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논문집에 발표된 논문을 읽다가 이상한 표현들을 발견하였다. 데카르트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이를 비판하면서 데카르트 사상이 환경파괴의 첫 원인처럼 혹은 정신적인 배경처럼 설명하였다. 데카르트에 대한 작은 저서를 쓴 적도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진실이라고 할 수 없는 대목들이었다. 해서 직접 데카르트 원저를 찾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오류와 탈-진실이 일상화 된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신적인 게으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논문의 내용의 일부들은 다음과 같았다.
표기해놓은 인용구는 아래와 같다.
위 인용 문헌에는 <데카르트의 동물기계론>이란 설명이 있고, 이 이론에 따라르면 데카르트는 동물이란 자동기계와 같고, 영혼도, 감각기능도 없는 기계처럼 생각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원전을 직접 읽어보면, 위 사실들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수 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것은 한번 유명하다는 사람이 자신의 책에 불확실한 썰을 풀어놓게 되면,
그 명성을 믿고, 연구자들이 직접 원전을 찾아보지 않고, 곧 바로 인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번을 거쳐서 책이나 논문에 왜곡된 사유를 진짜처럼 사용하다보면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 혹은 진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무지한 자가 되어 버린다.
어떤 철학자의 원전을 찾고 번역하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월하게 논문을 쓴다는 것은
집짓는 노동자들에 비유하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 천만한 부실공사가 된다.
학문적인 영역에서 특히 철학적인 영역에서 오류나 왜곡이 많은 이유는
대게 '정신적인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정신적으로 게으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거짓' 혹은 '비-진실'을
사실이나 진실처럼 말하게 된다.
구체적인 생산품을 제공하지 않고, 정신적인 양식을 제공하는 인문학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사실 보다는 오류를 진실 보다는 거짓을 제공하는 것이다.
과학이나 의학에서는 작은 하나의 오류도 즉각적으로 그 해악이나 부작용을 알 수있고 또 바로 교정할 수가 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이나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이나 철학에서는
그 해악이나 부작용이 즉각적이지 않고 또 쉽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하고 또 내적인 진정성이 담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너무 손십게 공부하고 연구하려다 보면 결국 '시장의 우상'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철학을 하는 사람은 항상 남의 말이나 글을 무조건 믿기 보다는
스스로 검정하고 확인하는 정신적 섬세함과 주체적 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원래 사상가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 그 원전의 말들을 무시하고
무슨 1세대 해석자들이나, 2세대 주석자들이니 하는 말은 매우 신중하게 경계해야 한다.
항상 내가 먼저 직접 확인한 이후에라야 이들을 참고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권위주의에 봉사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