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두 살에 뽀얀 속살입니다 시야각으로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 벗고 만날 수 있고 온몸을 훑고도 괜찮아요 엄마는 때수건과 우유를 손에 들고 옵니다 우리는 깨끗해집니다
두꺼운 발톱과 무좀을 병이라 부릅니다 탕의 수증기는 소리와 이야기를 불러 모읍니다 “그 발톱으로 네일 숍에 왔대” 동료들이 웃었습니다
어머니가 예순두 살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대충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 중반이 되겠네요. 어머니와 같이 목욕탕엘 갔습니다. 어머니 속살이 뽀얗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라는 걸 강조합니다. 예순둘이나 스물둘이나 서른둘이나 여자들은 여자이고 싶으니까요. 때수건의 이미지는 깨끗한 것입니다. 우유는 자식을 먹이는 어미의 심정이죠. 순백의 이미지도 있고요. 엄마와 딸의 온 몸이 깨끗해집니다. 두꺼운 발톱과 무좀이 있어도 예뻐지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 발톱으로 네일 숍에 왔대'라는 말은 나이가 먹고 병이 들어도 여자들은 예뻐지고 싶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여탕은 들어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여자들의 수다가 보입니다. 시끌벅적한,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요. 여기까지는 어머니와의 이야깁니다. 일단 어머니에 대한 표현이 너무 깔끔하고 좋습니다.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것이 시인의 역량입니다.
회사에서는 엄마 얘기만 합니다 아빠 얘기만 하는 동료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없니?” 질문은 되돌려집니다 알고도 모르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동료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아차 하면서 재채기처럼 웃었습니다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만큼 웃음거리들이 쉽게 배어나오는 회사입니다 제가 오늘 재채기를 했던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엄마'라는 단어라고 하지요. 아버지는 순위가 한참 밀리더라고요. 언제나 엄마만 생각하는 시인이 보입니다. 재채기처럼 시도 때도 없이,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게 '엄마'라는 소리입니다. 지금의 장면은 회사에서의 장면이죠. 회사에서의 생활이 무척 즐거워 보입니다. 웃음거리들이 쉽게 배어나오는 회사는 화기애해하겠죠.
바디 클렌저에서 수영장 냄새가 납니다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 떠오릅니다 카페 화장실 앞에서 스콘을 먹어야 했어요 열고 닫히는 문은 섬이었다가 여름이다가 코끼리였습니다 삼십 분 동안 읽었는데요 시 한 편을 오래 보았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의 섬'에는 오누이와 코끼리와 섬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인은 스콘을 먹으며 시 한 편을 읽었습니다
매일 달라지는 책을 동료에게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쓰는 몰입을 알 리 없어요 동료가 농담을 던졌습니다 “등단을 못 하겠구나” 엉뚱한 발언을 잘 하는 저의 별명은 소설가입니다 “시를 씁니다” 말하지 않아요 동료들은 알고도 모르는 것일까요
이제 장소는 또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회사 동료와의 대화입니다. 소설은 어머니같은, 시는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재채기를 했던가요'와 '모르는 것일까요' 같은 운율을 통일시켜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합니다. 알고도 모르는 것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해 집니다.
“친구들은 어때요?” 하면 엄마가 떠오릅니다 저의 벗입니다 같은 원 안의 피자를 먹고 다른 날 같은 구두를 신습니다 즐거운 시간은 떼어 두었다가 서로에게 선물합니다 기억이 풍성해지면 쪼그라드는 현재들 진짜 벗들은 기억의 원 안에 있어요
어머니는 친구와 같은 존재입니다. 친구같은 엄마. 모든 걸 공유하는 엄마. 늘 무엇을 줄까 고민하는 엄마와 딸. 어머니와 추억이 너무 좋습니다. '기억이 풍성해지면 쪼그라드는 현재들'은 너무 좋은 표현이예요. 생각해 보세요. 옛날의 기억이 너무 좋으면 지금 현재는 초라해 질 때가 있습니다. '원'이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동그라미'안은 포근합니다. 소속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엄마에게 진 빚이 많습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잖아요. 급여가 들어오지 않는 회사로 출근합니다. 암울합니다. 해직 노동자일까요? 급여가 들어오지 않으니 회사가 아니라 그냥 모이는 집단이 됩니다. 코로나 19로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고 여행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해고 노동자가 늘었습니다.
조금만 당돌해집시다 구호가 필요합니다 동료는 잘난 척을 하다 동료들에게 혼쭐이 났습니다 저도 잘난 척의 기질이 있습니다 그러니 많이는 말고 조금만요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당 해고가 기다립니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보태야 합니다. 늙어도 우리는 무섭습니다 엄마는 겁보입니다 매일 밤이 오다니 엄마는 차를 몰고 저를 데리러 옵니다 보조석의 방석은 꽃무늬입니다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 스무 살에 꾸었던 꿈의 일부를 이룬 것 같아요
어머니는 딸을 걱정합니다. 늦게 돌아오는 딸을 걱정해서 차를 몰고 마중을 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딸은 해고당하기 직전 노동자일뿐입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자이기를 포기하지도 않고요.
어머니와 대비되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시의 제목이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입니다. 회사가 엄마가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을까요? 그렇다면 '헨젤과 그레텔의 섬'에 나오는 '섬'이 회사일까요? 가족 경영을 이야기하지만 회사는 가차없이 직원들을 해고합니다. 엄마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