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 박선애
처음으로 소를 뜯기러 간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우리 집은 소를 두 마리 키웠는데 큰 소는 일하고 저녁에 들어와 꼴이나 소죽을 먹었다. 작은 소는 산이나 들로 데리고 가서 풀을 먹여야 하는데, 농번기라 어린 나에게 그 일이 돌아왔던 것 같다. 가기 싫다고 울며 떼써도 어쩔 수 없었다. 산이 무서웠다. 여기저기 있는 묘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았다. 돌무더기가 아기 무덤이라고도 했다. 소 먹이는 일을 담당하는 할아버지를 둔 명희, 농사를 안 짓는 약방집 인아, 집에 소가 없는 순임이 등이 부러웠다.
4학년 때부터는 여름 방학 동안 소 뜯기는 일은 나와 내 동생이 거의 담당했다. 그 일은 아침과 오후 두 번 했다. 밤이 짧은 여름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할머니가 방에서 깨우면 눈이 안 떠져 마루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다시 눕곤 했다. 졸린 눈을 겨우 떠 소를 몰고 뒷산으로 간다. 나처럼 나온 친구 몇 명이 있다. 아침에는 잠깐 풀을 먹인 뒤에 고삐에 밧줄을 길게 연결해서 나무에 묶는다. 고삐가 걸릴 만한 잡목이 없어서 최대한 많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좋다. 오전에 소는 그 안에 있는 풀을 다 먹으면 배 깔고 엎드려 되새김질하며 우리를 기다린다.
오후 3시쯤 산에는 소 먹이러 온 아이들로 북적인다. 우리 동네는 동, 서, 북쪽 3면이 산이라 골라서 갔는데, 나는 항상 집 가까운 뒷산으로 갔다. 날마다 만나는 친구가 생겨서 이제는 소 뜯기는 일이 놀러 가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소를 풀어서 몰아 놓으면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풀을 먹는다. 우리는 널찍한 바위에 앉아 공기놀이나 풀싸움을 한다. 그것도 지루해지면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논다. 멋 내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아카시아 잎을 따낸 줄기로 머리카락을 감아서 파마한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자기만의 비밀 장소라고 소나무 위에 나뭇가지와 풀 등을 가지고 가지 사이를 연결해 앉을 만한 평평한 공간을 만드는 아이도 있었다. 주인 몰래 뽑아와 구워 먹던 풋보리와 콩은 달큼하고 구수했다.
그동안 소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었다. 성격에 따라 멀리 가지 않고 진득하게 풀을 뜯기도 하고, 이리저리 쏘다니기도 했다. 무얼 하든 우리 소가 어디에 있는지 지켜봐야 하는데 노는 데 정신이 팔리면 잊어버린다. 그럴 때 소는 우리의 눈을 피해 남의 밭에 들어가 농작물에 입을 대기도 한다. 고구마, 콩, 조 등이 심어진 밭을 헤집고 다니며 먹는 바람에 주인에게 걸려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어떤 분은 집으로 쫓아와 부모님한테 알렸다. 그러면 부모님은 사과하고 빨리 움이 올라오도록 거름을 해 주었다. 그런 날 야단맞는 것은 당연했다.
산그늘이 지면 놀던 것을 멈추고 소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집에 갈 시간이 된 걸 알고 소가 먼저 내려오기도 한다. 소가 앞서서 집을 잘 찾아간다. 소는 순하다. 가끔씩 뿔로 받거나 고집부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어린아이 말도 잘 듣는다. 산에다 놓을 때 고삐가 걸리는 것을 막으려고 남자애들은 양 뿔에 고삐를 감는다. 그래도 순하게 서서 하는 대로 있다. 코뚜레에 묶어 목줄 사이로 끼운 고삐로 오른쪽 배를 살살 치면서 “자라” 하면 왼쪽으로 간다. 살짝 당기면서 “오이라” 하면 오른쪽으로 간다. “이랴” 하고 고삐로 엉덩이라도 치면 앞으로 달린다.
다른 친구들 소는 다 있는데 우리 소만 없는 난감한 일도 가끔 생긴다. 나무에 가려 다른 것은 잘 보이지도 않는 그 넓은 산, 어디에 있는지 막막하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풍경 소리가 들려 쉽게 찾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찾지 못하면 같이 있어 주던 친구들도 집에 가 버린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욕을 먹더라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같이 찾으러 갈 양으로 집에 가면 소가 먼저 와 있을 때도 있다.
이제는 산에서 소 뜯기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수지 둑에 가득 찬 풀이나 길가에 띠풀이 남실거리는 것을 보면 ‘빡빡빡빡‘ 하는 소 풀 뜯는 소리가 마음으로 들린다. 그 큰 입으로 가득 움켜서 고개를 옆으로 틀면 그런 소리가 났다. 규칙적으로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덩달아 배가 부른 것 같았다. 그때는 소가 많아서 이렇게 좋은 풀이 없었다. 소를 데려온다면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집 가까운 공원에 나가면 강아지와 함께 나온 사람들이 태반이다. 남편은 진돗개를 좋아한다. 혈통 좋은 개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멀리까지도 찾아다닌다. 퇴직 후에는 시골에서 살면서 개를 키울 거라고 한다. 집안에서 키우자고 안 해서 다행이다. 나는 송아지를 키우고 싶다. 시골 우리 집에 가면 아직도 외양간이 있으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풀밭에서 송아지를 뜯기는 꿈에 부푼 내게 남편은 똥은 어떻게 치울 거냐고 한다. 미처 생각 못 했던 일이다. 예전에는 외양간에 짚을 깔아 줬다. 거기에 똥오줌을 싸면 다음 날 그 위에 새 짚을 또 넣어 준다. 그러다 많이 쌓이면 그걸 한꺼번에 치운다. 그 일을 양 짚(외양 짚) 낸다고 했는데 꽤 큰 일이었다. 그것을 한 곳에 쌓아 퇴비로 만들어 썼는데, 똥오줌에 전 짚을 끌어내는 일은 보기만 해도 힘들어 보였다. 엄두가 안 난다. 거기에 얼마만큼 자라면 코뚜레를 꿰어야 끌고 다닐 수 있을 텐데 이제 그 일을 해 줄 어른이 없다. 여물을 썰어서 먹이려면 짚도 있어야 하고, 작두로 써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풀만 뜯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많은 일이 그렇듯 부모님 아래서 내가 맡은 한 부분만 하는 것은 쉬웠는데, 내가 어른으로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송아지 키우는 것은 아무래도 꾸다 말 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