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 제21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범려(范蠡) / 이제현(李齊賢)
공을 논하면 어찌 강한 오나라를 쳐부순 것뿐이랴 / 論功豈啻破强吳
보다 더 오호에 조각배를 띄운 데 있다 / 最在扁舟泛五湖
서시를 배에 싣고 떠날 줄을 몰랐더라면 / 不解載將西子去
월나라 궁전에도 고소대가 또 하나 있었을 것이다 / 越宮還有一姑蘇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
范蠡
論功豈啻破強吳。最在扁舟泛五湖。不解載將西子去。越宮還有一姑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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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를 배에 싣고 떠날 줄을 몰랐더라면ㅡ>서시를 배에 싣고 떠나지 못했더라면
*解는 능히 와 같은 부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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益齋亂稿卷第三 / 詩 / 范蠡
論功豈啻破強吳。最在扁舟泛五湖。不解載將西子去。越宮還有一姑蘇。
익재난고 제3권 / 시(詩) / 범려(范蠡)
공을 논한다면 어찌 오 나라를 멸한 것뿐이랴 / 論功豈啻破强吳
작은 배 오호에 띄운 것 제일이라오 / 最在扁舟泛五湖
서자를 싣고 가지 않았더라면 / 不解載將西子去
월 나라 궁중에도 고소대(姑蘇臺) 하나 생겼으리 / 越宮還有一姑蘇
[주-D001] 범려(范蠡) : 춘추 시대 월(越)의 대부로 자는 소백(少伯). 임금 구천(句踐)을 도와 적국인 오(吳)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으로 서시(西施)라는 미인을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바치니, 부차는 서시에게 고혹되어 정치를 돌보지 않다가 끝내 월에게 망하였다. 범려는 공을 이룬 다음 공명을 피하여 변성명하고 오호(五湖 태호(太湖)를 가리킴)에 배를 띄워 망명하였는데, 이때 오궁(吳宮)에 있던 서시를 함께 데리고 갔다.《史記 越王世家》[주-D002] 서자(西子)를 …… 생겼으리 : 서자는 서시(西施)를 가리키며 고소대(姑蘇臺)는 오궁(吳宮)의 이름. 이 말은 범려가 만일 서시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면 월왕(越王)도 다시 서시를 총애하게 되어 오 나라처럼 망하게 되었으리라는 뜻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성우 (역) |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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惺所覆瓿稿卷之二十五○說部四 / 惺叟詩話
[李齊賢詩好者甚多]
人言崔猊山悉抹益齋詩卷。只留紙被生寒佛燈暗。沙彌一夜不鳴鍾。應嗔宿客開門早。要見庭前雪壓松。益齋大服以爲知音。此皆過辭也。益齋詩。好者甚多。如和烏棲曲及澠池等古詩。俱逼古。諸律亦洪亮。至於小作詠史如誰知鄴下荀文若。永愧遼東管幼安。如不解載將西子去。越宮還有一姑蘇。如劉郞自愛蠶叢國。故里虛生羽葆桑。此等作俱入窾發前人未發者。烏可小看。此亦英雄欺人。不可盡信。
[李齊賢輓婦翁詩]
益齋婦翁。卽菊齋公也。夫婦享年九十四。而夫人先公卒。公輓其婦翁詩一聯。姮娥相待廣寒殿。居士獨歸兜率天。權公喜佛。以樂天兜率比之。不妨姮娥竊藥。自古詩人例於煙火中。喩其仙去。用之於妻母。似亦不妥。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최예산(崔猊山) 이익재(益齋 익재는 이제현(李齊賢)의 호)의 시권(詩卷)을 모두 먹칠해 지우고 다만,
얇은 이불에 한기(寒氣) 나고 불등은 흐릿한데 / 紙被生寒佛燈暗
상좌중은 한밤 내내 종 울리지 않는구나 / 沙彌一夜不鳴鍾
아마도 자고 난 손 문을 일찍 열고 나서 / 應嗔宿客開門早
뜰 앞에 눈 덮인 솔 보라 할까 꺼렸겠지 / 要見庭前雪壓松
라는 시 하나를 남겨두자, 익재가 크게 탄복하며 지음(知音)으로 여겼다고 하나 이는 모두 과장된 이야기다. 익재의 시에는 좋은 작품이 매우 많으니 화오서곡(和烏棲曲)과 민지(澠池) 등의 고시(古詩)는 모두 옛 시에 핍근하고 여러 가지 율시(律詩)들 또한 홍량(洪亮)하다. 젊을 적에 지은 영사시(詠史時)의
뉘라서 알리오 업하의 순문약이 / 誰知鄴下荀文若
길이 요동의 관유안에 부끄러울 줄 / 永愧遼東管幼安
이라는 것이나, 또
서시(西施)를 배에 싣고 떠날 줄 몰랐다면 / 不解載將西子去
월궁에는 도리어 고소대(姑蘇臺) 하나가 있었으리 / 越宮還有一姑蘇
라는 작품과, 또
유랑이 잠총국만 사랑하고 있었다면 / 劉郞自愛蠶䕺國
옛 동리에 우보상은 부질없이 생겼을 걸 / 故里虛生羽葆桑
이라는 등의 작품들에 이르러서는 모두 규모에 들어맞고 이전 사람들이 미처 발(發)하지 못했던 것이니 어찌 낮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이는 역시 영웅이 범인을 무시한 격이라 다 믿을 수는 없다.
익재의 장인은 곧 국재공(菊齋公 국재는 권보(權溥)의 호)인데 부부가 함께 94세까지 살았으나 부인이 공보다 먼저 죽었다. 익재공이 장인을 애도한 만시(挽詩) 한 연(聯)에
항아는 광한전에 님 오시길 기다리나 / 姮娥相待廣寒殿
거사는 다만 홀로 도솔천에 돌아가네 / 居士獨歸兜率天
라고 했다. 권공(權公)이 부처를 좋아했기에 낙천도솔(樂天兜率)에 비유한 것은 무방하겠으나, 항아가 약을 훔친 것은 자고로 시인들이 속세로부터 선계(仙界)로 올라간 것을 비유함이 상례였는데, 이를 장모에게 쓴 것은 온당치 못할 듯하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학성 (역) | 1984
[주-D003] 최예산(崔猊山) : 예산은 고려 말의 문인 학자인 최해(崔瀣)의 호인 예산농은(猊山農隱). 가세가 빈한하여 만년에는 사자갑사(獅子岬寺)에서 밭을 빌려 농사를 지으며 저술에 힘썼다. 저서에 《졸고천백(拙藁千百)》ㆍ《동인지문(東人之文)》이 있다.[주-D004] 순문약(荀文若) : 문약은 후한(後漢) 시대 사람 순욱(荀彧)의 자. 절개를 굽혀 조조(曹操)의 막하(幕下)로 들어가 분무사마(奮武司馬)를 지냈다. 《三國志 卷10 荀彧傳》[주-D005] 관유안(管幼安) : 유안은 후한 관녕(管寧)의 자.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절개를 지키며 산속에 묻혀 살았다. 《三國志 卷11 管寧傳》
[주-D006] 서시(西施)를……떠날 줄 : 서시는 춘추(春秋) 시대 월(越) 나라의 미녀(美女).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하자, 범려(范蠡)가 서시를 취하다가 오왕 부차에게 바쳐 그의 마음을 황란(荒亂)하게 만들어서 오 나라를 패망시켰는데, 그 후 서시는 끝내 범려를 따라 배를 타고 오호(五湖)로 떠났다는 고사이다.[주-D007] 고소대(姑蘇臺) : 춘추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월(越) 나라를 격파하고 미인 서시(西施)를 얻어 그를 거처하게 하기 위해 건축한 대(臺) 이름.[주-D008] 유랑(劉郞)이……생겼을 걸 : 잠총(蠶叢)은 촉왕(蜀王)의 선조. 촉주(蜀主) 유비(劉備)가 어렸을 때 중종(中宗)의 아이들과 뽕나무 아래서 놀 때에 농담으로 “내가 반드시 이 뽕나무처럼 생긴 우보개거(羽葆蓋車)를 타게 될 것이다.” 한 고사를 가리킨다. 《三國志 卷32 劉備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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芝峯類說卷十三 / 文章部六 / 東詩
李齊賢聞淮安君出家詩曰。火中良玉水中蓮。半夜踰城去杳然。雲衲換來新面目。綠窓啼盡短因緣云云。按淮安大君。益齋友壻也。前朝時王子多被緇爲僧。故其詩如此。半夜踰城。按佛說。釋迦以王子。夜半踰城入雪山修道云。蓋用此也。
李齊賢詠范蠡詩曰。論功豈啻破强吳。最在扁舟泛五湖。不解載將西子去。越宮還有一姑蘇。其意甚新。
前朝李奎報,李齊賢,李穡。我朝金時習最號名家。其警聯則
李奎報呈李給事詩曰。仙鰲壯力扶山起。金虎雄精叱電駈。題寺院曰。滿院松篁僧富貴。一江烟月寺風流。題浦村曰。湖淸巧印當心月。浦闊貪呑入口潮。臨陂郡詩曰。客舍新除垂柳路。人家半掩映花扉。文機障詩曰。三呼萬歲神山湧。一熟千年海果來。妙巖寺詩曰。幽澗水渟猿掬飮。陽崖草滑鹿來啣。德淵院詩曰。竹虛同客性。松老等僧年。
李齊賢記行詩曰。雨催寒犢歸漁店。波送輕鷗近客舟。又窮秋雨鎖靑神樹。落日雲橫白帝城。又碧雲暮隔魚鳧水。紅樹秋連鳥鼠山。又蜃氣窓間日。鷗聲砌下潮。又野平山隱地。村遠樹浮空。
李穡早春詩曰。寒聲入榻風敲竹。翠影當窓日轉梧。山中詩曰。風淸竹院逢僧話。草軟陽坡共鹿眠。天壽節詩曰。六合一家堯日月。三呼萬歲漢衣冠。卽事詩曰。蟻行當檻樹。鶯語近窓枝。又行雲猶雨意。臥樹亦花心。
金時習山居詩曰。風曳洞雲歸遠壑。鴈拖寒月下遙岑。又流鶯趁蝶斜穿檻。遊蟻拖虫倒上階。又妻挑野菜和根白。兒摘山梨帶葉黃。又鳥歸庭有迹。花落樹無聲。又花是山中曆。風爲靜裡賓。此其最佳者也。
但李穡詩翠影當窓日轉梧。爲早春則未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