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일 전북의 시 낭송대회
2023.9.2 (토) 오후 2시 복합문화공간 K-Popera 여원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교9길 17 2충)
참가비 없음, 자유시 낭송 없음
원고를 보고 낭송해도 무방
선착순 20명 문자메시지로 사전접수(010-5314-2603)
♤ 지정시 4편
살구나무 / 유대준
쏙쏙 뼈가 쑤신다는 기별을 받고 고향에 갔다
검버섯 덕지덕지 핀 스레트 낡은 집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아끼던 옷 주섬주섬 걸치고 병원 가면서도
에미 잘 있고 선이와 철이도 잘 있냐며
어머닌 가족이란 끈을 놓지 않는다
골밀도 검사를 위해 분홍 가운으로 갈아입은 어머니
"빛깔이 참 곱다. 이게 공단이냐 다우다냐"
시집 갈 색시처럼
만져보고 비벼본다
그때, 젊은 날의 푸른 물살이 주름 속으로 잠깐 흘렀을까
한때, 꽃자리였던 엉덩이 테이블에 얹고
허리 펴지 못한 채 뫼산 자로 눕자
이미 이승과 저승이 한 몸으로 섞인
차디찬 생, 그 슬픔이 기계에 읽힌다
바람 든 고목 한 그루
팔 남매 키운 풍성했던 젖가슴이
툇마루에 말라붙은 살구꽃잎같이
쪼글쪼글하다
무궁화 / 김현조
천 만 년을 사랑하자고 맹세할 때
나는 몰랐다
하루 지나면 무너져 내리고
아침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목숨
한 발짝 다가서면 마음 하나가 꽃이고
마음 하나 일어나면 다시 목숨이 되었건만
날이 저물면 그대로 끝날 것 같던
별빛의 무게에도 목숨을 걸어야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생울음이 별똥별로 쏟아져도
나는 참말로 몰랐다
온 살에 핏발이 다섯 갈래로 번져가고
붉은 단심은 노란 깃발을 날리며 낮을 밝히었다
바람의 무게에도 쉬이 꺾이는 꽃모가지 받들어
한민족의 하늘 가득 부호된 문장들로 날리었다
흙속에 담긴 목숨들은 뒤를 부탁하지 않았고
비상을 꿈꾸는 새들의 각오가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햇빛이 짤랑거리며 서리꽃을 피워냈다
내 몫의 사랑이라는 꽃이
그림자를 지우며 피어나고 있어도
나는 꿈에도 몰랐다
장마비에 단군과 신라가 일제히 떠내려와도
아리랑처럼 땅바닥을 굴러다녀도
유월이 돌아오면 꽃은 저절로 피어났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하늘이여
나는 죽어도 몰랐습니다
사랑이여 / 송희
사랑이여
밤 부스럼을 쪼아 아침을 여는 새소리라던가
머리칼을 쓰다듬는 해의 손길이라던가
개펄의 애기살들이 발가락 틈을 비집고 들어와 종일 깍지껴주던
사랑이여
이런 부드러움을 알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마음이 복숭아 껍질처럼 꺼억꺼억한 날엔
이 부드러움에 대고 몇 날씩 문지르곤 합니다
오래된 슬픔과 가만가만 뒹굴어 보고
한밤중 달을 찾아 구름 사이사이 뒤지다 보면
매미울음 덮고 선잠 든 어둠이 얼마나 지독하게 빛나던지요
이 모두 사랑을 만지는 일입니다
두근거림의 새로운 뜰이여
두근거림의 환한 빛이여
결코 서러울 것 없는 삶의 매 순간들이여
사랑을 따라 어둠이 내려도 괜찮았습니다
사랑을 따라 천둥이 쳐도 괜찮았습니다
어둠 한 줌도
천둥 한 마당도
모두 사랑의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도 사랑이여
만 리 밖으로 휘돌 때에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심어주어 참 고맙습니다
사랑이여
가을은 슬픔도 아름답다 / 정재영
가을입니다
가을은 아름다운 슬픔입니다
그대 떠나며 남긴 슬픔도
붉게 물이 들면 가을일까요
가을이 그려내는
황홀한 슬픔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가을입니다
슬픔도 물이 들면
낙엽지듯 떨어질까요
바람보다 가볍게
이별하는 법을 가을은
누구한태 배웠을까요
붉은 나비 떼
우르르 솟아오르는 숲
눈시울 붉은 낙업을 보았습니다
별이 지듯
빛나던 그대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슬픔도 물이 들면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입니다
그대 떠나며 남긴 슬픔까지도
이토록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