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제24회 한국춤평론가상 : 인터뷰
작품상 <안녕> 이경은
“우리 무용계에서 귀한 허리세대 + 독립 + 여성 창작자”
심정민(춤평론), 춤저널, 2019(제35호), 54~57쪽
원래 무용계에서 허리세대라 하면, 말 그대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중심 역할을 해야 함에도 우리 무용계에서는 아래와 위 세대 사이에 낀 채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전락해 있다. 무용수로서는 은퇴를 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고 창작자로서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특히 허리세대의 독립 여성 창작자의 경우에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그 실제적인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 무용계에서 이경은이란 창작자가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작년에 초연한 후 올해 60분짜리 풀버전으로 완성한 <안녕>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층 높아진 창작적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73년생인 이경은은 어려서 체조경기를 보고 신체 움직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8세부터 발레를 통해 춤에 입문하였다.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무용학을 전공하였으며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6년 <흔들리는 마음>으로 데뷔한 후 한국현대무용협회 신인상 등을 받으면서 빠르게 주목받았다. 2002년에는 리케이댄스 LEE K. DANCE 를 창단하면서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활약을 펼쳐왔다.
처음 등장했을 때 이경은 무용수로서의 능력을 먼저 인정받았다. 당시 늘씬하고 예쁜 여성 무용수들 천지였던 무용계에서 숏커트에 탄탄한 근육질로 중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그녀는 차별화된 무용수였다. 춤실력은 더욱 놀라워서 왠만한 남성 무용수 이상의 에너지로 강렬한 동작을 수행하곤 하였다. 춤 역량이 출중한 개성 넘치는 무용수의 경우 솔로나 듀엣 등의 비교적 작은 창작에서 상당히 강점을 가지기 마련이다.
해외 무대에서도 이경은을 주목하곤 했다. 2000년 미국 뉴욕 댄스스페이스센터에서 해외연수를 하여 현재 기획자들에게 주목을 받았으며 2002년에는 프랑스 몽펠리에댄스페스티벌에서 주최하는 안무구성 워크숍에 초청받았다. 2004년에는 독일 국제솔로댄스페스티벌에서 로 1위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후 멕시코, 미국, 아프리카, 일본, 프랑스 등에 초청받아 축제와 극장에서 공연을 했으며 레지던스나 공동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2016년 프랑스 센 생드니 안무대회와 2017년 영국 에든버어 프린지 페스티벌에도 초청되어 해외 무대에서 높아진 그녀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이경은은 해외와 한국을 오가면서 의미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 <이것을 꿈이 아니다 : 산행>, 등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여러명이 등장하는 창작 작품에 있어서는 아직 미숙함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점차 창작자로서도 차근차근 성장해 갔다. 2018년 초연한 후 2019년에 풀버전으로 완성된 <안녕>은 이경은이 창작자로서 높은 고지로 올라서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작년 서울무용제 우수상과 안무상을 받은 이경은의 <안녕>은 2019년 창작산실 레퍼토리로 선정되어 10월25일~26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60분짜리 풀버전으로 완성되었다. 전 세계 예술의 화두인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하여 끊임없이 유랑하는 현대인의 여정에 대한 명료하고 성의있는 표명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전쟁과 분단, 이산과 난민, 이주와 비정착, 자아상실과 불안에 이르기까지 디아스포라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시선을 하나의 춤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잘 정돈되고 통제된 안무와 더불어 무대미술, 소품, 음악 등에서도 이러한 의도와 추구는 명료하게 드러난다. 아홉명의 남녀무용수는 차분하게 확고한 의미를 담은 움직임을 전개한다. 사람들 사이에 거리를 상징하는 기재로서 긴 막대는 마침내 짧게 잘려나가면서 사이를 좁힐 수 있게 한다.
2019년의 풀버전의 경우 보다 확장된 현대의 유랑자라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방대한 동시에 개인적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잘 짜여진 구성적 틀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는 아홉 명의 유랑자들의 움직임이 이를 명료하고 성의있게 그래내고 있다. 명료하고 성의있는 주제 표현이라든가 견고하면서도 다채롭게 펼쳐지는 안무는 이경은의 창작자로서 일정 고지로 완전히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춤] 2020년 2월호 수록 예정
사실, 이경은은 2018년 모든 지원사업에서 떨어져 다소 상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전화위복이 되었다. 자신의 창작자로서의 길과 창작력을 점검하면서 <안녕>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상당히 고무적이어서 <안녕>을 출품한 서울무용제에서 대상 없는 우수상과 안무상으로 응답되었다. 그리고 2019년 창작산실 레퍼토리 지원을 받아 60분짜리 <안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안녕>의 또 하나의 장점은 15분, 20분, 40분, 60분 버전을 가지고 있으며 어느 무대에서든 적응력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부산국제무용제의 해운대 야외무대에서도 온전한 작품력을 보여주었다.
이경은은 허리세대 독립 여성 창작자로 20여년간 활동하면서 자신의 창작적 역량을 의미있게 끌어 올리고 있다. 이경은이 <안녕>에서 보여준 창작적 성과는 한국춤평론가회의 2019 춤평론가상 작품상 수상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