在地耶。邀斯至耶。尙延佇以俟。
송혼문(送魂文)/이규보
세 글자가 한 구이다.
운운. 영접하고 전송할 때 비록 다 보지는 못했으나, 온다 할 적엔 좀 위로가 되었는데, 간다 할 적엔 슬프기만 합니다.
送魂文 三言
云云。迎與餞 雖不面。面一作見。 曰戾止 稍慰意。曰去兮 悵莫如。
전주에서 용왕(龍王)에게 비를 비는 제문/이규보(李奎報)
한 나라의 가뭄은 조정에 있는 이들의 수치요, 한 지방의 가뭄은 고을을 지키는 자의 죄라. 생각하건대, 이 남방이 두 경계로 갈라졌으니, 나주(羅州)가 변두리를 둘렀고, 전주(全州)가 그 즈음을 연결했는데, 어찌 저 나주엔 비를 주고 우리 전주만 가물게 하는고. 하늘이 무슨 사(私)가 있어서 그러하랴.
자못 우리들이 정치를 잘못한 것이 그 원인이라, 하늘의 노염을 용서 받을 수 없거든 감히 용왕신에게 먼저 빌겠는가. 그러나 하늘의 못[澤]은 오직 용왕의 주도하는 바라, 용왕의 간청이라면 하늘이 어찌 듣지 않으랴. 이때에 비를 얻는 것은 관리의 효험이 아니고, 바로 용왕의 공입니다. 이해가 흉년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 그 보답의 제사가 풍부하지 않으리까.
全州祭龍王祈雨文
一國之旱。則在朝者羞。一方之旱。則守土者罪。惟此南方。岐爲二界。羅帶于陬。全襟其會。何彼境之得滋。獨吾偏之未漑。天豈有私而爲是歟。殆因吾輩之政穢。天怒不可干兮。敢先黷于厼神龍。天之澤惟龍所導。龍之請天豈不從。在斯時而得雨。非吏之效。而乃龍之功。歲不至於飢歉。何報祀之不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