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가까이에
최명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문득문득 마음속에서 일렁이며 올라오는 생각이다. 어디에다 격을 맞추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행복하고 건강해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도반 8명이 해인사 원당암에 선 수행체험을 동참했다. 나를 찾는 수행이다. 참선기도 동참자들은 평균나이 60대 이상이 되는 것 같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보살님들이 모두 법복을 갖추어 입고 가부좌를 하고 있다. 혜암스님의 법문‘세월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모든 것은 공짜가 없다.’ 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 몸의 고통을 이겨내야 평안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이다. 저리는 다리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견디는 일은 힘들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여러 사람들의 힘으로 견딜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수행하면 행복함을 느낄 수 있으려나. 내 옆에 앉아계신 노보살님은 37년째라고 했다. 얼굴 모습이 매우 평안해 보였다.
나의 젊은 시절은 결혼생활과 직장생활로 바쁘게 살았다. 순간순간 행복한 것도 있었지만 힘듦과 번민 등으로 충분한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갈등하며 살아온 날도 많았다.우연히 동료 선생님의 권유로 성당을 가게 되었다. 방송으로 교리 공부를 하고 신부님의 면담 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남편도 함께 받았다. 주일미사를 다니며 레지오 활동도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지만, 남편과 부딪히며 기싸움을 많이 했고 내 마음에 안정감을 주지 못했다. 종교가 나와 맞지 않아서 그럴까 싶어 냉담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절에도 갔다. 처음에는 불상 앞에 합장해서 절하는 것도 부끄러워 못 했다. 종종 사찰에 드나들다 보니 엎드려서 절도 하게 되고 법당을 드나듦이 자연스러워졌다. 심신이 힘들 때는 혼자서도 방문하여 법당에 앉아 있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사찰은 위로의 장소가 되었고 삶의 방향을 잡을 때 의지처가 되었다. 남편을 설득하여 절에 가자고 하였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니 불경이나 법문집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며 불교 신자가 되었다. 불교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함께 하는 도반이 생기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 마음은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자기를 조금씩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니 행복감도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하는 봉사는 절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이나 행사에 안내해 준다거나,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고 기도에 동참하는 역할을 한다. 포교사 공부를 하여 불교 교리를 안내해 주는 역할하고 스님을 도와 수행과 봉사를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절 밖의 봉사는 경대병원에서 원무과 업무를 원활하게 하는 안내를 한다. 환자들이 병원 진료를 보기 위한 번호표를 배부하는 활동이다. 환자들과 감사 인사도 나누며 고통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노인들이나 많이 아픈 환자들을 도와주고 나면 즐거움과 뿌듯함을 함께 느낀다.
이 또한 나의 건강이 좋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구청에서 운영하는 걷기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퇴직하기 전 마지막 학교에서 근무하던 동료 선생님 3명이 근무했던 학교의 마을 이름을 팀명으로 했다. 각자가 매일 걷기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걷기를 하며 친목도 도모한다. 즐거움을 동반하는 활동이라야 꾸준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낳고 직장생활로 워킹 맘이 되어 힘들게 살았다. ‘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군데군데 붙어있던 시절이다. 하나는 외롭다는 걸 알면서도 힘들어서 아들 하나만 낳았다. 나의 삶은 오로지 자식과 남편 중심이었다. 친정어머니가 9살까지 우리 아이를 돌봐주셨고 반찬이며 집안일도 가끔 해결해 주셨지만, 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세월이 지나 아들이 결혼하고, 퇴직하면서 나를 위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못해본 취미생활을 하고 여행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며 바쁘게 지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을 들어가면서 하루 24시간이 짧을 정도로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퇴직하면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여가를 누릴 수 있어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하다가 멈춘 것들이 많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 일상의 소소함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데 모르고 지나쳐버릴 뿐이다. 무언가를 찾아서 목표를 이루고 성취하면 행복할 거라고 착각한다.
행복의 조건 중에 으뜸이 건강인 걸 실감한다. 올해 들어 병원에 14일간 입원을 했고, 심장 때문에 응급실에도 다녀오니 무엇보다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 나이가 된 모양이다. 너, 나 없이 늙으면 당연히 아프고 죽음의 길로 간다. 병원의 힘을 빌리지 않고 고이 죽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고 죽는다는 뜻으로 ‘구구팔팔이삼사’를 외친다. 병원에 온 사람들의 아픔도 가지가지다. 병도 죽음도 하늘의 뜻이라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지만 건강해야 모든 것이 행복하다.
집 앞 공원에 나오니 아! 좋다.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팔랑거리며 여유롭게 떨어지는 잎사귀를 보며 행복에 젖어 본다. 정자에는 할머니들이 보행기를 세워두고 손뼉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는 계절을 서러워하기보다 만끽하는 모습에서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늘도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도하며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첫댓글 일체유심조 입니다. 이것 저것 해봐도 마음에 속 드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건강을 잘 챙겨야 봉사도 취미 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한발 물러나서 생각해보시면 좋은 길이 보입니다.
워킹 맘으로 멋있게 살아오신 과정이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