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준비 참석조원 :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부, 패션디자인학부, 사회복지학부,법정학부 4조 전원 참석
사회자 : 강현우 , 발표자 : 손경희, 강지영, 한선화, 박혁준
1. 4조 소개와 영화 <도그마>의 감독과 영화의 소개.
안녕하세요. 영화<도그마>에서 <역설의 의미>읽어내기를 맡게 된 4조입니다. 어제 빼빼로 데이였는데 솔로분들 많이 외로우셨죠? 저희도 많이 외로웠답니다. 저희는 남들이 애정행각을 부리며 빼빼로를 주고 받을때 열심히 피땀흘리며 발표 수업을 준비했답니다. 그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구요, 지루하시더라도 끝까지 잘 경청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부, 사회복지학부, 법정학부 이러게 세 학부로 이루어졌습니다. 학부가 많다보니 이것저것 모이는데도 힘도 많이 들었구요, 자료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들었습니다. 영화 <도그마>란 어떤 영화일까? 혹시 들어 보셨어요? 영화 <도그마>는 케빈 스미스의 코드중 하나인 카톨릭에 대한 로드무비입니다. 케빈스미스의 영화는 전작인 체이싱 아미처럼 진지한 영화라기보다는 카톨릭, 그러니까 종교와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한 장황한 조크입니다.
영화 <도그마>의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에 항상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캐릭터로 나오는 괴짜감독,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시나리오를 독학한 영특한 청년, 만화를 밥먹듯 봐야 직성이 풀리는 꿈꾸는 만년 소년... 케빈 스미스는 그만의 독특한 영화 스타일만큼이나 캐릭터와 경력이 특이합니다.
1970년 8월 2일 미국 뉴저지주 레드 뱅크에서 태어난 케빈 스미스는 어러서부터 얼터너티브 록, 만화책, 그리고 영화를 보며 자랐습니다. 그는 TV도 굉장히 많이 봤는데, 어린 시절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TV를 보며 지냈으며, 소년 시절 내내 R급 영화들을 시청하면서 자라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주로 코미디 영화들을 찍습니다. 그것도 아주 솔직한 이야기들을 담아내죠. 미국인들의 정서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한국인들의 정서에 그의 영화는 그렇게 강하게 어필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이 작품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건 <도그마>라는 영화 부터였습니다. 카톨릭에 대한 조금은 반항적인 심리를 담은 이 영화는, 미국 본토에서는 상영 중지에 관한 데모가 있었을 정도로 문제작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큰 문제없이 상영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 이후 케빈 스미스라는 감독 영화에 대한 색다른 감각과 또 엽기적이기까지한 발상에 매료된 한국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도그마>란 어떤 영화인가에 대한 소개는 손경희님께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종교’를 영화의 소재로 삼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종교가 시작된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한 바로 그 순간이다. 원초적 공포인 어둠, 죽음, 외로움 등에 대항하기 위하여 인간은 종교를 발명했다. 또는 정반대로 바로 그 순간, 절대자의 존재를 ‘직감’한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모든 역사에 걸쳐 지속 되어 온,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질문을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는 데는, 용기와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질문 자체의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기성 종교에 대한 ‘회의’와 ‘반성’은 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루이 브뉘엘의 <황금시대>나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 그러했듯, 어떤 집단이든 성장할수록 피폐해진다는 법칙은, 종교라고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케빈 스미스는 <도그마>라는, 기상천외한 종교영화를 만들면서 영악한 잔꾀를 부린다. <도그마>는 그저 ‘코믹 판타지 액션영화’일 뿐이고, ‘종교영화도 아니’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말고’, 논쟁도 변명도 않겠다고 구구절절 사설을 늘어놓는다. <도그마>는 ‘신에게도 유머감각은 있다’라는 생각으로 만든, 웃자고 만든 영화니까 그냥 보고 넘기라고. 물론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물론 케빈 스미스의 유별난 유머감각이 <도그마>를 만든 직접적인 게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도그마>의 수많은 패러디와 난잡한 ‘볼거리’의 너머에는 케빈 스미스의 도발적인 ‘종교관’이 엄연하게 버티고 있다. 주인공인 베다니, 예수의 마지막 후손이라는 여인을 하필이면 낙태전문의로 설정한다든가, 13번째 흑인사도가 나타나 예수는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것 등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낙태는 20세기 들어 카톨릭이 자유주의자들과 대립하는 가장 첨예한 논쟁거리이고, 예수가 흑인이라는 주장은 예수가 셈족이라는 과학적 증거까지 제시하며 꽤 논리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다. 하느님이 여자라는것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단체에서는 이 사회를 존재하는 여성차별의 대표적인 예 하나가, 신을 남자라고 단정하는 종교라고 말한다. 따지고 들자면 <도그마>에는 그런 첨예한 문제들이 태백산맥처럼 줄줄이 이어져 있다.
하지만 <도그마>는 그 ‘논쟁거리’들을 따져 보라고 만든 영화는 결코 아니다. 케빈 스미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엮어 ‘코믹 판타지 액션’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도그마>는 기존의 종교관에 대한 사적인 농담과 함께, 만화적인 볼거리를 듬뿍 담고 있다. ‘종교’는 별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 줄거리만 쫓아가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손경희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잘들어 봤습니다.
2. 영화 <도그마>의 줄거리 소개
종교는 불교 기독교 사이비교 등등 많은 사람들이 의지를 하는 곳이죠. 종교라는 것이 종류에 상관없이 인간의 믿음에 관련되어 상당히 민감한 부분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특히 영화의 내용이 그것을 비꼬거나 통념을 뒤엎는 것일 때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까지 갈 수 있는 폭탄같은 소재일것입니다. 하지만 케빈 스미스는 영화가 시작할 때, ‘하나님에게도 유머감각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논쟁은 사절. 이 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이라고 말해버림으로써 그 후에 나올 말들을 일소시켜버립니다. 영화의 시작에 그가 이런 비상구를 마련해 놓은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내용을 말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객의 종교 관념을 유연하게 혹은 깨뜨리는 <도그마>는 상당히 짓궂은 영화입니다. 비둘기와 함께 평화와 선의 상징인 천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이고 다니며 우리가 성당에서본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는 수염 많은 하나님은 여자이며 흑인일 것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그의 이런 기발한 상상력은 웃지 않으려고해도 황당해서라도 웃게되는 상황에까지 몰고갑니다. 그리고 케빈 스미스의 예전 작품이 하나의 주제에 관한 이야기 혹은 여러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형식의 영화였다면, <도그마>는 차라리 황당한 한편의 만화로 느껴지지만 이야기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영화 <도그마>의 줄거리는 강지영님께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노인이 바닷가에서 기분좋은 산책을 시작하려 한다. 그때 하키스틱을 든 괴상한 소년 셋이 나타나 그 노인을 폭행하여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달아난다.
한 청년이 기부금을 받으러 다니는 순진한 수녀를 꼬드겨서 수녀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고 있다. 공항에서 또 한 명의 청년이 합세하자 두 청년은 어디론가 떠난다. 익명의 편지를 하나 받았기 때문이다. 편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성당의 축성식에 관한 신문기사를 찢어낸 조각이다. 그들은 축성식에 참석하여 그 성당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계획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늘로부터 쫓겨난 타락천사들이기에 죽지도 못하고 세상을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성당문을 들어서면 그들은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막으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이들이 천국으로 되돌아가면 우주적 질서가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사람, 예수의 마지막 후손인 산부인과 의사 뿐이다. 그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이유로 남자와 헤어진 후 삶의 낙을 거의 상실한 여자다. 고뇌에 빠진 이 여자에게 어떤 불길의 존재가 나타나 거룩한 음성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소화기를 꺼내 그 불을 꺼버리고 야구방망이를 집어든다.
나타난 존재는 일곱 대천사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메타트론.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음성을 들려주던 존재다. 아직 설득되지 않은 그를 해치려 하키스틱을 든 세 악마가 또 나타나지만 다른 두 사람이 나타나 이들을 쫓아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든 여자와 섹스를 해보려는 생각으로 가득찬 얼간이들이다. 그들이 자신을 돕기로 예고된 예언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는 오히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함께 성당을 향해 떠난다. 예언자들은 그가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지만 죽기 직전이 되면 허락하겠다는 말에 혹해서 따라나선다.
도중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한 벌거벗은 남자 하나가 떨어진다. 그는 예수의 13번째 제자였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성서에서 편집당한 비운의 사도 루푸스이다. 네 사람은 차를 포기하고 기차를 타게 되었는데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청년이 바로 그들이 막으려는 타락천사들임을 알게 된다. 격투 끝에 그들은 두 청년을 기차 밖으로 던져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성당으로 가서 추기경의 축성식을 막아야만 한다. 물론 추기경은 예수가 직접 오기 전에는 멈출 수 없다고 거절한다. 낙담한 그들은 바에서 스트립쇼를 하던 뮤즈를 만나 반가와 하지만 골고다의 모든 시체와 저주로 이루어진 결정체 골고탄이라는 괴물의 습격으로 위기에 빠진다. '과묵한 밥(silent Bob/이 사람이 감독 케빈 스미스다)'이라는 예언자 중 한 명이 똥으로 이루어진 골고탄에 악취제거제를 뿌림으로써 퇴치하자 이번에는 아즈라엘이 나타난다.
그는 사탄과의 전쟁 중에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난 천사다. 그가 바로 두 천사에게 축성식을 알렸으며 우주의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추기경에 의해 축복된 골프채인 줄 모르고 자신이 불사의 존재임을 자랑하다가 맞아 죽는다. 두 천사는 도중에 금송아지를 테마로 한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게임 등으로 재벌이 된 악덕기업을 찾아간다. 중역회의에 들어간 천사는 그들의 죄과를 하나하나 드러낸 다음 매그넘 권총을 사용하여 그들을 몰살시킨다. 도중에는 버스에서 아내가 아닌 여자와 키스하고 있다고 단정한 어떤 남자를 사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성식은 시작된다. 추기경은 카롤릭을 부흥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고 그 슬로건은 "Catholicism WOW!"이다. 예수 아이콘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윙크하는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하여 주교회의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천사들은 이미 세상을 파괴하기로 결심한 상태다. 한 천사는 성당 앞에 모인 축성식 참석자들을 모두 학살하고 스스로의 날개를 잘라버린다. 다른 한 천사는 처음에는 과격한 파괴를 반대했었지만 신으로부터 여전히 방황의 해답을 얻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절망하여 이제 더욱 완전한 파멸을 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날개를 자른 천사가 마지막 순간에 주저하게 되자 그를 칼로 찌르고 성당문을 들어서려 한다.
이무렵 예수의 마지막 후손은 어떤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 병원에는 세 악마에게 폭행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노인이 누워있다. 여자는 그의 추측이 맞기를 기도하며 환자의 산소호흡기와 생명보조장치를 빼버리고 곧 노인은 죽는다.
그순간 성당문이 열리면서 신과 메타트론이 나타난다. 가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여 산책하고 놀이를 즐기는 천진한 신이었고 지금은 어떤 여자의 모습이다. 신은 산책을 즐기려는 노인으로 나타났다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가사상태에 빠져버렸고 그때문에 지금까지 그 노인의 몸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신이 나타나자 천사는 신과 무언의 소통행위를 하고 그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해답을 듣게 된다. 그리고 신은 천사의 소원대로 죽게 해준다. 그리하여 신과 메타트론, 뮤즈와 루푸스는 천국으로 돌아가며 선물로 여자의 몸에 아기를 넣어준다.
수고하셨습니다. 강지영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잘들어 봤습니다.
3. “도그마”의 정의와 영화 <도그마>속의 “역설” 읽어내기
도대체 도그마 도그마 하는데 도그마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도그마에 대한 뜻부터 설명드라자면 교리 라는 뜻입니다. 영화의 첫장면에 이 영화는 결코 기독교나 천주교를 비하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나와있고 아무생각없이 보길 바란다 라는 메시지가 나오지만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엄청난 반어법이죠. 도그마의 정의와 도그마속의 역설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도그마의 정의와 도그마속의 역설은 한선화님께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독단(獨斷)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인간의 구제를 위해서 신(神)이 계시한 진리를
말하며, 교회가 신적 권위를 부여한 신앙신조(信仰信條)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이 지닌 복잡한 역사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의미도 있다.
① 어원은 그리스어의 동사 ‘dokein(생각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의견 ·결정’을 의미했다.
② 그러다가 후에는 철학자의 견해와 학설을 의미하였고,
③ 여기에서 진리의 인식을 부정하고 오직 진리의 탐구만을 주장하는, 고대 회의론자들이
자기네들과 달리 자연에 관한 철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dogmatikoi(定說家)’라고 부름
으로써 자기들과 구별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근대에와서 dogmatic, dogmatism이 독단적 ·
독단론(충분한 근거나 증명 없이 일정한 설을 주장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④ 로마시대에는 로마 원로원의 재정(裁定)을 의미했다.
⑤ 신약성서에서는 사도회의의 결정(사도행전 16:4), 구약 시대의 율법(에페소 2:15), 국가의 법령(루가 2:1) 등을 의미하였다.
⑥ 교부(敎父)에서는 ‘교회의 교리’라는 고정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⑥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이다.
<도그마>를 기존의 종교적 도그마에 저항하는 신성 모독적인 영화라고 해석하는 것은 오독인 것 같다. 이 영화는 단지 구시대적인 방법으로 전수되던 완고한 도그마를 가볍고 즉발적인 현대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도록 손질한, 제목 그대로 <도그마>적인 영화이다.
도그마는 본래 그리스도 교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Tism이 붙어 도그마티즘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흔히 교조주의라 일컫는 도그마티즘은 도그마를 영원불변의 것으로 인식해 변화된 상황이나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선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조주의적 아집은 종교나 독재자에게서 볼 수 있다. 교조주의적인 지배자는 역사의 이성과 사회 정의에 의해 공격당하곤 하지만 종교는 그렇지 못하다. 3세기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가 ‘종교는 불합리하기에 믿는다’ 라고 말했을 만큼 자연적 인식 능력인 이성으로 종교를 재단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교가 신의 말씀을 듣는 일이기 때문에 그 말을 해석하는 중간자가 존재해야 하고, 그래서 자의적 해석을 배제할 수 없다. 신학자 니이버가 지적한 대로 ‘종교는 절대자 앞에서의 겸손인 동시에 절대자를 빙자한 자기 주장’이기도 하다. 즉, 신은 선하지만 교회는 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종교를 소재로 한 영화가 바로 <도그마>이다. 영화 <도그마>는 교회가 기업화되고 믿음이 황금성을 갖는 우리 시대에 종교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게 한다. ‘종교는 불합리하기에 믿는다’는 테리툴리아누스의 역설적인 말이 종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유일한 답은 일지도 모른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선화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잘들어 봤습니다.
4. “역설의 예”와 그 이유
사실 종교에서 말하는 내용들중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느니 전쟁이 없는 평화가 온다느니 라는 말들은 맞다고 증명할수도 아니라고 증명할수도 없는 내용들입니다. “종교는 불합리하기에 믿는다” 이말이 가슴에 와 닿는것 같습니다. 그럼 역설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역설의 예”와 그 이유는 박혁준님께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역설의 예”와 그 이유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
찬란한 슬픔의 봄 -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아는 것이 병이다.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약이 악덕이고 소비가 미덕이다. -
삶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
생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잃어야 한다. -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때려라. -
용서는 악덕이다. -
1. 고은 시 중
우리에게 이 어둠은 얼마나 환희입니까?
-화자는 어둠을 역설적으로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곧 현실 극복의 의지적 표현임
2. 구상 시 8 중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다.
3. 김수영 시 제 5연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높이도 폭도 없는 폭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의 폭포는 객관적 위치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위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한용운님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역설을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지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을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한용운, 「복종」
'복종'은 '자유'의 반대 개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일반적으로 얽매임을 뜻하는 복종이 아니라 자유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그러한 통념을 뒤엎고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라고 말한다. 복종을 자유보다 훨씬 높은 가치의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 말은 분명 그 표면 구조가 모순되어 있는 역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역설에서 우리는 먼저 통념이 전복됨에 따르는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어떤 충격을 받았다는 뜻이 되는 그 놀라움은 우리를 그만큼 강하게 시 속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이처럼 독자를 끌어들이면 그 시의 표현은 일단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설이 시의 뛰어난 표현 장치가 된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쉽게 드러나는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박혁준님께서 발표하신 내용 잘들어 봤습니다.
5. <역설의 의미>
역설이란,
‘역설(疫說)’은 얼른 보기에는 모순되어 보이고 또는 불합리한 듯하나, 면밀히 고찰해 보면 진실임을 깨닫게 되는 진술 방법이며 ‘패러독스’라고도 한다. 즉, 하나의 문장이 두 가지 상반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어, 외견상으로 볼 때는 자기모순에 빠진 듯 하나, 올바르게 이해하면 진리를 담고 있도록 표현한 방법이 ‘역설법’이다.
6. 끝을 맺으면서..
저희가 처음 입을 맞춘거라서 바쁘게 준비해서 미흡한 점들이 너무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해해 주리리라고 믿습니다. 부족한 발표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이상으로 저희 4조에서 준비한 영화 <도그마>에서 <역설의 의미>읽어내기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아무리 한명이라도 패션도 적어주셈~
네 정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