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인색한 세대
김호림 기호일보 2024.07.05
오래전 유대인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3가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첫째 감사는 선민으로 태어난 것으로, 조상의 규례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인 그들의 역사에 대한 감사일 수 있다. 둘째 감사는 장자권을 매우 중요시했던 남성 우위의 가부장 사회에서 팽배했던 편향된 감사다. 마지막 감사 이유는 자유인의 신분이다. 당시 종은 전쟁포로 출신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자유인이란 피지배 민족이 아닌 독립 국가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으므로, 이는 국가에 대한 감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땅을 살아가는 오늘의 세대는 역사에 대한 감사도, 국가에 대한 고마움도 그리 찾아볼 수 없는 듯하다. 흔히 역사의 기록이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시간의 거리 때문이 아니라 관계의 거리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더욱이 건국을 비롯한 최근의 역사도 밝게 보지 않으려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보다는 이념의 잣대인 관계란 거울로 비춰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 북한이나 러시아, 중국이나 이란과 같이 전체주의 국가나 신정국가의 국민이 아닌 것에 감사할까? 이 자유와 관련, 청년 이승만은 저서 「독립정신」에서 백성은 지배 대상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며 그들 각자가 자유, 독립, 자주, 자율적인 존재이며 각성된 개인임을 천명함으로써 독립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인간의 기본 속성을 회복하는 것임을 일깨웠다.
이뿐 아니라 오늘의 젊은이들은 단군 이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행한 세대라고 느끼는 듯하다. 자신의 상대적 빈곤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결혼도, 출산도 선택사항이 됐다.
이러한 감사의 부재는 안타깝게도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최근 어느 대학의 개교 70주년 기념을 위한 조형물 구축에서 학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 조형물 설치를 추진하자 찬반 논란이 일어 기공식이 취소됐다고 한다. 이는 이 대학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된 첫 번째 논란이 아니다. 1979년 이 전 대통령 동상이 건립됐으나 학생들은 5년 만인 1984년 그의 독재와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아 민주화 시위 중 동상을 밧줄로 묶어 철거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이 역사적 사실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의 독립운동 시기인 1941년 6월 이승만은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라는 국제정치 분석서를 영어로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천황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로 무장한 일본은 곧 태평양을 차지하기 위해 미국과 전쟁을 일으킬 것을 예언했고, 그해 12월 진주만 공격으로 예언이 적중하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그해 9월 월간지 ‘아시아(Asia)’에 게재한 이 책의 서평에서 "이 박사는 일본인들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는 없으나 다만 일본인들이 가진 심리상태가 전 인류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다음은 그의 친일파 논란, 즉 친일 청산을 하지 않고 친일파를 비호했다는 주장을 살펴보자. 그가 친일파라는 빌미는 1948년 9월 22일 제정된 ‘반민족행위 처벌법’에 의해 조직된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 활동을 일부 견제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시 준동하던 ‘남한 공산화 책동’에 대응해야 하는 이승만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친일파 정리보다 새로 등장한 공산 세력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이런 불가피한 사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측은 김일성과 소련 지도부가 권력기관에 친일 혐의가 있는 인사들을 대거 등용한 것과는 달리 건국 초대 내각 구성원 19명 거의 전부가 독립운동자로 구성됐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친일파 매도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이념 관계라는 잣대의 슬픈 산물로 보인다.
역사를 잊은 세대나 오늘을 이르게 한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안전을 지키고 보장해 준 국가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에겐 미래가 없다. 그들은 아침에 뜬 태양이 중천에 있을 때까지는 환호하지만 서쪽 저녁으로 기우는 잔광(殘光)은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누가 과연 그들에게 태양이 되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