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월요일 맑음.
바라대로로 가기로 했다. 숙소 주인에게 2일 정도 머물다 오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 아침 6시 30분에 식사를 하고 나섰다. 까피톨리오 옆에 줄지어 있는 오래된 택시를 흥정해서 타고 비아졸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은 작은데 시외로 멀리 가는 버스 터미널이다. 이곳을 찾아 가려면 동물원을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동물원 건너편이 비아졸 버스 정류장이다. 비아졸 이란 지명이 아니고 버스 회사 이름인 것 같다. 동물원 앞에서 내렸다. 정문 앞에는 사슴 동상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 아침이라서 인지 한가하다. 7시 40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8시 30분 출발하는 버스도 좌석이 없단다. 버스비는 10쿡(11000원)이다. 망설이고 있는데 이탈리아 커플이 다가와서 택시를 쉐어 할 것을 제안한다. 두당 15쿡씩 이란다. 망설임 없이 동의 했다.
붉은색 올드 카에 짐을 싣고 달려간다. 8시에 출발했다. 우리가 탄 차는 조수도 태우고 다닌다. 시내를 벗어나 쭉 뻗은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별로 없다. 어제는 서쪽으로, 오늘은 동쪽으로 달려가는데 큰 계곡위의 다리 외에는 농촌 모습이 비슷하다. 바다를 많이 보며 달려간다. 바닷가에는 서유를 퍼 올리는 시추 기계가 종종 보인다. 절벽과 어우러져 멋진 곳도 있다. 고물 승용차는 속도를 엄청 내며 달려가는데 소리와 매연이 장난이 아니다. 금방이라도 차가 분해되어 날아갈 것 같다. 오전 10시에 바라데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라고 하지만 차도 몇 대 없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버스터미널은 작고 아담하고 예쁘다. 벽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보니 아바나로 가는 버스는 오전 8시, 11시에, 오후 2대가 있다.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10쿡이다. 여기에서 트리니다드로 가는 버스도 오전 8시 15분, 1대가 있고 요금은 20쿡이다. 산타클라라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3번(8시 15분, 오후 2시, 밤9시)있는데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11쿡이다.
바라데로는 비냘레스와 더불어, 쿠바의 원초적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자 쿠바 최고 휴양지로 꼽히는 곳이 있다. 바로, 대서양을 향해 최대 폭 1.2km, 장장 21킬로미터의 백사장이 뻗어있는 아카코스 반도를 이루고 있다. 열 개의 아기자기한 섬들이 해변을 에워싸고 있는 이곳에선 40종이 넘는 산호초와 다양한 물고기를 감상할 수 있다. 순수함이 넘치는 쿠바의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쿠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스페인 어로 Playa Azul, 즉 푸른 해변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름다운 곳이다.
원래는 카와마 해협으로 쿠바섬과 분리된 섬이었으나 지금은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있다. 인구 7000명인 바라데로는 주민수의 배가 넘는 하루 평균 15000명의 휴양객이 머물다 간다. 그중 2/3가 캐나다인이고 나머지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 온다. 국제적인 휴양도시로 거대한 규모의 호텔들이 즐비하다. 이곳에는 수많은 다이빙 장소, 멋진 레스토랑, 나이트클럽이 있으며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와 상점이 있어 휴양객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바라데로는 선박 수리소라는 뜻이란다. 이 반도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쿠바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으며 그 후에 선박 수리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카르데나스에 살던 주민이 깨끗한 모래와 투명한 바닷물에 반해 집을 지었는데 그럴 때 마다 자연재해로 지었던 건물이 쓰러졌다. 4번째 시도 끝에 10가구가 모여서 교회, 공원, 시장 등을 만들면서 결국 바라데로 동네가 만들어졌다. 아바나에서 이곳까지 기차를 타고 7시간 이동해야하고, 식수 문제와, 모기떼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20세기까지만 해도 건물이 25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유명 휴양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워낙 해변이 아름답고 좋아서 꾸준히 성장, 그중에서도 듀폰가에서 별장을 건설했고 유명한 호텔 체인, 리조트 등이 들어서면서 세계 최고 휴양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는 터미널을 나와서 바닷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도로에 길게 주택들과 호텔들이 보인다. 주변에는 주택들이 모여 있는데 민박 까사들이 많다. 까사 가격은 보통 방당 30 쿡이고 아침 식사는 두당 2쿡이다. 가격을 흥정해서 25쿡에 머물기로 하고 식사도 부탁했다. 숙소는 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친절한 민박집 아주머니를 만나서 좋았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곳보다 더 들어가 숙소를 구하는데 그곳은 고급스러운 리조트와 호텔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갇혀 사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일단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바닷가에 잠시 들렀는데 물이 엄청 깨끗하고 백사장도 끝없이 길게 이어져 있다. 뜨겁다. 길로 나왔다. 호텔 Clup Tropical 앞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왼쪽으로 걸어간다. 뜨거운 대낮에 택시같이 이용하는 마차들의 말발굽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구형 승용차도 보이는데 뚜껑이 없는 오픈카는 더욱 멋져 보인다. 2층 버스도 한 대 지나간다. Transfer 회사명이 써 있는 시내 투어용 버스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득 타고 있다. 바라데로 비치 투어란다. 관광객 젊은이들이 렌탈 해서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도 간간히 보인다. 거리 표시는 Calle 로 되어있다. 블록마다 작은 표지가 있어 위치를 찾기 쉽다.
Calle22에서 작은 햄버거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샌드위치 햄버거, 스페셜이 제일 비싼데 35모네다MN(약 1600원) 이고 제일 비싼 피자는 25모네다MN(약 1200원)이다. 햄버거 3개를 샀다. 점심용이다. 먹을 고시 없어서 그냥 길에 서서 먹어야 했다. 다행히 버스정류장을 발견해서 그늘이 있는 의자에 앉아서 아내와 함께 햄버거를 먹는데 꿀맛이다. 정류장에는 차도 오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거리는 뜨거워 걷는 이도 거의 없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서 슈퍼가 있는 곳을 물으니 13 블럭, 24 블럭, 44 블럭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작은 기념품 가게들이 길을 따라 종종 보인다. 거리를 걸으며 메모를 했다. 26 칼레는 피자 가게, 22칼레는 햄버거, 28칼레는 슈퍼........
슈퍼에 가니 살만한 물건이 거의 없다. 쿠바는 물량이 엄청 부족하다. 과일이나 야채는 보이지 않고 물건도 몇 개가 보이지 않고 비어 있다. 물만 하나 사들고 나왔다. 식당도 없다. 우리가 찾은 피자, 햄버거 가게도 쥔이 열고 싶으면 열고 재료가 떨어지면 금방 문이 닫힌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중국집을 발견해서 들어갔다. 별장 같이 멋진 2층 저택이다. 붉은색에 정문도 넓다. 분위기도 좋은데 가격이 비싸다.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외국인 전용 식당인가보다.
택시 승강장을 만났는데 올드카들이 줄을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쿠바다운 모습이다. 기념품 가게들은 주로 목공예품이고 쿠바 자동차 번호판도 많다. 그림들은 주로 올드카를 많이 그렸는데 흔들거리는 느낌이 든다. CD 가게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관타나메라’라는 곡을 하나 사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가사이고 어떤 노래인지 궁금했다.
쿠바의 아리랑이 관타나 메라 란다. 관타나모의 농사짓는 아가씨, 나는 진실한 사람이라오. 야자수가 자라는 마을 출신이랍니다. 그리고 나의 시는 신선한 초록색이며 불타는 쟈스민 입니다. 나의 시는 상처 입은 사슴입니다. 산에서 피난처를 찾는........ 이런 내용이란다. 쿠바 영토내의 이국영 관타나모, 이는 수용소로 더 유명하다. 이 관타나모 지역과 연관된 노래란다. 쿠바인들에겐 마치 함국의 아리랑처럼, 제2의 국가처럼 애창되는 곡이다. 노래의 가사를 지은이는 쿠바건국의 아버지라는 호세 마르띠 라는 시인이고 정치가이며 군인이다. 그는 1890년 대 말엽 40대 초반의 나이에 일종의 독립군을 이끌고 미군들과 전투 중 사망했다. 호세 마르띠의 ‘소박한 시’의 일부 구절을 가사로 활용하고 민요의 곡에 적용해서 1950년대 중반에 ‘관타나 메라’라는 노래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가사는 상당히 서정적인데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읽힌다. 가사의 내용을 전달하기보다 어떤 정서적 감흥을 전달하는 것 같다. 처음으로 노래를 취입한 여가수는 1954년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시절에 노래를 부른 것이란다.
흙으로 빚은 듯한 사람 형상이 작은 공원 중앙에 세워져 있다. 허름한 주택 쇠창살 너머에 피자집 간판이 보이고 사람들이 7~8명 줄 서서 있다. 수첩에 메모를 했다. 돈을 환전해야할 것 같아서 환전소(깜비오)를 찾아가기로 했다. 내려가던 걸음을 돌려 이제 다시 위로 걸어간다. 환전소는 44칼레에 있단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와 버스 터미널은 칼레 36이니 제법 많이 걸어 내려왔다. 할 일도 딱히 없으니 걷는 것도 좋았다.
칼레 44에 도착하니 넓은 쇼핑몰이다. 단층으로 이루어진 상가인데 규모는 제법 커 보이지만 물건이 별로 없다. 사람들도 별로 없다. 물어서 구석에 있는 환전소를 찾았다. 아내가 들어가 환전을 하고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한명의 아주머니만 기다릴 뿐, 한가하다. Centro Comercial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밥과 고기를 접시에 담아 파는 거리 음식도 보인다. 모네다 전용 집이다. 내일 한 번 찾아와 먹어보기로 했다. 숙소로 와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겉옷을 걸치고 샌달을 신고 해변으로 갔다. 해변 숲 그늘에서 옷과 샌달을 정리해서 해변 보이는 곳에 놓고서 물놀이를 했다. 정말 깨끗하고 잔잔한 바다다. 물속에서 눈을 떠도 다 보이는데 눈이 따갑다. 깨끗한 물과 하얀 모래사장인데 물고기와 조개는 보이지 않는다. 좀 썰렁하다. 날씨는 쾌청한데 수영하기에는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물속에 들어가면 따듯해서 좋다.
호텔 앞 백사장에는 짚으로 지붕을 만들고 나무로 기둥을 한 비치 파라솔이 줄지어 있다. 별로 시설도 없는 그냥 바다다. 규칙도 없고, 통제도 없는 자연적으로 펼쳐진 도시적이지 않은 순박한 바다다. 푸른색이 끝도 없고 백사장도 길게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탈의실도 없다. 물론 샤워장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심심하다. 1시간 정도를 물속에서 아내와 놀고 나니 이제 할 일이 없다. 해변에 앉아있자니 뜨겁고 나무 그늘에 앉아있자니 춥다. 옷을 걸치고 그늘에 앉아 있다. 멀리 바다가 끝도 없다. 새소리와 파도 소리만 들려온다. 놀았더니 배가 고프고 심심해서 숙소로 향했다. 그래도 쿠바에 와서 카리브해에서 수영을 해본 것이 기분이 좋았다. 아내의 비키니 수영복도 햇빛을 보게 되고 바다의 짠 맛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바다는 좀 심심했다. 그저 바다일 뿐이다. 숙소에 와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옥상에 줄지어 널었다. 빨래는 잘 마를 것 같다, 붉은 고추 말리기 딱 좋은 날씨다. 배를 채우기 위해 우리가 먹고 싶었던 26칼레의 피자집을 찾아갔다. 문이 닫혀있다. 22 칼레에 있는 햄버거 집에 가서 저녁으로 또 햄버거 하나씩을 먹었다. 야채나 과일을 사려면 구 바라데로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한단다.
놀았던 해변 반대편 바다로 가 보았다. 바닷물의 침식을 막기 위해 방파제 시설이 있고 길게 도로가 이어져 있어 차들이 제법 쌩 쌩 달린다. 건기라 가로수들이 잎이 없거나, 겨우 달려있는 단풍잎들이 바싹 말랐다. 길가에는 유료 샤워장도 있었다. 함께 타고 온 이탈리아 커플은 여기서 수영하고 오후 차로 아바나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이런 유료 샤워장을 이용하는 것 같다. 날이 저물어 간다. 석양을 보기위해 다시 해변으로 간다. 거리에는 마차 소리가 힘겹게 들린다. 해변에 가서 지는 해를 보며 백사장에 앉았다. 서쪽은 정면이 아니라 왼쪽 백사장 끝으로 해가 넘어간다. 멀리 고층 빌딩의 모습이 검게 보인다. 해변에서 배구를 하는 젊은이들이 보이는데 배구공이 지는 해를 배경으로 오르내리며 춤을 푼다. 젊은 연인 둘이 해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이 경건해 보인다. 해가지는 줄도 모르고 모래를 파고 놀고 있는 꼬마들도 한 폭의 그림이다. 여기가 쿠바의 바라데로다. 참 멀리도 와서 앉아있는데 신기하다. 저 해가 넘어가 우리가 사는 한국당도 비춰주겠지, 갑자기 집과 아이들이 생각난다.
오늘 자고 주문한 아침 식사도 먹고 놀다가 하루를 더 자고 가려고 했는데 이곳은 너무 심심하다. 그냥 바다에 나와서 수영을 또 하고 쉬려고 생각해 보니 좀 답답해 보인다. 아내는 그냥 내일 아침 일찍 아바나로 가잔다. 일단 내일 아침 주문한 식사를 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잠자리에 든다. 낮에 좀 걸어 다니고 물속에서 놀았다고 피곤하다. |