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리쿠, 취재를 정말 잘 한 것 같다.
콩쿠르가 얼마나 지리한 반복과 집중의 과정을 거치며 치러지는지 꿀벌과 천둥이란 신작이 열심히 웅변하고 있다. 나는 드라마 밀회의 대학 콩쿠르를 짤막하게나마 진행하는 장면이 떠올려진다. 그게 그런 함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 본문에 나온 콩쿠르만이 아니라 세계 유수의 콩쿠르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치며 치러진다. 콩쿠르란 장장 3주에 걸친 장기 레이스며 90명이 참가하는 1차 예선만도 닷새나 걸린다. 후에 벌어지는 나머지 본선의 15일도 참가자들이나 심사위원, 진행요원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치며 치러지게 된다.
그만큼 소설은 10여년의 취재과정을 거쳐 빛을 보게 된 작가 나름 회심의 역작이다. 손에 잡힐 듯 입체적으로 콩쿠르를 구현한 점을 특히 높이 사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세밀한 준비과정이 되레 글이 산으를 가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사건건 콩쿠르의 진면을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앞서다보면 자칫 이게 소설인지 현장출동인지 모호하게 되는 수도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꿀벌]은 오랜시간 취재한 다양한 정보들을 있어야 할 자리에 무리없이 잘 배치하고 있어 내러티브에 큰 무리는 없다.
그런데 [꿀벌]의 주조는 역시 아마추어 피아니즘의 헌정에 할애라 해얄 것 같다. 1차 예선을 통과한 24인의 매 연주가 호연에 호연, 전대미문식 명연이었던바 세상에 널린 요시가에를 능가하는 콩쿠르는 과연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예를 들다면 쇼팽 콩쿠르는 세계 최고의 피아노 콩쿠르 아닌가. 분명 요시가에 보다 몇 배는 더 힘이 실린 콩쿠르인바 온다 리쿠가 이미 요시가에 콩쿠르의 참여자들에게 열렬한 찬사에 찬사를 했기에 쇼팽 콩쿠르를 소재한 글을 쓴다면 아마 지구에서 쓰는 언어로는 이미 달리 표현할 길이 없고야 만다. 마치 고딩에 불과한 슬램덩크의 히어로들-강백호, 채지수, 서태웅이 30년 전 불스 트리오-르브론 제임스나 조던, 피펜 정도로 소환돼야 해야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말해 소설 [꿀벌]의 아마추어거나 준프로에 해당하는 등장인물 마사루, 아야, 가자마 진은 소설을 찢고 나온 현실 랑랑이나 아르헤리치, 호로비츠로 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가의 한계라기보다는 매사 주어진 과제에 제대로 '숙제'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충이나 타협점은 필요하다. 냉정하지 못하고 자기애에 빠지다보면 경청하기 버거울 정도의 표현들로 지면을 꽉꽉 채우기 마련이다.
떡진 표현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3악장이 시작되었다. 오케스트라가 경쾌한 멜로디를 얹어서 리드미컬한 도입부부터 속도를 올리려 한다......꽃 속에서 빛이 쏟아져 나온다.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세상에 빛을 던진다. 동그란 풍선 같은 그 빛은 하늘로 둥실웅실 올라간다. 무수한 빛이 차례로 솟아올라 하늘로 날아오른다. 와, 정맗 아름다워. 마사루는 그 광경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저건 무대 위일까? 666
관객들은 압도당해 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상은 이토록 음악으로 가득 차 있다. 가자마 진의 목소리가 아야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약속한 거야. 금관이, 목관이, 현알기가, 피아노가, 가자마 진이, 아야가, 관객들이, 홀이, 요시가에가 노래한다. 세상이, 세상이, 세상이 노래하고 있다. 흥분으로 가득한 음악이라는 환호성으로. 677
찾으려니 못 찾는데 이정도면 대체로 양호한 글이네. 떡진 글들아,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임? 왜 소설을 찢고나갔니?~~~
또 한 가지 특이점이라면,
주연들의 상보성과 대결의 부재다.
너새니얼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지금도 마사루의 우승을 믿고 있다. 그녀가 라이벌로 등장한 일이 마사루를 분발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콩쿠르 중에 그녀를 이토록 진화시킨 요인 중 하나가 마사루라는 사실도 분명했다. 전에는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던, 자기가 가르친 인물이 자기를 초월한 음악가가 되어 나타났으니 그 충격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상황에서 투지가 일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구경하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가자마 진이라는 신비한 소년의 존재도 있다. 에이덴 아야는 연주가로서는 마사루보다 그와 비슷하다. 자기와 닮은 타입, 게다가 그녀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은 아마도 처음이 아닐까?
천재는 자기와 동등하다고 인정한 존재가 아니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천재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너새니얼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가자마 진에게 충격을 받은 것처럼 에이덴 아야도 그의 존재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573
아야가 진에게 소위 말해 '느낀' 현장.
"으음,"
"뭔가 굉장했어."
"역시나 완전히 달라."
주위에서 감격에 겨워 쏟아내는 감탄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사루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기가 지금 서둘러 회장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것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다.......틀림없다. 그녀다. 그녀가, 나의 아짱이다. 마사루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만났다. 정말 만났다. 믿을 수가 없다. 이런 곳에서.
누구를 향해 외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사루는 머릿속으로 계속 외쳐댔다. 그러다 꼼짝도 않는 통로 쪽 관객들의 줄에 애가 타서 결국 "죄송합니다""파르동" 하고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인파를 헤치고 잽싸게 로비로 뛰쳐나갔다. 239
여긴 마사루가 아야의 연주에 뻑이 간 현장.
마사루, 아야, 가자마 3인은
허동택 트리오 내지 불스 트리오처럼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의 연주에 감동을 주고받으며 고무하고 위무하는 사이, 서로 자극받고 자극주며 일천한 자기 연주를 격려하고 가일층 등업시키는 아주 이상적인 매개 관계를 형성해놓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소설의 특징이자 재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 요소는 콩쿠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동인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꿀벌]의 특이점.
영묘한 기운을 타고난 가자마는 단순히 피아노 천재란 말로 표현하기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어린 약관의 천재라 하기엔 지나치게 원숙하고 달관한 능력치 때문이다.
"아, 거기요, 바닥이 휘어서 그래요. 아마 몇 년 전에 수리했을 거예요. 밑에 합판 같은 걸 대놨는지 거기만 무거워서 밀도가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자리에 서 있으면 소리가 깨끗하게 뻗어나가지 않아요." 튜바 연주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오노데라는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고 시키는 대로 지휘봉을 들었다. 단원들도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악기를 들었다...... 625
아까 연주했을 때도 큰 음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훨씬 더 크다. 게다가 가자마 진의 소리를 따라 아른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626
소년이 움직인 의자, 보면대, 악기, 설마 그런 소리까지 다 분간해냈단 말인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겨우 한 번 듣고? 곡은 이윽고 클라이맥스로 달려간다. 모두가 자기 연주에 놀라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연주하는 게 아니라 조종당하고 있다. 무의식중에 팔이 움직이고 있다. 627
연륜이나 경력 없이 사람이 이럴 수도 있을까 싶은 유형의 인물이다. 작가의 선택이지만 아이의 능력치는 내비두어도 표현에 있어 좀은 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는 했다. 패스.
결과적으로 피아노는 체조의 마루운동과 일맥한다고 느꼈다.
작가의 선택지
마루는 모든 선수들에게 성토의 장이다. 마루운동을 펼칠 때만큼은 이단평행봉에서의 낙마도, 한 뼘 도마에서의 낙마도 그 시름을 잃는다. 도마나 이단평행봉에 비해 더넓고 훈훈한 대지의 마루는 상대적으로 미스를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기에 그렇다.
피아노가 그렇다. 예를 들어 예선에선 제한시간 20분에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등 소나타 한 악장이나 복수의 악장을 포함하여 연주를 하라는 식의 제한을 두지만 이들은 오랜시간 예정된 곡만 주야장천 연습 하므로 자칫 '꽂'히기라도 하면 실수는커녕 피아노란 더넓은 대지에서 유감없는 연주를 펼치게 된다. 모두가 잘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어려운 거겠지만. 그럼에도 경합의 장이기에 우열을 가늠할 함의는 군데군데 축적해야 했지 않았을까 싶다. 12년의 노고와 결실을 위해.
왜 하필? 어떤 이유에서 90명의 참가자 중 가자마 진, 마사루, 아야가 주연으로 선택되었나? 어떤 근거로? 재밌게도 국가사업으로 예술 분야에 예산을 집중 투자하는 한국 참가자도 나온다. 그것도 여럿이. 그러나 거론되는 이름은 김수종과 또 한 명 조한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뛰어나다는데 왜 가자마 진, 마사루, 아야란 말인가? 어떤 근거로?
그것은 마지막에서 발현된다. 상호 보완자 3인이 상의 노른자를 휩쓸었기 때문.
일본인들은 왜 싸우지 않나? 비단 이번 소설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라면 당근 대결구도로 플롯을 이어갔을 것이라 본다. 그게 아니면 선의의 경쟁이라도 했어야 했다. 극이 좀더 달아오르도록.
첫댓글 꿀벌과 천둥에 관해서 호불호가 극명하던데...
홍익님은 피아노 연주하시나요?
초보에요
@홍익 어쨌든 할 순 있는거잖아요~
와와! 멋지네요
미리 신청곡요!
라벨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나
드뷔시 <달빛> 둘 중에 하나요~
@홍익 아니면 차이코프스키의 <사계>중에 어떤 곡도 좋아요
@레이 초보라니깐. 한국말 잘 몰라요? 잘함 해볼라고 피아노도 샀는데 진짜 안늠!
@홍익 그러니까, "미리"라고 써뒀잖아요.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실력이 늘거잖아요?
버럭하시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