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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누가복음16장1~13절
제목 :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를 통해 재물에 관한 태도를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재물을 주인 삼지 않고,
주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참된 사명을 주십니다.
1. 지혜로운 청지기 비유(1~8절)
1)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였습니다(1절)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어떤 부자. - 현장에 관리를 둔 대지주(大地主)이거나 혹은 당시 갈릴리에 흔하였던 부자지주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그에게 빚진 정도를 보아 그는 큰 부자임에 틀림없습니다. 한편 부자가 누구를 상징하는가 하는 것에는 많은 의견들이 있습니다.
알포드에 의하면 '그 부자'는 이 세상의 아들을,
메이어는 맘몬(돈의 신)을,
올스하우젠은 마귀를,
쉴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는 로마인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그가 누구를 가리키든 간에, 본 비유의 초점은
위기의 때를 맞아 지혜롭게 재물을 융통한 청지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청지기. - 이 말은 맡은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탁을 받은 '고용인'이나 '대리인'을 가리키는 광범위한 말입니다.
KJV에는 '간사'혹은 '급사','집사'의 뜻인 '스튜어드'로 번역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종일 수도 있으며(창 39:4-6),
또한 자유인으로서 주인과 고용 계약을 맺은 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와 같이 그들은 맡은 일의 성격상 재산을 관리하는 동안 부정(不正)을 저지를 가능성이 항상 있었습니다.
한편 이 청지기가 누구를 상징하는가 하는 것도 그의 주인인 '어떤 부자'에 관한 의견과도 같이 다양합니다.
알포드에 의하면 청지기는 모든 제자들 즉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편 바리새인 혹은 가룟 유다 심지어는 본디오 빌라도를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자'와 마찬가지로 이 '청지기' 또한 개별적으로 특정 사람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당시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본 비유와 같은 전체적 상황을 통해 당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관해 교훈하고자 하셨을 것으로짐작 됩니다.
낭비한다. - 헬라어 '디아스코르피조'는 돈이나 재물 등을 마구 탕진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아마 청지기는 횡령(橫領) 혹은 부실경영을 통해 주인의 재산을 축내었으리라 보여집니다.
예레미야서에 의하면 고대 근동사람들은 부기(簿記)나, 규정된 회계 감사등을 몰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유에 나오는 셈(account), 증서(statements) 등의 용어로 미루어 보아 그 당시에도 이미 장부(帳簿)등은 사용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주인이 그를 불러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합니다(2절).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이 말이 어찌 됨이냐. - 헬라어 '티 투토'에 대해서는
(1) '이것이 무슨 말인가?',
(2) '왜 내가 이것을 듣게 되었는가?'등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물음은 단순히 주인이 듣게 된 내용의 사실성 여부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미 들은 내용의 일부 혹은 전부를 사실로 여기고
'왜 그러한 잘못을 행했는가'라고 질책하는 말이기 때문에 (2)의 해석이 보다 정확한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 '보던 일'의 헬라어는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말씀', '이성', '사건' 등의 뜻도 있지만 본절에서는 '계산'(account)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청지기는 주인의 모든 재산을 다 관리할 뿐만 아니라 재산 목록과 장부 및 각종 문서를 작성, 보관하는 일까지 챗임 맡고 있는 관리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한편 '셈하다'의 뜻인 '아포디도미'는 단순히 계산하는 것만이 아니라 (결산해서) '넘겨주다', (증서를) '양도하다'는 의미까지도 내포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절 전체는 '네가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사무를 청산(淸算)하여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라'는 의미가 됩니다.
3) 청지기의 태도입니다(3~7절)
(1)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생각합니다(3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땅을 파자니. - '파다'의 원어 '스카프토'는 일반적으로 정신노동과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육체노동을 가리킵니다.
본절에서는 육체노동 중에서도 농사짓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어 먹자니. - '구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삶의 위기의식을 느낀 청지기의 독백은 무엇을 해도 절망적이기만한 급박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한편 그 청지기는 비록 부정을 저질렀지만 신속한 판단과 빈틈없는 사고의 소유자였습니다.
즉 자신의 처지와 능력을 파악하고,
즉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결단한 것입니다.
결국 이 같은 결단은 곧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항상 우리가 잊지 말고 생각해야 할 바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삶에 주어진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거나 스스로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의 삶을 자신 있고 결단력 있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특징짓는다면
그것은 결단(決斷)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해고된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2) 그리고 자기 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4절).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직분을 빼앗긴 후에. -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이 마치 자신의 것 인양 흥청망청 써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안 주인은 그를 해고하게 되고 그는 난처한 상황에서
살길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자신이 부여받은 힘과 지혜와 재물 등 모든 것들이
마치 자신의 것이며 자신의 능력에 의해 스스로 획득한 것 인양 여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에 불과하며 우리 인간들은 그것들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있습니다(창 1:28-31;욥 1:21). 창1:28~31=문화명령,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을 낭비라는 삶은 곧 이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교만한 소행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대하여 청지기 의식(stewardship)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9:13;마25:14,15; 고전 6:20;벧전 4:10).
*마25:14,15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15]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4:10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깊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시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우리의 몸, 우리의 영혼 그리고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 우리의 재능이나 우리의 시간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이 실상은 하나님의 소유이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맡아서 사용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것도 임시로 맡은 것뿐입니다.
언제 거두실는지 모릅니다.
청지기의 책임은 내가 맡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쓰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맡은 모든 것을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막14:36, 눅22:42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착하고 선한 청지기가 되십시오.
(3)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묻습니다(5절).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빚진 자.-여기서 주인과 빚진 자의 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의하면 빚진 자들은 아마도 토지수확의 일정량을 소작료로서 지불해야 될 소작인들이거나 또는 채무 증서를 쓰고 곡물을 받은 도매상인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지기나 빚진 자들이 이미 전에 서명한 '증서'를 위조(僞造)할 수 있었다고(6, 7절)한다면 아마도 이 빚진 자들은 청지기와만 계약을 맺은 것 같습니다.
(4) 증서의 양을 줄여 줍니다(6,7절)
① 기름 백 말을 오십 말로 쓰게 합니다(6절).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빚을 기록한 증서는 헌금이 아닌 물품으로 적혀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이자의 실제적인 양을 숨기기 위한 방편일 것입니다(W.L.Liefeld).
본문에서 빚진 자들의 빚진 수량은 대단히 많았는데 예컨대,
밀 백말은 약 백 에이커(acre)의 땅에서 산출되는 양이라고 합니다.
요세푸스(Josphus)에 의하면 '말'의 뜻인 헬라어 '바토스'는 대략 23리터(ℓ)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기름 백 말은 약2,300ℓ에 달합니다.
팔레스틴에서 감람나무 한그루의 평균 수확량은 올리브 열매로 120Kg,
기름으로는 25리터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름 백말은 감람나무 약 92그루의 소산에 해당하며,
돈으로 환산하는 경우에는 천 데나리온 정도가 됩니다.
본문의 청지기는 채무자들에 의해 작성된 임대차 계약서나 채무 증서 또는 약정서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증서를 채무자들로 하여금 자필로 다시 고쳐 쓰게 하거나, 새로 쓰게 함으로써 속임수가 들키지 않도록 했습니다.
한편, 율법에 의하면 이자를 받는 행위가 불법으로 되어 있으나(출 22:25;25:36, 37;신 15:7, 8;23:19, 20),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청지기 또한 주인 몰래 이자를 착복해 오다가 궁지에 몰리자 그 이자부분 만큼 탕감해줌으로써, 빚진 자에게 선심을 쓰는 한편 주인에게도 손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기지를 발휘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② 밀 백 석을 팔십으로 쓰게 합니다(7절)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밀 백 석. - '석'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로스'(히브리어 '코르'에서온 마른 곡식을 재는 단위)는 약 27,500Kg으로 42헥타아르 정도의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량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밀 1코르의 표준가격은 금 25 데나리온이며, 은화로는 25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밀 백 석 은 2,500데나리온에 해당됩니다.
팔십 - 기름을 백 말 정도 빌린자에게 그 절반인 오십 말로 공재(控除)해 준것에 비해 밀 백 석을 빚진 자에게는 5분의 1정도인 20석만을 공제해 주었는데 이는 두 물품의 상품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밀이 기름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빚진 자들이 가각 삭감 받은 수량 즉 기름 50말, 밀20석을 돈으로 환산하면 모두 각각 5백 데나리온 정도가 됩니다.
오백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금액은 1데나리온이 임금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노동자 한 사람이 약16개월 동안 일해야 벌수 있는 금액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채무자들이 직접 자필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청지기가 임대차 계약이나 채무자들과의 계약을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청지기는 채무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서를 작성하여 각각 절반에서 1/5정도로 부체를 탕감(蕩減)해 주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이러한 수준에서 빚을 탕감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빚을 탕감해준데 에는 그 채무자들이 청지기가 쫓겨난 후 그에게 받은 은혜로 인하여 그의 생계(livelihood)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저의가 숨어 있었습니다.
4)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습니다(8절).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자신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더욱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처리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더욱 지혜롭고,
단결이 잘 되며, 열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유대(紐帶) 관계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의 관계보다 더욱 긴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세상의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즉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서로 반목(反目)하며,
자신들만이 진리에 선 것 것처럼 타인을 멸시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본절의 목적은 불신자들이 지혜롭게 행한 것보다,
성도들은 더욱 지혜롭게 행하여야 한다는 데 있지,
결코 불신자들의 부정직과 사기술을 칭찬한 데 있지 않습니다(롬 2:6-8).
*롬2:6~8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2.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9~13절).
1)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 - 혹자는 이 말을 금욕주의적인 쿰란(Qumran)종파의 이원론과 같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 즉 인간의 육체를 비롯한 모든 물질을 악하다고 보는 관점에서 나온 히브리적 표현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부정직하게 얻은 재물'이라기 보다는 '하늘의 보화'에 반대되는 의미로서의 '세상의 재물'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겠습니다.
친구를 사귀라. - 재물이 선용(善用)되지 못하고 악용될 경우 황금만능 풍조가 만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의 재물일지라도 그것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재물을 선용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친구를 사귄다고 하는 말은 KJV에서는 '스스로 친구가 되게 하는것' (make to yourselves friends)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친구들'이라고 하는 말은 어떤 특정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물론, 누가 자신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구제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세상의 재물을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 중의 하나는
자신이 가진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요 친구가 되라고 하는 말인데 이는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길'(12:33;마 6:20)이 됩니다.
이 의미를 좀더 확대하면 '친구'는 곧 '하나님'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자들과 불우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것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2:33; 마 :20;19:21;25:31-46).
없어짙 때에.-세상의 재물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쌓아 두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부요함이 사라지고 남는 것이 전혀 없는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12:21).
*눅12:21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한편 '없어지다'는 일반적으로 부와 세상 재물이 다 소용없게 되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후반부의 '영원한 처소'를 단순히 재정적(財政的)인 면에서 안전한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성도의 영원한 고향인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해한데 따른 것입니다.
영원한 처소로. - 일반적으로 장막의 뜻인 '스케네'는 일시적인 거주지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영원한 것 즉 영구적인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서의 초월적인 영원한 나라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본절 전체의 의미는, 재물을 잘 사용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면 이 세상에 종말이 오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도,
하나님이 그를 잊지 않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께서 구원의 방법론으로 제시하신 것은 아닙니다.
2)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10~13절)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지극히 작은 것..,큰 것 - '지극히 작은'의 뜻인 헬라어 '엘라키스토스'는 '작은'의 뜻인 '미크로스'의 최상급으로,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이 잣은 것, 보잘것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큰', '많은'의 뜻인 폴뤼스는 원급 형용사이다.
이 지극히 작은 것과 큰 것의 또 다른 표현은
11절에 의하면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
12절에 의하면 남의 것과 너희의 것이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세상의 재물은 하늘의 보화 즉 복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선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부름으로써 주님은 우리에게 재물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을 경고(警告)하셨습니다.
충성되고 - 직역하면 '충성된 자가 된다'고 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충성된 자' 헬라어로 '피스토스'인데 이 말이 어원은 '믿다, 옳게 여기다'의 뜻인 '페이도'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작은 것 즉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는 자'란
재물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돈의 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주고받고 또 보관하는 등의 경제생활 영역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결국 본 주석에서는 비록 청지기의 죄가 간사한 것이긴 하지만 난관을 타개해 나가는 열심과 지혜만큼은 칭찬을 받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반면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이를 죄악 된 술수로 규정할 뿐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청지기와 같은 식으로 처신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이한 해석에 관해 정확 한 답을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전체적 문맥을 고려하건데 본 주석의 해석이 무난하리라 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비유 속 주인처럼 자신의 소유를 우리에게 맡기십니다(1,2절).
주인이 청지기에게 모든 소유를 맡길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옳지 않은 청지기’는 그 믿음을 저버립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하듯(15:13), 방탕한 청지기도 주인의 재산을 낭비합니다.
재물과 함께 신뢰도 낭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청지기로 부르셨고(창2:15), 때가 되면 우리가 하던 일을 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음에 믿음으로 보답했는지에 대한 ‘셈’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생명과 소유와 재물에 대해 물으실 때, 그분 앞에서 떳떳하게 주의 뜻대로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2) 주인이 바란 것은 재산이 아니라 ‘명예’입니다(9~12절).
그래서 허비하듯 보이지만 주인의 재물로 친구(소작인)를 사귄 청지기를 칭찬한 것입니다.
거짓으로 자신의 불충을 핑계하는 자가 아니라 주의 뜻을 따라 작은 일에도 충성한 자에게 주님은 영원한 생명과 사명을 약속하십니다.
나는 진정으로 내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하여, 늘 하나님이 쓰기 원하시는 곳을 묻습니까?
3) 재물과 겸하여 섬긴 하나님은 더 이상 창조주가 아니라 우상일 뿐입니다(13절).
하나님은 내가 재물을 주신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의지했는지 알아보실 것입니다.
여전히 내 소유가 생명과 안전과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는다면 나는 아직 주를 믿고 따르는 제자가 아닙니다.
돈이 군림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나의 삶을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종말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3~8절).
청지기는 주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셈할 날을 대비합니다.
비록 옳은 방법이 아니지만, 빚진 자들의 빚을 감해주며 그들을 친구로 삼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위기의 때를 대비할 만큼 지혜롭다면, ‘빛의 아들들’은 마지막 심판을 대비하는 데 더 지혜로워야 합니다.
실직을 대비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