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한 세기가 기울어 가던 1999년 7월, 탈옥 2년 6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힌 신창원이 노랑과 빨강과 녹색의 좁은 무늬들이 어지럽게 섞여진 티셔츠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에 탄성을 지르면서도, 범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범죄자는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서야한다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일상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신창원은 징역 22년 6월에 무기징역이 겹친,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사람이 되어 머나먼 청송 골짜기의 제2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신창원에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는 그의 형제들의 하소연에 따라 엄 변호사는 그를 접견하기 위하여 청송으로 갔었다고 한다.
청송교도소 교도관의 정중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 변호사는 신창원을 접견했다. 교도소의 깊숙한 방에서 세 명의 교도관에 둘러싸인 신창원이 엄 변호사에게 던진 첫마디는 지금 죽어가고 있으니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감방에 있으면 여기서 죽은 사람이 저에게 자꾸 나타나요. 목에 밧줄이 매였던 시꺼먼 자국을 하고는 저에게 다가 오는 거예요. 어떤 때는 그 사람들이 벽에서 나오기도 해요. 뒤에서 교도소 직원들이 따라 나와 그 죽은 사람의 목을 다시 조르는 거예요. 겁이 나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겠어요. 저 좀 살려주세요.”
3년 전, 법정에서 그는 차라리 사형에 처해 달라고 재판장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죽음과도 같은 고독과 바위처럼 무거운 어둠이 철창을 넘나들며 목을 죄어오는 감옥 안에서 조금씩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는 미리 보았던 것일까?
그 죽음은 견디기 어려운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영혼과 육신을 갉아 먹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목숨을 건 탈옥을 감행한 이유이며, 다시 그 감옥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이유였다.
그때 그는 엄 변호사에게 3년 후가 되면 자살을 하거나 미쳐버릴 거라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그 예언대로 그는 지금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그는 도주 중에도 계속 일기를 썼다. 그는 편지지 위에 강아지를 그리기도 했다. 도망 다니는 순간에도 강아지를 차 안에서 키웠다. 그 와중에서도, 그가 죽을 각오까지 하는 여자도 있었다. 그의 문학과 예술과 생명에 대한 갈구가 엿보이는 이 대목은, 그가 살아 있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자기확인이었으리라..
끊임없는 검거의 공포 속에서 그가 하루를 버티는 방법은 오직 자신이 살아있다는 믿음뿐이었다.
그 믿음이 사라진 지금, 그는 죽음의 냄새와 맛이 서서히 자신의 몸뚱이를 절여오는 고통 속에서 몸서리쳤을 것이다.
그는 신앙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를 잘 보살펴준 장로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진실된 믿음만 있다면 감옥 안에서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예수님이 너무 좋았고, 침례도 받고 싶어했다. 청송교도소로 온 후, 그는 목사를 초청해서 침례(사실은 물 뿌리는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서 그는 믿음을 거부하고 말았다. “목사님이 저에게 와서 바가지에 담은 물을 머리에 부었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앨랠랠래’라고 이상한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면서 따라 하라는 거예요. 방언을 하라는 거죠. 안나오는데 어떻게 따라 해요? 그 다음에 목사님은 팔로 제 머리통을 바닥에 밀어놓고 이상한 짓을 했어요. 뭐가 그래요? 저는 그걸 보고 기독교에 있으면 예수를 믿으면 미치겠구나 생각했어요.”
그가 그 안에서 진정으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 마음에 평강을 주는 종교의 편린이었을까? 아니면, 죽음을 초월하여 생명의 끈을 붙잡으려는 헛된 발버둥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참된 생명과 영혼의 자유를 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구원받지 못한 은사주의 목사에 의해서 박탈당한 사실이다.
아!~그 순간, 주님의 생명은 악명 높은 청송교도소에서 길을 얻지 못한 채 제한되었고, 이 희세의 탈옥수는 그의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을 놓쳐버린 것이다.
엄 변호사는 말한다. 감옥 안에서 신창원의 삶이 승리하면, 그것이 수만 명 수십만 명의 재소자들에게 삶의 등불이 될 수 있다고...
엄 변호사는 죄와 처절한 고통을 통해 진리를 알고 그 속에서 진주 같은 인격이 탄생하는 그런 사람을 꿈꾼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창원이 얻어야 하는 승리란 무엇일까?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꿋꿋하게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 흔해빠진 인간승리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죄의 본성과 악한 범죄로부터 완전히 돌이킨, 교화되고 변화된 새 인격으로의 전이(轉移)일까?
오늘날 교도소가 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은 사람들을 교도하는 것이다. 그곳은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절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용소이다.
그들은 결코 교화되지 않는다. 그들이 교화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감방 안에 나뒹굴어 다니는 성경책을 집어 드는 것뿐이다.
그곳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곳일지라도 그 책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죽기 전에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그곳에서 신창원이 죽지 않는 방법은 그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빼앗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