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을 담당하는 교회
로마서 15:1-2 2022/08/07 성령강림 후 제9주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질문하나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부활의 증인 된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형성되게 되는 데
그 신앙공동체를 무엇이라고 부를까요?
‘교회’라고 부릅니다.(회당 시나고그)
두 번째 질문입니다.
그러면 ‘교회’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등장시키고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
고린도전서: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
고린도후서: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
갈라디아서: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
에베소서: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
빌립보서: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편지
골로새서: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
데살로니가후서: 데살사로니가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
교회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헬라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헬라 사람들이 아주 익숙하게 여겼던 단어 ‘에클레시아’로
새로운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에클레시아’라는 명칭이 보편화하게 됩니다.
‘에클레시아(교회)’
흔히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로 ‘에클레시아(교회)’를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고대 헬라(그리스) 사회에서 ‘에클레시아’란?
어떤 문제를 공동으로 토의하고
공동으로 결정하는 시민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민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헬라인의 ‘에클레시아(민회)’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새롭게 탄생한 신앙공동체의 모임
‘에클레시아(교회)’로 바꾸어 버린 것이지요.
그러면 바울은 왜
새롭게 탄생한 신앙공동체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지칭한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교회는 ‘에클레시아(민회)’처럼 ‘책임을 공유하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책임입니까?
‘부활의 증인’이라는 책임을 공유한 곳
그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①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시니라
②마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책임을 함께 공유하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교회는 하나의 결정을 내렸던 ‘에클레시아(민회)’처럼
하나의 신앙고백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유다 사마리아 소아시아 유럽 곳곳에 새로운 신앙공동체가 흩어져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하나의 믿음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나눌 수 없는
한 몸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롭게 탄생한 교회는
세상의 모임과 다른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교회는 세상의 모임과 달리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연약함)을 돌보아 주는 곳
그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모임의 가치입니다.
세상의 모임처럼 누가 큰지?
서로 저울질 하고 자랑 질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는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자매가 물질의 약점(연약함)이 있다고 합시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약점을 고발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돌보아 주어야합니다.
신체의 약점
정신의 약점
신앙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돌보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형제자매의 연약함(약점)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라는 새로운 신앙공동체의 첫 번째 마음가짐이자 태도입니다.
그러니 로마서 15장 1절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새겨봅시다.
(공)롬15:1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새로운 신앙공동체인 교회 안에 들어 온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이웃을 기쁘게 하고 이웃의 뜻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롬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공)15:2 우리는 저마다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그의 이익을 도모하여 믿음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이웃을 기쁘게 한다.’
‘이웃의 뜻을 존중한다.’
이 말은 이런 뜻이 숨어 있습니다.
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기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중심은 내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중심이라는 중력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은총인 십자가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야합니다.
자기를 내어주는 십자가의 힘입니다.
그래야 연약한 형제자매의 친구가 되겠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욕보이지 마시고
바울의 두 번째 권면처럼 이웃을 기쁘게 하고 이웃의 뜻을 존중하는
우리 장정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 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은 이런 것입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되,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어떤 유익, 어떤 덕을 이루어야 할까요?
세 가지인데 첫째 믿음의 행위
둘째 사랑의 수고
그리고 셋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작곡가인 이건용 선생님이 쓰셨던 ‘알토들의 존재감’이라는 칼럼의 일부분입니다. (중앙일보, ‘삶의 향기’ 꼭지, 2015년 8월 25일)
합창에서 알토 파트의 존재감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소프라노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우선 합창의 네 파트 중에서 제일 높은 성부를 부른다. 잘 들린다.
또 소프라노는 거의 항상 주선율을 맡는다(중략).
소프라노는 음악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 음악의 표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베이스는 합창에서 화음의 기초이자 기둥이다.
소프라노가 선율로서 합창을 리드한다면 베이스는 화성으로 음악의 틀을 만들어 준다. 다른 파트와는 움직이는 원리가 다소 다르다.
그래서인지 저음이지만 잘 들린다.
반면 알토는 이도 저도 아니다.
선율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화성 진행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성의 저음이어서 소리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알토는 우선 합창에 볼륨감을 준다.
스스로의 소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체의 합창 소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알토는 협력자다.
소프라노와 협력하여 이중의 선율 선을 만들기도 하고 테너와 협력하여 화성을 완성한다.
만일 색채감이 많은 화성을 사용하고 싶다면 내성, 특히 알토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토처럼 협력하며 남의 약점을 담당하는 장정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